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94화 (194/361)

194화. 왕좌 앞에 군림하는 자 - (8)

“음 ··· 다시 볼입니다. 풀 카운트”

“글쎄요. 이제 와서 이런 말해도 소용없겠지만 굳이 포데스와 선수를 이 상황에 올렸어야 했을까요?”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다소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불펜 투수가 등판했을 때 그 상황이 얼마나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지의 정도를 측정하는 Leverage Index 지수라는 게 있다.

1.0이 평균 치, 리그 최고 수준의 불펜은 대략 1.6. 이상의 수치를 찍는다. 그런데 올 시즌 포데스와는 Leverage Index 수치 평균이 1.2 수준에 머물렀다.

팀이 워낙 대단한 시즌을 치른 탓에 위기상황에서 등판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 보스턴은 최고의 마무리 투수를 보유하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늘도 3점차라는 여유로운 상황에서 등판한 포데스와, 차라리 더 중요한 상황에서 멀티 이닝을 던지게 하고 오늘은 벤치에 앉히는 게 어땠을까?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서의 1승은 정규시즌의 1승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다소 비효울적이라도 확실하게 끝내는 기용을 하겠다는 브라이스 감독의 방식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만큼 많은 생각이 필요한 투수 기용, 중계석에서 이런 저런 말이 오가는 사이, 포데스와는 볼넷을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딱 ~

“바운드 볼, 투수 머리 위를 넘어가지만 잡지 못하는 군요!! 주자 올 세이프, 무사 주자 1 - 2루가 됩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달려오면서 캐치를 했어야 했는데 잡았더라도 안 던지는 게 나았습니다.”

묘한 상황이 이어지자 보스턴 벤치는 약간 초조해졌다.

그래도 포데스와를 향한 신뢰가 큰 만큼 다들 설마 하는 눈치, 한편 아이싱을 위해 클럽하우스로 이동한 다카기는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스트레칭만 할 게”

다카기는 이날 아이싱을 거부했다.

아이싱은 지금도 논란이 되는 치료 훈련, 일부 선수들은 아이싱을 했을 때 근육이 수축하연서 근육 길이가 짧아지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한다.

보스턴 팀 트레이너도 아이싱을 무조건 신봉하는 편은 아니라 선수 뜻대로 했고, 대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훈련을 도왔다.

“너무 늦는 거 아냐?”

“그러게 지금이면 끝이 났을 텐데”

스트레칭에 마무리 훈련까지 다했는데 날아오지 앉는 승전보, 다카기는 설마 하는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야?!!’

전광판을 확인한 다카기는 흠칫했다.

스코어 3대 1,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여전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포데스와, 불펜과 연락을 주고받는 코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손에 땀을 쥐는 경기로 바뀌다니, 일단 벤치 한 쪽에 자리를 잡고 경기를 지켜봤다.

“아 ~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3볼 1 스트라이크”

“투구 수도 25개나 되거든요. 이렇게 되면 교체도 고려해야 합니다.”

또 볼넷으로 2사 주자 1 - 2루, 보다 못한 브라이스 감독은 마운드로 달려갔다.

강속구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하체, 포데스와는 뒷발에 체중을 실어둔 채 엉덩이를 홈 플레이트로 미는 전형적인 파워피처의 투구 폼을 보유하고 있다.

중요한 건 다리를 바로 일직선으로 뻗는 게 아니라 약간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몸을 좀 더 틀면서 보다 강력한 구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포데스와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다리를 그대로 뻗으며 상체 힘으로 공을 던지는 느낌, 브라이스 감독은 이대로 방치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금만 더 던져 볼 게요.’

포데스와는 고집을 부렸다. 이대로 내려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 할일, 하지만 포스트시즌이 개인의 명예 회복을 위한 무대인가. 더 중요한 건 팀의 승리, 브라이스 감독은 여기서 이기면 명예를 회복할 길은 얼마든지 있지만 지면 그것도 무의미하다며 설득을 이어갔다.

결국 포데스와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강판, 사방에서 동료들의 손이 날아들었지만 외면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가 버렸다.

어지간히 속이 상했던 모양,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라 다카기는 벤치에 앉은 채 별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자, 카일 하버스태드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올 시즌 61경기 등판, 2승 3패, 평균자책점 3.13, 67과 2/3 이닝 동안 볼넷 30개, 탈삼진은 79개를 기록했습니다.”

“전반기는 다소 불안했지만 후반기 평균자책점은 2.61, 괜찮았거든요. 여기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하버스태드는 96마일 빠른 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제구 불안으로 끙끙대던 포데스와와는 다른 모습, 홈팬들은 열렬한 환호로 불안을 떨쳐냈다.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고 슬라이더로 마무리 하는 패턴, 2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하버스태드는 주먹을 불끈 쥐며 돌아섰다.

승리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1개, 절벽에 몰린 산호세는 대타 크리스 브라이드를 내보냈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57, 홈런 13개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대타만 따지면 타율 0.275에 홈런도 2개를 기록, 거기다 루상에 주자가 2명이나 있으니 보스턴 배터리는 방심하지 않았다.

장타를 막기 위해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고집, 하지만 바운드 된 볼이 옆으로 크게 튀면서 주자들은 한 베이스 씩 더 진루했다(2사 주자 2- 3루).

안타 한 방이면 동점, 바깥 쪽 승부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하버스태드의 약점은 들쑥날쑥한 제구, 67이닝 동안 볼넷 30개를 내준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쓸 선수가 아니지만 후반기 페이스가 워낙 좋았기에 브라이스 감독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채우는 거 의미 없어.’

하버스태드는 신중히 가자는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1루가 비었지만 굳이 채워놓을 상황인가.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여기서 끝내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헛스윙!! 크게 돌립니다!! 97마일, 이번엔 정교한 제구를 보여줍니다.”

“공 하나 던질 때마다 숨이 막히네요. 제발 여기서 끝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외야에 자리 잡은 팬들도 손으로 펜스를 치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정도, 벤치에 앉아 있던 다카기도 보호 펜스에 매달려 마음속으로 ‘제발’을 연호했다.

따악 ~ !!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3루 주자는 홈으로!! 2루 주자까지 홈에서!! 홈에서!!!! 아웃입니다!! 경기 종료!!!! 알 디즌이 멋진 송구로 경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아 ~ 그런데 이게 뭐죠?!! 여기서 불꽃이 일어납니다!!”

홈으로 파고 들던 2루 주자 돈 메이스는 주루 선상을 막고 있는 울반스키와 격한 충돌을 일으켰다.

송구가 빗나갔다면 주루 방해로 득점이 인정됐겠지만 알 디즌은 강력한 어깨로 타구를 홈으로 전달, 그렇게 대충돌이 일어났다.

흥분한 울반스키는 돈 메이스의 멱살을 밀쳤고, 여기에 메이스도 울컥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까불지 말고 길거리로 꺼져 XX 새끼들아!! 패배자 주제에!!”

울반스키는 다소 듣기 거북한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산호세를 조롱했다.

여기에 졌으면 얌전히 더그아웃으로 꺼지라는 말도 추가, 눈앞에서 승리를 놓친 산호세가 격분하면서 분위기는 점 점 가열됐다.

“우우 ~ 우 ~ ”

“노숙자들은 길거리로 나가라!!”

몇 몇 극성팬들도 이 개싸움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에 난입한 팬들을 잡기 위해 구단 경호원이 출동, 경찰들은 원정팀 선수단의 안전을 위해 총까지 꺼내들었다.

“다들 물러서!! 물러서라고!!”

위협에 놀란 팬들이 물러나면서 겨우 사태는 진정됐다.

이겼지만 다소 깔끔하지 못했던 경기, 그래도 다카기는 승리투수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여느 때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터뷰, 이때 한 기자가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울반스키 선수가 마지막에 다소 과격한 행동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라고요?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울반스키가 필요 이상의 행동을 했다는 것, 하지만 다카기는 그건 헛소리라며 선을 그었다.

“송구가 빗나간 것도 아니고, 진로를 막아선 건 정당했습니다. 그리고 포수가 충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닌데, 그게 과격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라운드에선 누구도 자기 몸을 지켜주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 뭣보다 알 디즌의 송구가 포수 미트에 도착했을 때 2루 주자 메이스는 홈 플레이트 근처에도 못 왔다.

그런데도 충돌이 일어났다는 건 그냥 막나가자는 뜻, 다카기는 내가 울반스키였다면 멱살을 밀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구를 잡은 포수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으니 메이스는 충돌규정을 위반한 것, 사무국에서 어떤 처분을 내리는지 지켜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에 만나면 태클로 어깨를 부숴버려. 얼굴을 치는 것도 괜찮겠네.”

인터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다카기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벤치 클리어링을 주도한 울반스키도 격려, 그렇게 하는 게 보스턴의 방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포스트 시즌 데뷔전 치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지켜낸 홈 플레이트, 타석에서의 활약은 시원치 않았지만 결정적인 태클로 팀 승리를 지켜낸 울반스키는 당당히 가슴을 폈다.

“너도 잘했다. 멋졌어.”

“너야말로”

다카기의 다음 목표는 알 디즌, 이 녀석의 송구가 없었다면 지금도 산호세와 투닥거리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알 디즌은 네가 8이닝을 버텨준 덕분에 이겼다며 에이스를 칭찬, 그렇게 닭살 돋는 칭찬이 계속 오고 갔다.

“제발 그만할 수 없어?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잖아.”

보다 못한 실 쿠퍼가 목소리를 높였다.

잘 한 선수도 있지만 오늘 경기에서 별 다른 활약을 못한 선수도 있다. 포데스와가 그 예, 웃으면서 넘어가면 될 일을 저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덕담을 주고받아야 하나?

가만히 듣고 있는 포데스와의 입장도 있는 법, 다카기는 바로 공세에 나섰다.

“그래? 칭찬해주려고 했는데 그만 둬야겠네. 넌 역시 재수 없어.”

실 쿠퍼는 오늘 2대 0에서 3대 0으로 달아나는 적시타를 때려냈다.

따지고 보면 오늘 승리의 1등 공신은 실 쿠퍼, 하지만 본인이 칭찬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욕이나 한 사발 해주고 말았다.

“재수 없다는 말은 너무 심한 거 아냐?”

“뭐가 심해? 우린 원래 이랬다는 거 잊었어?”

실 쿠퍼는 이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한 다카기에게 괜히 시비를 건 적이 있다.

술을 못 마시는 건 남자가 아니라며 계속 속을 긁어 대는데, 다카기도 네 역겨운 얼굴을 보고 같이 술을 마실 사람이 있는 게 신기하다며 맞불을 놨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던 분위기, 실 쿠퍼는 3년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느냐며 한숨을 토했다.

“넌 속이 너무 좁은 거 같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그럼 너도 앞으로 목걸이 돌려달라는 말 하지 마. 한 번 줬으면 끝이지”

두 선수는 이것 외에도 또 다른 악연으로 이어져 있다.

일본 제약회사에서 협찬 받은 건강 목걸이, 실 쿠퍼는 다카기의 목걸이를 착용하는 조건으로 금목걸이를 내준 적이 있다.

본인은 그냥 잠깐 빌려주는 걸로 이해했지만 다카기는 정당한 물물 교환이었다며 지금도 버티고 있는 중, 쩨쩨하게 굴지 말라는 말에 목걸이의 옛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어쨌든 이미 끝난 거래야. 다시는 나한테 돌려달라고 하지 마.”

뒤풀이를 끝낸 에이스는 집으로 퇴근, 뒤에 남은 실 쿠퍼는 울반스키를 붙잡고 뒷담화를 이어갔다.

“저 자식하고 친해져서 좋을 게 없어. 너도 멀리 하라고”

“그럼 안 되지, 적은 가까이 두라는 말도 있잖아.”

울반스키는 이미 다카기를 마음속의 라이벌로 정해뒀다.

그리고 그만한 자격을 갖춘 녀석,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있지만 지금은 곁에 두는 게 훨씬 이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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