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70화 (170/361)

170화. 그래도 야구는 계속 된다 - (3)

[다카기를 잡으면 2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

5차전을 잡아낸 미네소타는 시리즈를 홈 경기로 옮겨오는데 성공했다.

이제 시리즈는 6차전, 하지만 보스턴이 다카기를 선발로 예고하면서 미네소타 현지여론은 급격히 가라앉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 이와증에도 미네소타의 광팬으로 알려진 사업가 알렉스 홉우드는 다카기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었다.

[현상금 걸면 내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어? 어림없는 소리, 그건 그렇고 안 잡히면 그 돈 나 주는 거야?]

범인은 도망치기는커녕 홉우드가 올린 글에 댓글까지 남겼다.

안 잡히면 그 돈 나 달라는 이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분명한 건 홉우드의 현상금이 보스턴을 자극했다는 것, 보스턴의 단장 에디슨 헨리는 다카기에게 특별 보너스를 제시했다.

“그까짓 200만 달러 내가 주겠네.”

6차전에서 미네소타를 뭉개버릴 수 있다면 그까짓 200만 달러가 대수인가.

다카기는 보스턴과 13년 2억 2천만 달러 대형계약을 맺었지만 올해 받는 연봉은 65만 달러다.

가파른 연봉상승은 내년부터 시작, 최저연봉에 3000만 달러짜리 활약을 한 선수라 그 정도는 수고비로 지급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보스턴이 맞불 현상금을 제안하면서 시리즈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고 그렇게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괜찮아 오늘도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경기를 앞두고 폴 돈론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잠시 주춤했던 돈론은 이번 시리즈에서 20타수 9안타(2홈런), 6타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3차전에서 4대 2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은 3점 홈런은 백미, 큰소리를 칠 만도 했다.

“그래, 알았으니까 넌 오늘도 지명타자해라.”

잔소리 대마왕은 그세를 못 참고 훈수를 뒀다.

돈론이 타격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일, 하지만 수비에서 그만큼 까먹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장면은 4차전, 2사 주자 1, 2루에서 돈론은 좌중간으로 날아오는 타구에 글러브를 뻗었다.

기름이라도 발라놨는지 글러브 안에서 미끄러진 공은 자유를 찾아 탈출, 돈론이 허둥거리는 사이 주자들은 모두 홈을 밟았다.

그날의 뻘짓만 없었도 시리즈가 6차전으로 이어질 일은 없었겠지. 그렇다고 타격감이 좋은 선수를 뺄 수도 없고, 브라이스 감독은 5차전부터 돈론을 지명타자에 배치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수비는 정말 기대할 게 없는 선수,  그래도 브라이스 감독은 올 시즌 정규게임에서 돈론을 지명타자로 기용한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수비를 보다 지명타자로 전환하면 타격성적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통계를 살펴보면 오히려 퇴보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를 두고 야구계는 지금도 논쟁을 거듭하고 있지만, 지명타자는 오로지 방망이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하는 존재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이제 너의 수비를 기대하지 않는다. 방망이라면 쬐끔은 기대하고 있지만 ··· ”

이게 그동안 돈론을 지켜본 브라이스 감독의 본심 아닐까. 사실이라면 돈론은 이제 몰린 만큼 몰린 입장이다.

야수자원이 넘쳐나는 보스턴, 한 때 유망주 3위에 오른 돈론은 트레이드 카드로 쓰기 딱 좋은 선수다.

내가 이 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인연, 다카기는 떠나는 놈 잡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동안 함께한 정 때문에 애정 섞인 독설을 쏟아냈다.

“그리고 목에 현상금이 걸린 건 나야. 멋대로 튀지 말라고”

깨알같은 자기자랑은 덤, 분위기를 다잡은 보스턴은 1회 초 공격에 나섰다.

‘한 번 더 공략해 볼까.’

선두타자는 폴 돈론, 미네소타 배터리는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돈론은 잘 나가다 사구를 맞고 부진에 빠진 트라우마가 있다. 몸 쪽으로 붙이고 바깥쪽 떨어지는 공으로 잡아내는 패턴이 공략법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최근엔 그것도 안 통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인구를 던지기엔 선구안이 너무 좋은 선수, 몸 쪽으로 붙여볼까 했지만 3차전에 입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초구는 볼입니다. 역시 신중한 승부를 하는군요.”

“돈론이 도루 능력은 없어도 주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닙니다. 볼넷으로 나가는 것도 환영할 일이죠.”

2구도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 고개를 끄덕이던 돈론은 차분하게 3구를 맞이했다.

깊숙히 날아오는 공, 피하려 했지만 배터 박스를 가로지르는 궤적이라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상은 아니었지만 사구에 민감한 돈론은 상대투수를 노려보며 1루에 안착, 얼굴 붉히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지는 후안 위긴스의 타석, 유격수 땅볼이 나오자 1루 주자 돈론은 2루로 돌진했다.

제동을 제 때 못 걸은 걸까 아니면 병살을 막기 위해서였을까. 오버 슬라이딩이 되면서 돈론은 2루수와 충돌, 숀 행크가 고통을 호소하면서 분위기는 가열됐다.

미네소타의 감독 폴 뮬러는 주심에게 고의성을 주장했지만, 주자가 진로를 이탈한 게 아니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버 슬라이딩은 전력질주를 하다보면 흔히 나오는 장면, 주자에게 발을 뻗거나 다리를 높이 든 것도 아니라 고의성을 적용하는 건 무리였다.

“일부러 그런 거야!!”

“용서 못해!!”

물론 미네소타 팬들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숀 행크는 방망이는 조금 떨어져도 수비에서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수, 그런 선수가 코치의 부축을 받으며 물러났다.

거기다 다카기가 너희들은 올해도 안 된다는 도발을 날린 게 불과 며칠 전, 보스턴의 선취득점은 관중석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이제는 완전히 악당이군.’

1회 말 미네소타의 반격, 다카기는 홈팬들의 야유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마운드에 입성했다.

이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 그렇게 분하면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을 받아 가면 될 거 아닌가. 실력이 없으면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무대, 나는 악당이지만 너희들도 주인공이 될 자격은 없다는 시위를 이어갔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빠른 볼, 시리즈 내내 볼 판정에 불만이 많았던 크리스 스나이더는 주심을 한 번 쳐다보고 방망이를 고쳐 잡았다.

여기서 화내면 나만 손해, 2구는 크게 휘둘렀지만 바깥쪽으로 휘며 흘러나가는 궤적에 헛방망이를 돌렸다.

“바깥쪽, 바로 승부가 들어옵니다!! 루킹 삼진!! 크리스 스나이더를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역시 미네소타가 다카기를 검거하는 건 무리죠. 홉우드도 그걸 알고 현상금을 건 게 아닐까요?”

보스턴 해설위원은 홉우드를 조롱했다.

홉우드는 부동산 사업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뒤엔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다. 최근 미국은 급격히 오른 집값 때문에 이동식 주택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집이 내거라도 땅은 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동식 주택이 늘어나자 땅 주인들은 임대료를 2배에서 4배까지 올려 받았고, 홉우드도 그 대열에 슬쩍 발을 얹었다.

시장에서 부동산을 쥔 자가 횡포를 부리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홉우드는 그 정도가 심한 편, 거기다 지역 사업가라는 명성에 비해 기부를 한 내역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다카기의 목에 기부 형식의 현상금을 건 것도,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 아니었을까. 다카기를 공략하기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일,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처음부터 기부할 마음이 없었으니 말 뿐인 현상금을 건 게 아니냐며 노골적인 도발을 이어갔다.

‘얼른 잡아봐. 뭐 해?’

이 날, 다카기는 어느 때 보다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했다.

평소 좌우를 찌르는 투구를 즐기지만 오늘 구위는 최고조, 대놓고 문턱을 넘었지만 미네소타 타선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다.

그 사이 보스턴은 5회 초에 2점을 몰아치며 스코어를 3대 0으로 벌렸고, 브라이스 감독은 5일을 쉰 에이스가 마음껏 날뛰도록 내버려뒀다.

[관리도 정도라는 게 있다.]

[어린애도 아닌데 왜 품에서 놓아주질 않는 거지? 지금 다카기의 컨디션은 최고조야.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할 일인데, 구단 관계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5차전이 패배로 끝나자 보스턴 팬들은 구단 관계자들을 질책했다.

에이스를 보호하는 건 좋은데 지금은 포스트시즌 아닌가. 어쩌자고 5차전에 다카기를 벤치에 앉힌 건지, 승리 했다면 모를까 패배하면서 선수단의 피로만 쌓였다.

관리가 아닌 과잉보호가 팀을 혼란에 빠트린 것, 무슨 영웅 만들기도 아니고 승부를 길게 끌고 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바보짓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질타에 구단 수뇌부도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부모의 품에서 탈출한 어린 아이는 마운드에서 미쳐 날뛰는 중, 경기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네소타 벤치엔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딱 ~ !

“3루수 잡아서 1루에 송구합니다!! 다카기는 12타자를 연속 범타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미네소타는 3회 이후 전혀 출루를 못하고 있네요. 거기다 점수 차가 크지 않고, 다카기가 5일을 쉬었기 때문에 여기서 투수 교체를 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입니다.”

포스트 시즌 들어 21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

정규시즌도 대단했지만 포스트 시즌의 위용에 비할 수 있을까.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 투구, 8회까지 미네소타 타선을 2안타로 틀어막은 다카기는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종료는 이제 눈 앞,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눈이 여기저기서 반짝거렸지만 미네소타 선수단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올 시즌 31홈런을 때린 크리스 스나이더는 마지막 타석에서도 삼진을 헌납, 더는 보기 어려웠는지 한 팬은 고개를 떨궜다.

딱 ~ !

“이번에는 투수 앞, 차분하게 1루에 송구합니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7차전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뭐 ··· 완전범죄네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다카기는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2년 연속 WS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보호 마스크를 벗어던진 크로스 포수는 완전범죄를 달성한 에이스를 번쩍 안아 올렸다.

누가 보면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도 한 줄 아는 모양, 미네소타 팬들이 하나 둘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보스턴 선수단은 마운드 위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악당이라도 이기면 주인공, 그 선봉에 선 다카기는 ALCS MVP 수상이라는 영광을 손에 쥐었다.

관심에 둘러싸인 건 당연, 샴페인 파티를 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나눴다.

“오늘 돈론의 슬라이딩에 숀 행크가 부상을 입었는데, 그 플레이가 경기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요.”

다카기는 한마디로 논란을 잠재웠다.

루상을 벗어난 것도 아니고 규칙에 어긋난 게 있었다면 주심이 벌써 조치를 취했을 거다. 그런데 그 플레이가 경기에 무슨 영향을 줬다는 건가.

그리고 고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증명할 수 있나. 악당은 마지막까지 악당다워야 하는 법, 숀 행크가 2루를 지켰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투수가 몸 쪽 공을 던졌다면 타자를 맞출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해야 합니까? 돈론은 병살을 막기 위해 전력 질주했고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 것뿐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 ··· 아닙니다.”

계속되는 인터뷰, 한 기자가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당신 목에 현상금이 걸렸다고 생각해보세요. 도망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 아닙니까? 저는 그 추격을 따돌린 것뿐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잡히지 않을 겁니다. 아, 이 말도 꼭 기사에 실어주세요.”

“뭘 말입니까?”

“저 같은 흉악범에게 200만 달러는 너무 낮은 현상금이죠. 좀 더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카기는 홉우드를 압박했다.

기왕 내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면 마지막까지 가봐야 하지 않겠나. 200만 달러는 너무 낮으니 500만까지 걸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도발, 하지만 홉우드는 아무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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