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84화 (184/361)

184화. 암살 - (3)

‘잔소리를 해야 하나.’

수더랜드 단상은 이번 일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다카기의 행동이 모래알 같던 선수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건 인정했다.

하지만 팀 에이스가 그런 행동으로 한 경기를 날려먹는 것도 팀에 좋은 일은 아니다.

거기다 듣자하니 직접 불펜에 전화까지 걸어 저격수까지 물색했다는데 이렇게 막 나가다 나중에 또 다른 사고를 치는 거 아닐까.

구단이 이번 사건을 두고 함구하면서 기자들은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 뭔가 결단을 내려야했다.

“다카기는 좀 더 거칠어져야 한다.”

이때 보스턴의 전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주인공은 빌리 모이세이, 포수로 3천 경기를 뛰며 통산 타율 0.267, 홈런 398개를 남긴 스타 플레이어다.

모이세이의 진정한 가치는 트래시 토크와 거친 플레이,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한 사건은 지금도 손가락에 꼽히는 최악의 플레이로 남아 있다.

가격을 당한 고지 샌더스는 코뼈 골절, 눈두덩이 함몰, 치아 7개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었다.

너무 끔찍해서 모자이크 된 사진만 공개됐다가, 3개월 만에 원본이 공개됐을 정도, 하지만 모이세이는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라며 질문을 던진 기자들을 위협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너희들이 친애하는 그 x같은 새끼는 두 달 전 슬라이딩으로 우리 2루수를 병원으로 보냈다고, 빈볼을 던져야 할 xx는 그것도 제대로 못했지. 그래서 내가 했을 뿐이야. 불만 있어?”

이 뿐만 아니라 모이세이는 여론전도 적극 활용했다.

1981년, 모이세이는 타율 0.284, 42홈런, 124타점, 17도루를 기록했다.

그것도 포수로 151경기를 소화하며 기록한 성적, 하지만 리그 mvp는 뉴욕의 신사라 불리는 잭 휴먼에게 돌아갔다.

휴먼이 227안타에 리그 최고 타율을 기록하긴 했지만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수상, 모이세이는 섞인 축하를 날렸다.

“네가 뒤집어 쓴 가죽 색깔에 감사해라. 시커먼 가죽을 썼다면 그 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까.”

메이저리그에 불어닥친 인종차별 논란, 일이 커지자 잭 휴먼은 모이세이도 mvp를 수상할 자격이 충분했다며 수습에 나섰고 심지어 자신을 조롱한 적을 파티에 초대 했다.

“x까 xx아. 신사적인 척 하는 네 가식이 더 구역질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본성을 드러내게 해주겠어.”

이후 모이세이는 뉴욕을 만날 때 마다 더 거친 플레이를 펼쳤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던 시대,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모이세이는 그 모든 게 팀을 위한 연기였다고 고백했다.

“메이저리그는 재능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무대입니다.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내야 하죠. 그리고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합니다. 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여기에 여론의 야유와 조롱을 감수할 수 있는 멘탈은 덤, 모이세이는 그게 가능했던 선수였다.

“덕분에 다른 팀 팬들에겐 욕을 먹었지만 보스턴 내에서의 입지는 절대적, 모이세이가 8수만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자 보스턴 팬들은 일찌감치 행사장을 점거하고 축하의 환호를 보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악역, 다카기는 작년부터 그 싹을 보여줬다.

어차피 악역으로 굳어진 이미지, 모이세이가 바람을 불어넣자 수더랜드 단장은 당황했다.

괜히 부추기지 말라는 것, 이에 대한 다카기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연기? 난 원래 타고 난 악역이야, 트래시 토크 따원 고등학교 시절부터 즐겨했고 지금은 더 섬뜩한 짓도 할 수 있지, 당신처럼 억지 연기를 할 이유가 없어.]

현역시절 더러운 xx라 불렸던 모이세이를 능가하는 악랄함, 보스턴 수뇌부는 당황했지만 팬들은 열광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이때부터 보스턴 팬들은 홈구장에서 대놓고 악마의 의식을 벌였다. 예전부터 악랄했던 보스턴의 응원 문화, 이제 와서 깨끗한 척 할 필요 없지 않은가.

일부 팬들은 더 음습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검은 색과 빨간 색이 섞인 옷을 입고 상대팀 더그아웃을 향해 감당하기 어려운 욕지거리를 날렸다.

“점 점 다들 미쳐가는 것 같군. 뭐, 나야 손해볼 건 없지만 ··· ”

에디슨 헨리 구단주는 이런 분위기를 묵인했다.

덕분에 홈 경기 티겟은 연일 매진, 잠시 주춤했던 광고 효과도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수익만 낼 수 있다면 이미지 따위야 무슨 상관인가. 수더랜드 단장에게도 다카기는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 * *

[프론스키가 돌아온다.]

시간은 흘러 5월 17일, 보스턴은 손님맞이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끔찍한 부상을 당한 프론스키의 복귀, 물론 선수로서의 복귀는 아니다.

시구식을 가장한 은퇴식, 보스턴에서 뛴 기간은 2시즌도 안 되지만 월드시리즈 2연패에 나름 큰 공헌을 한 선수, 거기다 커리어를 보스턴에서 마감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선수라 악마의 소굴에서도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다.

“잘 할 수 있지?”

“네”

공을 잡은 건 프론스키의 아들 카일, 아버지는 아직 운동능력이 회복되질 않았다.

대신 유소년 야구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내가 손발이 돼야겠지. 미래의 메이저리거가 쏘아올린 공에 팬들은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나중에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이어지는 인터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카일은 한 사람을 지목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다카기, 아버지를 놔두고 다른 사람을 지목할 줄이야. 리포터는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저 사람이 아빠보다 잘 던지잖아요.”

너무 솔직한 발언, 카일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클럽하우스 주변을 기웃거렸다.

사인은 받았지만 아빠 곁에 붙어다니느라 우상과 이런 저런 대화를 못 해본 게 아쉬었던 것, 클럽하우스 매니저가 특별서비스를 베풀면서 다시 만남이 이뤄졌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어요?”

코흘리개의 관심에 코웃음을 치던 다카기는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가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네가 동경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 뿐이야. 네가 노력한다고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흠칫했다.

상대는 애인데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그러건 말건 다카기는 악역에 충실했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이 무대는 만만하지 않아. 네가 프론스키 아들이라고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보장도 없어.”

“그 ··· 그런 가요?”

“그래, 여기 오고 싶으면 죽을 각오로 연습해. 오락할 시간에 공이라도 하나 더 던지라고”

카일은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아빠에게 넌 할 수 있다는 격려만 받았지 이런 냉정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메이저리거가 되는 게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걸까, 질문은 계속 됐다.

“저 우리 팀 에이스로 뛰고 있는데 그래도 안 돼요?”

“훗 ~ 농담하니? 어린 시절 잘 나갔다고 자랑하는 사람 중 성공한 경우 못 봤어. 여긴 선택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야”

매년 수 십 만 명이 쏟아져 나오는 유망주, 그 중 구단의 선택을 받은 소수만이 메이저리그 도전 자격을 가진다.

거기서 경쟁해서 상위 레벨로 올라가고, 다시 또 경쟁해서 주전을 차지해야 하는 고난의 연속,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 아닌가. 다카기는 꿈을 이루고 싶다면 선택을 받을 실력을 갖추라는 압박을 가했다.

나는 그 선택은 운명일까. 이어지는 질문에 악랄한 답이 날아왔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다 네가 하기 나름이지, 알아서 해 봐”

“그럼 저랑 약속 하나 해요.”

“무슨 약속?”

“저 반드시 여기에 올 거거든요. 그때 한 판 붙어요.”

카일은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우상을 닮고자 여기에 왔는데, 돌아온 답은 다카기 하루요시는 이 세상에 하나 뿐, 너는 될 수 없다는 폭언이다. 닮을 수 없다면 내가 넘어서면 그만, 꼬맹이의 도전에 악마는 코웃음을 쳤다.

“얘가 진짜 웃기고 있네. 일단 여기 올라오고 나서 말해라, 넌 지금 나한테 도전할 자격도 없어. 알았냐 꼬맹아?”

제대로 데인 카일은 씩씩 거리며 클럽하우스를 떠났다. 우상이라 봐줬더니 날 계속 놀릴 줄이야, 반드시 복수하겠다며 한 번 더 짖고 갔다.

“야, 넌 어린애한테도 그러냐?”

“뭐 어때? 재미있잖아.”

동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다카기는 웃어넘겼다.

놀리는 맛이 제법 좋았던 녀석, 그리고 이 정도 자극은 줘야 죽을 각오로 연습해서 내게 도전할 것 아닌가. 시시한 상대의 도전은 무시하는 성격, 그렇게 유쾌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들 ~ 아빠 왔다.”

“꺄아 ~ ”

악마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들을 품에 안은 다카기는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젠 몇 마디 말도 할 줄 아는 녀석, 아빠라고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품에서 놓아주질 않았다.

“너는 공부해라. 공부가 제일 쉬운 거야.”

다카기는 아들에게 전문적으로 운동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취미라면 몰라도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인가. 엄마를 닮았다면 공부는 제법 잘하겠지, 그쪽에 재능이 있다면 일찌감치 밀어주는 계획도 세웠다.

“정말 운동 안 시킬 거야?”

“뭐 ··· 본인이 좋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남편의 반응에 키리코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모양, 슬쩍 부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자기도 대학 갔으면 우리는 지금 어쩌고 있을까?”

“음 ··· 글쎄 ··· 적어도 이 녀석은 안 태어났겠지.”

같은 대학에 들어가 캠퍼스 생활을 했다면 아이가 태어났을까.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불꽃이 튈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졌겠지. 그런데 다카기가 운동으로 방향을 틀면서 만나는 시간은 그만큼 잦아졌다.

만나기만 하면 대형화재가 일어나는 건 당연, 그 과정에서 임신 - 약혼 - 결혼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대학에 진학했다면 느긋하게 공부하면서 후계자 사업을 하고 결혼도 그만큼 늦어졌겠지,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아나. 하지만 그건 가정일 뿐, 현실이 아니다.

이제 와서 그룹 후계자 자리를 넘볼 건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단란한 가정,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슨 일이지?’

이때 단란한 시간을 방해하는 벨소리가 들렸다.

발신인은 앤디 프론스키, 아들 괴롭혔다고 항의하려는 건가. 일단 통화에 응했다.

“무슨 일이야?”

[고 ··· 고맙다는 말 하려고]

뇌좌상을 입은 이후, 프론스키는 말을 약간 더듬는 증세를 보였다.

의사는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프론스키는 그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래서 오늘도 인터뷰는 최소화한 편, 그래도 아들에게 평소 해주지 못한 충고를 해준 옛 동료에게 늦게나마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 할 필요 없어. 남의 아들이라 쓴 소리가 나온 것뿐이야. 나도 내 아들 앞에선 그냥 아빠일 뿐이지.”

[너는 선수 오해 생활해야 된다. 그래야 ··· 나중에 ··· 그게 ··· ]

다카기는 말을 끊지 않았다.

계속 말하는 연습을 해야 나아질 거 아닌가. 그리고 뒤에 이어질 말이 뭔지 이미 눈치 챘다.

“그래, 나중에 붙어줄 테니까. 일단 올라오라고 전해”

[그렇잖아도 지금 연습하고 있어]

벌써부터 내 목을 딸 칼을 갈고 있다니, 하지만 이건 내가 의도했던 일 아닌가. 언제든 기다려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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