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73화 (173/361)

173화. 그래도 야구는 계속 된다 - (6)

“자, 이곳은 월드시리즈 4차전이 열리는 레드 루프 스타디움입니다. 보스턴의 라인업부터 살펴보시죠. 좌익수 데이브 셰퍼드, 중견수 알 디즌, 우익수 후안 위긴스 - (중략) - 음 돈론이 1루수, 셰퍼드가 좌익수로 이동을 했군요.”

“역시 수비가 문제죠. 어제 셰퍼드의 실책 후 분위기가 급격히 기울었기 때문에 브라이스 감독도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세인트루이트 팬들의 압도적인 환호 속에서 4차전의 막이 올랐다.

보스턴은 특유의 끈끈한 타선을 앞세워 초반부터 1사 주자 1-2루 기회를 잡았고, 타석에는 맥 리스가 들어섰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한 몸,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몸 쪽 빠른 볼도 피하지 않으며 배터리를 압박했다.

따악 ~ !!

“됐어!”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홈으로 향하던 2루 주자 폴 돈론은 3루 코치의 지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세인트루이스의 우익수 도허티는 올 시즌 우익수 부문 실책 2위, 어시스트 1위를 기록했다.

뭔가 어설픈 수비력을 보여줬지만 야수는 강한 어깨 그 자체가 실력이자 자산, 마침 감이 좋은 디즌의 타석이라 무리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자, 1사 주자 만루에서 알 디즌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포스트시즌 성적은 타율 0.261 홈런2개 7타점, 어제 경기에서는 안타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월드시리즈 들어서 타율 0.333, 어제는 타점도 추가했거든요. 땅볼만 조심하면 됩니다.”

배터리는 철저하게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를 고집했다.

하지만 끌려나오지 않는 방망이, 디즌은 올 시즌 타율은 낮지만 타석에서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며 ops 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홈런 12개도 신인치고 적은 수치는 아닌 편, 뜬공 비율도 21%나 되는 선수라 세인트루이스 배터리는 성급한 승부를 피했다.

따아악!!

“아뿔싸!”

바깥쪽으로 던진다는 게 약간 가운데로 몰리고 말았다.

결과를 예감한 투수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굴 뿐, 그 사이 배트를 내던진 디즌은 가슴을 치며 포효했다.

설마 했던 만루홈런, 올 시즌 데뷔한 루키의 대형사고에 보스턴 벤치는 흥분에 사로잡혔다.

“잘했어!!”

오늘 벤치에 남은 다카기는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디즌을 맞아들였다.

누군가는 미쳐줘야 분위기 반전을 노릴 수 있는 시리즈, 디즌이 그 역할을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따악 ~ !!

“이번에는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 2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까지 홈으로 내달립니다!! 스코어 8대 0!! 오늘 경기는 보스턴이 주도합니다.”

“혼자서 6타점이네요. 분위기를 확실히 끌어오고 있습니다.”

디즌은 3회에도 장타를 뿜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소 아쉬웠던 후반기 활약을 만회하는 활약, 디즌의 활약에 힘 입은 보스턴은 6회까지 9대 1, 리드를 유지하며 여유 있게 앞서갔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도 순순히 물러서진 않았고 7회 말 2사 주자 만루에서 도허티가 타석에 들어섰다.

2차전에서 역전 3점 홈런을 날린 요주의 인물, 브라이스 감독은 우완 하버스태드를 투입해 추격의 불길을 꺼트리려 했다.

도허티는 올 시즌 우완 상대 0.274, 좌완 상대 0.349를 기록한 좌투 킬러, 우완도 딱히 약한 건 아니지만 데이터를 의지했다.

따악!!

“때렸고! 중견수! 중견수가 몸을 날려 타구를 낚아챕니다!! 이닝 종료! 보스턴이 멋진 수비로 세인트루이스의 추격을 저지합니다!!”

“바로 이게 디즌의 매력이죠! 오늘 공수에서 완벽한 활약입니다!”

위기를 넘겼지만 브라이스 감독은 디즌의 수비가 탐탁지 않았다.

스코어는 9대 1, 거기다 2아웃 상황에서 몸을 날릴 이유가 있었을까

타구가 뒤로 빠질 위험이 있는 건 둘째 치고 본인이 부상을 당하면 큰 일, 보스턴 입장에서 절대 잃을 수 없는 선수라 거친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아악 ~ !!

그런 감독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디즌은 5번 째 타석에서 멀티 홈런을 쏘아올렸다.

3안타에 7타점, 디즌의 활약에 힘입은 보스턴은 4차전을 잡아내며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디즌, 간만에 받은 스포트라이트에 디즌은 잠시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지만 왜 몸을 날렸냐는 물음엔 작심했던 말을 쏟아냈다.

“타구를 잡는 건 야수의 본분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 점수 차가 꽤 있었지 않습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점수 차는 상관없습니다. 전 투수에게 어떤 공이든 잡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습니다.”

이건 5차전에 등판할 가능성이 높은 다카기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불안한 외야진을 믿지 못 해 언제나 삼진 위주의 투구를 하는 에이스, 내가 여기 있으니 좀 더 야수진을 의지해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고맙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5차전 등판을 앞둔 다카기는 불펜에서 평소처럼 몸을 풀었다.

삼진 능력이 있는데 굳이 수비에 의지해야 하나.

디즌의 열정과 수비 능력은 인정했지만, 그 혈기왕성한 경솔함이 독이 될지 누가 아나. 그나마 믿을만한 건 내야진, 땅볼 유도에 최적화 된 투심도 빼놓지 않고 챙겼다.

“내일은 비가 내리기를 ~ ”

“그 다음 날은 눈이 오기를 ~ ”

외야에 자리 잡은 보스턴 원정 팬들은 1회부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다카기가 5차전을 잡아주면 보스턴은 3승 2패 리드를 안고 홈으로 돌아간다.

거기다 하루 휴식이 끼었으니 시리즈가 7차전까지 이어지면 다카기가 계투로 나설 수도 있겠지, 2차전에선 계투진의 방화로 승리를 날렸지만 다카기를 향한 팬들의 신뢰는 여전했다.

딱 ~

“초구 타격, 유격수 잡아서 1루에 송구합니다. 세인트루이스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서는데요.”

“카운트가 몰리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겠죠. 보스턴은 그 점을 역이용해야 합니다.”

다카기는 공 3개로 첫 두 타자를 잡아냈다.

2차전에서도 확인했지만 역시 위력적인 투심, 대기 타석에서 다카기의 투구를 지켜본 도허티는 포심을 노리고 들어갔다.

따악 ~ !

“타격, 밀립니다.”

“지금은 96마일 빠른 볼이죠. 패턴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도허티는 마지막까지 중심을 뒷발에 남겨두는 타입, 덕분에 컨택은 수준급이지만, 체중을 앞발로 옮기는 과정이 조금 복잡하다.

95마일이 넘는 빠른 볼에 가끔 타이밍이 늦는 이유가 바로 이것, 본인의 장단점을 알고 있는 도허티는 포심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다카기의 공은 공략하기 쉽지 않았다.

체인지업을 던지기 전에 승부를 내야하는 싸움, 2구에도 망설임 없이 스윙을 돌렸다.

“바깥쪽 높게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역시 위력적인 공을 던지네요. 도허티가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0.394, 홈런 2개, 6타점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감이 좋은데 지금은 공을 놓쳤어요.”

체인지업이 들어올 타이밍, 하지만 배터리는 몸 쪽 빠른 볼로 3루 땅볼을 이끌어냈다.

공 6개로 이닝 삭제, 어제 화끈한 타격을 선보인 보스턴은 오늘도 기세를 이어갔다.

1회에의 선취득점, 2회에도 무사 주자 1 - 2루에서 적시타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2대 0으로 벌어졌다.

‘나 말고도 쳐 줄 녀석들이 있으니까.’

첫 타석을 앞둔 다카기는 감독의 지시대로 번트를 노렸다.

투구는 나만 믿으면 그만, 하지만 공격은 동료들이 잘 해주고 있지 않나. 투구보다 타격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승리가 우선, 투구에 무리가 되는 스윙은 지양했다.

“깊숙한 공!! 오 ~ 지금은 맞았습니다.”

“글쎄요. 일단 1루로 걸어가고 있는데 얼마 전 프로스키를 잃은 보스턴 입장에선 좀 불쾌할 수도 있는 장면이네요.”

초구부터 어깨로 날아온 공, 다행히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고의는 아니겠지만 보스턴을 응원하는 입장에선 기분 나쁜 광경, 다카기는 별 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보스턴 팬들의 야유는 한동안 계속됐다.

시리즈가 2대 2 동률이 되면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오늘도 2대 0으로 뒤지고 있는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맞불 응원을 놨다.

1사 주자 만루에서 타석엔 폴 돈론, 컨택 능력이라면 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라 긴장감은 더해졌다.

“초구,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역시 쉽게 승부 못하죠. 급할 거 없습니다. 여차하면 볼넷으로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가야 됩니다.”

돈론은 2구도 차분하게 골라냈다.

지난 4차전부터 달라진 보스턴 타선의 집중력, 올 시즌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3위를 기록한 세인트루이스의 마운드도 계속되는 맹공세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하지만 행운은 보스턴을 향해 미소 짓지 않았다.

돈론이 힘차게 잡아당긴 타구는 1루수 오수나의 글러브에 다이렉트로 안착, 1루에서 조금 멀어졌던 다카기는 손 쓸 틈도 없이 아웃처리 당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 누굴 탓하겠나. 도망갈 기회를 놓친 보스턴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2회 말 수비에 나섰다.

‘완벽해야 돼.’

다카기는 초구부터 구속을 끌어올렸다.

기회를 놓치면 반격을 당하는 게 야구의 흐름, 여기서 힘을 아낄 여유 따윈 없었다.

따악 ~ !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은 안타, 크로스 포수는 별 것 아니라며 에이스를 다독였다.

타석에는 7번 래리 트라이스, 장타력이 떨어지는 선수라 초구부터 몸 쪽 빠른 볼을 요구했다. 움찔할 법도 한데 움직이지 않는 타자, 트래쉬 토크라면 자신 있는 크로스는 도발에 나섰다.

“그렇게 치고 나갈 자신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 물론 공짜는 안 되지만 ··· 100마일로 하나 꽂아줄까?”

“그럼 나야 고맙지.”

트라이스도 지지 않고 맞불을 놨다.

맞고라도 나가고 싶은 타석, 크로스도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다시 몸 쪽 빠른 볼을 요구했다.

‘이게 감히 무임승차를 ··· ’

트라이스는 공이 유니폼을 스치고 지나갔다며 1루로 향했다.

아무도 듣지 못했는데 본인의 귀에만 들렸나. 크로스는 바로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고, 양 팀 벤치에서도 동시에 사인이 나왔다.

의외로 길어진 판독 시간, 헤드폰에 귀를 기울이던 주심은 1루로 나간 트라이스에게 돌아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속임수라도 쓰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이번 시리즈, 상대의 각오를 확인한 다카기는 힘이 실린 결정구를 던졌다.

따악 ~ !

“파울입니다. 트라이스가 승부를 길게 끌고 가고 있군요.”

“후퇴가 없네요. 하긴, 우승을 바라는 마음은 양 팀 선수 모두 동등할 겁니다.”

4구도 타이밍이 늦으면서 파울, 타자의 신경을 빠른 볼로 돌린 배터리는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배트 끝에 걸리면서 또 파울, 트라이스를 약간 가볍게 봤던 크로스는 볼배합을 재정비했다. 트라이스는 철저하게 짧게 치는 타입, 변화구보다는 구위로 윽박지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악 ~ !!

“센터!!”

높게 뜬 타구, 다카기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2루수가 잡기엔 애매하고 중견수가 달려와 처리해야 할 타구, 2루수는 끼어들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를 기다린 알 디즌은 타구를 향해 전력 질주, 하지만 다카기의 외침을 듣지 못한 2루수 J.J. 핵먼이 타구에 간섭하면서 가벼운 충돌이 일어났다.

그래도 디즌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서 캐치가 됐고, 위기를 넘긴 보스턴은 한숨을 돌렸다.

‘가끔 있는 일이지’

다카기는 별 말 없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너무 집중하고 있으면 동료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경우도 있다. 핵먼도 일부러 타구에 간섭한 건 아니겠지, 뭣보다 부상 없이 이닝이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야, 귀는 열어 두자. 방금은 위험했어.”

“나도 알아. 그런데 그땐 아무 것도 안 들렸어.”

알 디즌은 더그아웃에서 핵먼과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잘못했으면 실점뿐만 아니라 부상까지 당할 수 있었던 상황, 다들 부상에 민감한 입장이라 다시 한 번 사인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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