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88화 (188/361)

188화. 왕좌 앞에 군림하는 자 - (2)

“글쎄요. 저는 왕좌에 별 관심 없는데요.”

다카의 답에 일본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좌에 관심이 없다니, 이게 쓰리 핏을 노리는 선수가 할 말인가. 그런데 왕좌에 관심이 없다니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쇼군이 왜 천황을 놔뒀겠습니까. 굳이 그 자리에 앉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천황은 대외적으로 일본의 국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전국시대에 돌입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왕실권위, 그 위에 앉은 게 무사정권이다. 무사정권의 수장 쇼군은 대외적으로 일본 국왕 행세를 했지만, 직접적으로 황실에 위해를 가하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사실상 막부 쪽으로 넘어간 권위, 살아남기 위해 왕가는 알아서 고개를 숙여야 했고 쇼군도 허수아비가 된 왕가를 굳이 제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권이 뒤바뀌면 천황은 새로운 실세에게  고개를 조아릴 뿐, 그렇게 70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제국주의 시절이라고 다를 건 없다.

막부를 무너뜨린 토막군은 왕정복고라 하여 천황중심의 정부를 세웠지만 그 뒤엔 토막군 내부의 정치적 대립이 숨어 있었다.

내가 대장이 돼 다 해먹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다른 놈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괜히 나섰다가 저거 역적 놈이라며 집중포화를 맞을 뿐이다.

거기다 당시 토막군은 나라를 개혁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700년 동안 아무 힘도 못 쓴 천황을 끌어 와 갈등을 봉합한 것, 하지만 이후에도 권력싸움은 끊이질 않았다.

왕좌에 앉은 허수아비는 그저 지켜볼 뿐, 일본이라는 나라는 왕이 아니라 그 앞에 군림한 놈들이 모든 걸 좌지우지 했다.

세계역사를 살펴봐도 왕좌 앞에 군림하며 나라를 흔든 권신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결국 나라를 움직이는 건 왕좌라는 형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 야구라고 다르겠는가. 다카기는 왕좌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봤다.

“이곳은 전국시대보다 더 혼란스럽습니다. 왕좌에 올라봤자, 1년도 못 가 내 목을 치겠다는 놈들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죠. 그런 자리에 앉고 싶으신가요?”

그제야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절대적인 왕좌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앉아봤자 언제 끌어내려질지 모르는 운명, 뭣보다 다카기는 혼자 다 해먹는 정치는 재미 없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세상은 재미없습니다. 왕좌를 두고 피 터지게 싸우고 혼란이 일어나야 재미있죠.”

보스턴은 올 시즌 압도적인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곧 노려질 목숨, 그렇다면 왕좌와 거리를 두고 반동분자들을 때려잡는 게 우선 아닐까. 뒷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며 여유를 부렸다.

* * *

‘쐐기를 박아버리자.’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수더랜드 단장은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 전력으로도 순항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전력을 강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일단 선발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영입 1순위는 시카고의 키스 보우만, 없는 살림 속에서도 올 시즌 10승 6패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얻는다는 것, 우승하겠다고 팜을 터는 게 상책인가.

그런 식으로 팀을 운영하다 쫄딱 망해버린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는 한 때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렸던 강팀이지만 번번히 준우승에 그쳤다. 약이 오른 수뇌부는 팜을 털어 즉시 전력감을 끌어왔지만 이것마저 실패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보스턴이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주전이 대부분 젊은 선수라 팜이 비어도 당장은 버틸 수 있는 수준, 기둥까지 뽑아가며 전력을 강화할 상황도 아니다.

다만 우승가능성을 조금 더 높이자는 것 뿐, 측근들도 트레이드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투수보다 더 급한 게 있지 않습니까?”

한 측근은 포수 영입이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놉였다.

보스턴의 주전 포수는 데이빗 크로스, 이제 13년 차라 나이도 많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레이더망에 포착된 피츠버그의 도날드 울반스키, 올해 메이저리그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데뷔시즌(2017)에 타율 0.273, 17홈런을 기록하더니, 다음 시즌은 0.313, 22홈런 21도루를 찍어버렸다.

이후 변화구에 약점을 드러내면서 타율은 많이 떨어졌지만 매년 20홈런 이상을 찍을 수 있는 선수, 수비도 플러스 이상의 평가를 받는 올스타급 전력이다.

포수가 없으면 투수진을 보강해봤자 무용, 팜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데려오는 게 좋지 않을까.

트레이드는 선수들에게도 주요 관심사, 마침 피츠버그에 불만이 많은 울반스키는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는 시나리오를 꿈꿨다.

[안 왔으면 좋겠다, 재미없다.]

이때, 잘 흘러가던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범인은 다카기, 울반스키가 오면 보스턴의 우승은 더 가까워질 것 아닌가. 혼란과 재미를 바라는 다카기는 그런 시나리오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난 크로스가 주전 포수를 보기에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더 뛸 수 있는 선수다.]

여기에 팀 동료의 사기를 북돋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크로스는 한 때 20홈런도 기대해할 수 있는 장타력을 보유했던 선수, 하지만 세월의 여파를 거치면서 공격력은 많이 하락했다. 그래도 수비나 볼 배합은 여전히 훌륭, 3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낸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울반스키가 오면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겠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를 내주고 은퇴하거나 백업으로 물러날 수 있을까.

자리를 내놓는다는 건 그만큼 뼈아픈 일, 아니나 다를까 크로스는 SNS를 통해 난 아직 뛸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무안해지는 건 트레이드를 추진했던 프런트, 하지만 피츠버그는 유망주를 받고 울반스키를 내주길 원하면서 일이 묘하게 꼬여버렸다.

‘열광해야 하나?’

‘어쩌지?’

트레이드 소문에 열광했던 보스턴 팬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카기는 이제 보스턴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선수, 그런 인물이 대놓고 크로스를 감쌌는데 울반스키의 영입을 환영해야 하나. 어쨌든 팀의 미래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크로스의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보스턴도 일단 1 ~ 2년 지켜보고 울반스키와 다년 계약을 맺을 예정, 다카기의 말은 무시하고 울반스키를 영입했다.

[I will make him king]

= 다카기를 왕으로 추대하겠다.

울반스키는 SNS를 통해 보스턴의 일원이 된 각오를 드러냈다.

프로 경력만 따지면 울반스키는 다카기보다 2년 선배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무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대가 몇 수 위, 뭣보다 다카기는 지금 왕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몸이다.

데이비드 크로스는 새싹에 불과했던 다카기를 2번이나 왕좌로 이근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올해 미끄러진다면 울반스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왕으로 추대하지 못한다면 팬들은 날 인정하지 않겠지, 그 각오에 보스턴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뭐래?’

하지만 다카기는 이번 영입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자기가 뭔데 날 왕으로 추대하겠다는 건가. 그렇게도 킹메이커가 되고 싶은 건가. 그리고 왕위에 관심 없다고 이미 밝혔는데 왕위를 운운하는 이유가 뭔지, 역사를 봐도 저런 인간들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단 일원이 됐으니 형식적인 환영은 했지만, 그 이상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제 경기는 크로스 주전으로 해주세요.”

“알았네.”

울반스키가 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카기는 브라이스 감독에게 앞으로도 크로스와 호흡을 맞추겠다고 선언, 내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울반스키는 이 문제를 두고 에이스와 맞대면을 했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 누가 뭐라고 했어?”

다카기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울반스키가 주전이 됐지만 모든 경기에 마스크를 써야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크로스가 마스크를 써도 공격력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보스턴은 막강한 타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크로스와 짝을 맞추는 게 그렇게 불쾌한 일인가? 다카기는 피츠버그가 왜 울반스키를 서둘러 치워냈는지 조금은 이해했다.

‘남 밑에 있을 놈이 아니야.’

자기가 팀의 중심이자 리더가 돼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지금은 다카기가 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니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입지가 쌓이고 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 잡으면 어떻게 될까. 뒷방으로 밀려난 크로스와 잠깐 얼굴 마주한다고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혼자 다 해먹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건가.

다카기는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크로스와 파트너를 이룬다며 선을 그었다.

‘두고 봐라. 이대로 끝나진 않을 거다.’

울반스키 영입은 크로스의 투쟁심에 불을 붙였다.

문제없이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데 날 뒷방 늙은이 취급 하다니, 이게 3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베테랑을 대하는 방식인가.

프런트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다카기 덕분에 자존심까지 짓밟히진 않았다. 누가 뭐래도 왕의 측근은 나, 네가 넘볼 자리가 아니라는 시위를 벌였다.

따악 ~ !!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옵니다!! 스코어 3대 0!! 보스턴은 오늘도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습니다.”

“크로스의 방망이가 요즘 굉장히 뜨겁네요. 예전처럼 주전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텐데, 최근 15타수에서 5안타, 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타율도 0.266으로 올랐어요.”

크로스가 불을 태우는 동안, 울반스키는 이적 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수비에서 큰 약점을 드러낸 건 아니지만, 이적 후 16게임에서 타율 0.221, 홈런 3개 4타점에 그쳤다.

홈런은 그럭저럭 나오지만 큰 보탬이 못 되는 상황, 참을성이 별로 없는 보스턴 팬들은 이 트레이드가 정말 필요했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크로스가 나아.”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보스턴 투수들도 알게 모르게 울반스키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크로스는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리드를 하고, 여기에 본인이 쌓은 노하우를 접목해 왜 이 상황에서 이 공을 던져야 하는지 투수를 납득시킬 줄 안다.

하지만 울반스키는 그게 안 되는 편, 수비는 괜찮지만 볼 배합이 즉흥적이고 투수보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편이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보스턴은 투수를 리드할 줄 아는 베테랑이 마스크를 쓰는 게 효과적, 이 트레이드는 정말 필요했을까.

브라이스 감독을 통해 선수단의 속사정에 귀를 기울인 프런트는 아차 했다.

[안 왔으면 좋겠다.]

다카기가 생각 없이 이 말을 했을까. 아직은 베테랑의 보살핌이 필요한 투수진, 하지만 프런트는 데이터만 보고 선수를 영입했다.

울반스키는 데이터만 따져보면 메이저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포수, 하지만 포수는 그것만으로 따질 자리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도 맞는 팀이 있는 법,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쓰지도 못할 선수를 유망주만 버리고 영입해 버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뒷수습을 위해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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