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85화 (185/361)

185화. 암살 - (4)

“함께 가지 않겠나?”

애틀랜타 윈정 게임을 앞둔 5월 26일, 다카기는 단장으로부터 캘리포니아로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일정을 따져보면 다음 등판은 애너하임 전, 선발 등판을 앞둔 에이스가 선수단과 떨어져 목적지로 이동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단장이 동승을 제안하는 이유가 뭘까. 다카기는 이게 계약에 대한 논의라는 걸 눈치챘다.

2년 전, 양측은 13년 2억 2천 만 달러에 계약에 합의했다.

문제는 6년 차에 걸린 옵트아웃, 다카기는 오랫동안 선발투수 부족에 시달린 보스턴 앞에 나타난 구세주다. 활약을 보아하니 부진이나 부상위험은 높지 않은 편, 옵트아웃 조항은 없애는 쪽으로 계약을 수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보스턴 구단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예정, 하지만 다카기는 애틀랜타로 향하는 선수단과 동행했다.

옵트 아웃 실행은 아직 먼 일, 뭐가 급하다고 시즌 중에 협상을 하나. 지금은 팀 승리에 집중하는 게 우선, 컨디션 조절을 위해 먼저 캘리포니아로 갈 수도 있지만 그만 뒀다.

‘너무 잘 풀리는데’

벤치에 앉은 다카기는 느긋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4월에만 20승, 5월에도 계속되는 상승세, 복 중에 화가 있다는 말도 있는데 앞으로도 좋은 일만 반복될까.

그렇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불행을 걱정하는 건 바보짓, 지금은 이 분위기를 즐기기로 했다.

따악 ~ !!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j.j. 핵먼은 오늘도 안타를 때려냅니다. 17경기 연속안타, 44경기 연속 출루 기록도 이어갑니다.”

“이제는 타격에 완전히 눈을 떴네요. 작년과 비교해 월등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드오프로 나선 핵먼은 오늘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활약을 선보였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타율 0.350, 10홈런, 34타점, 얼마 전 시작된 올스타 투표에서 AL 2루수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핵먼을 포함해 무려 6명이 올스타 후보 상위권, 여기에 다카기와 불펜 투수까지 합치면 올스타 후보군은 9명이나 된다.

무려 1/3을 보스턴이 독점할 기세, 일부 전문가들은 지나친 양극화가 메이저리그 흥행에 악영향을 줄 거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양극화는 각 구단이 자초한 일, 보스턴은 프랜차이즈 스타까지 냉정히 쳐내는 행보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투자에 인색하진 않았다.

자금이 있는데도 탱킹으로 유망주를 쓸어 담고 약소구단의 탈을 쓴 채 사치세까지 벗겨 먹는 이상한 구단들, 그런데 무슨 양극화 타령인가.

돈을 쓰는 구단이 아니라 돈이 있는데도 안 쓰는 구단을 규제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카기도 얼마 전 이 문제를 두고 기자들 앞에서 불만을 중얼거렸다.

“자금 문제로 허덕이는 구단은 극히 소수뿐이다. 지금 부자이면서 거지가면을 쓰고 구걸을 하는 구단들이 있는데, 돈을 쓰는 구단에게 혜택을 줘야지, 안 쓰는 구단에 혜택을 주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이 발언은 메이저리그에 다시 한 번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치세를 폐지하라니, 그냥 웃어넘기기엔 근거가 제법 그럴 듯 하지 않은가.

부자가 내 돈 쓰겠다는데 그걸 규제해서 시장에 무슨 이득을 될까. 돈 쓴 다고 죄인 취급을 하다니, 시장에 한파를 불러온 악법을 언제까지 놔둬야 하나.

이길 의지도 없이 이득만 챙기는 장사꾼들이 망쳐놓은 그라운드, 거지 탈을 쓴 구단들은 관심이 아니라 철퇴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 여론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팀의 에이스를 넘어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선수로 성장, 다카기는 이렇게 미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차근차근 넓혀나갔다.

“우리가 거지 탈을 썼다고?”

물론 동조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다카기는 그런 구단들이 있다고 주장했을 뿐, 딱히 어느 구단을 지목한 건 아니다.

하지만 도둑은 제 발 저리기 마련, 애틀랜타 구단은 다카기의 주장에 발끈했다.

양극화 해소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 유망주 사재기와 사치세를 벗겨 먹고 살아온 역사, 뭔가 가슴에 캥기는 게 있으니 발끈한 거 아닌가.

마침 호랑이 굴로 들어온 먹잇감, 이걸 그냥 곱게 보내줘야 하나. 애틀랜타의 감독 샘 홉킨스는 상부의 지시대로 선수단에 거친 플레이를 지시했다.

‘웃기고 있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동조하지 않았다.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팀에게 왜 위협을 가해야 하나. 심지어 6회 말, 로날드 그레이는 2루에서 j.j. 핵먼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너는 모르겠지만 아까 빈볼 던지라는 지시가 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감독이 너한테 빈볼 던지라고 했다고, 걱정하지 마. 그런 짓 할 선수 아무도 없으니까.”

j.j. 핵먼은 격분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젊은 선수에게 빈볼이라니, 이런 만행이 어디 있나. 다행인 건 선수단 누구도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게 동업자 의식 아니겠나.

하지만 날 희생양으로 삼은 애틀랜타에겐 한 방 먹여주는 게 예의, 다음 타석에서 좌중간을 넘기는 시즌 11호 홈런을 터뜨렸다.

“봤냐?!!”

핵먼은 홉킨스 감독을 향해 괴성을 내질렀다.

구단의 지시라고 해도 감독이라는 놈이 그런 더러운 짓에 동참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는 항의를 표했다.

애틀랜타 구단은 이걸 팀 전체를 향한 도발로 받아들였고, 특히 빈볼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브라이언 호이트는 상부의 눈엣가시로 전락했다.

애틀랜타의 애런 깁슨 사장은 호이트를 마이너리그로 추방하는 방안도 검토, 하지만 불펜에서 잘 던져 주고 있는 선수를 내려봤자 팬들의 비난만 받지 않겠나.

거기다 선수단 전체가 팀에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 일단 내부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내 말대로 하면 섭섭하지 않게 해주겠네.”

일단 FA를 앞둔 스티븐 웹을 포섭했다.

스티븐 웹은 없는 살림을 지탱해 주는 기둥, 올해도 타율 0.293, 홈런 10개, 22타점으로 NL 올스타 좌익수 부문 2위에 올라있다.

매년 3할에 가까운 타율, 25홈런 정도는 쳐 줄 수 있는 선수, 수비도 나쁘지 않아 1억 달러 이상은 받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틀랜타는 돈을 풀지 않는 구단, 스티븐 웹은 이적을 고려했지만 너만은 예외라는 구단 사장의 말에 귀를 세웠다.

“제가 뭘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죠?”

“알면서 왜 그러나. 손을 좀 써 보라고”

척하면 척, 다음 날, 경기를 앞두고 스티븐 웹은 동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질 수는 있지만 너무 쉽게 패배했다는 것, 특히 빈볼을 던지지 않은 브라이언 호이트를 집중 겨냥했다.

“넌 이길 마음이 없는 거냐?”

“그게 무슨 소리야?”

“투수가 몸 쪽 던질 자신 없으면 때려 쳐야지.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여기서 살아남겠어?”

호이트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3할 5푼에 홈런도 벌써 10개를 넘긴 선수에게 바깥 쪽 승부를 한 게 그렇게 잘못인가? 거기다 당시 빈볼 사인이 있었다는 건 선수들 모두가 아는 사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

뭔가 구린 냄새를 맡았다.

“너희들 잘 들어. 우리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이건 전쟁이야.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거라고”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 아닌가.

하지만 이미 구린 냄새를 맡은 선수단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고,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스티븐 웹은 무리수를 실행에 옮겼다.

1회 말 애틀랜타의 공격, 2아웃 주자에서 없는 상황에서 볼넷을 골라낸 스티븐 웹은 유격수 땅볼에 2루 커버를 들어오는 J.J. 핵먼에게 강한 태클을 걸었다.

루상에서 벗어난 태클은 아니라 규정 위반은 아닌 상황, 오버 슬라이딩이 될 정도의 거친 플레이에 핵먼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잘 나가던 흐름에 찬 물을 끼얹는 재앙, 보스턴 선수단은 멍한 얼굴로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나는 핵먼을 지켜봤다.

‘한 건 해야 되나?’

하버스태드는 불펜에서 전의를 불태웠다.

어제 경기가 끝난 후, J.J. 핵먼은 로날드 그레이의 증언을 토대로 애틀랜타가 더러운 짓을 꾸미고 있다는 주장을 늘어놨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시도, 설마 오늘도 똑같은 짓을 할까? 설마 했는데 진짜 해버린 놈들, 반드시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다.

‘진짜 누가 하나 죽어봐야 알겠어?’

그건 다카기도 마찬가지, 뉴욕과의 경기에서 우리에게 시비 걸면 재미없다는 걸 보여줬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설마 내 입방정이 사태를 이렇게 키운 건가. 하지만 많은 구단이 거지 탈을 쓰고 메이저리그를 망치고 있는 건 사실, 한 마디 했다고 선수에게 부상을 가하는 게 정당화 될 수 있나.

뭣보다 동업자 정신을 망각하고 살인 태클을 날린 스티븐 웹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죽어봐라.’

오늘 선발로 나선 로버트 클레이튼은 3회 말, 스티븐 웹의 머리에 강속구를 던졌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암살 시도, 오히려 고의적으로 빈볼을 던졌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했다.

상황이 이러니 보스턴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애틀랜타를 떠나야 했다.

상대는 NL라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생각할수록 분통 터지는 일, 다카기는 이번 일은 반드시 잊지 않겠다며 가슴에 칼을 세웠다.

[스티븐 웹, 또 태클 논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6월 10일,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에서 또 사건이 터졌다. 스티븐 웹의 위험천만한 태클에 세인트루이스의 2루수 J. D. 아사로는 격분, 벤클로 이어진 충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의 미드키프 감독은 바로 스티븐 웹에게 빈볼을 지시, 여기서 또 벤클이 터지면서 양 팀 포함 8명이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XX!! 그 자식!! 다음에 만나면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어!!”

세인트루이스의 미래이자 작년 신인왕 출신인 스티브 도허티는 클럽하우스에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스티븐 웹, 언젠간 부숴버리겠다며 분노로 이글거리는 마음을 품고 집으로 향했다.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처음 보는 번호라 망설였지만 일단 받았다.

[내가 누군지 알겠냐?]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나.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한 판 붙었던 다카기, 홈런도 쳤고 나름대로 복수는 했지만 패자로 끝난 월드시리즈라 언젠간 복수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잠시 뒤로 미뤄뒀다.

“용건이 뭐야?”

[잘 들어. 그 XX 새끼한테 손대지 마]

“ ··· 뭐?”

[그 XX한텐 갚아줘야 할 게 있다고, 그러니까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마.]

도허티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도 원한이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새치기를 하는 건가. 상관하지 말라며 말을 끊었다.

“그 자식한테 원한이 있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신경 끄라고”

[너하고 상담하자고 전화한 거 아니야. 입 다물고 듣기나 해, 두 말 안한다. 그 자식한테 손대지 마.]

“그럴 순 없지. 왜 새치기를 하는 거야?”

[새치기? 새치기를 당한 건 우리야. 그 새끼 머리통은 내가 날려버릴 거야. 너희 팀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전해]

할 말 다했는지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도허티는 일단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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