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91화 (191/361)

191화. 왕좌 앞에 군림하는 자 - (5)

딱 ~ !!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폴 돈론이 올 시즌 240번째 안타를 기록합니다.”

“최다안타 부문은 완벽한 독주체제네요. 이런 기세라면 MVP도 노려볼 수 있 ······ 아, 유력한 경쟁자가 너무 많은 가요?”

시즌 종료를 앞두고 보스턴은 기록잔치를 벌였다.

지난 3년 동안 평균 성적이 타율 0.291, 홈런 13개 정도에 그쳤던 폴 돈론은 4년 차 시즌에 대폭발, 지금까지 타율 0.349, 홈런 24개, 87타점, 240안타를 때려냈다.

수비지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좌익수에서 1루수로 이동했지만, 역시 수비는 좋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 그래도 WRC+(조정득점창조력)가 167나 되는 압도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올 시즌 1루수의 평균 WRC+가 110라는 걸 고려하면 그보다 50%이상의 효율성을 냈다는 뜻, 수비 때문에 매년 미운오리 취급을 받았던 미운오리 새끼는 이렇게 백조로 화려하게 재탄생했다.

현지에선 MVP수상도 입에 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법, 내부 경쟁이 워낙 치열했다.

데이브 세퍼드는 시즌 종료를 일주일 앞둔 현재, 타율 0.321, 홈런 47개, 134타점이라는 정신나간 수치를 찍고 있다.

팀 동료인 폴 돈론 때문에 14년 만의 AL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좌절됐지만 그에 버금가는 활약, 보스턴 역대 우타자 중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로도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에선 셰퍼드의 MVP 수상에 무게를 실어주는 편, 그래도 돈론의 활약에 표를 던지겠다는 기자들도 없지 않아 집안싸움의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했다.

‘나는 끼면 안 돼?’

후안 위긴스도 슬쩍 그 판에 발을 들였다.

전반기까지 타율 0.284, 홈런 17개, 그럭저럭 준수한 활약을 한 위긴스는 후반기에 타율 0.316, 홈런 18개를 기록하며 시즌 성적을 대폭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MPV로 손색이 없지만 이렇다 할 개인 타이틀이 없어 주목을 못 받는 신세, 남은 경기 동안 어떻게든 존재감을 어필해야 했다.

따아악 ~ !!

“멀리 가는 타구 센터 쪽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후안 위긴스의 투런 홈런!! 시즌 36번 째 홈런입니다!!”

“아직 안 끝났다 이건가요? 이 정도면 위긴스도 표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홈에서 마주한 테이블 세터, 하지만 하이파이브를 나누진 않았다.

MVP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라 당분간 이렇게 지내기로 합의, 현지여론에선 한 때 불화설이 돌기도 했지만 그 뒷사정을 알고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따아악 ~ !!

“다시 한 번 좌측!! 아, 펜스 앞에서 잡히는군요. 세퍼드는 2번 째 타석에서도 범타로 물러납니다.”

“셰퍼드는 후반기 들어 확실히 페이스가 조금 떨어졌네요. 기록도 좋지만 포스트시즌을 대비해 정비를 한 번 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일단 지켜봐야겠죠.”

어린 것들의 반란에 자극을 받은 세퍼드는 선발출장을 강행하고 있다.

지명타자로만 출장하고 있는데 체력부담이 웬 말인가.

50홈런, 140타점 모두 찍고 MVP 경쟁에 쐐기를 박을 생각, 마지막 남은 경기도 모두 출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내가 정리해 버려?’

가만히 있던 다카기도 집안싸움에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성적은 23승 3패, 평균자책점 1.82, 217이닝 동안 삼진 302개를 잡아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보스턴이 106승을 기록한 것보다 다카기가 3패를 기록한 게 더 놀랍다.]

미국 현지 여론의 반응이 이 정도, 그만큼 말도 안 되는 투구였다.

한 경기 더 등판할 수도 있지만 포스트 시즌 일정을 고려하면 이게 정규시즌 최종 성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 한 경기 더 등판하고 MVP 경쟁에 뛰어들까?

맛있는 음식을 두고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음식을 나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론 양보할 수 없는 것도 있기 마련, MVP를 어떻게 나눠가지나. 특히 리그 MVP는 절대 나눌 수 없는 상, 내가 날름 먹어치우면 갈등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동료들의 격한 반발에 부딪쳤다.

“만테냐 어워드 있잖아.”

“이건 우리한테 넘기라고”

“넌 포스트시즌 등판이나 준비해”

투수한테 주는 MVP가 따로 있는데 왜 우리 몫까지 노리는 건가. 반발에 괜히 열이 뻗친 다카기는 브라이스 감독에게 33번째 정규시즌 등판을 예고했다.

“그냥 쉬는 게 어떤가.”

“제가 한 경기 더 나간다고 지칠 사람처럼 보입니까?”

마지막 등판을 치르면 이틀 뒤 정규시즌이 끝난다. 여기에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끼면 휴식은 충분, 갑작스런 선발등판 예고는 팬들을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이미 역대 급으로 기록 될 시즌, 여기에 얼마나 더 대단한 업적을 덧칠 하려는 건가. 그렇게 다카기는 수많은 기대에 둘러싸였다.

‘마무리는 내가 직접 한다.’

포수마스크를 쓴 데이빗 크로스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제 이 팀의 주전은 울반스키다. 그렇다고 이대로 뒷방으로 물러날 순 없는 일, 최고의 리드를 보여주고 은퇴한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시즌 마지막 등판 파트너로 날 지목해준 다카기에게 고마움을 품었다.

‘이게 맞는 거지.’

다카기도 사실 크로스의 마지막을 은근 신경 쓰고 있었다.

첫 만남은 별로 좋지 못했지만 좋든 싫든 3년을 함께 했다. 그것도 팀 월드시리즈 우승을 3번이나 책임진 베테랑, 이 정도 우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투구를 보면 구단도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 차분하게 첫 포탄을 준비했다.

“스트라이크!!”

“와아아 ~ !!”

오늘도 97마일 빠른 볼로 시원하게 출발, 예열을 마친 대포는 자비 없는 폭격을 이어갔다.

딱!!

“밀립니다. 오늘 따라 공에 힘이 넘치는데요.”

“최근 3경기 성적만 따지면 빠른 볼 피안타율이 0.174, 피장타율은 0.245 밖에 안 됩니다. 올해도 날씨가 추워질수록 구위가 올라오는데 ······ 역시 정상은 아닙니다.”

“올 시즌 성적 자체가 비정상적이죠. 놀랄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고 커브나 체인지업으로 마무리하는 패턴, 뻔히 알고 있는데도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쓰는 제구 때문에 타자들은 알고도 당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아무리 신중한 타자라도 초구 스트라이크를 내주면 타격 범위를 넓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카기는 초구는 일단 잡고 보는 편, 제구가 받쳐주기 때문에 2구를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 던지면 배트가 거의 끌려나온다.

타자도 바보는 아니라 초구를 노리고 들어가는데, 평균 97마일 빠른 볼을 그렇게 쉽게 때려낼 수 있을까.

여기에 여차하면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을 줄 아는 괴물, 안타가 나올 때도 있지만 초구에 맞은 거라 투수 입장에선 그렇게 큰 타격은 없다.

덕분에 많은 삼진을 쓸어 담으면서도 투구 수를 아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중, 오늘도 공격적인 투구는 계속됐다.

따악 ~ !!

“멀리 가는 타구!! 펜스 앞에서 잡아냅니다!! 멋진 수비!! 후안 위긴스가 안타 하나를 걷어냅니다.”

“타격이 되니까 수비도 되네요. 이렇게 멋진 수비를 하는 선수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하하 ~ 그러게 말입니다.”

안타를 막아낸 위긴스는 어깨를 들썩거렸지만 다카기는 외면하고 돌아섰다.

저 자식이 튀어서 좋을 게 뭐가 있나. 오늘은 내가 튀어야 하는 날, 100번 양보해도 이 자리의 주인공은 저 녀석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 타자는 올 시즌 탬파베이의 중심을 책임 진 숀 스팸, 공격 스탯도 훌륭하지만(0.283, 27홈런, 83타점), 최근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수비지표 덕분에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수비 지표까지 합치면 올 시즌 WAR는 무려 5.8, 내년 시즌에 연봉이 618만 달러로 오르기 때문에 올 시즌이 끝나면 탬파베이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여기저기서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선수,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스윙!! 따라가지 못합니다.”

“지금은 바깥쪽 높은 곳에 98마일을 던졌거든요. 쓰리 쿼터는 보통 높낮이 제구에 애를 먹는데, 요즘은 높낮이까지 조절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제가 볼 때 이런 투구는 별로 ··· 스트라이크 존 좌우만 찔러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 경기에서도 가운데 높은 공이 홈런으로 연결 됐거든요.”

하지만 데이빗 크로스는 해설위원의 염려와 달리 다음 공도 바깥쪽 높은 곳으로 유도했다.

숀 스팸은 올 시즌 바깥 쪽 코스에 타율 0.312, 몸 쪽도 0.295를 기록했다. 낮은 코스도 거의 3할 대에 육박, 하지만 높은 공, 특히 바깥쪽 높은 코스에 극도의 약점을 보이고 있다(0.081).

상대를 철저히 분석하는 통계를 기반으로 한 리드, 던질 수 있다면 또 던져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와아아 ~ !!”

다시 따라 나오는 스윙, 상대가 강점을 보이는 낮은 곳에 공을 던져줄 이유가 있을까. 크로스는 다시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고, 다카기는 그 지시대로 움직였다.

“스윙!! 삼진입니다!! 삼구 삼진!! 빠른 볼 세 개로 숀 스팸을 돌려세웁니다!!”

“제가 자료를 살펴봤는데, 스팸이 이 코스에 약점을 보였네요. 그런데 이 공을 3개 연속 던졌다 ··· 무모한 건지 대단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해설위원이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는 동안, 숀 스팸은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깥 쪽 높은 코스에 약점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올 시즌 이 코스를 3번 연속 공략당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도 100마일에 가까운 공으로, 도대체 얼마나 제구가 좋은 건가. 같은 지구 소속이라 다카기를 몇 번 상대해보긴 했지만, 오늘 같은 경외심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설마 똑같이 나오겠어?’

4회 초 2번 째 승부, 숀 스팸은 초구를 노리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빠른 볼, 하지만 생각보다 공이 높게 들어오면서 헛스윙을 돌리고 말았다.

같은 공에 4번이나 헛스윙을 하다니, 이런 굴욕이 어디에 있나. 바보짓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정신을 다잡았다.

‘어랍쇼?’

하지만 그런다고 공략할 수 있는 공이 아니라는 게 문제, 숀 스팸은 배트를 머리 근처에 두고 있다가 공이 오면 허리 근처로 이동시켜 강한 몸통 회전으로 걷어 올리는 스윙을 한다.

당연히 낮은 공에 강점을 보이지만 높은 공엔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 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어정쩡한 높은 공이라면 때려냈겠지만 지금 다카기가 던지는 코스는 기술적으로 공략이 불가능한 범위, 알고도 당하는 굴욕이 반복됐다.

“스트라이크 아웃!!”

2번 째, 3번째 타석도 삼진, 숀 스팸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이런 저런 잡념에 빠져들었다.

다카기처럼 바깥쪽 높은 코스를 계속해서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얼마 없다. 하지만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발전도 없는 법, 이대로 약점을 방치할 건가?

올해는 저 녀석을 상대로 8타수 1안타, 삼진만 4개를 헌납했지만 다음 시즌은 다를 거라며 복수를 다짐했다.

‘넌 조금 더 가다듬고 와라.’

다카기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숀 스팸을 나름 인정했다.

내일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 오늘은 제구가 잘 됐지만 조금만 몰렸어도 위험한 타구가 나왔을 거다.

그만큼 좋은 스윙을 가지고 있는 선수, 내년에도 같은 지구에서 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벌 관계는 유지하길 바랐다.

내 목을 노리는 놈이 많아야 권태기도 극복할 수 있겠지, 오늘도 라이벌을 곳곳에 심어두는 작업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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