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09화 (209/361)

209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9)

[보스턴 첫 10경기에서 5승 5패]

[작년 위용 어디로?]

mlb 역사 상 2번 밖에 없는 4연패를 노리고 맞이한 시즌, 하지만 보스턴은 작년과 같은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강팀이 부진에 빠지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일, 당연히 그 원인은 주축선수들의 이탈이나 부진에 있다.

작년 시즌, 보스턴 타선은 무려 1848안타를 쏟아냈다. 150년 mlb 역사상 2위에 이름을 올린 대기록, 경기 당 11개가 넘는 안타는 한 시즌 만에 2개 이상이 줄었다.

안타가 줄은 건 둘 째 치고 타선 흐름이 뚝뚝 끊기는 게 문제, 브라이스 감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선 변동을 거듭했지만 결과가 나질 않았다.

‘과연 타순 문제일까.’

다카기도 팀의 에이스로서 문제를 분석하는 일에 동참했다.

타율 0.333을 치는 타자는 3타석 중 반드시 안타 하나를 쳐줄까? 수학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통계학에선 그렇게 보지 않는다.

평평한 바닥 위에서 동던을 던지면 앞과 뒤라는 두개의 변수만 고려하면 된다.

하지만 야구에 그런 수학적 확률이 적용될 수 있을까.

작년 시즌, 폴 돈론은 무려 91%의 컨택률을 기록했지만 안타가 된 경우는 35%에 그쳤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고, 평범한 느린 땅볼이 코스가 좋아 안타가 되는 등, 야구엔 고려할 요소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수치로 계산하려면 수학적 확률은 무의미, 수 백 수 천 번 쌓인 통계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거긴 컨택은 되는데 안타가 안 돼. 최대한 당겨 쳐”

다카기는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돈론에게 조언을 줬다. 전부터 느꼈지만, 확실히 돈론은 잡아당겼을 때 결과가 좋은 선수, 그런데 작년에 소나기 안타를 쏟아낸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어지간한 코스는 다 쳐내려 하고 있다.

되지도 않는 밀어치기 때문에 타율을 다 깎아 먹는 중, 좀 더 신중한 타격을 해야했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하면 안 돼?”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돈론은 잔소리에 싫증을 느꼈지만 다카기가 내민 자료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작년, 어떤 코스든 잘 공략해냈다고 믿었는데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상대팀도 이거와 비슷한 자료를 가지고 있을 거야. 생각 좀 해 봐.”

“어 ··· ”

돈론에게 자료를 넘겨준 다카기는 몇 몇 선수들에게도 따로 조언을 줬다.

보통 이런 일은 코치들이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선수를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통계는 절대 믿지 않는 선수라면 더 힘들어지는 설득, 잘 나가던 만화가가 왜 망가질까, 초기엔 작가가 힘이 없으니 편집부의 지시대로 잘 움직인다.

그런데 작품이 성공하면 그때부턴 작가가 편집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폭주하기 시작, 보스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 ~ 3년 전 만해도 보스턴 선수단은 젖도 못 뗀 애송이들이 득실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3연패를 이끈 주역으로 성장, 코치의 조언이 귀에 들어올까. 애송이인데도 베테랑이 된 것처럼 구는 주전들, 팀의 정점이라는 권위를 지닌 다카기는 선수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우리 뒷조사까지 하는 거야?”

“그래, 경기가 없는 날은 딱히 할일도 없으니까 너희들 뒷조사라도 해야지. 코치들한테 의견도 구하고 공부 좀 해 이 자식들아. 내가 다 큰 녀석들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겠냐?”

한소리 들은 선수들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우고 방심하면 무너지는 게 프로세계, 3연패에 우쭐해하는 동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젠 정식으로 해도 되지 않을까.’

클럽하우스 분위기를 보고를 받은 수더랜드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7년 동안 공석이었던 캡틴 자리, 역사가 깊은 보스턴은 캡틴이라는 지위에 그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외부에서 영입한 선수는 절대 안 되고, 선수단을 이끌 리더십과 실력도 갖춰야하는데 이 조건을 다 만족할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다카기는 그 조건에 맞는 선수, 하지만 보스턴 역사상 투수가 캡틴이 된 경우는 없다.

미국 기준으로 23살 밖에 안 된 나이도 문제, 메이저리그는 의외로 보수적이라 나이 어린 선수가 리더 역할을 하는 건 꿈도 못 꾼다.

다카기는 이제 프로 5년 차에 접어든 선수, 보스턴은 나이가 어린 선수가 많아 눈에 띄지 않지만 다른 팀에선 애송이 수준이다.

최소 6 - 7년은 뛰어야 애송이 딱지를 떼주는 세계, 어린왕자를 추대하는 건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 수더랜드 단장은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미 왕위는 정해졌어. 급할 게 없지’

사실 정해져 있는 왕좌, 비유하면 다카기는 지금 황태자 자격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중이다.

우리가 버리지 않는 한 33살까지 보스턴에 남을 선수,  클럽하우스 실권을 쥔 선수라 급할 건 없었다.

* * *

“열은 내렸어?”

“응, 괜찮아.”

등판을 앞둔 어느 날, 다카기는 감기로 앓아누운 아들 곁을 지켰다.

출근해야 되는데 아픈 녀석 때문에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중, 의대생 아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 할 게 뭐가 있겠느냐만 끙끙거리는 새끼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아빠한테 다 옮겨라. 네가 그러니까 아빠 마음이 아프다.”

“왜 그런 소리를 해?”

키리코는 쓸데없는 소릴 하는 남편 옆구리를 푹 찔렀다. 한두 푼 하는 몸값도 아닌데 아프면 어쩌라는 건가, 단순한 감기니까 신경 쓰지 말라며 다독였다.

“난, 감기 걸려도 공 던지는데 문제없어. 워낙 튼튼하거든”

“괜한 소리하지 말고 아빠는 얼른 출근이나 하세요 ~ ”

“네 ~ 네 ~ ”

다카기는 그렇게 아픈 아들을 집에 두고 출근길에 올랐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출근길인데 이렇게 마음이 무겁다니, 나도 이젠 한 아이의 부모라는 건가. 마침 바뀐 신호등, 책임감을 느끼며 운전대를 잡았다.

곧 도착한 백 베이 파크, 선수 전용 통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어라? 진짜 감기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몰려오는 한기, 지금까지 아파 본 적이 있었던가. 최소 10년 동안은 건강하게 지냈는데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건 아닌지, 일단 클럽하우스에서 몸 상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무리하지 말고 쉬는 게 어떤가?”

브라이스 감독은 휴식을 권했다.

다카기는 지금까지 정말 많은 경기를 뛰었다. 포스트 시즌 역대 최다승 2위가 그 증거, 3년 동안 던진 공만 12000개가 넘는다.

팀이 계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으니 다른 팀의 에이스보다 무리한 게 사실, 1 ~ 2년 쓰고 팽할 선수도 아니라 무리시킬 이유가 없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뛸 수 있어요.”

“아니 ··· 그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절 보기 위해 티켓 지불한 팬들도 생각해야죠.”

다카기는 기어이 출장을 강행했다.

연 평균 4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는데, 감기 걸렸다고 결장하면 물고 뜯는 놈들이 없을까. 별의 별 부상을 안고 뛰어야 하는 프로 선수, 감기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땀 한 번 빼면 없어지겠지. 내가 이긴다.’

다카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초구부터 96마일 패스트볼을 던졌다.

지금까지 무수한 강팀과 위기를 넘겨온 내가 감기에 굴복하다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며 이를 악 물었다.

딱 ~ !

“파울입니다. 이번에도 몸 쪽이군요.”

“다카기는 몸 쪽 공을 정말 많이 던지는 선수죠. 70%가 넘는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일반적으로 투수들은 바깥쪽으로 던져 카운트를 잡는데, 다카기는 그 반대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이 몸에서 멀어질수록 타구에 힘을 싣기 어려운 건 상식,

실제로 투수가 던지는 공의 70% 이상은 바깥쪽이나 가운데로 향한다. 그런데 다카기는 몸 쪽 승부가 유독 많은 편, 메이저리그의 오랜 통념을 깨는 투구라 전문가들도 뭐라 대답을 하기 애매했다.

‘해 보시지. 이겨낼 수 있다면’

다카기가 몸 쪽을 던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몸 쪽은 바깥쪽에 비해 스윙이 간결하게 나와야 공략할 수 있는 코스, 당연히 스윙거리를 확보하기가 애매하다.

최대한 거리를 확보해주려면 몸이 뒤로 눕혀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경우가 일어난다.

몸 쪽은 바깥쪽 보다 빨리 쳐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타자들이 중심을 마지막까지 뒤에 두지 못하는 것, 제대로 던질 수만 있다면 몸 쪽은 타자를 몰아세울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된다.

다만 몰리는 공이 나오면 쳐 맞을 뿐, 그래서 투수들은 제구가 안 되도 확실하게 도망갈 수 있는 바깥쪽을 선호한다.

다만 그만큼 불리해지는 볼 카운트, 최근 메이저리그는 바깥쪽에 후한 스트라이크 존을 교정하기 위해 몸 쪽을 더 잡아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다카기는 그걸 빠르게 캐치,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몸 쪽 승부를 택했다. 여기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며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빠른 볼과 조합을 이루면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몸 쪽에 후한 주심을 만나면 그날 상대 타자들은 강제 휴업,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떨어집니다!! 체인지업, 오늘 3번 째 탈삼진을 잡아냅니다.”

“악마의 유혹이 따로 없네요. 다카기가 올 시즌 체인지업을 42개 던졌는데, 헛스윙 비율이 52.3%입니다. 슬라이더를 능가하는 수준이죠.”

“몸 쪽으로 찌르고 바깥쪽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선 더 멀어 보이는 거죠. 그런데 이게 체인지업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배트가 돌아간 뒤입니다. 대처할 방법이 없는 거죠.”

타순이 한 바퀴 돌자 보스턴 배터리는 패턴을 조금 바꿨다.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며 떨어지는 투심은 체인지업과 거의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체인지업보다 구속은 더 빠르고 떨어지는 폭은 적은 편, 헛스윙을 끌어낼 확률은 낮지만 체인지업을 노린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역할은 충분했다.

‘이건 또 뭐야?!!’

오늘 다카기를 처음 상대한 제이슨 부보아(Bourbeau : 토론토 소속)는 높게 뜬 타구에 방망이를 집어던졌다.

체인지업 타이밍에 배트를 돌렸는데 완전히 뒤로 밀린 타이밍, 내야도 넘기지 못한 플라이에 고개를 저으며 더그아웃에 입성했다.

“투심이었어?”

“응”

코치의 답에 부보아는 아쉬움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투심은 거의 안 던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 패턴이 또 바뀐 건가. 비디오 게임을 하다보면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공략법이 나오는데, 토론토 선수단은 같은 지구에서 다카기와 수도 없이 마주치고도 공략법을 찾지 못했다.

가끔 몰린 공이 장타로 연결되긴 하지만 그게 끝,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부보아는 최고의 투수에게 안타를 쳐내겠다는 의지로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잡히지 않는 타이밍, 그건 다른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아픈 거 맞아?’

공을 받아내는 울반스키도 기가 막힌 건 마찬가지, 아프면 조금 흔들릴 줄 알았는데, 평소보다 더 좋은 제구를 유지하고 있다.

상식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선수, 올 시즌 33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내준 볼넷은 3개뿐이다.

원래 제구가 좋은 선수였지만 올 시즌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준, 저 녀석은 올 시즌 어느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내가 던지는 것도 아닌데, 공이 미트에 정확히 박힐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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