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86화 (186/361)

186화. 암살 - (5)

“그냥 그 자식이 하게 내버려 둬”

J.D. 아사로는 다카기에게 책임을 넘기는 제안을 했다.

어차피 사건이 크게 터졌으니, 내일 또 문제가 일어나면 중징계를 피할 수 없다.

남의 힘을 빌리는 게 우리 손에 피를 묻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건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이야. 남의 손에 맡기는 건 체면이 서질 않는다고”

“맞아. 그리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뭣보다 보스턴 선수가 세인트루이스 문제에 참견했다는 게 문제, 내정간섭 아닌가. 우리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문제는 실행방법, 대놓고 하면 누군가는 출장정지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세인트루이스는 이미 사무국으로부터 3명이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상황, 더 무거운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 2차 테러를 누가 감수할 건가.

목소리를 높였던 선수들도 현실 앞에선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이런 수준이었나.’

도허티는 실망섞인 한 숨을 쏟아냈다.

이건 투수가 해야 할 일, 야수도 온갖 방법으로 상대 선수를 위협하지만, 도허티의 포지션은 좌익수다.

내가 무슨 수로 그놈을 저격하겠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 다들 팀을 위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개인 사업자다.

이 이상 내가 피해를 감수하며 복수에 나설 이유는 없겠지. 세인트루이스의 복수는 결국 말 뿐인 모의로 끝났다.

다음 날 경기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모든 사건의 주범인 스티븐 웹은 더욱 기고만장, 출장정지를 마치고 복귀한 경기에서 2안타를 치며 NL 올스타 투표 외야수 부문 2위를 유지했다.

‘그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그곳이 너의 무덤이 될 떼니까.’

다카기는 그 소식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애틀랜타는 올 시즌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 하지만 올스타전이라면 그 놈을 만날 수 있겠지.

뭣보다 팬들이 모인 축제의 현장에서 암살이 벌어질 거라 누가 예상이나 할까. 그런 안일한 생각이 허점을 만들어내기 마련, 그렇게 차분하게 작전을 준비했다.

“기대해라. 나는 한 입으로 두 말 안 한다.”

다카기는 부상으로 나가떨어진 J.J. 핵먼 앞에서도 의거를 약속했다.

AL 올스타 2루수 부문 1위를 달리던 선수의 발목을 아작 내놓고 본인은 올스타 출전이라고? 하늘이 용서해도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 하지만 핵먼은 그러지 말라며 말렸다.

“넌 팀의 에이스야. 또 그런 일에 얽매여서 좋을 게 없어.”

“그런 건 상관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넌 지켜보기나 해”

이미 피해자의 의지는 안중에도 없는 암살계획, 팬들을 위한 축제 현장이 피의 비명으로 바뀌는 건가.

J.J. 핵먼은 한 때 스티븐 웹을 죽을 만큼 증오했지만, 이제는 별 일이 일어나질 않기 바랐다.

* * *

‘때가 됐군.’

7월 2일, 올스타전 참가 선수명단이 확정됐다.

부상선수가 나오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 명단, 스티븐 웹의 이름을 확인한 다카기도 출장을 결심했다.

작년엔 후반기 선발등판을 위해 마다한 축제, 이번엔 암살을 위해 가슴 속에 총알을 품었다.

“나, 선발로는 안 나갈 겁니다. 그렇게 알아두세요.”

브라이스 감독에게도 알아서 협조해달라는 말을 건넸다.

올스타전 감독은 작년 월드시리즈 진출 팀이 맡는 게 룰,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브라이스 감독은 아메리칸 리그의 선발투수를 지정할 권리가 있다.

스티븐 웹은 선발로 출장할 레벨은 아니라 교체 투입 되겠지. 그 때 뛰쳐나가 머리통을 날려버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만 둘 수 없나? 내가 이렇게 부탁 하네.”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감독이 다시 한 번 설득에 나섰지만 소용없는 일,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7월의 둘째 주 화요일이 찾아왔다.

30년 만에 미네소타에서 열린 올스타전, 현지 팬들은 열렬한 환대를 표하며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기분 탓인가. 왜 이렇게 섬뜩하지’

스티븐 웹은 오늘 따라 불길한 기운에 사로잡혔다.

팀을 위해 한 짓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했지만, 수많은 선수들의 원한을 샀으니 뒷맛이 찝찝한 게 사실, 그리고 원한은 잊지 않고 갚아주는 게 이 세계의 룰 아닌가.

뭣보다 다카기가 선발로 예고되지 않은 것도 꺼림칙 했다.

‘설마 올스타전에서 그러겠어?’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기로 했지만, 다카기는 오늘 카 퍼레이드에 참석하지 않았다.

선발도 고사하고 퍼레이드도 참석 안 하고, 뭔가 불길한 전개 아닌가. 겉으론 태연한 척 했지만 불안해 미칠 지경, 다카기는 벤클 다음 날 모리슨의 머리에 101마일을 던진 놈이라 다시 만나는 게 두려웠다.

“저 오늘 출장 못 할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스티븐 웹은 미드키프 감독에게 불참을 통보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것,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도허티는 코웃음을 쳤다.

“뻔뻔한 말을 잘도 늘어놓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미드키프 감독은 세인트루이스 지휘봉을 잡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에 테러를 가한 놈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거기다 보복이 두려워 출장을 고사하다니, 이럴 거면 카퍼레이드는 왜 나선 건가.

그렇게 겁이 나면 도망치라며 시비를 걸었다.

“너 지금 말 다한 거냐?”

“그래. 불만 있으면 여기서 한 판 붙어볼까?”

“다들 그만하게. 축제 앞두고 얼굴 붉힐 건가?”

미드키프 감독의 중재에 분위기는 누그러졌지만, 이번 일로 스티븐 웹은 자신이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카기를 피하더라도 내 목을 노릴 선수는 얼마든지 있는 분위기, 죽을 장소라는 걸 알고도 그라운드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던질까?”

“난 던진다에 한 표”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은 한가롭게 내기를 걸었다.

스티븐 웹의 사정은 남의 일, 그렇잖아도 평소 아니꼬운 놈이었는데 뭔가 일어날 분위기라 내심 기대를 걸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된 경기, 4회 초, 미드키프 감독은 스티븐 웹을 대타로 내보냈다. 때맞춰 등판하는 다카기,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스티븐 웹은 식은 땀을 흘렸다.

‘진짜냐? 나 죽이러 온 거냐?’

어떻게 이 타이밍에 딱 맞춰서 나올 수 있는 건가. 경기 전부터 몸을 충분히 풀어두고 있었다는 뜻, 축제의 현장은 잠시 적막에 빠져들었다.

‘어디 보자. 네가 정말 할 수 있는지’

도허티는 눈을 부릅뜨고 다카기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세인트루이스 선수단 누구도 나서지 못 한 일을 저 녀석이 할 수 있을까.

일단 초구는 바깥 쪽으로 빠지는 볼, 숨을 고른 스티븐 웹은 다음 공을 기다렸다.

예상 외로 도망가는 볼, 역시 축제 속에서 총을 꺼내들긴 쉽지 않겠지. 2구도 볼이 되자 경계심이 약간 흐트러졌다.

빠악!!

“오 마이 갓!!”

하지만 세 번 째 총알은 정확하게 머리를 가격했다.

헬멧 귀 부분이 파손 될 정도의 충격, 다카기는 글러브를 스티븐 웹 쪽으로 집어던지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헬멧 아니었으면 넌 오늘 죽었어. 알아들었냐 이 XXX야?!!”

스티븐 웹은 물론,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축제의 자리에 헤드 샷이 나온 것도 충격적인데, 그걸 대놓고 던졌다고 홍보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카일 프론스키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 사람의 머리에, 그것도 축제의 자리에서 저런 짓을 하다니, 이것도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한 조건인가.

아빠를 붙잡고 늘어졌다.

“아빠, 저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해야지,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앤디 프론스키는 다카기의 행동을 감쌌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게 그라운드의 법칙, 너도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면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줬다.

‘지렸다. 진심으로’

한편, 도허티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말 해버릴 줄이야, 얼마 전 나눈 전화 통화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너하고 상담하려고 전화한 거 아니야. 닥치고 듣기나 해. 그 자식 머리통은 내가 부숴버릴 거야. 알아들었어?]

입으로 뱉은 말은 진짜 해버리는 놈, 저게 진짜 악당 아닐까. 악당인데 묘하게 끌리는 캐릭터, 적이지만 빠져들 것 같은 매력을 느꼈다.

“공을 뺏어버려야 한다.”

올스타전이 끝난 후, 애틀랜타 구단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중징계를 요구했다.

축제의 자리에서 사람을 저격하다니, 몇 경기가 아니라 몇 달 단위의 출장정지 처분을 요구했지만, 애틀랜타 내부에서 고발이 터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처음부터 구단의 지시가 있었다.”

J.J. 핵먼에게 위협을 가하라는 구단의 지시가 있었다는 폭로, 얼마나 민심을 잃었으면 선수단 내부에서 고발이 일어났을까.

여기에 도허티는 물론 많은 선수들이 다카기의 행동은 정당했다는 변론을 하면서 사무국은 처벌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역대 올스타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다카기는 앞으로 올스타전을 논할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이 와중에도 보스턴 현지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목소리를 높였다.

올스타전에서 보복을 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겉보기엔 단순한 빈볼이지만 뒷배경을 알고 나면 이보다 더 통쾌한 복수극도 없겠지.

뭣보다 이 사건으로 팬들의 관심이 MLB에 집중된 것도 사실이다.

빈볼이 나왔을 때, 올스타전 평균 시청률은 29.8%까지 상승, 월드시리즈 시청률은 이 수치의 반도 안 나온다. 그만큼 화제가 됐던 사건, 고심을 거듭하던 사무국은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다.

올해만 벌써 2번 째 출장정지, 하지만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복수는 최대한 빨리해야 합니다. 시간을 끌수록 화는 누그러지기 마련이죠. 화가 가라앉기 전에 끝내고 싶었고, 올스타전은 복수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놀란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저는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도 빈볼을 던지겠다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번엔 헬멧이 살렸지만 다음에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이 사건으로 일본 팬들은 다카기를 아카오니(赤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니는 일본을 대표하는 요괴 중 하나, 붉은 피부에 몸은 털로 덮였는데 카나보(金棒)라는 철퇴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존재다.

오니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적군을 공포에 몰아넣는 맹장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 지금도 일본에선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존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보스턴의 유니폼은 마침 붉은 색, 아무 거리낌 없이 100마일 강속구를 상대 타자 머리에 집어던지는 모습은 공포에 가까웠다.

붉은 오니라는 별명이 딱 떨어지는 활약, 미국 현지도 이 별명을 차용해 다카기를 Red Devil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