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11)
[올해는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순위 구도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작년 시즌 보스턴은 118승을 거두며 압도적인 지구 1위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지구2위 뉴욕과 2경기, 지구 3위 템파베이와 4경기 차 접전이 벌어졌다.
다른 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9경기 차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는 la를 제외하면 누구도 지구 우승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황제가 나타났다.]
[다카기의 대항마, 드디어 등장?]
올해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la는 다카기를 한껏 의식한 발언을 쏟아다.
작년에 17승 평균자책점 3.11을 기록한 톰 포사이스(Forsyth)를 다카기의 독주를 저지할 대항마로 추대,
실제로 포사이스는 올 시즌 전반기에만 12승 평균자책점 2.14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보스턴 팬들의 반응은 비웃음 일색, 월드시리즈 진출은 커녕 세인트루이스의 벽에 2년 연속 탈락의 고배를 마신 la 아닌가. 너희들은 세인트 루이스의 도허티나 넘고 오라는 조롱을 날렸다.
[누가 황제라고? 포사이스에겐 아직 이른 칭호지]
[다카기의 업적부터 보고 와라. 비교하는 거 안 민망하냐?]
보스턴 팬들은 메이저리그의 황제는 다카기 뿐이라고 못을 박았다.
똑같은 2점대 투수라고 포사이스를 다카기와 비교하는 것 같은데 일단 세부지표에서 분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올 시즌 포사이스의 BABIP은 0.249, 리그 평균인 0.294보다 월등히 낮다.
그만큼 안타가 될 타구가 야수 글러브에 들어갔다는 것, 물론 이건 la 코치진이 수비 시프트를 효과적으로 설계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 포사이스의 기록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다카기는 리그 평균에 가까운 0.292를 기록하고도 포사이스와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게 결정적인 차이
한 마디로 팀의 수비능력이나 운과 상관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만약 다카기가 la에서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진의 도움을 받았다면 지금 쯤 어떤 성적을 내고 있을까.
보스턴 팬들은 포사이스의 활약은 la의 수비진과 운 덕분이라고 깎아 내렸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건 누워서 침뱉기다.
“우리는 수비 엉망이야. 그래서 투수한테 별 도움 안 됨”
이렇게 선전하고 다니는 것과 뭐가 다를 게 있나.
보스턴 운영진도 수비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중, 개막전부터 드러난 문제점이라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게 필요할까.’
하지만 브라이스 감독은 수더랜드 단장의 정책에 의문을 표했다.
브라이스 감독도 예전엔 시프트를 자주 활용했지만 최근엔 자제했던 편, 타구의 70%가 좌측이나 센터쬐으로 쏠리는 풀히터가 상대라면 수비진을 우측으로 돌리는 게 맞나?
실제로 그렇게 해서 효과를 보고 있는 게 la, 하지만 브라이스 감독은 통계 위주의 수비보다 상황에 맞는 시프트를 우선했다.
예를 들어 장타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3루 수나 1루수를 좀 더 베이스라인에 붙여 라인선상으로 빠져나가는 타구를 막는다든가.
타자의 특성보다 투수의 볼 배합에 맞춘 수비가 그 예다.
다카기는 삼진과 뜬 공 비율이 높은 투수, 시프트를 쓰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땅볼 비율이 높은 로버트 클레이튼이라면 그런 시프트가 필요하겠지만, 다카기에겐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운이란 건 있다가도 없는 겁니다. 저는 그냥 지켜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 ”
[으음 ··· ]
브라이스 감독의 제안에 수더랜드 단장은 고심을 거듭했다. 우리가 수비 시프트를 못 써서 안 쓰는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와 자료를 활용하면 시도는 할 수 있는 일, 통계를 따져보면 시프트가 성공할 확률은 평균 47%다.
평균적으로 따져보면 시프트는 쓰나 안 쓰나 큰 의미가 없는 편, la가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야수진의 수비능력과 시프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 내야수들이 데이터만으로 그런 수비를 할 수 있을까. 상부의 결정만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브라이스 감독의 물음에 선수단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감독의 말대로 한다면 앞으로 선수 개인이 숙지해야 할 정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우리가 그걸 다 이해하면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이때 다카기가 의견을 제시했다.
“얘들을 좀 보세요. 제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감사한 애들인데 ··· ”
너무 솔직한 발언에 동료들을 쓴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사실인데 괜히 기분 나쁜 발언, J. J. 핵먼이 한 소리하고 나섰다.
“이거 왜 이래? 난 수비 괜찮다고”
“그래, 안정성은 괜찮지, 문제는 범위 아냐?”
J. J. 핵먼은 올 시즌 2루에서 99.8%라는 좋은 필딩률을 보여주고 있지만, 수비 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다.
우타자가 많은 야구 특성상 시프트를 쓰게 된다면 유격수가 좌측으로 좀 더 깊숙한 코스로 이동해야 하는데, 당연히 센터 쪽은 텅 비게 된다.
수비 범위가 좁은 J. J. 핵먼이 거길 커버할 수 있을까. 다카기 말대로 그 자리만 지켜주고 있어도 감사한 선수, 뭣보다 수비 범위가 넓은 유격수가 없는데 무슨 시프트를 쓰나.
3루수 잭 개리슨도 공격력은 괜찮지만 나이 때문에 반응 속도가 느리고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 다카기는 LA의 수비 시프트는 분명 뛰어나지만 우리가 소화하기 어려운 작전이라고 못을 박았다.
“우리는 방망이가 좋은 팀이잖아요. 되지도 않는 수비 한다고 거기에 투자하다가 방망이 죽으면 어떻게 해요?”
“뭐 ···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브라이스 감독은 다카기의 의견에 격한 공감을 표했다.
코칭스태프만큼 우리 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선수, 하긴 동료들 뒷조사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선수인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냉정한 분석에 다른 선수들도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넨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어.”
“다른 팀으로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보스턴 코칭스태프는 에이스에게 농담 섞인 협박을 늘어놨다.
선수 하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사인 체계 전체를 바꾸는 게 이 세상이다. 거기다 다카기는 지난 4년 동안 보스턴 클럽하우스에 머물며 너무 많은 정보를 입수, 본인이 그런 활동을 즐기는 편이라 다른 팀으로 가면 골치 아프다.
단장이 괜히 옵트 아웃 실현하기 전에 장기계약으로 족쇄를 채웠을까.
실력도 대단하지만 눈썰미나 정보 수집력이 뛰어나 적으로 돌리면 골치 아픈 존재, 다카기도 여기서 은퇴하길 바란다며 맞장구를 쳐줬다.
‘방망이나 잘 하자.’
‘수비는 타구 스피드로 뚫어버려.’
어쨌든 보스턴은 이렇게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완벽한 팀은 없는 법, 우리의 특징을 살려 이기는 경기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무리하게 팀 컬러를 바꾸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7월 5일, 다카기는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 나섰다. 상대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2위 뉴욕, 열심히 따라오긴 하는데 지구 1위 보스턴과의 격차는 4경기 차로 전보다 벌어졌다.
보스턴을 넘지 못하면 통산 26번째 월드시리즈 우승도 없겠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카기를 넘어서야 했다.
다카기는 지난 4년 동안 뉴욕을 상대로 6승 무패, 평균자책점 1.12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뉴욕 팬들이 다카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사신(死神), 이걸 어떻게 때려잡아야 하나. 풀 히터가 많은 뉴욕 타자들에게 유령처럼 사라지는 체인지업은 악몽, 빠른 볼을 노리고 초구부터 적극적인 스윙을 해보기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너희들에겐 맞춤형 투구가 있지.’
1회 초 원정 팀 뉴욕의 공격, 다카기는 평소와 달리 바깥쪽을 찌르는 투구를 했다.
풀 히터가 많은 뉴욕에 맞춘 볼 배합,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선수들인데 밀어치는 타법을 못하겠나. 하지만 다카기는 구위가 워낙 좋은 투수라 짧은 안타는 몰라도 장타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딱 ~ !!
‘어? 공 굴러 간다.’
j. j. 핵먼은 끝까지 타구를 추격했지만 잡아내진 못했다.
다카기의 평가대로 수비는 안정적이지만 범위는 좁은 편, 안타가 나왔지만 다카기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배트에 걸리면 그 다음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변수를 줄이기 위해 오늘도 헛스윙에 집중하는 투구를 선보였다.
“바깥쪽!! 들어옵니다. 99마일, 지금은 뭔가 굉장한 공이 들어왔네요.”
“쓰리 쿼터라 공에 역회전이 걸리게 돼 있죠. 거기다 분당 회전수도 최고 수준이라 타자 입장에선 궤적을 읽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2구는 몸 쪽으로 들어오는 빠른 볼, 바깥쪽에 초점을 두고 있던 모리슨은 급히 배트를 돌려 봤지만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발등을 때리는 타구가 나왔다.
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극심한 통증,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음 타격을 준비했다.
‘안 돼!!’
3구는 높게 들어오는 빠른 볼, 깜짝 놀란 모리슨은 뛰쳐나가는 배트를 붙들었다.
보아하니 체인지업을 던지기 위한 사전 작업, 저 녀석은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걸까. 몇 번이나 상대해 봤지만 이젠 경이로울 정도, 그래도 다음 공은 체인지업이라고 확신했다.
“체인지업이다. 따라 나가지 말라고”
따라붙는 울반스키 포수의 친절한 설명, 모리슨은 귀를 닫고 공에만 집중했다.
“빠른 볼!! 지켜봅니다!! 삼진!! 모리슨을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지금은 조금 높았는데, 모리슨 선수가 이미 봤던 공이거든요. 너무 체인지업을 의식했네요.”
스트라이크 콜에 모리슨은 쓴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이젠 익숙해 질만한데 또 뒤통수를 맞다니, 반면 완벽한 사기극으로 모리슨을 엿 먹인 울반스키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 ~ 빌어먹을 ··· ’
다음 타자 제프리 슈버트도 초구를 놓쳤다.
노리고 들어갔는데 생각만큼 배트 중심에 안 걸리는 공, 볼넷이 많지 않은 선수라 다음 공도 빠른 볼이라 확신했다.
딱 ~ !!
“우측!! 파울입니다.”
“지금은 슈버트 선수가 노렸는데, 워낙 몸 쪽으로 붙어서 날아왔죠. 이렇게 되면 또 체인지업 타임이네요.”
보스턴 홈 팬들은 다음 공은 체인지업이라며 슈버트에게 훈수를 뒀다.
저렇게 당겨 치는 타자는 체인지업에 약점을 보이기 마련, 거기다 뒷발에 실려 있던 체중을 앞발이 받쳐주지 못하면 자세가 무너지며 꼴사나운 스윙이 나온다.
체인지업은 그 희극을 이끌어 낼 최고의 소재, 삼진도 삼진이지만 극성 팬들은 예술 점수까지 따지는 깐깐한 모습을 보였다.
“와아아 ~ !!”
“유후 ~ !! 멋진 트리플 악셀이었어!!”
“10점 만점!!”
슈퍼트는 그 자리에서 빙글 도는 턴을 선보였다.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나면서 돌아간 앞발, 망신을 당한 슈퍼트는 씩씩 거리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보스턴 야수진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에이스를 멍하니 지켜봤다.
너희들은 제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감사한 수준이라니, 짜증나지만 사실 아닌가. 방망이라도 잘 쳐야 저 자식 앞에서 할 말이 있겠지.
어서 이닝이 교대되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