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07화 (207/361)

207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7)

보스턴은 7회까지 캔자스시티에게 3대 0으로 끌려다녔다.

방망이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말도 있지만 터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법, 브라이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아무리 프로라도 경기가 안 풀리면 자기도 모르게 급해지는 법, 그럼 신중하게 볼을 고르며 주자를 쌓는 타격을 해야 하나.

하지만 그런 것도 다 고려하고 볼배합을 짜는 게 포수, 본인이 포수 출신이라 이런 상황에서 어떤 공이 들어오는지 대략 눈치챘다.

‘우리는 주사위 놀음을 하고 있을 뿐’

캔자스시티의 포수 조 리온스는 투수와 신중히 사인을 주고 받았다.

볼배합을 할 때 스트라이크 존을 대각선으로 활용하라는 말이 있다.

몸쪽 높은 공을 던진 뒤 바깥쪽으로 낮게 흘러가는 슬라이더를 던지면 타자의 중심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걸 모르는 타자는 거의 없다.

공을 던지는 이상, 투수는 쳐맞는 걸 각오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저 덜 맞는 방식을 연구할 뿐, 그래서 포수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좋은 생각은 대화를 거쳐 나온다는 말이 단순한 헛소리일까. 볼배합을 한쪽이 독식하는 경우는 거의 제로, 캔자스시티도 그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

딱 ~ !

“다시 땅볼, 유격수가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원 아웃, 스티븐슨은 오늘 모두 범타로 물러나는 군요.”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5개 뿐인데, 돈론이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 줘야 합니다.”

보스턴의 승리를 확신했던 피트 오어도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작년 시즌 무려 118승을 거둔 팀, 이렇게 끌려 다니는 경기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났다.

약점 따윈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하나하나 눈에 띄는 단점들, 다카기의 말대로 올 시즌의 왕좌는 보스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됐어. 따라 나온다.’

한편, 캔자스시티 배터리는 초구부터 몸 쪽을 택했다.

히팅포인트를 넓게 쓴다는 건 다양한 포인트에서 타격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기계가 아닌 이상 이런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건 어렵다.

선구안과 히팅 포인트는 별개의 문제, 돈론은 컨디션이 좋을 때 어떤 공도 쳐내지만 히팅 포인트가 조금만 어긋나도 범타가 반복된다.

오늘 돈론의 선구안은 살아 있지만 히팅 포인트는 좋지 않은 편, 볼로 유인하는 것 보다 다양한 코스를 찔러주는 전략을 구사했다.

“젠장!!”

3구를 때린 돈론은 배트를 집어 던졌다.

손잡이 부분에 맞으면서 힘 없이 굴러가는 타구, 전력으로 달렸지만 4번 째 타석마저 범타로 물러났다.

‘거기서 흐름이 끊겼어.’

다카기는 벤치에서 팀의 기세가 꺾인 이유를 분석했다. 적시타야 맞을 수도 있지만 어리숙한 중계플레이로 추가점을 내준 게 결정타,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no였다.

내줄 경기는 내주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게 낫겠지. 1차전을 내준 보스턴은 다카기의 주도 하에 팀 미팅을 열었다.

더블 헤더 2차전까지 남은 여유는 세 시간, 뭐가 문제인지 동료들에게 묻고 생각할 기회를 줬다.

“우리가 못 쳐서 진 거 아니야?”

“아니야. 기본적으로 수비가 개판이었어.”

작년 시즌, 보스턴은 경기 당 거의 6점에 이르는 막강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덕분에 사소한 실책이 실점으로 이어져도 어찌어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거기다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 많으니 수비가 조금 떨어져도 눈에 띄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 경기로 확실히 드러난 약점, 다들 정신 차리라며 주의를 줬다.

“어차피 다음 경기는 네가 나서잖아. 우리가 도울 게 뭐가 있겠어?”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다.”

한 소리 들은 j. j. 핵먼은 입을 다물었다.

철벽의 에이스가 등판하는 더블헤더 2차전, 우린 그냥 병풍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게 할 말이냐는 눈빛에 장난기는 싹 사라졌다.

“잘 들어. 막아야 치고 나갈 빈틈도 생기는 거야. 실점해도 방망이로 만회하면 되겠지, 이런 안일함이 있으니까 타격도 안 되는 거 아냐? 너희들 생각은 어때?”

침묵으로 동의하는 선수들, 다카기는 2차전은 반드시 잡아내자며 전의를 불태웠다.

“자, 다카기 하루요시가 선발 등판에 나섭니다. 작년 시즌 33경기 등판, 24승 3패 평균자책점 1.81, 223이닝 동안 볼넷 46개, 탈삼진은 311개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의 국보라고 불러도 될 선수죠. 1차전에서 팀이 패배했기 때문에 몸이 잔뜩 달아올라 있을 겁니다.”

오후 6시 14분에 시작된 2차전,

포수 마스크를 쓴 울반스키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다카기가 초구로 던지는 공은 90% 이상이 빠른 볼, 구종은 정해져 있으니 방향만 잡아주면 됐다.

“스트라이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오는 공, 이 정도 구위에 제구를 갖췄다면 볼배합은 무의미하다.

캔자스시티 타자들도 그건 알고 있겠지,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쳐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딱 ~ !!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다카기 선수가 작년 시즌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71%나 됐거든요. 2002년 집계 이후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인데, 이 정도면 알고도 못 친다는 뜻입니다. 올해도 구위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네요.”

다카기는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알고도 당할 수 없는 신세라니, 1차전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캔자스시티 선수단은 웃음기 빠진 얼굴로 철벽을 맞이했다.

‘너도 인간이다. 못 이길 리 없지’

1차전에서 4타수 3안타 경기를 펼친 몬테로가 타석에 들어섰다.

통산 다카기와의 상대 전적은 16타수 4안타, 아주 못 쳤다고 할 순 없지만 인상적인 타구를 날리지 못한 것도 사실, 초구는 무조건 빠른 볼이라 노리고 들어갔다.

초구는 볼, 여유가 생긴 몬테로는 울반스키에게 도발을 걸었다.

“저 자식도 나는 겁나는 모양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 하냐?”

울반스키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고 있을 뿐, 다카기는 2구를 몸 쪽으로 붙여 파울을 이끌어냈다. 좌우를 오가며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건 저 자식의 특기, 몬테로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예상했다.

스플리터처럼 떨어지기 때문에 헛스윙을 끌어내기 좋은 구종, 체인지업을 카운트를 잡는 데도 쓰기 때문에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바깥쪽!! 바라봅니다.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

“다카기 선수가 몸 쪽을 찌르고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마무리 하는 게 거의 패턴 아닙니까? 데이터가 쌓인 선수라 몬테로 선수도 머리를 굴려 본 것 같은데, 역시 만만치가 않네요.”

머리가 복잡해진 몬테로는 발을 빼며 시간을 끌었다.

또 체인지업이 날아올까. 보고 치면 절대 대응할 수 없는 구종,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냥 흘려보낸 빠른 볼이 자꾸 떠올랐다.

“와아아 ~ !!”

결정구는 높게 들어오는 빠른 볼, 몬테로는 앞다리가 주저앉을 정도로 큰 스윙을 돌렸다.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한 몸이 크게 뒤틀리면서 발목까지 회전, 도대체 얼마나 힘을 들여 스윙을 한 건가.

다카기는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몬테로를 곁눈질로 살폈다.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는 부상, FA를 앞둔 녀석이 여기서 부상을 당할 줄이야, 본인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좋은 맞수를 잃은 다카기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 ~ 일어나지 못하는데요. 안 될 것 같습니다.”

“역시 타자는 헛스윙을 해서 좋을 게 없습니다. 타격이 됐다면 몸에 저절로 브레이크가 걸렸을 텐데 ··· 역시 안 되겠군요.”

몬테로는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코치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빈볼도 아닌데 타자를 병원으로 보낼 줄이야, 반대로 생각하면 몬테로가 다카기의 구위에 그만큼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그 정도로 위력적인 공, 이런 투수가 NPB에 있었던가. TV에서만 봤던 다카기의 투구를 목격한 일본 현지 팬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다 끝났어 ··· ’

한편, 캔자스시티의 조 웨스트 감독은 고개를 떨궜다.

몬테로는 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 그런데 2경기 만에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동력을 잃은 타선으로 무슨 경기를 한단 말인가. 몬테로의 부상은 캔자스시티 선수단의 사기저하로 이어졌다.

‘에잇 ~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

다카기는 씁쓸한 얼굴로 투구를 이어갔다.

상대는 대장을 잃은 군대, 그렇다고 추격을 안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1차전을 내준 만큼 에이스로서 승리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철저하게 부숴버렸다.

“스윙!! 삼진입니다!! 5타자 연속 삼진!! 오늘 경기 11번째 탈삼진을 적립합니다.”

“몬테로가 없는 타선으론 이 선수를 넘을 순 없죠.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삼진 세례에도 보스턴의 내야진은 긴장감을 유지했다.

여기서 또 실책이 나오면 저 자식이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져도 할 말이 없다. 뭣보다 우리도 프로인데 같은 선수에게 이런 충고를 받는 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뭣보다 6회까지 퍼펙트를 이어가고 있는 에이스, 어설픈 수비로 이어진 안타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는 뻔했다.

딱 ~ !!

그렇게 경기는 흘러 7회 초, 캔자스시티는 간만에 외야로 타구를 날려 보냈다.

잠시 넋 놓고 있던 후안 위긴스는 백스텝을 밟다가 바로 전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타구를 낚아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네.’

다카기는 마음속으로 불만을 삼켰다.

이게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처리할 타구인가. 퍼펙트게임이 걸렸으니 긴장할 법도 한데 나사가 빠진 모습은 여전, 철저하게 삼진 위주의 피칭을 고집했다.

딱 ~ !

“땅볼, 투수가 잡아서 1루에 직접 송구합니다!! 투 아웃!! 다카기 선수가 민첩한 수비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3루수가 처리했어도 될 타구였는데 역시 반응이 빠르네요. 3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받은 게 우연이 아닙니다.”

본래 유격수 출신이라 타구에 대한 반응 속도도 우월, 선수를 빼앗긴 잭 개리슨은 무안한 얼굴로 뒤돌아섰다.

나이가 들어서 반응 속도가 떨어진 게 사실, 1차전에서도 정면에서 날아오는 타구를 기다려서 받았다가 석연치 않은 안타를 내줬다.

그런 수비를 한 내가 저 녀석의 행동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다카기는 실전에서 동료를 격려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여긴 공 하나에 승패가 갈리는 현장, 태평하게 서로 격려할 여유가 어디에 있나.

못하는 동료가 있으면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게 다카기의 리더십, 친절하진 않지만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선수들은 긴장감을 유지했다.

다카기는 마지막 타자를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8회를 마무리, 미국 본토에서 4년 동안 달성하지 못한 퍼펙트게임을 여기서 달성하는 건가.

점 점 고조되는 분위기, 일본 팬들은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르는 붉은 귀신에게 존경의 뜻이 담긴 함성을 내질렀다.

“초구!! 들어옵니다!! 97마일, 구위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지금까지 삼진 14개를 잡아내고 있는데요. 하나만 더 잡아내고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면 이것도 기록입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는 25명 뿐, 그 중 가장 많은 삼진을 기록한 경우는 14개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삼진 하나 더 곁들이면 좋은 상황, 하지만 그런 세세한 기록까지 알 리 없는 다카기는 아웃을 잡아내는 일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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