219화. 볼 것은 다 보았다 - (6)
“건강에 이상은 없는 겁니까?”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내의 출산으로 휴가를 얻은 다카기는 의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8개월 만에 태어난 둘째, 미숙아는 건강에 문제가 많다고 들었는데 혹시 갑자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신생아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설명을 듣고 다카기는 인큐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빠를 놀래 키고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녀석, 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참을 둘러봤다.
‘그 녀석 희한 하네.’
첫째와 달리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돋아난 둘째 아들,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건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 장면을 보셨다면 기뻐하셨을 텐데, 일단 사진을 찍어서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냈다.
“보고 왔어?”
“응,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내일이면 품에 안을 수 있을 거야.”
병실로 돌아온 다카기는 아내에게도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를 그렇게 아프게 했는데 뭐가 좋다고 싱글벙글 인지, 방금 아빠랑 같이 동생을 보고 온 타다요시도 엄마 옆에서 현장 중계에 나섰다.
“조금 못 생기게 나왔어요.”
“훗 ~ 그러니?”
“네, 실제로 보면 더 예뻐요.”
“그럼 아빠가 사진을 잘못 찍었나 보다.”
가만히 있는 나는 왜 건드리는 건지, 피식거리던 아빠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 왜 그래? 뭐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니, 솔직히 둘째는 딸이길 바랐거든”
아내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다카기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아들도 키워보니 나름 맛이 있지만 그래도 이번엔 딸이 좋지 않았을까.
대학공부도 마무리 했고 본격적으로 사회전선에 뛰어들 아내가 또 출산을 할 수 있을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결전에 임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와 주질 않았다.
“그럼 셋째는 안 낳을 거야?”
“어”
다카기는 아내의 입장을 배려했다.
임산부가 얼마나 불편하게 지내는지 봤으니 당연, 아내는 뭣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와서 유학을 했을까.
학창시절부터 수재로 이름났던 사람,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자신의 커리어를 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자.”
키리코는 애매한 답을 남겼다. 내 입장을 생각해주는 남편이 고맙긴 한데,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둘 다 아직 젊고 어쩌다 분위기를 타면 실수하는 날도 있겠지, 첫째도 그렇게 태어났다.
일단 보류는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생긴 셋째라면 외면하지 않을 생각, 그렇게 합의를 봤다.
“으음 ··· 손가락 다 있고 ··· 팔 다리 다 있고 ··· ”
이곳은 다카기의 친가, 코하루는 사진 속의 아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아기가 태어나면 팔다리가 있는지 꼭 확인하라고 하지 않았나, 다행히 이번에도 무사히 태어난 아기, 뭣보다 빽빽하게 솟아난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었다.
첫째 아기는 머리카락이 별로 없어서 놀랐는데 이번엔 모두 정상, 코하루는 바로 할아버지의 명패가 모셔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 이거 봐요. 태어났어요. 할아버지 말대로 손, 발가락 다 있는지 확인했어요.”
볼 건 다 봤다고 하셨지만 이렇게 못 본 게 있지 않은가. 코하루는 왜 그렇게 일찍 가셨냐며 일장 연설을 쏟아냈다.
“봐요. 귀엽죠? 못 보고 가서 서운하죠? 메 ~ 롱 ~ ”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가정부는 아가씨의 행동에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를 놀리고 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겠지, 사모님에게도 슬쩍 정보를 흘렸다.
이젠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순수한 면이 남아 있는 막내 딸, 아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다.
“걔가 그랬어요?”
[그래, 아주 귀여워 죽겠다.]
소식을 접한 다카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퍼펙트 게임을 놓쳤을 때도 이렇게 분하진 않았는데, 그렇게 귀여운 짓을 직접보지 못한 게 분할 지경, 바로 전화를 걸어 진상확인에 나섰다.
“너 할아버지 놀렸다며, 맞아?”
[응]
“오빠 있을 때 하지 그랬어, 오빠가 서운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야구하라고 했잖아.]
코하루는 콧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동생이 귀여우면 일본에서 야구를 할 것이지, 미국으로 가놓고 불만을 털어놓는 건 뭔가. 하지만 다카기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앙코르 한 번 해 줄 수 있냐며 매달렸다.
“너 아직 할아버지한테 자랑할 거 많이 있잖아. 오빠도 할아버지한테 보고 할 거 있으니까, 그때 보여줘”
[생각해 볼게. 안녀 ~ 엉]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녀석, 다카기는 한동안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딸 같은 동생이 있긴 한데 그래도 진짜 딸이 태어나는 게 더 좋겠지, 아내를 위해 셋째는 포기하겠다는 결심이 하루 만에 흔들렸다.
* * *
“K!! K!! K!! K!!”
9월 24일, 시즌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카기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 포스트 시즌을 위해 다음 경기는 거르기로 감독과 합의를 봤다. 삼진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 철벽의 에이스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따라 나옵니다!! 낫아웃, 포수가 잡아서 1루에 송구합니다.”
“확실히 위력적이긴 한데 체인지업보다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공식처럼 도출되는 삼진, 홈팬들은 환호했지만 해설위원들은 의문을 표했다.
바깥쪽으로 도망치면서 꺾이는 하드 슬라이더, 그만큼 포수의 수비 부담이 커진다.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울반스키의 공격지표, 이게 우연일까?
다카기는 이 문제를 두고 파트너와 논의를 거듭했다.
“체인지업으로 가는 게 어때?”
다카기는 예전처럼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딱히 울반스키의 입장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지금 던지는 슬라이더는 폭투 위험이 높다.
종으로 떨어지는 각도 만만치 않은데 스핀까지 걸려 땅에 처박히면 높게 튀어 오르는 구종, 마무리라면 모를까 이걸 실전에서 써야 할까.
솔직히 수비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 울반스키는 너만 괜찮다면 체인지업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래, 체인지업으로 가자”
배터리는 2경기 만에 예전 볼 배합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체인지업이 헛스윙을 못 끌어내는 건 아니지 않는가. 역시 선발은 안정성이 우선, 삼진을 잡고 돌아서는 게 보기 좋지만 실리를 택했다.
딱 ~
“이번에는 몸 쪽, 파울입니다. 97마일”
“다카기 선수가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날 이후 벌써 4년이 흘렀는데, 왠지 저만 변한 것 같습니다.”
해설 위원 피트 오어는 무거운 목소리로 화제를 끌고 갔다.
다카기가 512만 달러라는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을 때, 팬들은 그 활약에 의문을 품었다.
그건 피트 오어도 마찬가지, 하지만 다카기는 보란 듯이 메이저리그를 폭격하며 보스턴의 3연패를 이끌었다.
저 선수는 여전히 위력적인 투구를 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가. 흰 머리가 점점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도 많이 잡힌 편, 왠지 나만 나이를 먹는 것 같아 약이 올랐다.
“다카기는 미국 나이로 24살입니다. 그에 비해 당신은 55세죠. 당신이 나이 들어 보이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냥 좀 모른 척 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겁니까?”
캐스터의 질타에 피트 오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들어 부쩍 나이를 먹은 것 같아 서운한데 눈치 없이 사실을 말하는 사람들, 그래도 다카기는 오랫동안 보스턴의 마운드를 지켜주길 바란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몸 쪽으로 떨어집니다!! 삼진!! 오늘도 무서운 기세로 삼진을 쌓고 있군요.”
“지금 공은 슬라이더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구속이 조금 느립니다.”
화제는 다시 야구로 흘러갔다.
초반에 보여준 하드 슬라이더와 명백히 다른 궤적, 속도는 느리지만 크게 꺾이며 떨어지는 궤적을 그렸다.
하드 슬라이더는 워낙 빨라 포수가 대응하기 어렵지만 이 정도라면 대응할 수 있겠지, 덕분에 바깥쪽으로 약간 빠져 앉아야 했던 울반스키는 정석대로 자리를 잡았다.
확실히 이 편이 상대의 심리를 흔들기 용이, 느린 슬라이더가 볼 배합에 추가되면서 샬롯 머스키터스 선수단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빠른 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모두 다 타이밍이 다른데 뭘 노리고 공략을 하나. 실투가 나온다면 모를까. 제대로만 던진다면 배팅 타이밍을 잡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빠른 볼이다. 그것 밖에 없어.’
샬롯의 대안은 역시 빠른 볼을 공략하는 것, 그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배터리는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코스로 카운트를 잡아내는 노련함을 보였다.
마이너리그 경력을 포함하면 다카기도 어느덧 프로 5년 차, 구위에만 의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른 타자의 심리를 이용했다.
“들어왔다는 판정입니다!! 삼진!! 결정구는 빠른 볼이었습니다!!”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것도 슬라이더가 추가 된 덕분이겠죠. 에스코바는 빠른 볼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세르히 에스코바는 고개를 저으며 더그아웃으로 물러났다.
쿠바 리그에서 통산 0.367, 홈런 141개를 치고 입성한 메이저리그,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변화구 수준은 쿠바와 차원이 달랐다.
작년 시즌 22홈런을 치긴 했지만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면서 타율은 0.242에 그쳤고 삼진도 121개나 당했다.
그래도 올 시즌은 작년과 비교해 나아졌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구위와 변화구를 가진 다카기 앞에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다른 타자들도 마찬가지라는 현실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가.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에스코바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자, 6회 초 샬롯의 공격입니다. 타석에는 세르히 에스코바, 오늘 두 타석 모두 범타, 앞 선 4회에는 삼구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초구를 노리고 있을 거란 말이죠. 보스턴 배터리가 또 빠른 볼로 승부를 볼지가 키포인트네요.”
다카기는 보란 듯이 몸 쪽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이게 조준이 어긋나면서 타자의 옆구리를 강타, 에스코바는 방망이를 집어던지며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1루로 가라”
울반스키는 마운드로 걸어가는 에스코바 앞을 막아섰다.
우리가 뭐가 두렵다고 두 타석 모두 범타로 처리한 녀석을 맞췄겠나. 하지만 에스코바는 너한테 볼 일 없으니 비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저 자식하고 얼굴을 마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넌 아무 것도 아니야. 나로 만족하라고”
울반스키는 에스코바의 자존심을 박박 긁었다.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년 차에 접어든 녀석이 누구와 맞짱을 뜨겠다는 건가. 다카기는 이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 에이스, 너 같은 애송이와 놀아줄 여유 없다며 도발을 계속했다.
“야, 비켜 봐”
이때, 마운드에서 내려온 다카기는 글러브를 벗어던졌다.
나하고 놀고 싶은 모양인데 덤벼온다면 상대해줄 생각,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자 양측 선수들이 사방에서 달려 나왔다.
누가 봐도 일부러 맞출 상황은 아니었고, 그걸 알고 있는 샬롯 선수단은 이 상황이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다.
“넌 날 두려워하고 있어!!”
하지만 1루로 나간 에스코바는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였다.
꼬리를 내린 개도 한 번은 짖고 간다더니, 이게 바로 그런 경우겠지.
약간 짜증이 난 다카기는 다음 타석에 그 주둥이에 100마일을 박아주겠다는 경고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