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12)
딱 ~ !
“타격! 이번에도 빠른 볼입니다.”
“모리슨을 잡아냈을 때도 그랬지만 의도적으로 높게 던지고 있죠. 확실히 투심이 줄면서 빠른 볼이 높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카기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투심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 선수가 그 유행을 이끄는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겠죠.”
한때 메이저리그에 유행했던 투심과 커터, 늘어나는 홈런을 억제하기 위해 변종 패스트볼을 애용하는 투수들이 늘어났지만, 타자들이 들어치기로 대응하면서 오히려 홈런이 늘어났다.
강속구만큼 효율적인 구종이 없다는 게 또 한 번 증명된 것,
다카기도 한때 투심을 주무기로 썼지만 이게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투심의 무브먼트가 체인지업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신인 때처럼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썼다면 투심으로 효과를 볼 수 있었을까? 실제로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는 선수가 투심을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은 수준,
다카기는 3년 동안의 투구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위력적인 공이 뭔지, 어떻게 타자들을 몰아세울 수 있는지,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럴듯한 요리가 나오려면 레시피를 연구하고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법, 3류 투수는 이렇게 하면 대충 맛이 나오겠지 하면서 많은 구종을 던지는데, 한 마디로 망친 요리에 양념치기 밖에 안 된다.
기본적으로 맛이 안 나는데 양념을 친다고 고급요리가 나오겠나.
내 장점을 살리는 게 투구의 출발점, 그걸 잘 알고 있는 다카기는 포심의 맛을 살려주기 위해 무리하게 양념을 치지 않았다.
‘아 ~ 진짜 ··· ’
2구를 지켜본 존 헤링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바깥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빠른 볼, 높게 들어오는 빠른 볼은 스윙이 마지막에 들어 올리는 궤적을 그려야 대응이 된다.
그만큼 빨리 스윙을 해야 하고 타자 입장에선 여유가 없는 코스, 높은 공을 의식한 존 헤링은 타격 타이밍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런 때 바깥쪽을 찌르는 패스트 볼은 타이밍을 흐트러뜨리기 마련, 같은 빠른 볼이라도 타이밍을 쥐고 흔드는 패턴에 뉴욕 타자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와아아 ~ !!”
결정구는 역회전이 걸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포심, 다카기는 홈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분명 선발인데 마무리처럼 던지는 투수, 뉴욕도 보스턴 못지않은 화력을 자랑하지만 다카기 앞에선 별 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 1회 말 보스턴의 공격, 뉴욕의 선발은 패트릭 브린입니다. 올 시즌 9승 6패 평균자책점 4.03, 116이닝 동안 볼넷 41개 탈삼진은 97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뉴욕이 우승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인데, 결과적으로 지난 3년의 투자는 실패가 돼버렸죠. 올해도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습니다.”
3년 전, 뉴욕은 우승을 위해 2억 달러라는 큰돈을 들여 패트릭 브린을 영입했다.
만테냐 어워드를 2번이나 수상한 검증된 에이스, 매년 200탈삼진 이상을 잡아낼 정도로 구위도 뛰어난 선수라 누구도 이 영입에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뉴욕은 월드시리즈는커녕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도 진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투자가 된 것, 그 사이 나이를 먹고 구위가 감소한 패트릭 브린은 투심과 커터에 의존하는 그런 저런 투수가 됐다.
앞으로 남은 계약은 4년에 1억 1천 만 달러, 지금도 괜찮은 투수지만 이런 투수를 거액을 주고 영입한 우승권 팀은 아무도 없다.
잭 모리슨, 존 헤링, 조 프리츠, 제레미 브라운 등,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뉴욕은 이 선수들이 FA가 되기 전에 우승을 차지해야 하는 입장, 하지만 악성 계약을 맺은 탓에 그것도 불투명해 졌다.
그에 비해 보스턴은 어떤가.
지난 3년 동안 보스턴이 다카기에 투자한 비용은 2150만 달러, 그리고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3억 7천만 달러를 더 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성공한 투자, 배알이 꼴리는 건 당연했다.
‘저런 투수는 돈이 있어도 못 구하지. 한정 세일 기회도 없었어.’
뉴욕은 솔직히 다카기가 2년 후에 옵트 아웃을 실행하길 바랐다.
그렇게만 됐다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잡았겠지, 하지만 눈치 빠른 수더랜드 단장은 라이벌 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보스턴이 먼저 버리지 않는 한 다카기는 시장에 나올 선수가 아니라는 것, 그때가 되면 단물 다 빠졌을 텐데 누가 달려들겠나. 다카기가 뉴욕의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앞으로 1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딱 ~ !!
“초구를 들어 올려 중견수 앞에 떨어뜨립니다!! 선두 타자 폴 돈론의 안타, 보스턴이 슬슬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은 투심인데 돈론이 마지막에 살짝 배트를 들어 올리지 않습니까? 뉴욕도 브린의 투구를 살려주기 위해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쓰는 편인데, 이렇게 타구를 들어 올린다면 큰 의미가 없죠.”
“예전처럼 94 ~ 95마일을 던지던 시절과 비교하면 구위가 너무 떨어져 있어요. 투심을 던져봤자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후속 타자 J. J. 핵먼도 낮은 공에 초점을 맞췄다.
낮은 공은 높은 공에 비해 배트가 조금 뒤에서 나와도 컨택이 되는 편, 거기다 브린의 구속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볼을 볼 여유는 충분했다.
경험이 쌓인 베테랑 투수가 상대 타자가 노리는 공이 뭔지 모르겠나. 하지만 높게 던질 수 없는 신세, 최대한 낮은 제구를 유지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당신도 늙었군.’
J. J. 핵먼은 낮은 공을 걷어 올려 좌중에 떨어지는 안타를 뽑아냈다.
브린을 상대로 통산 24타수 6안타로 약했지만, 최근 상대 성적만 놓고 보면 7타수 4안타, 브린이 전성기였을 때 이렇게 두들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흘러가는 세월에 조금씩 씻겨나가는 전설의 위상 앞에 쓴웃음을 지었다.
보스턴은 1회에만 4안타를 집중시키며 2득점, 반면 다카기는 3회까지 볼넷 하나 없는 투구로 뉴욕 타선을 잠재웠다.
“스트라이크만 던지고 있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당할 거야?”
뉴욕의 게리 페일 감독은 타자들을 독촉했다.
투수가 다양한 코스로 빠른 볼을 집어넣는다고 끌려 다닐 건가. 한 코스를 노리고 타격을 하는 것도 방법, 감독의 조언대로 타자들은 바깥쪽은 버리고 높은 공을 노렸다.
그만큼 빨리 잡아야 하는 타이밍, 초구부터 적극적인 타격이 나오자 보스턴 배터리는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딱 ~ !
“높게 뜬 공, 포수가 그 자리에서 잡아냅니다. 원 아웃, 공 2개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지금은 바깥쪽 높게 들어왔는데 너무 빨리 타격이 됐죠. 다카기 선수가 2년 차 시즌에 저 코스를 집중 공략해서 많은 헛스윙을 끌어내지 않았습니까? 옛 생각이 떠오르네요.”
“하하 ~ 그걸 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당연하죠. 저는 이 선수의 열렬한 팬이니까요. 유행이 지난 레시피도 상황에 따라 잘 활용할 줄 아는 선수입니다.”
다카기는 바깥쪽 높은 볼로 뉴욕 타자들의 타이밍을 살짝 틀어버렸다.
분명 타자들이 노리는 공이지만 코스를 살짝 바꿔준 것만으로도 끌려나오는 방망이, 이제는 저런 세밀한 컨트롤까지 가능하다는 건가.
이 정도면 현역 선수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전설 지미 브런들을 소환해야 비교가 된다.
지미 브런들은 통산 4122 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을 710개 밖에 주지 않은 제구의 마술사,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컨디션이 좋은 날은 스트라이크 존을 6분할, 안 좋은 날도 4분할을 해서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1988년 기록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 289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은 18개밖에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땐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89마일 정도 밖에 안 됐고, 지미 브런들의 평균 구속도 92마일에 그쳤다.
당시엔 경쟁력이 있었지만 현대 야구에선 통할지 의문, 그런데 다카기는 평균 97마일의 강속구로 그에 버금가는 제구를 실현해 내고 있다.
한마디로 메이저리그 역대 정상급 제구력, 게리 페일 감독도 양심은 있었는지 저 공을 치라는 말을 다신 입에 담지 못했다.
“들어옵니다!! 삼진!! 뉴욕 타자들을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는군요.”
“참고로 뉴욕은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득점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대 약한 타선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해드립니다.”
다카기는 5회까지 피안타, 볼넷도 없이 삼진 7개를 잡아냈다.
일본에서 퍼펙트게임을 했으니 여기서도 서비스 한 번 해야 하지 않겠나. 홈 팬들은 ‘one more time!!’을 외쳤고 다카기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한 시즌에 퍼펙트게임을 2번 달성한 선수는 제로, 그 금기의 영역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딱 ~ !
“안 돼!! 잡아!! 잡아!!”
7회 초에 나온 절체절명의 위기, J. J. 핵먼은 몸을 날려 타구를 막아낸 뒤 1루로 공을 던졌다.
좁은 수비 범위로 나름 애를 써봤지만 결과는 내야 안타, 여기저기서 원망 섞인 야유가 쏟아지자 핵먼은 오른손을 높게 들어 사죄를 표했다.
‘다 내 잘못인 데 뭘 ··· ’
다카기도 캡을 벗고 팬들에게 사죄를 표했다.
핵먼의 수비는 원래 저 정도 아닌가. 헛스윙을 이끌어내지 못한 내가 죄인, 퍼펙트는 물 건너갔고 재미있는 투구라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날 경기 성적은 7이닝 1피안타 무 볼넷, 탈삼진 9개, 별로 잘못한 것도 없지만 다카기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보스턴 팬들에게도 퍼펙트게임을 한 번 선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게 아쉬운 하루, 기자들 앞에서 올해가 지나기 전에 달성해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오늘 경기로 무 볼넷 기록을 26과 1/3이닝까지 연장하셨습니다. 지미 브런들의 기록까지 앞으로 9이닝이 남았는데 기록 경신 자신하십니까?”
“그렇게 많이 남았나요? 저는 제 기록이 최고인줄 알았는데요.”
이어지는 질문에 다카기는 능청을 떨었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메이저리그의 기록, 35이닝이 넘게 볼넷을 안 준 그 사람은 도대체 뭔가.
지미 브런들은 22년 전에 암 투병으로 고인이 된 전설, 사망할 당시 나이는 겨우 47살이었다.
죽기 2년 전에도 마운드에서 투구를 했던 선수, 아내에게 남긴 유언은 ‘난타를 당해 비난을 받아도 좋으니 마운드에 한 번만 더 올라보고 싶다’였다.
왜 하늘은 그만한 열정과 실력을 가진 선수를 일찍 데려간 걸까.
아니, 지금 태어나 라이벌리를 이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다카기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저는 그런 선수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적어도 그 선수의 기록에 근접할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싶네요.”
“현 시대에선 당신과 라이벌리를 이룰 선수가 없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소개 좀 시켜 주세요. 저는 정말 간절합니다.”
다카기의 요구를 접수한 기자들은 다시 라이벌을 찾아 나섰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LA의 포사이스, 포사이스도 지금은 아직 부족하지만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멋진 승부를 펼치고 싶다는 답장을 전했다.
아니, 그 전에 올스타전에서 한 판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카기가 올스타 전 선발을 자처하자 포사이스도 맞불을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