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10)
[다카기 하루요시 또 피홈런]
[4경기 연속 피홈런]
어느덧 5월 중순에 접어든 시즌, 일각에선 다카기의 위기론이 들고 일어났다.
작년 시즌 223이닝을 소화하며 피홈런을 13개 밖에 내주지 않은 선수가 올 시즌 42이닝 만에 홈런 7개를 내줬다.
지금 페이스라면 30개 이상도 내 줄 수 있는 페이스, 하지만 다카기는 외부의 잡음은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풀고 갔다.
“자, 다카기 하루요시 선수가 시즌 7번 째 등판을 치릅니다. 올 시즌 6경기 출전,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35, 42이닝 동안 볼넷 3개, 탈삼진은 66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볼넷보다 승리가 더 많거든요. 일각에선 위기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제 생각엔 그냥 헛소리입니다.”
보스턴 지역방송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다카기를 둘러싼 의혹에 나름 대로 입장을 표했다.
볼넷은 극도로 낮추고 탈삼진 페이스는 끌어올린 올 시즌, 메이저리그는 긴 역사만큼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선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150년이 넘는 세월 끝에 찾아낸 답은 삼진, 왜 타자들은 조금이라도 멀리 치려하고 투수는 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기 시작한 걸까.
그동안의 실험으로 추적된 결과가 지금의 야구, 다카기의 올 시즌은 150년 동안 쌓인 통계를 증명해내는 척도나 다름없다.
그런데 늘어난 홈런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바보들, 하긴 그런 꼬투리라도 잡아야 기사를 쓸 거 아닌가.
내가 옳다는 건 스스로 증명하면 그만, 다카기는 오늘도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평균 97마일에 이르는 빠른 볼과 체인지업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드는 공격적인 투구, 여전히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나는 내 방식대로 간다.’
그에 비해 인디애나 램페이저스의 선발 마테오 아르졸라(Arzola)는 다양한 구종과 보더라인을 타는 줄타기 피칭을 선보였다.
올 시즌 성적은 평균자책점 1.35,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수치가 언제까지 갈 지는 미지수, 전문가들은 올해도 다카기의 만테냐 어워드 수상을 예고했다.
아르졸라는 그 편견을 깨야하는 입장,
아르졸라는 스페인 출신으로 지난 2021wbc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펼쳐 극적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야구 변방에서 등장한 초신성, 다른 메이저리거들처럼 체계제인 훈련은 받지 못했지만 야구를 취미 삼아 나만의 방식을 발전 시켰다.
내 방식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올 시즌의 목표,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강이지만 긴장 따윈 하지 않았다.
‘바깥쪽으로 갈까.’
팽팽하게 진행되는 투수전, 울반스키는 바깥쪽 위주의 볼 배합을 주문했다.
다카기는 충분히 잘 던지고 있지만 최근 피홈런을 걸고 넘어지는 여론이 불만, 별로 내가 욕을 먹는 것도 아닌데 파트너의 일이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하지만 바깥쪽에 갑자기 인색해진 주심, 카운트가 불리해지자 다카기는 다시 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따아악 ~ !!
“어? 멀리 가는데요. 우측 펜스 뒤로!! ··· 담장을 넘어갑니다. 로이스 퀸튼의 솔로 홈런, 인디애나가 먼저 앞서나갑니다. 다카기 선수는 이렇게 되면 5경기 연속 피홈런이네요.”
“신경쓸 거 없습니다. 겨우 한 점이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울반스키는 미안함을 표했다.
괜히 바깥쪽으로 가자고 해서 불리해진 카운트, 지금은 카운트를 잡기 위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했다.
그걸 잘 받아친 타자, 다카기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앉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다음 타자 조 스나이더는 2구 만에 땅볼 처리, 중심타선의 핵 브랜든 조던을 상대했다.
딱 ~
“초구는 파울입니다. 94마일, 바깥쪽을 찌릅니다.”
“완급조절을 할 줄 아는 선수죠. 이 정도면 공 1 ~ 2개 정도의 타이밍을 뺏어낼 수 있습니다.”
초구를 빠른 볼로 잡아낸 보스턴 배터리는 2구도 빠른 볼로 밀어붙였다.
타자가 가장 치기 쉬운 볼이 뭘까? 빠른 볼? 겉보기엔 빠른 볼 피안타율이 가장 높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투수들의 구속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타자들은 빠른 볼에 대응하기 위해 테이크 백을 줄이고 스탠스를 조정하는 등, 변화를 감수해야 했다.
그만큼 강속구가 부담스러운 공이라 타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 아닌가.
변화구가 아무리 위력적이라도 빠른 볼을 받쳐주는 조연에 불과, 보스턴 배터리는 그 철칙을 깨진 않았다.
“스윙!! 삼진입니다!! 101마일!! 힘으로 브랜든 조던을 눌러버립니다.”
“전혀 타이밍을 못 잡네요. 투 스트라이크라 체인지업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 망설임이 이런 결과를 불러옵니다.”
다카기는 선취점을 내줬지만 압도적인 투구로 투구수를 절약해갔다.
반면 줄타기 피칭을 하는 아르졸라는 3회에 24개를 던지며 투구 수 조절에 실패, 어찌어찌 막아내긴 했지만 타자들을 몰아세운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건 그냥 못 보낸다.’
4회 초 보스턴의 공격, 선두 타자 알 디즌은 초구부터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던져 눈에 익은 공, 거기다 어정쩡하게 들어온 코스라 도무지 봐줄 수가 없었다.
따아악 ~ !!
좌중간을 갈라 펜스까지 굴러가는 타구, 2루에 안착한 알 디즌은 아쉬움을 표했다. 최대한 띄워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낮게 깔려나간 타구, 나머지는 동료들에게 맡겼다.
‘귀찮은 놈이 걸렸군.’
다음 타자는 울반스키, 인디애나 배터리는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43홈런을 때린 작년도 대단했지만 올 시즌도 9홈런으로 36홈런 페이스, 특히 낮은 공에 강점이 있는 선수라 많은 공이 낮게 깔려 들어가는 아르졸라 입장에선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최대한 바깥쪽으로 낮게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는 게 최선, 볼넷으로 거르고 병살을 노려도 상관없었다.
‘안 속는다.’
선구안이 좋은 울반스키는 초구를 걸러냈다.
메이저리그 경력 7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이런 패턴은 당연히 예상, 구위에 자신이 있는 선수라면 과감하게 승부를 했겠지만 그만한 무기가 없는 아르졸라,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게 까다롭진 않았다.
따악 ~ !!
“낮은 공을 걷어 올렸고!! 중견수 옆에 떨어집니다!! 알 디즌은 3루를 지나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보스턴도 드디어 추격을 개시하는 군요.”
“바로 이게 아르졸라의 한계죠. 지금 4회도 안 지났는데 투구 수가 70개가 넘었거든요. 5회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르졸라는 후속 타선을 잘 처리하고 이닝을 마무리 했지만 4회가 끝났을 때 투구 수 80개를 돌파했다.
생각보다 참을성이 많은 보스턴 타선, 거기다 거포 군단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상황에 맞는 스윙을 하는 타자들이 즐비해 고전을 거듭했다.
4회까지 1점으로 막은 것도 기적, 인디애나의 케빈 드워 감독도 아르졸라를 더 이상 끌고 가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다카기는 4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인디애나 타선을 제압, 군더더기 없는 피칭을 이어갔다.
딱 ~ !
“땅볼, 투수가 직접 잡아서 1루에 송구합니다.”
“최근 15이닝 동안 볼넷이 없거든요. 노골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밀어 넣는다는 뜻인데, 얼마나 위력적인 공을 던지고 있는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네요.”
빠른 볼이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못 치는 수준,
경기가 중반에 들어서면서 다카기는 무서운 속도로 삼진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홈런 하나를 내줬지만 오늘 빠른 볼 구위는 최고조, 빠른 볼에 부담을 느끼는 타자들에게 체인지업이라는 시련을 추가하면서 폭주가 시작됐다.
‘마술이냐? 공 어디 갔어?’
오늘 다카기에게 홈런을 뺏어낸 로이스 퀸튼은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사라진 공, 아르졸라도 수준급의 체인지업을 던지지만 어디까지나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트리는 정도다.
90마일에 가까운 구속과 엄청난 낙폭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다카기의 체인지업에 비교하는 건 망언, 이건 인간이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더 가자.’
울반스키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체인지업을 연속으로 던지는 건 바람직한 패턴이 아니지만, 오늘 다카기는 빠른 볼로 인디애나 타자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놨다.
또 체인지업을 던져도 나쁠 건 없겠지, 다카기는 말없이 투구 자세를 잡았다.
“스윙!! 삼진입니다!! 다시 체인지업!! 오늘 경기 7번째 탈삼진입니다!!”
“지금은 울반스키의 리드가 좋았네요. 타자의 심리 그리고 투수의 구위를 모두 고려한 완벽한 볼 배합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인디애나 타자들은 체인지업에 초점을 안 맞출 수 없게 됐다.
그 틈을 파고드는 평속 97마일 빠른 볼, 선제 홈런에 들떴던 인디애나 타선은 7이닝 동안 삼진 13개를 헌납하며 완패를 시인했다.
다카기는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보스턴은 9회 초 공격에서 2점을 내며 에이스의 분투를 헛되게 하지 않았고, 시즌 7연승을 달리며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1위 자리를 지켰다.
아르졸라를 다카기에 비유했던 인디애나 여론을 일제히 잠재운 경기, 기자들은 보스턴 클럽하우스로 달려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최근 아르졸라를 당신과 비교하는 기사들이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해주시죠.”
“이거 왜 이러세요. 경기에서 보여 드렸잖아요.”
다카기는 주절주절 떠벌리지 않았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보고 느꼈을 거 아닌가. 만테냐 어워드 3년 연속 수상, 월드시리즈 3연패를 거둔 나를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애송이와 비교하다니, 제정신인가?
미친놈들은 몽둥이가 약, 오늘 투구로 확실히 가르쳐 줬으니 인디애나 여론도 함부로 까불지 못할 거라고 자신했다.
“오늘도 피홈런을 내주셨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개선하실 겁니까?”
“뭘 개선하라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만 ··· ”
이어지는 질문에 다카기는 귀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을 던지다보면 당연히 내줘야 하는 점수, 홈런 안 맞겠다고 도망 다니다 아르졸라가 어떻게 됐는지 보지 않았나.
다카기는 그동안 피홈런을 억누르기 위해 투심 자주 활용했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무조건 헛스윙률을 높이는 게 최선, 그것만이 투구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모두 제거하는 방법이다.
홈런은 자주 맞고 있지만 덕분에 훨씬 편해진 투구, 안타나 볼넷을 내주고 질질 끄는 경기를 하는 것보다 이게 낫지 않을까.
팬들이 보기에도 시원시원한 경기, 올 시즌 모든 실점은 홈런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엔 홈런이 싫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는 거래입니다. 요즘 야구는 머리를 쓰는 시대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힘과 힘의 대결이죠. 왜 투수는 더 빠른 공을 던지고 타자는 멀리 치려고 하겠습니까? 그게 옳다는 건 이미 많은 실험과 통계로 증명됐죠. 저는 시대에 맞는 투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개선할 건 전혀 없습니다.”
명쾌한 설명에 피홈런을 꼬투리로 잡던 여론은 입을 다물었다.
다카기의 투구가 시원시원한 건 사실, 그래서 팬들이 좋아하는 거 아닌가. 홈런을 맞아도 자기 공을 던지는 자세도 훌륭,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