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04화 (204/361)

204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4)

[다카기는 이 경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장난 치는 것 같다.]

일본 야구 원로들은 다카기의 야수 출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뛴 선수가 야수로 나와 일본 대표팀과 경기를 치르겠다니, 일본 야구 수준을 무시하는 건가.

거기다 다카기는 일본을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 선수유출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윈로들이 다카기를 곱게 볼 리 없었다.

“장난 친 적 없습니다.”

다카기는 어떤 프로선수가 경기를 두고 장난을 치냐며 반격했다.

일본 대표팀과의 친선경기? 이것도 나름 중요한 경기지만 정말 중요한 건 개막전이다.

개막전 선발로 나설 선수가 이벤트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다는 게 웃긴 일, 그건 수더랜드 단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일본 팬들이 다카기의 투구를 보고 싶다면 그날 보면 될 일, tv중계가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가.

에이스가 이벤트 경기에 출전한다면 그 자체가 팬들을 배려한 것,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와의 맞대결을 요구한 잭 코틀봇에게 그렇게 다카기와 붙고 싶으면 메이저리그로 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마음만 먹었다면 벌써 왔을 메이저리그, 그 기회를 외면한 게 누구인가. 일본행을 택한 건 코틀봇 본인,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이젠 용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예전엔 대등한 입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카기의 위상이 한 수 위, 챔피언에게 볼 일이 있으면 네가 미국으로 오라는 말에 코틀봇은 입을 닫았다.

이렇게 종지부를 찍은 야수출전 논란, 기자들은 다카기에게 첫타석에서 어떤 공을 노릴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빠른 볼이죠.”

아무리 메이저리거라도 상대는 투수, 본인들도 자존심이 있다면 변화구는 던지지 않겠지, 그렇게 다카기는 일본 투수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빠른 볼 일변도는 위험하다. 상대가 투수라고 생각한다면 큰 코 다칠 거다.”

이때 한 선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가나가와 고교의 에이스였고 지금은 니시테츠의 1선발 노릇을 하고 있는 마이키 요시토모

요시토모는 고시엔에서 다카기에게 크게 데인 경험이 있다. 어떤 코스로 던져도 다 쳐냈던 그 자식, 지금이라고 다를까.

다카기는 일본에서 고교통산 100홈런,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포함 통산 31홈런을 친 선수다.

투수라고 생각하고 덤볐다가 맞으면 일본야구의 망신, 변화구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날 선발투수로 예정된 코틀봇은 마이키의 주장을 묵살했다.

빠른 볼만 던져도 잡아낼 수 있다고 자신했고 변화구 따윈 1개도 던지 않겠다고 기자들 앞에서 약속까지 해버렸다.

“내일은 무조건 이겨야 된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다카기는 요정(料亭)에서 몇 몇 선수들과 심각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지금의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역사에 남을 팀, 그 구성원들은 그만한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번 친선경기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선수들이 음주 또는 퇴폐업소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거다.

친선경기라 져도 상관 없다는 건가. 하지만 다카기는 져도 되는 경기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메이저리거야. 세계최고의 선수들이라고, 호랑이가 개한테 뒷발을 물려야 되겠냐?”

“훗, 무슨 개 타령이야?”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다. 심각하게 들어.”

다카기는 일본야구 원로들이 메이저리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료들에게 공개했다.

자신의 커리어에 자부심을 가지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세계의 커리어를 깎아내리는 게 허용될 수 있을까.

지금도 일본이 세계 최고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있는데, 한 원로는 메어저리그도 별 거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물 안의 늙은 개구리들의 아무 말 대잔치, 다카기와 머리를 맞댄 선수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너희들, 내일 지고 이런 인간들한테 비웃음 당하고 싶냐?”

“아니 ··· ”

“나는 비슷한 수준의 경기도 용납 못 해. 우리는 최강이라고, 수준의 차이가 뭔지 가르쳐 주자.”

선수들은 에이스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선경기라 대충 봐주면서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있었다니,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다짐을 세웠다.

“와아아 ~ !!”

다음 날 오후 5시 24분, 친선게임은 도쿄 돔에서 예정대로 진행됐다.

일본 야구 원로들의 단체 시구로 막을 올린 이벤트, 하지만 그 시커먼 속내를 알게 된 몇 몇 보스턴 선수들은 형식적인 박수도 치지 않았다.

“자, 오늘 npb 대표팀의 선발 투수는 잭 코틀봇입니다. 요코하마 소속, 작년 시즌 성적은 15-6승 7패 평균자책점 2.40, 202이닝 동안 볼넷 67개 탈삼진은 221개를 기록했습니다.”

“통산 100승을 넘긴 선수죠. 일본에서 통하는 선수는 메이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으니, 보스턴도 쉽게 공략하진 못 할 겁니다.”

일본 현지 해설위원들도 은근 코틀봇의 호투를 기대했다.

미국은 동맹국이지만 한때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했던 사이, 그래도 끝내 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스포츠 경기에서 보상심리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코틀봇은 한때 메이저리그 구단의 주목을 받았던 선수지만 지금은 일본 프로야구의 일원, 잘 키운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본때를 보여주마.”

1회 초 보스턴의 공격, 타석에 선 폴 돈론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남들은 평생 한 번 받기 힘든 리그 mvp까지 받았으니 자신감은 충만, 이제부턴 덤벼오는 도전자를 때려잡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스트라이크!!”

구위에 자신이 있는 코틀봇은 초구부터 153km의 강속구를 던졌다. 하지만 이 정도는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속도, 탐색전을 마친 돈론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이건 안 잡아 주네.’

2구는 바깥 쪽 빠른 볼, 볼 판정이 나자 돈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본은 메이저리그보다 스트라이크 존이 타이트한 편, 세계화에 맞추면서 최근엔 많이 넓어졌지만 그래도 옛 스트라이크 존을 고집하는 심판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유리한 건 이쪽, 보아하니 빠른 볼에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감이 넘치는 건 돈론도 마찬가지였다.

따악 ~ !!

“힘껏 친 타구가 우측으로 낮게 날아!! 담장을 넘어가는 군요 ··· 폴 돈론의 솔로 홈런, 보스턴이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글쎄요. 지금은 멀리 가봤자 펜스 근처라고 생각 했는데, 역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힘이 있네요.”

타구 스피드만큼 돈론은 빠르게 베이스를 돌았다.

솔직히 넘어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좁은 도쿄 돔의 외야, 20홈런을 겨우 넘긴 나도 홈런을 칠 수 있는데 다른 선수들은 어떨까.

오늘 경기는 일방적인 핵전쟁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二塁手 - 2番 - J. J. ハクマン]

후속타자 J.J. 핵먼이 타석에 들어섰다.

작년 시즌 부상으로 30경기 이상을 날려먹었지만 그래도 28홈런을 날린 선수, 돈론에게 맞은 충격이 컸는지 코틀봇은 좀 더 제구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핵먼은 순수출루율이 0.58밖에 안 될 정도로 공격적인 타격을 하는 선수, 배트 스피드가 빨라 게스 히팅도 하지 않는다.

먼 곳으로 공을 던져봤자 볼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할 뿐, 핵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몸 쪽 승부를 했겠지만, 코틀봇의 정보력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쓰리 볼 원 스트라이크”

“코틀봇이 너무 소극적인 투구를 하는데요. 이렇게 던질 거면 다카기에게 왜 도전장을 던진 겁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선수를 내보내는 게 낫겠네요.”

해설위원의 불만이 끝나기 무섭게 J. J. 핵먼은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150km가 넘는 공이 날아오는데도 편안하게 대응하는 보스턴 선수들, 이게 세계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는 팀인가. 조금이나마 대등한 경기를 기대했던 일본 팬들의 얼굴은 약간 굳어졌다.

“끝내도 돼?”

이제는 데이브 셰퍼드의 타석, 셰퍼드는 타석에 서기 전 다카기의 의견을 구했다.

도전은 저 녀석이 받았는데 내가 끝내도 되는 건가. 다카기는 말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작년 시즌 50홈런을 달성한 거포의 등장, 그 다음은 38홈런, 43홈런 타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코틀봇은 숨이 멎을 정도의 은총에 허우적거리는 중, 그렇다고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셰퍼드는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후속 타자 후안 위긴스가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치면서 J. J. 핵먼은 3루까지 진출,

1사 주자 1 - 3루에서 울반스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부터 철저하게 변화구 위주로 바뀐 패턴, 보스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코틀봇도 울반스키가 변화구에 약점을 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다.

‘웃기고 있네.’

울반스키는 보란 듯이 낮은 공을 걷어 올렸다.

변화구에 약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선구안이 나쁜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도 철저하게 떨어트리는 변화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밀어 넣다니, 용서하지 않았다.

까마득하게 날아가 좌측 관중석에 처박힌 타구, 이렇게 스코어는 4대 0으로 벌어졌다.

‘이게 실력의 차이라는 거다.’

다카기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동료들을 기쁘게 맞이했다.

그동안 일본 대표 팀이 상대한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이 진짜 올스타인가? 그저 그런 선수들을 모아 놓고 올스타전이라고 하는데, 보스턴은 괴물들만 살아남는다는 메이저리그에서 초 정예만 모인 팀이다.

그저 그런 팀 이겨놓고 메이저리그도 별 게 없다는 말을 늘어놓다니, 우물 안의 개구리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안 봐도 뻔한 그림,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ライト - 8番 - 高木]

“와아아 ~ !!”

침체에 빠졌던 관중석은 환호로 들썩거렸다.

기다렸던 다카기의 등장, 하위타선이라도 저 괴물 같은 라인업에 일본인이 끼었다는 게 대단한 거 아닌가.

팬들은 이젠 일본의 승리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았다. 위대한 메이저리거 의 실력을 보고 싶을 뿐, 다카기는 타석에 서기 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이긴다.’

체면을 구긴 코틀봇은 마음을 다잡았다.

청소년 대표 경기에서 내게 대망신을 안겨준 자식, 그때는 홈런을 맞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라며 이를 갈았다.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냐?’

초구부터 변화구가 들어오자 다카기는 마운드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이럴 거면 빠른 볼만 던진다는 말은 왜 한 건가? 그제야 코틀봇은 정신을 차렸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어긴 공약, 바로 빠른 볼로 방향을 틀었다.

따아악 ~ !!

“당긴 타구가!! 높게 날아 ~ !! 담장을 넘어갑니다!! 다카기 하루요시의 솔로 홈런!! 보스턴이 홈런 3방으로 ··· NPB 대표 팀을 침몰시키는군요.”

“장난이 아니네요 ··· 분명 일본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방적인 경기가 될 수 있는 거죠?”

타구를 잠시 응시하던 다카기는 배트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시작된 런웨이, 이래도 내가 장난을 치는 건가?

애들 장난 같은 야구를 하는 건 오히려 상대 팀, 특별석에서 다카기를 지켜보고 있던 일본 야구원로들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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