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6)
[다카기, 예정대로 더블헤더 출전]
2023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일본 여론은 보스턴 구단에 명쾌한 해답을 요구했다.
이번 개막전은 더블헤더로 치러질 예정, 고시엔도 아니고 에이스가 연속해서 등판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다카기가 출전하는 경기에 팬들이 몰리는 건 당연, 보스턴 구단은 다카기가 두 경기 모두 출전한다고 미리 공표했다.
1차전은 야수, 2차전은 투수로 출전할 예정
더블헤더로 치러지는 경긴데 그렇게 무리해도 되는 건가. 이미 공약까지 했지만 의구심을 표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따악 ~ !!
하지만 다카기는 예정대로 더블헤더 출전을 강행했다.
1차전은 야수로 나서고 2차전은 선발 등판, 아침 일찍부터 구장으로 나와 연습에 몰두 했다.
1차전은 대충하고 2차전에 전력을 다한다? 그런 아마추어 같은 생각을 하는 놈이 프로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지, 거기다 진짜 좋아하는 타격이라 한 타석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실전 감각 유지를 위해 오늘은 실전 배팅에 주력,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기자들은 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빠 ~ !!”
한창 열중하고 있는데 집중력을 흐트리는 외침, 다카기는 귀여운 방해꾼에게 잠시 조용히 해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아차했는지 얼른 입을 틀어 막는 녀석, 눈웃음을 지은 다카기는 다시 타격에 집중했다.
따아악!!
멋지게 한 방 날려주고 훈련 종료, 한 집안의 가장은 땀이 채 마르지 않은 몸으로 가족들이 있는 1루 관중석 쪽으로 이동했다.
3루 관중석에 앉아 있는 카메라 맨들의 시선도 따라붙었지만, 다카기는 신경쓰지 않았다.
“언제 왔어?”
“방금 전에”
아내와 인사를 나눈 다카기는 아들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언제 말해주나 기다렸는데 이젠 아빠 아빠 말도 잘하는 녀석, 타다요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 품에 뛰어들었다.
아빠도 반갑지만 드넓은 놀이터에 마음을 뺏긴게 사실, 일반인은 절대 발을 들일 수 없는 지역이지만 시설 관리인들은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카기의 아들 아닌가. 든든한 뒷배를 둔 타다요시는 베이스라인을 폴짝 넘어 외야로 달려갔다.
“와아이 ~ 와아이 ~ ”
신이 났는지 손까지 흔들며 달리는 녀석, 다카기는 말 없이 그 뒤를 밟았다.
“아빠, 나 오늘 여기서 하루 종일 놀아도 돼?”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이제 그만 가자, 어지럽히면 저 아저씨들이 여기 다시 정리해야 돼”
이 놀이터가 아무에게나 허락된 곳인가. 실력을 인정받은 자만 출입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 다카기는 넌 아직 이르다며 흥분한 아들을 다독였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놀이터를 찾았건만, 아빠 손에 연행된 꼬마 침입자는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삐쳤나보네”
“그러게”
부부는 뚱한 아들을 사이에 두고 미소를 지었다.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얻은 아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이라 어떻게 대접을 해야할지 난감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우리, 이 녀석 없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부부는 삐친 아들을 달래기 위해 연대했고 그렇게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자기야, 나 오늘 해줄 말 있어.”
“뭔데?”
“유모차 한 대 더 사야될 것 같아.”
잠깐 멈칫하던 다카기는 아내를 꼭 끌어 안았다. 그동안 노력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소식이 올 줄이야. 기자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낮뜨거운 애정행각을 이어갔다.
책임져야 할 식구가 늘었으니 앞으로 더 힘써야겠지. 1차전부터 의욕을 불태웠다.
“진짜 나왔네.”
“그러게”
1차전 티켓을 구매한 팬들은 전광판에 새겨진 다카기의 이름을 확인했다. 포지션은 좌익수, NPB 대표 팀과의 친선경기에서 홈런까지 친 선수라 이 출전을 장난처럼 여기는 팬은 아무도 없었다.
“자, 2023시즌 MLB 개막전, 도쿄 돔에서 보내드립니다. 1회 초 캔자스시티의 선공, 제임스 필드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247, 홈런 9개, 38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보스턴에 비하면 선두 타자부터 위압감이 다르죠. 오늘도 일방적인 경기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보스턴 지역방송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중계박스에서 속편한 말을 늘어놨다.
200안타 20홈런을 치는 선수가 1번을 치는 보스턴에 비하면 캔자스시티 타선은 아무 것도 아니다.
3년 전부터 리빌딩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유망주를 퍼주고 패트릭 브린을 영입했는데, 결과적으로 우승도 못하고 리빌딩에 쓸 기둥마저 뽑아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기, 앞날이 탄탄한 보스턴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자신했다.
따악 ~ !!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일원답게 캔자스시티는 만만하지 않았다.
거기다 3번 몬테로는 4년 연속 올스타게임에 이름을 올린 스타, 매년 성적이 상승하더니 작년 시즌 타율 0.285, 37홈런, 98타점을 찍어버렸다.
보스턴 타자들이 워낙 압도적이라 리그 MVP 투표 5위에 그쳤지만 향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선수 중 하나라는 건 분명, 올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 몸이라 영입 경쟁에 불이 붙을 건 분명했다.
‘승부하자.’
보스턴의 선발 로버트 클레이튼은 울반스키 포수와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작년 시즌, 클레이튼은 갈고 닦은 싱커로 재미를 봤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싱커, 작년에 17승을 거뒀으니 자신감은 충분했다.
딱 ~ !!
“파울입니다. 클레이튼 선수도 한 치의 양보가 없네요.”
“몬테로의 단점이 떨어지는 출루율 아닙니까. 작년에 좋은 성적을 거둔 건 분명하지만 타율에 비해 컨택이 좋다고 할 순 없거든요. 도망칠 이유 없습니다.”
피트 오어는 적극적인 승부를 주장했다.
몬테로는 원래 컨택이 좋은 선수는 아니다. 작년 시즌 타율이 좋았던 건 0.343이나 됐던 BABIP 덕분, 올 시즌은 0.260 근처로 회귀할 거라고 자신했다.
‘상성이 조금 안 좋을 수도 ··· ’
하지만 다카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BABIP이 높다는 건 운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맹목적으로 믿어선 안 되는 게, 발이 빠르고 땅볼 비율이 높은 선수는 BABIP이 높을 수밖에 없다.
뭣보다 야구에서 가장 많은 안타가 나오는 게 땅볼 아닌가.
몬테로는 홈런을 노리고 스윙을 하는 선수는 아니다. 타고난 손목 힘과 타구 스피드로 담장을 넘기는 유형, 당연히 뜬 공보다 땅볼이 나올 확률이 더 높다.
클레이튼처럼 땅볼 유도에 전문화 된 투수가 상대하긴 조금 까다로운 유형, 코치의 지시는 없었지만 다카기는 정상적인 위치에서 약간 벗어난 전진수비를 펼쳤다.
따악 ~ !!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가는 안타!! 1루 주자는 어디까지?! 일단 2루에 멈춰섭니다. 1사 주자 1 - 2루, 캔자스시티가 득점 기회를 잡습니다.”
“지금은 다카기 선수가 타구를 잘 끊었네요. 3루까지 가기엔 무리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루 하나를 막아낸 수비, 브라이스 감독은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저게 본업이 투수인 선수가 할 수 있는 수비인가. 야구 지능이나 센스는 정말 타고난 선수, 좌익수는 수비로 눈에 띄기 어려운 자리인데 다카기는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발휘했다.
‘됐다.’
땅볼을 이끌어낸 클레이튼은 병살타로 위기를 넘겼다.
이어지는 보스턴의 1회 말 반격, NPB 대표 팀과의 친선경기에서 홈런 포함 4안타 비수를 꽂은 폴 돈론이 타석에 들어섰다.
작년 시즌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입장, 초구부터 거칠게 달려들었다.
딱 ~
‘아이고 ··· ’
끝에 걸리면서 부러진 배트, 돈론은 손잡이만 남은 배트를 쥔 채 1루로 내달렸다. 결과는 아웃, 아무리 발이 빨라도 이걸 안타로 만들어낼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작년은 우연이었어.”
다카기는 돈론의 속을 슬쩍 긁었다.
돈론이 적극적인 스윙으로 반전을 이끌어 낸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건드리면 안 되는 공이었다. 최근 잘 나간다고 아무거나 따라다닌 결과, 공 좀 보는 눈 좀 키우라고 면박을 줬다.
“너는 얼마나 잘 하나 두고 보자.”
“그래 눈 크게 뜨고 잘 봐.”
돈론도 지지 않고 맞불을 놨다.
다카기가 아침 일찍 나와 연습배팅을 했다는 걸 모르고 던진 말, 아웃 되면 놀려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6番 - レフト - 高木]
경기는 흘러 2회 말,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다카기가 타석에서 들어섰다.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은 저 선수의 활약을 보기 위해 티켓 값을 지불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입장을 생각하면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게 해야겠지, 상위 타선에 배치된 만큼 타격에 임하는 다카기의 자세는 진지했다.
딱 ~
“땅볼, 유격수가 잡아서 2루!! 다시 1루에서 ~ !! 1루에서는 세이프입니다!! 다행히 병살은 면하는 군요.”
“하하 ~ 정말 열심히 달리네요. 절대 병살은 안 된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1루에 안착한 다카기는 더그아웃을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좋아 죽겠다며 깔깔거리는 폴 돈론, 무안한 마음에 주먹감자를 날렸다.
‘어떻게든 만회 해야지.’
일본 본토 팬들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인가. 도루로 만회할까 했지만 무리수는 더 큰 악몽을 불러오는 법, 다음 타석을 기약했다.
보스턴의 일방적인 게임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팽팽하게 진행되는 경기, 양 팀이 한 점도 내지 못하면서 경기는 어느새 4회 초로 접어들었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좌측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다니엘 무어의 솔로 홈런!! 캔자스시티가 2023시즌 첫 득점을 올립니다!!”
“지금은 실투에요. 싱커가 우타자 몸 쪽으로 휘어지면서 아래로 떨어져야 되는데, 한 가운데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잘 던지던 클레이튼이 삐긋하면서 분위기는 캔자스시티로 넘어갔다.
여기서 정신을 차렸으면 다행인데, 후속 타자 짐 라이스에게 안타, 몬테로에게 좌중간을 가르는 장타를 얻어맞았다.
‘너 지금 뭐 하냐?’
타구를 잡은 다카기는 경악했다.
이런 상황에선 좌익수나 중견수가 타구를 잡아 내야수에게 전달하는 게 일반적, 그런데 유격수 에릭 스티븐슨은 무슨 생각인지 외야로 달려왔다.
이 상황에서 무슨 중계플레이를 하겠다는 건지, 1루 주자는 이미 3루를 지나 홈으로 내달리고 있다.
거기다 타자 주자 몬테로는 2루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상황, 다카기는 홈은 포기하고 2루를 향해 다이렉트 송구를 날렸다.
레이저빔처럼 쭉 뻗어가는 송구, 간발의 차로 아웃은 놓쳤지만 팬들은 감탄을 쏟아냈다.
“너 잠깐 나 좀 보자.”
하지만 다카기는 쏟아지는 환호를 외면하고 스티븐슨을 불러들였다.
스티븐슨이 정상적인 위치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어도 중계 플레이를 거쳐 홈에서 승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외야로 나온 건가. 쏟아지는 질책에 스티븐슨은 얼굴을 붉혔다.
“미안해. 네가 어깨가 약한 줄 알았어.”
“뭐 ··· 뭐라고?”
다카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티븐슨은 올해부터 풀 타임 유격수를 보게 된 선수, 거기다 다카기가 투수로 뛰는 것만 봤으니 송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몰랐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상상 이상, 펜스 근처에서 2루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송구에 스티븐슨은 할 말을 잃었다.
“여긴 신경 쓰지 말고 네 자리나 지켜라. 알았어?”
“알았어.”
스티븐슨은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괜한 배려로 상대의 화만 돋운 셈, 거기다 뼈아픈 판단 미스로 중계플레이를 끊어먹은 게 사실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