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56화 (156/361)

156화. 간헐적 단식 - (3)

[다카기, 오늘도 승리 추가 실패]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전선에 이상기후가 감지됐다.

통산 22번째 지구 우승을 향해 순항하던 보스턴은 6월 17일부터 슬슬 미끄러지더니 7월 들어 내리 4연패를 당하며 2위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다카기는 이 기간 동안 3경기에서 승리 없이 1패만 떠안았다.

세부지표는 평균자책점 3.37, 18과 2/3이닝 동안 삼진 26개, 시즌 초부터 보여준 압도적인 활약과 거리는 있지만 제 몫은 다 했다.

그래도 안타까운 건 에이스가 연패를 끊어주지 못했다는 것, 야구팬들은 이를 두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혹시 분석 당한 거 아냐?]

[최근 3경기만 놓고 보면 BABIP이 0.316이나 된다. 방망이에 걸리는 타구가 많다는 거지. 그동안은 운이 너무 좋았어]

[미안한데 BABIP은 운과 큰 연관 없어. 빅터 맥알리스터의 2010년 성적을 보라고]

한 팬은 다카기의 부진이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2010년, 애틀랜타의 빅터 맥알리스터는 fwar 8.5 bwar 10.1이라는 역대급 시즌을 보냈다.

시즌 성적은 17승 7패 평균자책점 2.37, 아메리칸 리그 만테냐 어워드를 수상했다.하지만 이 수상은 메이저리그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워싱턴의 벤자민 쿱이 22승 4패 평균자책점 2.39를 기록하고도 만테냐 어워드를 빼앗긴 것, 거기다 쿱은 맥알리스트보다 12이닝 많은 232이닝을 소화했다.

이건 누가 봐도 벤자민의 승리 아닌가?

하지만 깊게 파고 들어가면 사정이 좀 달랐다.

• 빅터 맥알리스터(2010 시즌)

fwar 8.5, bwar 10.1, FIP 2.58, BABIP 0.303

• 벤자민 쿱(2010 시즌)

fwar 6.2, bwar 5.6, FIP 2.96, BABIP 0.256

BABIP은 논란이 있는 지표라고 쳐도, 수비무관 평균자책점에서 쿱은 맥알리스터에게 확실히 밀렸다.

당시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납득하는 분위기, 다카기는 시즌 초부터 1점 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지금은 2.16으로 올라갔지만 수비무관 평균자책점은 여전히 1.98이다.

3루를 보던 잭 개리슨이 뇌종양으로 이탈하고, 수비 지표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폴 돈론, 후안 위긴스가 외야를 책임지고 있는 보스턴, 이런 환경에서 수비의 도움을 받는 게 가능한 일인가.

최대한 많은 삼진을 잡아야 하는 환경, 최근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파고 들다 맞는 경우가 늘고 있다.하지만 다카기는 이걸 운이 있고 없고로 치부하지 않았다. 애초에 BABIP이 평균 0.300에 수렴한다는 건 엉터리 이론이다.

[안타수-홈런]/[타수-삼진-홈런+희생플라이]

BABIP을 계산하는 공식을 잘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는 땅볼 비율이 높은 투수보다 BABIP이 오히려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다카기는 빠른 볼로 타자를 윽박지르고 삼진도 많이 잡는 법, 이런 투수가 BABIP이 조금 높게 나왔다고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BABIP을 운운하며 흔들어 대는 팬들은 있기 마련, 다카기는 한 귀로 듣고 넘겨버렸다.

이 세상엔 타인의 성공보다 불행에 환호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법, 내 실패를 바라는 인간이 한 두 명일까?넘어지라고 입바람을 불어 봤자 뿌리가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법, 차분하게 다음 등판을 준비했다.

“자, 다카기 선수가 시즌 17번 째 선발 등판에 나섭니다. 올 시즌16경기 등판, 8승 2패 평균자책점 2.16, 100이닝 동안 볼넷 24개, 탈삼진은 141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짐 브라이스 감독에게 올스타전 출장을 고사했다고 하죠.”

올스타전 감독은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은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로 돼 있다.브라이스 감독은 다카기를 선발로 지정해 체면을 세워줬지만, 다카기는 올스타전을 포기하고 전반기에 한 경기 더 등판하는 쪽을 택했다.

여론에선 이걸 두고 왈가왈부하겠지만 지금은 2위로 미끄러진 팀을 올려놓는 게 우선, 초반부터 기어를 끌어올렸다.

상대는 AL 동부지구 4위 탬파베이, 약체지만 지금 우리가 방심할 입장인가. 4연패를 당하고 있으니 동료들도 정신을 바짝 차리겠지.

브라이스 감독도 박수를 치고 목소리를 높이며 초반부터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초구, 들어왔다는 판정입니다.”

“최근 다카기가 너무 패스트볼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럼 이 정도 구위를 가진 공을 놔두고 변화구를 던지라는 겁니까? 제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됩니다.”

“소리 없이 흐르는 강이 깊고, 빈 수레는 요란한 법이죠. 이 선수는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다카기는 첫 타자를 빠른 볼 세 개로 처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오늘 따라 기합이 잔뜩 들어간 분위기, 야수진도 긴장을 바짝 끌어올렸지만 다카기는 첫 아웃카운트 5개를 혼자서 처리했다.

3루와 마운드 사이로 굴러온 타구가 하나 있었지만 이것도 본인이 처리, 우리도 일 좀 하자는 농담을 건넬 분위기가 아니라 다들 입을 다물었다.

‘저게 진짜 에이스지.’

브라이스 감독은 승부욕에 불타는 다카기를 나쁘게 보지 않았다.팀이 연패를 당하면 끊어주고 연승을 달리면 그 분위기를 이어줘야하는 게 저 자리다.작년 시즌은 여유가 넘친 탓인지 다소 가벼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최근 들어 투구에 임하는 자세가 제법 진지해졌다.

그리고 때론 묵직한 분위기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것도 에이스의 역할, 최근 선수들이 이렇게 진지한 적이 있었던가.

한층 더 성장한 모습, 브라이스 감독은 물론 수더랜드 단장도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헛스윙! 삼진입니다! 조시 필더만도 삼진, 첫 8타자 중 무려 7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있습니다!!”

“역시 맹수는 굶주릴수록 위험해지는 법이죠. 최근 승리가 없었던 게 동기부여가 된 것 같습니다.”

다카기는 9번 타자 샘 해밍스턴까지 삼진으로 처리하며 3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지금까지 투구만 놓고 보면 포수와 1루수 외엔 병풍, 좌익수 폴 돈론은 따분하다는 얼굴로 4회를 맞이했다.

최근 메이저리그가 홈런 열풍에 휘말리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타구의 절반 이상은 땅볼이다. 이런 환경에서 외야수가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래도 프로인 이상 정신줄을 놔선 안 됐는데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졌다.

따악 ~ !!

이때 날아든 플라이 볼, 넋 놓고 있던 돈론은 전진스텝을 밟았지만 이내 후진 기어로 전환했다.

글러브 위를 넘어가는 타구, 어이없는 실책에 홈팬들은 분노했고 야수진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동안 타자 주자는 3루까지 들어갔다.

이 정도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 작년부터 형편없는 외야수비로 질책을 받은 돈론은 2년 차 시즌에도 달라진 게 없는 모습으로 모두를 실망시켰다.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음.’

다카기는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다음 타자를 마주했다.

타석에서 선구안을 발휘하는 녀석이 왜 외야에만 나가면 코미디언으로 변신하는 건가.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짧은 시간에 집중해야 하는 타석과 달리 외야는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장타력이 없는 선수를 대타로 돌리는 건 비생산적, 안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야에 넣긴 뭣하니 브라이스 감독도 외야로 돌리는 건데, 시즌 내내 저런 식이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안 하는 법, 수비는 몰라도 타격은 어느 정도 해주고 있으니 눈치를 줄 생각은 없었다.

딱 ~

이어지는 2번 타자 루 오헤다의 타석, 원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도 오헤다는 어정쩡한 체크 스윙을 했다.

방망이에 맞은 타구는 홈 플레이트를 맞고 높이 튀었고, 기회를 엿보던 3루 주자는 홈으로 달려들었다.

데이비드 크로스 포수는 타구를 직접 처리하려고 했지만 반응이 한 발 늦었고, 그 사이 타구를 잡아낸 다카기는 3루 주자를 직접 처리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 태그아웃을 당한 미치 윌리엄스는 아쉬운 마음에 헬멧을 집어던지며 펄쩍 뛰어올랐다.

항의하고 싶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이건 아웃, 그 짧은 시간에 낙구 지점을 잡아내 주자를 태그아웃 시킬 확률이 얼마나 될까.

홈 플레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타구라 투수 입장에선 무작정 뛰어올 만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그런 판단을 했다는 게 놀라울 뿐, 윌리엄스는 바닥에 나뒹구는 헬멧을 수거해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보시죠. 지금은 타구가 태그 하기 좋은 곳에 떨어졌네요.”

“그렇다고 해도, 마운드에서 여기까지 달려올 투수가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거기다 지금은 포수가 잠시 타구를 잃었어요. 투수가 처리하지 않았다면 실점을 내줬겠죠.”

보스턴 현지 중계진은 문제의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야구가 아니라 잘 짜인 묘기를 보는 느낌, 어쨌든 그렇게 9번째 아웃도 자기 손으로 처리한 다카기는 느릿느릿 마운드로 돌아왔다.

3루 주자는 잡아냈지만 원 아웃에 주자는 1루, 후속타자들을 처리하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얼른 지나가자.’

돈론은 다카기 근처를 빛의 속도로 지나쳤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분위기도 아니거니와 괜히 한마디 했다가 일이 커질 분위기, 타석에서라도 실책을 만회하고자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선발 투수의 호투가 이어지면서 양 팀은 6회까지 0대 0, 팽팽한 접전을 벌였고, 다카기는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브라이스 감독은 마운드로 향하는 에이스의 뒷모습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본인은 팀 승리를 위해 올스타전 등판을 포기한다고 했지만, 브라이스 감독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며 말렸다.

어지간하면 투구 수를 관리해 주고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기에 밀어 넣을 생각이었는데, 설마 오늘도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저 어린 선수가 팀을 짊어지고 있다는 건 감독 입장에서도 씁쓸한 일,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뭘 어쩌겠나.

브라이스 감독은 평소 선발 투수의 투구 수를 철저히 제한하는 스타일이지만 오늘은 마음대로 날 뛰게 내버려뒀다.

딱 ~

“유격수 정면, 1루에서 잡아냅니다. 투구수가 이제 100개가 됐는데 역시 올스타전 등판은 포기하는 것 같군요.”

“사실 이 선수를 제외하면 최근 보스턴에서 안정적인 투구를 해주는 선수가 없습니다. 프론스키도 작년 같지 않아요.”

작년 시즌 16승을 거둔 프론스키는 올 시즌 5승 5패 평균자책점 4.37에 그치고 있다.

2선발이 이 지경인데 6월 중순까지 AL 동부지구 1위 자리를 지킨 게 기적, 불펜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에이스가 반드시 끊어줘야 하는 연패, 제정신이 박혔다면 이 투구에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와아아 ~ !!”

7회를 마친 에이스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평소 저급한 말로 상대팀을 도발하던 극성팬들도 지금만큼은 경건한 마음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지만, 다카기는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말았다.

노 히트게임 도전이 깨지는 순간, 사방에서 아쉬움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고독한 에이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따악 ~ !!

“아 ··· 이 타구가 내야를 빠져 나가는군요. 1루 주자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진출합니다.”

“투구 수가 110개를 넘겼거든요. 브라이스 감독이 평소 90개 이내로 투구 수를 제한했기 때문에 힘이 빠졌을 만도 합니다.”한참을 망설이던 브라이스 감독은 마운드로 향했다.

내리고 싶지 않지만 내려야 하는 상황,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다카기는 글러브를 허리에 댄 채 다가오는 그림자를 외면했다.

“XXXX!!”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 하지만 더그아웃에 입성한 영웅은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여유가 넘치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놀랄 만한 상황, 통역을 맡은 트래비스 이시카와가 따라붙을 뿐, 누구도 그 뒤를 밟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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