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위대한 건 나다. 너희들이 아니야 - (2)
[No Japan]
단체훈련이 금지되는 12월이 지나면서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은 전지훈련을 계획했다.
고교 및 대학 아마야구 팀들도 1월에는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곳이 많은 편, 그동안 거리도 가깝고 야구기반이 탄탄한 일본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양국의 대립이 격화되자 프로구단들은 미국이나 대만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이건 여유가 있는 프로구단이나 가능한 일, 아마야구는 거리가 가깝고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 일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여론은 아마야구 주제에 무슨 전지훈련이나며 핀잔을 주는 중, 여론의 눈치를 살핀 대학본부 협회는 각 학교에 일본행을 자제하라는 권고까지 했다.
“우리는 어쩌라고?”
학생들은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남아로 가라고 하는데 거긴 비용은 둘째치고 거긴 만족할 만 한 시설도 없다. 비용이 더 드는 미국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 많은 학부모들은 협회의 지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행을 추진했다.
[왜 우리 의견은 듣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런 중요한 일은 현장 지도자와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뭣보다 이건 훈련의 자율권에 대한 박탈이다.]
전지훈련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닌데 협회는 무슨 자격으로 일본 전지훈련을 반대하는 건가.
프로 선수들은 다치면 일본에서 치료를 받고 많은 장비를 일본에서 공수해 와 사용한다.
현실이 이런데 무슨 명분으로 금지하는 건지, 뭣보다 이건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 많은 학교가 일본행을 밀어붙였다.
제주고교 야구부도 마찬가지, 작년에 다카기는 제주 야구부로부터 sos 신청을 받았다.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어른들의 사정으로 무산된 만남, 올해는 스기토모 그룹과 다이이치 고교의 연대협력을 얻어내 거한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진짜 오는 건가.”
“나한테 물어봤자 몰라.”
제주고교 야구부는 설마하는 얼굴로 훈련장 근처를 기웃거렸다.
메이저리그 정상에 군림한 그 사람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건가. 초대는 받았지만 지금도 믿기 어려운 현실, 때가 되자 한무리의 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루타 감독과 다나카 코치가 이끄는 다이이치 야구부의 등장, 다카기는 아니지만 올 여름 고시엔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라 손님들은 바짝 긴장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
양 팀 감독은 가볍게 악수를 주고 받았다.
파행일면을 내달리는 양국 외교를 생각하면 참으로 보기 어색한 광경, 이때 현장을 찾은 양국 기자들의 관심이 한 곳에 집중됐다.
야구계 끝판왕의 등장,
이미 몇 번이고 마주한 얼굴이지만 다이이치 야구부는 대선배를 향해 예의를 표했다.
“안녕하십니까!!”
“됐다. 누가 보면 내가 감독인 줄 알겠다.”
다카기는 후배들 어깨를 몇 번 치고 지나갔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제주 야구부, 악수를 권하는 손길에 감격한 학생들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내질렀다.
TV에서 볼 땐 잘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거대한 존재, 거기다 인류최강의 실력을 보유한 그 자신감은 손님들에게도 전달됐다.
“일단 친선경기부터 하실까요?”
“네. 그러시죠.”
다카기는 일단 양 팀의 전력 차를 분석했다.
후배들의 실력이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경기를 해보면 초대손님들의 기량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히겠지.
인터뷰는 일절 거절하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투수는 모르겠는데 나머지는 영 ··· ’
다카기는 한국 고교야구의 문제점을 바로 짚어냈다.
투수 수준은 일본 또래들에 비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문제는 타격과 수비, 왜 야수들은 저렇게 전진수비를 하는 건가?
타자들의 수준 미달이 원인, 공을 멀리 보낼 줄 모르니 당연히 수비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이런 어설픈 실력으로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kbo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눈에 차질 않았다.
“멀리 보내라. 거기가 구멍이니까.”
“네”
다이이치 고교의 일일 코치로 나선 다카기는 후배들에게 강한 스윙을 주문했다.
외야수들도 전진 수비를 할 정도면 수준이야 뻔하지 않은가. 예상은 적중, 제주 고교 학생들은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에 전혀 대응을 못했다.
내야를 빠져나온 타구만 처리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박을 상대하려니 돌아버릴 지경, 그것보다 일본 학생들이 이런 힘 있는 스윙을 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대선배의 가르침대로 체력과 기술을 갈고 닦은 결과, 덕분에 다이이치 고교는 투타 모두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게 됐다.
4000여개의 야구부 중 톱으로 군림했던 한 해, 한창 기량이 물에 오른 실력 앞에서 제주 야구부는 무기력했다.
‘더는 해 볼 것도 없네.’
경기가 6회에 접어들자 다카기는 경기를 중지시켰다.
더 해봤자 무의미, 별로 손님들을 괴롭히자고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 바로 진단에 나섰다.
“뭐부터 말해야할지 당황스럽네요.”
통역의 말을 전달받은 손님들은 침묵했다. 본인들이 생각해도 형편없던 경기, 먼 길을 와서 피곤했다느니, 시차가 적응이 안 됐다는 변명이 통할 결과가 아니다.
그냥 명백했던 수준 차,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만 주목했다.
“여러분들 게임 좋아합니까?”
“네.”
“야구도 게임과 똑같습니다. 캐릭터가 강해지려면 미션을 수행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들죠. 거기다 귀찮습니다. 한국말로 ‘노가다’라고 하나요?”
손님들은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설마 저 입에서 노가다라는 한국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재일한국인 5세라 이상할 것 없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상황에 딱 맞는 비유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게임이라면 잘만 합니다. 왜죠?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거라 그런 걸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야구를 좋아한다면 노가다도 감수할 거라 믿습니다.”
다카기는 이곳을 전지훈련장으로 선택한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협박을 늘어놨다. 그건 학생들도 원하는 일, 이날부터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실력 없는 자는 쉴 자격도 없다.]
다카기는 이 슬로건을 내 걸고 훈련을 지도했다.
실력이 없으면 몸을 굴려서 실력을 키우는 게 할 일이다. 학생의 권리? 인권? 실력이 없으면 따질 인권도 없다.
아니, 실력이 없는데 대우를 받겠다는 게 도둑놈 심보 아닌가. 세상의 냉정한 규율 앞에 인권은 무의미, 살아남고 싶다면 스스로 강해지라며 손님들을 몰아세웠다.
‘저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
견학을 온 학부모들도 식은땀을 흘릴 정도의 맹훈련, 하지만 훈련에 참견하진 않았다.
지금 현장을 지도하는 게 누구인가. 거기다 다이이치 야구부가 얼마나 강한 팀이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다카기의 방식에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무작정 공을 따라가지 말고 낙구 지점을 먼저 찾으라고!!”
채찍만 안 들었지 얼핏 보면 일제 시대의 강제노역 수준, 하지만 이건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니라 본인들이 원해서 온 길 아닌가.
다카기는 수준 이하의 외야 수비를 보여준 제주 고교 학생들을 무섭게 몰아붙였다. 훈련만큼은 상대를 배려하는 성격이 아니라 큰소리도 서슴지 않았고, 그 열정에 제주야구부 감독도 혀를 내둘렀다.
‘나는 저렇게 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나.’
요즘 위에서 하도 인권 인권하기에 학생들을 마음 놓고 지도해 본 적이 없다.
조금만 다쳐도 클레임이 들어오고 훈련이 중지되는 현실, 하지만 운동을 하다보면 다치는 건 흔한 일이다. 프로 선수들도 시즌을 치르다보면 부상을 달고 사는데 학생들이라고 다르겠나.
다치면 안 된다. 인권 침해다, 이런 그럴듯한 말로 학생들을 과잉보호한 것도 고교야구 수준 저하의 한 원인, 상식 밖의 체벌이나 가혹행위만 처벌하면 되지 왜 훈련까지 못하게 하는 건가.
그에 비해 진짜 훈련을 지도하고 있는 다카기, 내가 감독인지 저 사람이 감독인지 자괴심마저 들었다.
겨우 하루 만에 녹초가 된 초대 손님들, 헉헉 거리는 학생들 앞에서 다카기는 속 좋은 말을 늘어놨다.
“너희들도 뿌듯하지? 이런 날이 많아져야 돼. 편한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날의 목표를 달성하면 마음만은 뿌듯하다.
어정쩡하게 하면 본인도 찝찝하고 발전이 없는 법, 정말 열심히 했다면 힘이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헛웃음, 힘은 들지만 이렇게 열심히 훈련한 건 처음이라 손님들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일은 더 가혹하게 다뤄줄 테니까 뻗으면 안 된다.”
통역의 말을 전해들은 손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일은 더 가혹하다니, 하지만 싫으면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협박에 굴복했다.
일한 자는 쉬고 먹을 자격이 있는 법, 다이이치 야구부와 초대 손님들은 스기토모 그룹이 제공한 숙소에서 여유 있는 만찬을 즐겼다.
잘 먹고 잘 쉬고 열심히 하는 게 다카기의 지도 방식, 그렇게 즐거운 하루가 지나갔지만 일본 여론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왜 한국 학생들을 지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작년에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다카기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러니까 너희들이 발전이 없지. 이젠 상대해 주는 것도 귀찮다.’
나만 잘났다고 떠들면 발전이 있나?
뭣보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거리만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가 아시아 최고라고 자만하다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경쟁자가 없다는 생각에 자만하게 되고 한국의 추격을 허용해 버린 것,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고 ‘일본 최고’라며 자위만 할 건가.
위협을 느끼고 발전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카기가 자만하지 않고 라이벌들의 도전을 기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게 세상의 법칙인데, 그것도 모르고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을 표하는 일본인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고 자만하고 있겠지만 아차하다 멀어지는 건 순식간, 경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발전이라는 게 있는 거다.
그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에게 내가 무슨 조언을 해주겠나.
가르쳐 줘도 깨닫는 게 없다면 가르칠 맛이 없는 법, 귀머거리인 여론과 더 이상 말싸움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은 물러가라!!”
“일본에 오지 마라!!”
하지만 몇 몇 개념 없는 인간들은 훈련장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였다.
접근을 금지하자 이젠 확성기까지 동원해 훈련을 방해, 참다 못 한 다카기는 오사카 부 시청에 항의를 넣었다.
“지금 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일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국제적 망신 아닌가요?”
“ ··· 네 ··· 그렇습니다.”
“그럼 알아서 조치 해주십쇼.”
“알겠습니다.”
오사카 시청은 특정 인종을 폄하하는 시위 자체를 금지하는 조례 입법을 추진했다.
다카기가 압력을 넣은 것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추해지는 시위에 시청도 골머리를 앓는 게 사실, 이 사건으로 일본 일대는 떠들썩해졌지만 오사카 부는 예정대로 조례 입법을 밀어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