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그래도 야구는 계속 된다 - (10)
딱 ~
“다시 몸 쪽입니다. 파울라인을 벗어나는 군요.”
“쿠사나기 하루타라면 여기서 분명 바깥쪽 승부를 했겠죠. 확실히 여느 일본인 투수들과는 다릅니다. 그 도허티가 밀리고 있어요.”
보스턴 지역방송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깨알 같이 라이벌 뉴욕을 심기를 건드렸다.
쿠사나기 하루타는 뉴욕이 1억 달러를 주고 영입한 선수, 작년에도 잘 해줬지만 올해는 12승 9패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 부상으로 부진했던 패트릭 브린의 공백을 잘 채워줬다.
다카기와 쿠사나기는 올 시즌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 공략하고 떨어지는 공으로 마무리를 짓는 비슷한 패턴을 보여줬다.
하지만 차이는 분명했던 성적, 평균 구속 차이뿐만 아니라 결정구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쿠사나기는 올 시즌 포크볼로 재미를 봤다. 가끔 포크볼과 스플리터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포크볼은 커브처럼 탑스핀을 줘서 떨어지는 각을 최대한 끌어올린 공이다.
회전을 덜 줘서 떨어트리는 스플리터와는 다른 구종, 뮛보다 손가락이 공을 쥘 만큼 길지 않으면 던지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일본인 투수들이 포크볼 대신 스플리터를 던지기 시작한것, 스플리터와 포크를 오인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카기, 포크볼 던지나?]
[스플리터?]
다카기가 올 시즌 주력 무기로 삼은 체인지업은 일본, 미국 양쪽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서양인에 비해 손이 작은 동양인은 공을 더 벌려잡기 마련, 그래서 스플리터를 던져도 포크처럼 공이 손에서 잘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다.
쿠사나기 하루타가 그런 경우, 하지만 다카기는 특유의 악력과 거대한 손으로 체인지업을 스플리터처럼 떨어지는 마구로 개조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아무리 힘과 선구안이 좋아도 평균 95마일이 넘는 빠른 볼과 88마일 대의 체인지업 조합을 이겨내는 건 힘든 일, 0.81에 불과한 이닝 당 출루율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9이닝을 기준으로 7명이 루상에 나가는데 무슨 득점이 되겠나.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2.01이었지만 수비무관 자책점은 1.89, 선발투수가 특급불펜 수준의 영역을 넘봤다.
쿠사나기도 좋은 선수지만 다카기와 비교하는 건 민망한 일, 피트 오어는 다카기를 어떻게든 폄하하려는 여론에 일침을 날렸다.
따악 ~ !
“센터 쪽으로 가는 타구,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아 - 이건 뭔가 아쉬운 결과인데요.”
“지금은 잡아줬어야 했던 타구인데, 디즌이 6차전의 충격을 아직 떨쳐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애매한 타구가 안타가 되면서 관중석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비라면 누구보다 안정적이었전 알 디즌이 2경기 연속 실수를 저지를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대로 대시했다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움찔하다 바운드로 처리한 타구, 보스턴이 당혹감을 애써 다스리는 동안, 행운의 안타로 출루한 도허티는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봤어?!! 이번엔 내가 이겼다고!!”
숙적을 상대로 7타석만에 만든 안타, 운이든 뭐든 어쨌든 안타 아닌가. 반면 다카기는 소소한 승리에 들뜬 푸들머리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삼진을 잡았어야 했는데 컨택을 허용하다니, 디즌의 애매한 수비보다 날카롭지 못했던 구위를 책망했다.
‘일단 한 점 내자.’
여기서 세인트루이스는 보내기 번트를 택했다. 연속안타를 치긴 어려운 상대, 대량득점보다 주자를 득점귄에 보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방향만 맞추자.’
대타로 들어선 타이슨 드류는 1루를 노렸다.
타구 스피드를 줄이는 게 번트의 핵심이지만, 다카기처럼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 앞에선 그것도 어렵다.
차라리 방향에 집중하는 게 최선, 다카기는 이 타이밍에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았다.
상대가 푸시 번트를 노리고 있다는 걸 읽은 것,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왔지만 타이슨 드류는 번트를 대지 못했다.
딱 ~ !
“파울입니다! 번트 실패, 이렇게 되면 부담을 느끼는 건 세인트루이스 쪽입니다.”
“주자가 1루에 있는데도 냉정하네요. 분명 막아내야 하는 입장인데 공세로 나서고 있는 느낌입니다.”
타이슨 드류는 코치 사인을 확인했다.
푸시 번트를 노린 게 들통났으니 상대도 분명 대비하고 있을 거다.
이렇게 되면 타구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역시 어려운 일, 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와아아 ~ !!
결과는 헛스윙 삼진, 2루를 노리던 도허티는 서둘러 1루로 귀환했다.
힛 앤 런 사인에 나온 삼진, 거기다 곁눈질로 살펴봤더니 포수는 어느새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설마 이것도 읽힌 건가. 머릿속을 읽히는 것 만큼 불쾌한 일도 없었다.
[스트라이크!!]
“초구, 역시 공격에 나서는 건 보스턴입니다!!”
“팬들 눈에도 지금 세인트루이스는 아웃카운트를 소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겁니다. 다카기가 지금까지 정규시즌 포함 236이닝을 넘겼는데, 구위가 전혀 흔들리질 않네요.”
겨우 잡은 선두타자 출루 기회, 하지만 다카기 앞에선 희망고문으로 끝났다.
잡병 하나가 성벽을 올랐지만 끝내 함락 시키지 못한 철옹성, 보스턴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6회 말 공격에서 한 점을 더 내며 스코어는 3대 0,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다카기는 땅볼 두 개와 삼진 하나로 이닝을 마무리 했다.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2년 연속 우승, 작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남의 집에서 지켜본 팬들도 점 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 다카기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오릅니다! 3일 전 7이닝 무실점!! 오늘은 지친 불펜을 위해 뒤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끝나면 계약 수정해야 합니다. 옵트 아웃이 웬 말입니까.”
피트 오어는 계약서를 당장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년 차 시즌에 걸린 옵트 아웃 조항, 실현하도록 지켜볼 건가. 13년 2억 2천만 달러를 4억 달러로 바꿔서라도 보스턴에 묶어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웃카운트가 늘어날수록 격해지는 광기, 8이닝도 무실점으로 처리한 다카기는 감독의 격한 환대를 받았다.
“9회는 좀 무리지 않겠나?”
“이제 와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3이닝 투구나 4이닝 투구나 그게 그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브라이스 감독은 스티븐 루카스와 하버스태드를 불펜에 대기시켰다.
첫 타자는 가볍게 땅볼처리, 그리고 다시 공포의 푸들머리를 마주했다.
‘아차’
역시 3일 휴식 등판은 무리였던 걸까.
한 가운데로 들어간 공이 담장을 넘어가면서 스코어는 4대 1, 다카기를 상대로 2안타 포함 홈런까지 때려냈지만 도허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앉았다.
개인적인 복수는 성공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은 없는 한 방, 여기서 패배하면 복수가 무슨 소용인가. 초조한 눈으로 다음 승부를 지켜봤다.
‘여기서 내리긴 애매해’
브라이스 감독은 일단 다카기를 믿었다.
연속 안타가 나오기 전까지는 지켜볼 생각, 그렇게 수고를 해줬는데 마지막을 책임지는 명예는 줘야할 것 아닌가.
여기서 내려봤자 애매하고 뭣보다 선수 본인이 납득할 것 같지 않았다.
‘좋은 약이었다.’
한 방 맞은 다카기는 후속타자를 2루 땅볼로 처리했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1개 뿐, 힘을 내달라는 팬들의 환호에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냈다.
“스윙!! 2021시즌이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승자는 보스턴! 팀 창단 이후 첫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선수가 있었습니다!!”
“피곤해 보이네요. 역시 다카기도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악당은 거친 한숨을 토해냈다.
우승의 기쁨보다 무거운 중책을 내려놨다는 피곤함이 묻어나온 얼굴, 그걸 알고 있는지 선수들은 주인을 보고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격한 애정 표현은 삼갔다.
“고생 많았다.”
다카기는 한 선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6차전 실책으로 정신이 무너졌는데도 어찌어찌 7차전을 버텨준 알 디즌, 오늘 별 다른 활약은 없었지만 그래도 큰 실수 없이 서로 웃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지 않았는가.
3차전에서 보여준 2홈런 7타점 게임도 훌륭했고, 수고 했다는 한마디로 잡다한 일은 덮어버렸다.
‘이 강아지는 눈치가 없네.’
이어지는 포토타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키리코는 한 걸음에 달려와 약혼남의 품에 안겼다. 피곤해 죽겠는데 놀아달라고 하는 몸짓이 오늘 따라 격렬, 그래도 불편한 기색 없이 받아줬다.
이미 정해진 주인공, 월드시리즈에서 2승, 18이닝(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한 다카기는 월드시리즈 MVP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홈팬들의 환호성, 22살 나이에 세계 정상에 오른 선수에게 기자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제 내년에 우승을 차지하면 쓰리 핏 달성이군요. 내년에도 우승 자신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150년 메이저리그 역사 상, 쓰리 핏을 달성한 팀은 2팀뿐이다.
보스턴의 영원한 라이벌 뉴욕도 그 중 하나, 뉴욕은 1936 ~ 1939년, 그리고 1949 ~ 1953년까지 무려 4연패, 5연패를 달성해 냈다.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이어진 뉴욕의 전성기, 이때 달성한 월드시리즈 우승만 20회다.
다른 스포츠를 들춰내도 전례가 없는 왕조 시대,
최근 15년 동안 5번의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도 이제 그 레벨에 발을 들이려 하고 있다. 이제 다카기는 보스턴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 월드시리즈 우승을 넘어 역사에 남을 왕조를 구축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소를 짓는 건 당연했다.
“당연하죠. 악당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강해지는 법이니까요.”
창작물을 살펴봐도 악당이 약해지는 경우는 없다.
주인공이 성장한 만큼 반드시 강해지는 악당, 보스턴의 왕조를 저지하기 위해 많은 팀들이 칼을 갈겠지만 우리도 놀고 있진 않을 거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옥에 티라면 도허티에게 맞은 홈런뿐인데, 마음에 두진 않으십니까?”
“그 정도 상처는 간지러운 편이죠. 저보다는 도허티가 걱정이군요.”
그까짓 피홈런이 우승을 눈앞에 두고 놓친 것보다 뼈아플까.
다카기는 이번 패배를 계기로 도허티가 조금 더 강해지길 바란다며 여유를 부렸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작년 상대였던 LA는 너무 시시했는데, 올해는 아주 짜릿했죠. 덕분에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상대 팀의 성장이 두렵진 않으십니까? 방금 말씀하신 대로 많은 팀들이 보스턴의 연속 우승에 이를 갈고 있을 텐데요.”
“바라던 바입니다. 앞으로도 야구는 계속 될 거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겠죠. 그런 난장판 속에서 우승을 거둬야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1930년대처럼 일방적인 우승이 나오는 건 재미없습니다.”
다카기는 라이벌 뉴욕의 연속 우승도 비꼬았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지금처럼 마이너리그가 체계적으로 잡혀 있던 시기도 아니었고, 각 팀의 전력 차는 뚜렷했다.
뉴욕이 일방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1930 ~ 60년대가 바로 그 시기,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잡히고 선수 공급이 체계화되면서 조금씩 좁혀진 전력 차이, 최근 보스턴이 5번이나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넓게 보면 많은 팀들이 돌아가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은 이제 FA 영입보다 어린 선수 영입과 육성에 치중하는 시대, 내 도발이 구단의 닫혀 있던 지갑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스토브 리그는 더욱 치열해지고 그만큼 팬들의 관심도 뜨거워지겠지, 내 도발이 메이저리그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겠나?
난장판이 될수록 뚜렷해지는 악당의 진가, 다카기가 던진 불씨는 곧 업화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