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왕좌 앞에 군림하는 자 - (9)
홈에서 2승 1패를 거둔 보스턴은 산호세로 떠났다.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일정, 설마 시리즈가 5차전까지 이어질까? 보스턴은 에이스가 5차전에 등판하는 시나리오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뒷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 다카기는 예정대로 산호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4차전, 거기다 이날을 벼르고 벼른 산호세 팬들은 경기 내 내 야유를 보냈다.
이 정도로 위축될 보스턴 선수들이 아니지만 문제는 타선, 1차전에서도 그랬지만 안타나 볼넷이 나와도 득점으로 이어지질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또 다른 불안요소는 다카기와 로버트 클레이튼을 제외하면 다른 선발진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 실제로 두 선수를 제외한 선발 평균자책점은 4.43으로 리그 평균과 별 차이가 없다.
이런 때일수록 타선이 터져줘야 하는데 오늘도 답답한 공격은 계속됐다.
여기에 오늘도 제구를 잡지 못 한 포데스와까지 이런저런 악재가 겹치면서 시리즈를 5차 전까지 끌고 가게 됐다.
“조심 해!!”
경기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보스턴 선수단, 버스에 오르던 다카기는 구단 경호원의 외침에 눈을 돌렸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검은 물체, 몸을 날린 경호원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넘어지면서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다.
“어떤 xx야?!! 이거 안 놔?!!”
“진정해!! 진정하라고!!”
자리에서 일어난 다카기는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이건 정말 죽으라고 던진 돌, 쫓아가서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겠다며 펄펄 뛰었다.
주위 선수와 코치들은 그런 에이스를 말리느라 식은땀을 흘렸고, 구단 경호원들은 범인을 쫓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보스턴 구단은 바로 사무국의 동의를 얻어 진상조사에 나섰다.
도대체 현지 경호원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보다 더 짜증나는 건 산호세의 대응,
보스턴 팬들이 극성인 건 구단도 알고 있다. 그래서 경기 전에 경호원과 경찰의 협조까지 구해 원정팀 선수들을 보호하지 않았나.
1차전 경기가 끝나고 일어난 벤클에 흥분한 관중들이 난입했을 때, 선호세 선수단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다 보스턴 구단에서 경호원과 경찰을 동원에 대비를 철저히 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가는 원정 팀이 돌멩이 테러를 당했다?
거기다 산호세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노숙자와 범죄 때문에 치안도 엉망, 더 신경을 써도 모자란 판에 호텔로 돌아가는 선수단을 호위한 건 보스턴 직속 경호원들뿐이었다.
처음부터 원정 팀 선수단의 안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뜻, 화가 난 수더랜드 단장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5차전이 열릴 곳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 사무국은 산호세 구단에 엄중경고와 벌금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했다.
‘두고 보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다카기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내가 입을 열면 선수단에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언론 플레이를 하면 더 큰 피해가 나올 뿐,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낸다.’
돌멩이 테러 덕분에 전의는 더욱 불타올랐다.
보스턴은 올 시즌 팀 역사상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우승은 당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어지간한 팀에게 발목이 잡히면 망신, 산호세가 우리와 비벼볼 팀인가. 여기서 무너지는 건 치욕,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지만 등판엔 아무 지장도 없었다.
“자, 1회 말 보스턴의 선공으로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의 막이 오릅니다. 선두타자는 폴 돈론, 이번 시리즈에서 타율 0.308, 홈런 없이 1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부상이 있다고 하는데 그냥 나왔네요. 아마 분노가 몸을 지배하고 있는 거겠죠.”
돈론은 어제 경호원 몸을 맞고 튄 돌에 머리를 맞았다. 두피가 약간 찢어졌을 뿐, 큰 부상은 아니라 경기에 나섰다.
이 x같은 도시에 한 방 먹여주는 방법은 그라운드에서의 활약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따악 ~ !!
“우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타구!!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에 안착합니다!! 보스턴이 1회부터 득점권 기회를 맞이하는 군요.”
“돈론이 이번 시리즈에서 장타가 너무 없었는데 이번엔 한 건 해주네요.”
보스턴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차전 홈런 이후 별 다른 활약이 없던 j. j. 핵먼을 대신해 2번으로 올라온 후안 위긴스가 적시타를 날리면서 선취점, 보스턴은 1회에만 3점을 내며 에이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이 정도 상처, 개미한테 물린 거나 다름없지.’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다카기는 평소처럼 초구부터 97마일 강속구를 뿌렸다.
몸에 상처가 난 건 오랜만에 겪는 경험, 그 멍청이는 내게 테러를 가하면 산호세에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나?
2승 2패로 시리즈가 동률을 이뤘으니 그런 헛된 망상을 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승리를 원하는 방식이 너무 더러웠다.
공을 쥐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산호세 주요 선수들 병원에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실력이 없는 놈들이 부리는 꼼수,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걸 실력으로 증명했다.
“다카기는 슈퍼 에이스 치고 완투가 적은 선수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을 던지게 해야 합니다.”
한편, 산호세 지역 해설위원 마크 버먼은 다카기를 두고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다카기는 지난 3년 동안 보스턴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완투를 한 경기는 4게임에 그쳤다. 브라이스 감독의 엄격한 투구 수 관리 덕분, 올 시즌도 어김없이 100개를 넘기면 강판 당했다.
올 시즌 경기 당 투구 수는 101개(33경기, 3333투구), 삼진을 311개나 잡았는데도 투구 수가 적었던 이유는 볼넷이 적었기 때문이다. 거의 7대 1에 가까운 볼삼 비율, 역대 어느 선발 투수를 두고 논해도 이 정도로 볼삼비가 좋은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나.
하지만 마크 버먼은 다카기가 삼진에만 너무 집중하는 투수라 투구 수가 많고 완투가 적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쳤다.
‘그거 당신 얘기 하는 거 아냐?’
캐스터 폴 지크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크 버먼은 메이저리그에서 13년을 뛰었던 선수, 통산 123승 111패,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한 그럭저럭 준수한 투수였다.
삼진도 많았지만 볼넷도 많아 완투가 적었던 유형, 지금 이 사람이 하고 있는 말은 다카기가 아니라 본인에게 적용되는 것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참았다.
“삼진입니다!! 첫 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기분 좋게 출발하고 있군요.”
“옆 동네에 어떤 멍청이가 있지만 무시하십시오. 개도 저렇게 생각 없이 짖진 않습니다.”
한편, 보스턴 중계위원 피트 오어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마크 버먼은 2차전부터 궤변을 늘어놓으며 보스턴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혹시나 해서 귀를 열어뒀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헛소리는 반복됐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투수일지도(?) 모른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다카기에게 삼진이 많아 완투가 적은 투수라는 망언을 하다니, 올 시즌 223이닝을 소화한 선수에게 할 말인가.
저런 인간을 해설위원으로 두고 있는 산호세, 팬들도 수준이 떨어지니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냐며 도시 전체를 깎아 내렸다.
여기에 욱한 마크 버먼, 아예 대놓고 상대팀 중계석과 설전을 벌였다.
“오늘 보스턴이 승리하면 저는 노숙자 분장을 하고 길거리를 떠돌겠습니다. 대신, 보스턴이 지면 피트 오어가 여기서 노숙자 연기를 해야 할 겁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당연하죠. 피트 오어가 이 말 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 없으면 근거 없는 비난은 자제해주길 바랍니다.”
피트 오어는 물러서기는커녕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규 시즌 승률 80%, 역대 포스트 시즌 승률이 100%에 이르는 철벽의 에이스를 두고 내기를 하자니, 바보 아닌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길 것 같다며 마크 버먼을 계속 조롱했다.
[日本の 赤鬼(일본의 붉은 귀신), 常勝(언제나 이긴다)]
그 사이, 다카기는 3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일본 팬들은 다카기는 언제나 승리할 뿐이라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고, 보스턴 팬들도 그 분위기에 올라탔다.
그 말대로 5회까지 이어진 무실점 투구, 삼진도 9개나 쌓으면서 팀의 5대 0 리드를 지켰다. 이러다 정말 노숙자 차림으로 거리를 떠돌아다녀야 할 지경, 경기가 후반으로 이어지자 마크 버먼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다스렸다.
“체인지업!!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10번째 삼진!! 1차전에 이어 5차전에서도 두 자릿수 탈삼진을 달성합니다!!”
“버먼이 입을 옷은 제가 직접 골라주겠습니다. 하하 ~ 아주 볼만 할 것 같군요. 여러분들도 카메라 준비해 두십시오.”
그에 비해 피트 오어는 여유만만, 다카기는 어느새 8회를 맞이했다.
완봉승을 못한다고 깎아내리던 버먼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피트 오어는 이대로 다카기가 완봉까지 해버리길 바랐지만 지난 경기에서 8회까지 던진 에이스를 이대로 두는 건 바보짓이었다.
투구 수가 100개가 되자 귀신 같이 올라오는 브라이스 감독, 잠시 머뭇거리던 다카기는 공을 넘겨주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7과 1/3이닝 동안 피안타 2개(무실점), 볼넷 1개, 탈삼진은 무려 14개, 오늘도 완벽한 피칭을 보여준 에이스는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요즘 살짝 불안한 불펜, 혹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다카기는 스트레칭을 위해 클럽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2번 실수는 없다.’
마운드를 넘겨받은 하버스태드는 2타자를 깔끔하게 막아내고 8회를 마무리 했다.
지난 1차전에서 내 준 적시타를 만회하는 투구, 명예회복을 노리는 스캇 포데스와도 불펜에서 몸을 풀며 자기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9회에도 올라온 하버스태드, 명예회복은 ALCS로 미뤄야 하나. 그렇게 한참을 서성거리다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스코어는 6대 0, 마무리 투수를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브라이스 감독은 포데스와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감정에 휩쓸리는 투수 기용은 하지 않았다.
“끝났어!! 끝났다고!!”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하버스태드는 글러브를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도 한 분위기, 보스턴 선수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유 있게 이겼어야 했는데 에이스를 2번이나 쓰고 거둔 승리, ALCS 진출은 확정 지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이어지는 승자 인터뷰,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은 다카기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다카기 선수, 오늘 해설위원들이 당신을 두고 말싸움을 벌였는데 알고 있었나요?”
“또 무슨 일 있었습니까?”
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삼진이나 잡을 줄 알고 완봉은 못하는 투수라니, 정말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들었다면 절대 마운드에서 내려가지 않았을 텐데, 이미 끝난 일이라 웃어 넘겼다.
“버먼이 노숙자 코스프레를 하는 건 원치 않습니다. 가뜩이나 산호세는 노숙자들이 많은데, 여기서 더 늘어나면 곤란하죠.”
“진심입니까?”
“네, 앞으로 헛소리 하지 말라는 말이나 전해주십쇼. 그럼 됐습니다.”
시리즈를 마친 보스턴은 홈으로 귀환했다.
ALDS를 3승 1패로 마무리 한 휴스턴이 기다리고 있는 중, 숨 돌릴 여유 따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