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97화 (197/361)

197화. 왕좌 앞에 군림하는 자 - (11)

3차전은 6대 3보스턴의 승리로 종료

그런데 경기 후, 데이브 셰퍼드가 한 말이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공인구가 뭔가 바뀐 느낌이라는 것, 보스턴은 올 시즌 정규시즌에서 무려 266홈런을 쏘아 올렸다.

경기 당 무려 1.64개, 하지만 포스트 시즌 들어 0.375개로 급락했다.

일단 정규 시즌 24홈런을 친 폴 돈론은 포스트 시즌에서 2루타 1개를 제외하면 장타가 없다.

j. j. 핵먼이 홈런 하나를 때렸지만 1번부터 7번까지 이어지는 20홈런 군단이 포스트 시즌에서 기록한 홈런이 2개뿐이라니, 보스턴이 ALDS에서 장타실종과 타선침체로 고생한 이유가 뭘까.

구단 분석 팀의 분석결과, 포스트 시즌 타구 비거리가 약 5피트(1.52m) 정도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홈런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치, 3차전 첫 타석에 데이브 셰버드가 날린 희생플라이는 충분히 홈런이 될 수 있는 타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 여기에 짐 브라이스 감독도 한 몫 거들었다.

“3차전을 앞두고 선수들과 함께 히팅 포인트를 점검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정규시즌과 다를 게 없더군요. 장타가 안 나오다보니 셰퍼드는 내야의 구멍을 노리는 스윙까지 보여줬습니다. 본인이 뭔가 느낀 게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수비라인에도 변화를 주신 겁니까?”

“네.”

브라이스 감독은 바뀐 수비 위치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외야진은 평소보다 전진배치, 그리고 내야진은 상대 타자의 특성에 따라 일정구역에 그물망을 촘촘히 쳤다.

하지만 감소한 건 장타 뿐, 보스턴은 지난 3경기에서 무려 27점을 냈다. 공인구가 정말 바뀌었다면 대처를 잘 한 것이고 아니면 엄살일 뿐, 4차전을 앞둔 다카기는 별 생각 없이 경기를 준비했다.

“정말 공이 바뀌었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울반스키는 확신에 찬 답을 내놨다.

이 정도면 넘어간다는 느낌이 있는데 가다가 떨어지는 타구, 다카기는 엄살 피우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정규시즌에서 43홈런을 친 선수가 비거리가 1.5m 줄었다고 손해를 본다? 거기다 올 시즌 울반스키의 홈런 평균 비거리는 386피트나 된다.

센터 쪽으로 날리지 않는 한 어지간한 타구는 넘어가는 수준, 여기서 5피트를 빼도 담장을 넘기는 건 문제없다.

그냥 정확한 타격이 안 되는 것 뿐 아닐까. 공인구보다 2할 밖에 안 되는 타율이 문제 아니냐는 말에 울반스키는 얼굴을 붉혔다.

“나만 홈런 못 치는 거 아니잖아? 다른 녀석들도 ··· ”

“글쎄, 내가 볼 땐 조만간 한 건 터질 것 같은데”

다카기는 장타 침체가 얼마가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타격이란 잘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게 최선, 보스턴은 브라이스 감독의 적절한 지시 덕분에 ALDS보다 더 좋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컨택이 되고 있으니 조만간 홈런도 나오겠지, 비거리가 5피트 줄었다고 하는데 고작 포스트시즌 8경기를 기준으로 어떻게 정규시즌과 비교할 수 있을까.

좀 더 지켜봐야 할 일, 사소한 건 넘겨버리고 평소처럼 경기에 집중했다.

따아악 ~ !!

‘어?’

원정 팀 보스턴의 1회 초 공격, 우측으로 큰 타구를 날린 폴 돈론은 순간 멈칫했다.

생각보다 멀리 뻗어나가는 타구,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트를 던지고 전력으로 내달렸다.

결과는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 비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워낙 빠른 타구라 우익수가 손 쓸 틈이 없었다.

후속 타자 핵먼과 셰퍼드는 오늘도 감을 못 잡고 헤매는 중, 타석엔 후안 위긴스가 들어섰다.

정규시즌 38홈런에 빛나는 거포지만 이번 포스트시즌 기록은 제로, 지난 2020 포스트시즌에서 7홈런을 퍼부으며 팀 우승을 견인했던 선수라 팬들의 기대가 큰 게 사실이다.

오늘은 그 기대에 응할 수 있을까. 4번으로 배치된 만큼 각오는 남달랐다.

따아악 ~ !!

“이번에도 멀리 가는 타구!! 센터 쪽 담장을 넘어 시계탑을 직격합니다!! 후안 위긴스의 몬스터 홈런!! 보스턴이 홈런 2방으로 리드를 가져갑니다!!”

“이건 올 시즌 가장 큰 홈런 아닌가요? 대략 480피트,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간만에 한 건 한 위긴스는 평소보다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홈을 밟았다.

이제는 내가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 울반스키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어랍쇼?’

배트 냄새만 훑고 지나가는 공, 잔뜩 힘을 실었는데 앞발을 제때 열지 못하면서 몸이 그게 뒤틀렸다.

등까지 뻐근할 지경, 역시 공인구보다 자세에 문제가 있는 건가.

앞발을 제때 열어주지 못하면서 자연스러운 스윙이 안 된다는 게 문제, 처음부터 앞발을 열어주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건 그냥 파위가 괴물인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실전에서 자세에 신경 쓰며 타격을 하는 선수가 어디에 있나. 공이 날아오면 치기 바쁜 게 현실, 무엇을 위해 수 천 번이 넘는 스윙을 했을까.

좋았을 때의 기억은 몸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야 하는 법,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아 ~ 젠장할 ··· ”

불리한 카운트 때문에 변화구에 맥없이 끌려나온 방망이, 설욕을 노렸던 울반스키의 첫 타석은 삼진으로 막을 내렸다.

이어지는 홈 팀의 반격, 마운드에 오른 다카기는 바깥쪽을 찌르는 제구력을 과시했다.

분명 저곳을 노릴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실전에 들어서면 멀어 보이는 코스, 휴스턴의 선두 타자 숀 플루머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네가 신인왕 후보라고? 신인왕 후보는 다 죽었나?”

이때 울반스키의 트래시 토크가 시작됐다.

숀 플루머는 올 시즌 타율 0.244, 홈런 36개를 기록하며 AL 홈런 부문 공동 8위, 신인을 기준으로 치면 전체 1위를 찍었다.

이런 선수를 리드오프에 기용해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휴스턴이 플루머를 리드오프를 기용하면서 상승세를 탄 것도 사실, 집중견제를 받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살 좀 빼라.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스타일이 안 산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울반스키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휴스턴은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 하지만 인구가 넓게 퍼져 있어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만율도 높은 편, 117kg에 달하는 플루머의 육중한 몸매는 휴스턴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다. 동료들에게 불리는 별명도 ‘뚱뚱이’, 그건 그렇다고 쳐도 상대편이 하는 말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집중해!! 집중!!”

휴스턴의 제리 코너 감독은 포수와 기싸움을 주고받는 플루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면 될 일도 안 되는 법, 거기다 오늘 지면 휴스턴의 야구는 끝이다. 잔인하게도 4차전 상대는 다카기, 사소한 도발에 휘말릴 여유도 없었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1루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계속 굴러가는 타구!! 숀 플루머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안착합니다!! 선두 타자 2루타!! 휴스턴도 득점 기회를 잡습니다!!”

“다카기도 사람입니다. 못 무너뜨릴 이유가 없죠.”

선두타자 2루타에 휴스턴 중계진이 열광하는 사이,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빨려 들어간 공, 그렇다고 쳐도 이 공을 저렇게 잡아당길 줄이야. 조금 더 제구에 신경을 써야겠다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음 타자는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 3번 타자 돈 코나인과 마주했다.

딱 ~ !!

‘아차!’

또 가운데로 약간 몰린 공, 절벽에서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휴스턴 타자들은 실투를 용납하지 않았다.

2루 주자 숀 플루머는 3루를 돌아 홈으로 전력 질주, 메이저리그 최고의 어깨를 자랑하는 중견수 알 디즌도 홈을 향해 레이저 빔을 날렸다.

숀 플루머는 메이저리그에서 뒤에서 2, 3등을 다투는 느림보, 다른 선수라면 홈 승부를 포기했겠지만 이 정도면 잡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빠 품에 오렴’

멋지게 송구를 낚아챈 울반스키는 여유 있게 주자를 기다렸다.

어차피 아웃 타이밍, 타석에서 이런 저런 조롱에 시달린 숀 플루머는 한 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어딜’

뭔가 불안한 낌새를 챈 울반스키는 투우사처럼 몸을 비틀었다.

중심을 잃은 숀 플루머의 몸은 허공에 내던져졌고, 이때 다카기의 외침이 울반스키의 귀에 닿았다.

“터치 안 됐어!! 잡아!!”

“알고 있어!!”

꼴사납게 넘어진 주자는 태그아웃 처리, 그 사이 2루까지 진출한 돈 코나인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플레이가 있다니, 잠깐이나마 희망에 빠졌던 휴스턴 관중석도 침통한 분위기에 둘러싸였다.

그에 비해 보스턴 더그아웃은 열광의 도가니, 터벅터벅 더그아웃을 향해 걸어가는 플루머를 향해 멋진 비행이었다는 조롱을 날렸다.

‘세 번 실수는 없다.’

플루머의 실수와 알 디즌의 호수비 덕분에 위기를 넘긴 다카기는 흐트러진 제구를 재정비했다.

변화구를 던지려면 반드시 살려내야 할 빠른 볼, 하지만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느린 땅볼과 적시타로 1점을 내주고 말았다.

1회에 3안타를 맞은 건 흔치 않은 일, 볼이 되더라도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며 감을 잡아나갔다.

딱 ~

“땅볼, 유격수가 잡아서 1루에 송구합니다. 원 아웃, 다카기 선수가 4타자를 연속해서 범타처리하고 있습니다.”

“1회에 다소 흔들렸지만 역시 침착하네요. 지금까지 안타를 5개 내주긴 했지만, 숀 플루머에게 허용한 2루타 외엔 단타로 막아내고 있습니다.”

투심까지 구사하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교란, 평소처럼 위력적인 투구는 아니었지만 보스턴 선수들은 신뢰를 표했다.

안 좋은 날도 어떻게든 버텨주는 선수, 덕분에 보스턴은 5회까지 3대 1 리드를 지켜냈다.

이제 6회 초 보스턴의 반격, 오늘 아직 안타가 없는 울반스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앞 선 타석에서 아웃은 당했지만 타이밍은 괜찮았던 편,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렸다.

따아악 ~ !!

“멀리 가는 타구!! 다시는 볼 일 없을 겁니다!!!! 울반스키의 솔로 홈런!! 보스턴은 오늘 홈런만 3개 째 입니다!!”

“정말 공인구가 문제였을까요? 답이 지금 나왔네요.”

포스트시즌 통산 첫 홈런이자 월드시리즈 진출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한방, 드디어 진가를 드러낸 울반스키는 가슴을 치며 포효했다.

브라이스 감독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다카기를 과감하게 내리고 6회부터 불펜 싸움에 돌입, 하버스태드 - 루카스 - 포데스와로 이어지는 특급 불펜이 4이닝을 지워내면서 보스턴은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냈다.

파티란 남의 집에서 시끄럽게 그리고 어지럽히면서 해야 재미있는 법, 원정에서 샴페인 뚜껑을 딴 보스턴 선수단은 축제의 한판을 벌였다.

“We're the only ones who can taste the joy of victory!!!!”

= 승리의 맛을 보는 건 우리뿐이야!!

흥분한 폴 돈론은 탁상 위로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3년 동안 거칠 것이 없었던 질주, 이 기쁨을 누가 알겠는가.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내친 김에 정상까지 가자는 외침에 선수들은 샴페인 병을 높게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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