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He could do everything - (16)
[디퍼 조항 있었나?]
5월 12일, 지역 신문 기자가 낸 기사는 보스턴 일대를 강타했다.
다카기가 보스턴과 맺은 13년 짜리 계약에 숨겨진 뭔가가 있다는 것, 실제로 뉴욕과 장기계약을 맺은 패트릭 브린은 보장금액 1억 8천 만 달러 외에, 계약기간 이후에 지급하는 금액이 4천만 달러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브린이 맺은 계약은 구단에게 유리한 계약이다.
계약기간 이후에 디퍼되는 계약이면 그해 미국연방이자율을 기준으로 세율이 적용되는데, 연방이자율은 매년 조금씩 조정 되기 때문에 사치세를 내는 팀이라면 연봉이 디퍼 되는 것만으로도 페이롤을 줄일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디퍼라는 개념이 계약기간 내에 해가 갈수록 연봉이 높아지는 backload 딜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예를 들어 구단이 한 선수에게 5년 1억 달러를 줘야한다면 4년 동안 6000만 달러를 주고 마지막해에 4천 만 달러를 몰아줘도 상관 없다.
그리고 페이롤 계산에선 매년 2000만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계산, 그래봤자 조삼모사지만 계약기간 내에 약속한 돈을 모두 지급해야하는 건 구단에게 분명 부담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카기의 경우는 어떨까.
다카기는 13년 2억 2천 만 달러 계약을 맺었고 6년 차에 옵트 아웃을 발동할 수 있는 조항을 얻었다.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2023년 1100만 달러를 시작으로 연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 옵트 아웃을 압둔 2028년엔 2550만 달러로 급증한다.
즉 계약기간 내에 연봉이 늘어나는 백로드 딜이었던 것, 13년 2억 2천 만 달러가 염가 계약처럼 보이지만 마냥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계약 6년 차 까지 연봉은 계속 상승, 옵트아웃 실행 안하면 막말로 7년 동안 1억 달러만 받고 드러 누워도 상관없다.
물론 계약기간 내에 연봉은 다 지급 되어야 한다.
브린이 맺은 계약이 너무 커서 다카기의 계약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던 것, 거기다 계약 기간 내에 모든 연봉을 지급해야 된다는 점은 분명 구단에 부담 되는 일이다.
연장 계약에서 언제나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던 보스턴이 루키에게 이런 대우를 해준다?
130년이 다 되가는 구단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우, 자세한 계약 내용이 공개되면서 다카기의 팀 내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증명됐다.
구단 입장에선 거의 평생 떠받들어야 하는 왕자님, 하지만 이 내용에 불만을 제기하는 팬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활약, 반면 디퍼 조항이 공개된 패트릭 브린은 뉴욕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1억 8천 만 달러가 아니라 2억 2천만 달러였어?]
[이거 완전 돈 낭비잖아.]
첫 경기에서 9이닝 1실점 호투를 펼친 브린은 이후 5경기에서 2승 2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했다.
나쁜 투구는 아니지만 투자햐 돈에 비하면 아쉬운 활약, 거기다 뉴욕은 작년에 쿠사나기 하루타에게 1억 달러가 넘는 대형계약을 안겨줬다.
두 선수에게 투자한 돈은 3억 달러 이상, 하지만 쿠사나기는 올 시즌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5.67, 재앙급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카기 한 명에게 2억 2천만을 쓴 보스턴이 현명해 보일 정도, 이런 복잡한 배경 속에서 보스턴은 뉴욕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으 ~ 나 오늘 못 뛸 것 같은데”
경기를 앞두고 보스턴의 3루수 잭 개리슨은 심각한 두통을 호소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더 심해지는 통증, 브라이스 감독은 무리하지 말라며 개리슨을 병원으로 보냈다.
문제는 3루 자원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 보스턴은 외야진이 포화상태지만 내야는 사정이 좀 다르다.
거기다 유격수 맥 리스는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당한 갈비뼈 골절 때문에 송구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중, 맥 리스를 1루로 돌린 탓에 내야진은 더 얄팍해졌다.
빈자리를 채울 선수도 마땅치 않고 거기다 잭 개리슨까지 두통으로 결장한 상황, 브라이스 감독의 고민은 깊어졌다.
“제가 3루 볼까요?”
이 때 다카기가 대타를 지원했다.
원래 유격수 출신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3루를 봤던 몸,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내야수로 출전한 적은 없지만 자신감은 충분했다.
“자네는 안 돼. 아니, 꿈도 꾸지 말라고”
하지만 브라이스 감독은 출전을 만류했다.
3루는 유독 강습 타구가 많은 자리, 그런 위험한 곳에 누가 에이스를 밀어넣겠나. 내가 노망이 들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못을 박았다.
“대신 외야를 봐 줄 수 있겠나?”
“상관없어요.”
브라이스 감독은 대안을 제시했다.
다카기는 가끔 야수로 기용해 줘야 하는 선수, 후안 위긴스를 3루로 돌리고 다카기를 우익수에 기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위긴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 위긴스는 강습 타구에 트라우마가 있다며 3루 기용을 거부했다.
“자네 마이너리그에서 3루 본 적 있잖아?”
“본 적은 있지만 내 의지는 아니었다고요.”
그렇게도 3루가 싫을까.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선수들끼리 서로 합의를 봐서 3루수를 정하도록 했다.
“내가 한다니까. 간단한 일이잖아?”
“감독이 넌 빼고 결정하랬어.”
다카기는 이 자리에서도 3루 출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넌 안 된다며 입후보가 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난 솔직히 네가 이 이상 튀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돈론은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다카기는 이미 에이스로서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3루수로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이면 다른 야수들의 입지는 어떻게 되나, 극성팬들은 조금만 못해도 투수보다 못한 놈이라며 욕을 퍼붓겠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럼 네가 3루 볼래?”
다카기의 공격에 돈론은 입을 다물었다.
외야에서도 수비 부담이 적은 좌익수를 보면서 그런 플레이를 하는데, 그보다 훨씬 부담이 되는 3루에서 좋은 활약을 할 수 있겠나. 네가 3루를 볼 거 아니면 3루를 보겠다는 사람에게 그런 말 할 권리는 없다며 진압했다.
“3루 볼 사람 없으면 내가 나갈 거야. 짐(감독의 애칭)한테도 그렇게 일러두라고”
일방적인 선언에 선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다카기는 후보에서 빼라는 브라이스 감독의 충고가 있었지만 이미 판은 벌어졌다. 선수들을 믿고 알아서 정하라고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실망한 브라이스 감독은 다카기를 3루에 집어넣었다.
여론은 얼마나 선수가 없으면 투수를 3루에 기용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겠지, 그것도 책임을 서로 떠넘긴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지 않겠는가? 에이스를 위험한 곳에 몰아넣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로 했다.
“자, 로버트 클레이튼이 보스턴의 선발로 나섭니다. 올 시즌 7경기 등판, 1승 1패, 평균자책점 3.84, 20이닝 동안 볼넷 7개, 탈삼진은 21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가 많아지고 있죠. 보스턴이 작년부터 선발투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수더랜드 단장도 클레이튼 선수가 그 대안이 되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한편, 수더랜드 단장은 특별석에서 착잡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카기가 3루 출전이라니, 누구보다 이성적인 브라이스 감독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줄은 예상도 못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니 선수들이 서로 3루 출전을 떠넘겼다고 하지 않는가. 마음 같아선 클럽하우스로 쳐들어가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일단 지켜보고 경기 결과에 따라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너 정말 오랜만이다.’
그에 비해 다카기는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3루 베이스 근처를 서성거렸다.
고등학교 시절엔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3루 출전,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선 그게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오랜 만에 연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가슴이 뛰었지만 경기를 앞두고 쓸데없는 흥분은 가라앉혔다.
‘저 자식이 3루를 본다고?’
1회 초 뉴욕의 공격, 선두 타자 모리슨은 보스턴의 선수기용에 코웃음을 쳤다.
모리슨은 다카기에게 빈볼을 맞은 경력이 있지만, 그 투구 재능만큼은 인정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3루라니, 얼마나 선수가 없으면 이런 기용을 하는 건가.
뉴욕은 우타자에 풀 히터가 많은 편, 그런데 투수를 3루에 기용한 이유가 물까? 강한 타구를 최대한 억누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는 도발 아닐까.
로버트 클레이튼이 최근 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모리슨은 너 정도에게 농락당할 우리가 아니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어라, 이게 아닌데’
하지만 모리슨은 첫 타석부터 삼진을 당했다.
모리슨이 풀 히팅에 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 보스턴 배터리는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고집, 평균 93마일 빠른 볼에 예리한 슬라이더를 보유한 클레이튼은 생각보다 쉽게 모리슨을 잡아냈다.
후속 타자 제프리 슈버트와 조 프리츠는 각각 2루 땅볼과 삼진으로 처리, 1회 초 공격이 예상보다 쉽게 끝나면서 분위기는 보스턴 쪽으로 흘러갔다.
‘너만 튀게 할 순 없지.’
이어지는 보스턴의 1회 말 공격, 최근 감이 좋은 폴 돈론은 첫 타석부터 안타를 치고 나갔다.
5월 타율만 따지면 아메리칸 리그 전체 2위(0.369), 볼 카운트 싸움보다 특유의 컨택 능력에 집중하면서 생산력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4월에 죽을 쑨 후안 위긴스가 2번에서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스턴의 경기 당 평균 득점은 4.1점까지 상승, 그래도 작년에 비하면 아쉽지만 투수력이 받쳐주면서 작년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위긴스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무사에 주자는 1, 2루. 데이브 셰퍼드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악 ~ !!
“초구 타격!! 내야를 빠져 나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송구가 빠진 사이 주자들은 한 베이스 씩 더 진루합니다!! 보스턴의 선취 득점!! 무사 주자 2, 3루 기회도 계속됩니다!!”
“지금은 존 헤링 선수가 무모한 짓을 했네요. 물론 저희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지만요.”
보스턴에게 지구 1위 자리를 내준 뉴욕 선수단은 뭔가에 쫓기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홈 송구보다는 주자를 묶는데 집중해야 했는데, 리빌딩을 마친 뉴욕은 선수단이 대부분 젊은 선수로 구성됐다.
분위기가 좋을 땐 말릴 수 없지만, 요즘은 사소한 실수가 패배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다운 된 편, 2경기 연속 실책을 저지른 존 헤링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보스턴 팬들의 감사 섞인 조롱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후속 타자 실 쿠퍼가 병살타를 치면서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았지만 뭔가 아쉬운 결과, 그래도 5번 타자 데이비드 크로스가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달아올랐다.
“다들 정신 차려!!”
초반부터 실책이 반복되자 뉴욕의 개리 페일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했다.
다음 타석은 다카기, 본업이 투수지만 평범한 투수가 아니지 않은가. 올 시즌 홈런은 없지만 14타석에서 4안타를 때려낸 선수, 이 타석에서 승패가 갈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감이 좋은 사람이었군.’
다카기는 보란 듯이 바깥 쪽 공을 밀어냈다.
우중간 깊숙한 곳에 떨어지는 타구, 1루 주자 크로스는 발이 느린 편이지만 2아웃 상황이라 맞자마자 스타트를 끊었다.
“뛰어!! 뛰라고!!”
발이 빠른 다카기는 3루를 앞두고 선행주자를 따라잡았다.
내친 김에 홈까지 뛸 생각인데 발이 느린 주자 때문에 막힌 진로, 3루에서 멈출 생각이었던 크로스는 등 뒤에서 날아드는 독촉에 밀려 홈까지 내달렸다.
좀처럼 보기 힘든 거구의 질주, 막판에 발이 풀렸는지 홈에 입성한 크로스는 총을 맞고 쓰러진 곰처럼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넘게 뛰었지만 이렇게 열심히 달린 건 처음, 본인은 뿌듯했는지 동료들의 놀림에도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다카기는 양팔을 높이 들며 불만을 중얼거렸다.
홈까지 갈 수 있었는데 못 갔다는 항의의 표시,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지만 열혈야구소년은 뚱한 표정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