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08화 (208/361)

208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8)

딱 ~ !!

“높게 뜬 공이 파울 존으로 ··· 우익수가 잡지 못 합니다!! 후안 위긴스가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그나마 파울 존이라 다행이네요. 저곳이 인필드였다면 위긴스는 이곳을 무사히 벗어나진 못했을 겁니다.”

타구를 놓친 위긴스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최다탈삼진 퍼펙트게임 달성까지 남은 삼진은 1개 뿐, 그럼 그걸 알고 일부러 타구를 잡지 않은 건가.

당연히 그랬을 리가 없다.

만약 여기서 안타가 나온다면 나는 퍼펙트 게임 달성을 망친 역적으로 일본은 물론 보스턴 팬들에게 비난을 받겠지.

거하게 한 판 싸지른 주제에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위긴스는 다카기가 뒷수습을 해주길 바랐다.

‘내가 잡아 줄 게’

한편, 울반스키는 결정구로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울반스키는 공수를 겸비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 빠른 볼로 타자를 밀어붙이던 다카기는 방향을 틀었다.

“떨어지는 볼 참아냅니다.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승부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렵네요. 위긴스가 방금 전 타구를 잡아줬다면 지금 쯤 모두 영웅을 맞이했을 텐데 말이죠.”

다카기는 포수가 던진 공을 거칠게 낚아챘다.

딱히 화가 난 게 아니라 승부가 길어지면서 발동된 승부욕, 체인지업을 걸러냈다? 그렇다면 결정구는 빠른 볼 뿐, 퍼펙트게임을 걸고 정면승부를 택했다.

‘잠깐’

자세를 잡고 있던 데니스 크릭모어는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빠른 볼이 들어올 거라는 걸 알고 있는데 뭘 망설이는 걸까. 신경 쓰이는 건 코스, 몸쪽 공은 짧은 스윙으로 걷어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떨어지는 타자는 공략하기 어렵다.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기라도 하면 범타 확정, 하지만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선수가 대기록을 앞두고 몸에 맞는 볼을 감수하며 몸 쪽 승부를 할까.

일단 코스는 잊고 타이밍을 맞추는데 집중했다.

‘몸 쪽이라고?’

예상을 벗어나는 코스, 겨우 커트해 냈지만 타구는 크릭모어의 발등을 때렸다.

크릭모어는 펄쩍 뛰며 고통을 호소, 팀의 명예를 위해 퍼펙트만은 저지해야 하는데 식은 땀이 날 정도의 고통에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냥 좀 죽지 그래. 버텨봤자 너만 손해라고”

“됐어”

울반스키 포수가 도발을 걸었지만 크릭모어는 무시했다. 정말 치고 싶다는 의지가 보이는 선수, 적이지만 다카기는 그런 점을 높이 평가했다.

‘넌 사냥할 가치가 있는 놈이다’

다카기는 다시 몸쪽 승부를 걸었다.

어림없다며 걷어내는 타자, 승부가 7구까지 이어지자  관중석을 에워싼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헛스윙!! 삼진입니다!! 경기 종료!! 결정구는 빠른 볼이었습니다!! 보스턴 역사 상 첫 퍼펙트 게임 달성!! 그 주인공은 다카기 하루요시 입니다!!”

“고향에서 최고의 피칭을 보여줬네요. 본인은 물론 일본 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퍼펙트 게임이 확정되는 순간, 몇 몇 팬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상황이 상황이라 곳곳에 세워둔 경비원들도 손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경로를 이탈한 팬들은 보스턴 선수단 사이에 섞여 대기록을 축하, 선수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해 했지만, 다카기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불청객들과 손을 마주쳤다.

“고마워요!! 이런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에요!!”

쏟아지는 칭찬에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팀 승리를 위해 던진 공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추억이자 영광이 될 수 있다니,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왜 공을 던져야 하는지 가슴으로 깨달았다.

‘아빠한테 와라.’

세리머니를 마친 다카기는 관중석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펜스 근처까지 내려와 있던 가족들, 아들을 품에 안은 다카기는 아내와 가벼운 입맞춤을 나눴다. 조만간 세상 빛을 볼 둘째를 품에 안은 사람,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받는 몸, 키리코는 벌게진 얼굴을 손부채질로 다스렸다.

곧바로 이어진 인터뷰, 4만 5천 팬들은 열렬한 환호로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했다.

“다카기 선수, 오늘 대기록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셨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 위대하고 의미 있는 경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모르죠.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에 접어든 선수, 앞으로 어떤 위대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나.

퍼펙트게임은 그 역사를 장식할 일편에 불과할 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관중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내년에 WBC가 열리는데요. 바로 이곳에서 일본의 승리를 이끌어 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글쎄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죠.”

“하하 ~ 너무 비싸게 구시는 거 아닙니까?”

“비싼 거 맞죠. 제 몸값이 한두 푼이 아니잖아요.”

관중석에서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지난 2021 WBC가 열렸을 때 다카기는 대표 팀 출전을 고사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적응 중이라 일본 팬들은 이해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젠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갔다 하면 승리가 보장되는 선수, 일본 대표 팀은 작년에 결승까지 갔다가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4대 2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언제나 강했지만 뭔가 아쉬운 게 사실, 한국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로 다카기를 곱게 보지 않는 일본 팬들도 그 자식이 출전한다면 우승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옵트 아웃 실행을 앞두고 있을 입장, 수억 달러가 걸린 일인데 그렇게 쉽게 출전을 결정할 수 있을까. 출장은 장담할 수 없다며 답을 회피했다.

‘이제는 정말 미룰 수 없겠군. 계약서를 수정해야겠어.’

보스턴 구단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3년 연속 우승을 했으니, 그동안 잘 써먹었다며 옵트 아웃으로 내보내면 되는 건가. 그럴 생각이었다면 13년 2억 2천만 달러라는 계약을 제시했을 리가 없다.

뭣보다 이제 막 2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구단 회의에서도 앞으로 6 ~ 7년은 전성기가 보장된 선수라는 결론이 나왔다.

3년 연속 우승 덕분에 구단가치와 수익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굳이 옵트 아웃 실행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는 상황, 수더랜드 단장은 일본을 떠나기 전에 계약서를 수정하고 싶었다.

다카기의 전속 에이전트 제임스 콜튼도 그 뜻에 동의,

옵트 아웃을 실행하기 전까지 받는 1억 2만 달러(6년)은 그대로 놔두고 나머지 7년 연봉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7년에 2억 8천만 달러 어떤가?”

보스턴 구단은 역대 연봉 최고액을 갈아 치우는 계약을 제시했다.

1년에 받는 연봉만 무려 4000만 달러, 거부할 이유가 있겠나. 합의를 본 시각이 새벽 2시 22분,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단장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너무 늦은 시간인가.’

전화를 계속 걸었지만 답이 없는 고객, 내일 다시 전화하기로 마음을 접었다.

* * *

“2억 8천이요?”

[네, 역대 최고 계약입니다. 그리고 이만한 돈 줄 수 있는 구단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국을 앞둔 다카기는 자택에서 에이전트와 통화를 나눴다. 분명 매력적인 계약이지만 내 목표는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 아니었나.

연 평균 4천만 달러를 받아냈는데, 어느 날 다른 선수가 그 이상을 받아내면 자존심 상하는 일, 다카기는 계약서에 한 가지 조항을 더 넣으라고 주문했다.

“저보다 더 많이 받는 선수가 나오면 그것보다 더 달라고 하세요.”

[네?? 뭐라고요??]

제임스 콜튼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무슨 최혜국대우 조항도 아니고 그런 불평등 계약이 어디에 있나. 뭣보다 연 평균 40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물가 상승률을 따져보면 앞으로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다카기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시대에 그만한 계약이 나올 거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도 한 가지 양보하면 되잖아요.”

[뭘 말입니까?]

다카기는 연봉을 위해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기했다.

지금이야 보스턴이 잘 나가고 있지만 훗날 개혁을 위해 팀을 재정비 할 수도 있지 않나.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는 거액 연봉자는 그 발목을 잡을 뿐, 다카기는 날 필요로 하지 않는 팀엔 남고 싶지 않았다.

“일단 얘기는 해보겠습니다.”

고객의 뜻을 확인한 제임스 콜튼은 수더랜드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등가교환이 확실한 거래, 수더랜드 단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카기, 옵트 아웃 실행 안 한다]

[연봉은 물음표]

다음 날, 보스턴 구단은 정식 계약을 여론에 선포했다.

가장 중요한 게 연봉인데 이게 물음표라니, 제임스 콜튼은 기자들의 빗발치는 해명요구에 입을 열었다.

“제 고객은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자리를 유지하길 바랍니다. 일단 연 평균 4천 만 달러를 받기로 했지만, 그 이상을 받는 선수가 나타나면 보스턴 구단에서 연봉을 맞춰주기로 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래서 물음표라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트레이드 거부권은 포기하기로 했죠. 충분한 설명이 됐길 바랍니다.”

이 소식은 일본을 넘어 미국 본토까지 뒤흔들었다.

누구도 넘지 못했던 4천만 달러의 벽, 다카기 덕분에 앞으로 이 정도는 해야 4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기준이 생겼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그 영역에 도전장을 던질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2천 만 달러만 받아도 괴물 같은 놈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고액 연봉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배를 받아내는 괴물, 그냥 넘을 수 없는 벽 아닌가.

실력이 된다고 해도 구단 사정이나 샐러리 캡을 생각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금액, 보스턴 현지 여론에서도 ‘이거는 조금 ··· ’이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왔다.

폴 돈론, 후안 위긴스, 알 디즌, j. j. 핵먼, 스티븐 루카스, 스캇 포데스와 등등 앞으로 보스턴이 내부 단속으로 잡아야 할 선수가 산처럼 쌓여있다.

다카기가 좋은 선수라는 건 인정하지만 1년에 4천만 달러를 투자하는 건 미친 짓 아닐까.

하지만 다카기는 그런 건 당신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저는 분명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기했습니다. 이 팀에 필요가 없으면 언제든지 나가주겠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승을 위해 절 쓰고 싶어 하는 팀도 나타날 겁니다. 아마 단기간만 쓰고 절 다시 트레이드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용병은 돈과 승리를 위해 움직이는 존재니까요. 저는 돈이 좋습니다. 보스턴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지만 팬들이 그만한 돈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면 왕위를 포기하고 언제든 용병으로 돌아갈 겁니다.”

보스턴 여론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언제 보스턴의 왕 시켜달라고 했나? 팬들이 멋대로 추대했을 뿐, 높은 연봉 때문에 태클을 건다면 왕위 따윈 버리고 돈 많이 주는 곳에서 용병 노릇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프로 선수, 나는 이 따위 왕위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협박에 보스턴 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괜히 심기 건드렸다가 틀어지면 큰 일, 이렇게 다카기는 자신이 보스턴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현실을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확실히 인지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