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51화 (151/361)

151화. He could do everything - (15)

[관리 못 받는 게 자랑은 아닐 텐데]

다카기는 sns를 통해 바로 반격에 나섰다.

패트릭 브린은 매 시즌 3 - 4번은 기본으로 완투를 해줄 정도로 이닝 소화능력이 좋다.

문제는 긴 이닝을 던지다보면 그만큼 실점확률도 높아진다는 것, 브린이 그동안 포스트시즌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이유가 뭘까.

본인이 강판을 거부하다 날려먹은 경기가 한 두 게임인가. 통산 27번의 완투를 기록했지만 그 중엔 완투패도 6번이나 포함 됐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꺾지 못한 고집, 다카기는 뉴욕 팬들에게 착각하지 말라는 충고를 날렸다.

“투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 하는 거야. 무작정 많은 이닝을 던지는 건 투지가 아니라 고집이지. 내가 관리를 받아서 평균자책점이 낮은 거라고? 9회에도 올라갔다가 맞은 게 자랑인가?”

브린은 개막전을 8이닝 무실점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가 홈런을 맞고 실점, 후속 타자까지 볼넷으로 내보내자 불펜은 바쁘게 움직였다.

어쨌든 경기는 뉴욕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찔했던 하루, 다카기는 브린과 나는 비교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너희들 입장은 이해해. 뉴욕은 10년 넘게 우승을 못했으니 구단도 팬들도 다 조급하겠지. 브린도 우승 맛을 못 봤으니 앞으로 몸을 거칠 게 굴릴 거야.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보스턴과 13년 계약을 맺었어, 구단관계자들은 내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보스턴 선수로 뛰길 바라고 있어. 관리를 받는 건 당연한 거야. 우승을 위해 몸을 굴리는 브린과는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고”

브린은 관리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신세다.

뉴욕이 뭣 때문에 브린에게 6년 1억 8천 만 달러라는 거액을 안겨줬겠나. 오로지 월드시리즈 우승, 못해낸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다카기의 입장은 달랐다.

수더랜드 단장은 왜 다카기에게 13년 짜리 계약을 제시했을까. 2억 2천만 달러나 되는 액수는 결코 적은 부담이 아니다.

옵트 아웃 실행권도 선수가 쥐고 있으니 부상을 당하거나 막말로 퍼져버리면 대재앙, 그런데도 장기계약을 제시했다는 건 다카기가 앞으로 팀의 주축이 될 선수라는 걸 인정한 셈이다.

작년에 우승도 제법 했겠다, 보스턴은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 장기계약을 맺은 에이스를 철저히 관리해주는 건 당연하다.

평균 연봉은 브린이 훨씬 높지만, 팀 내 입지나 구단관계자들에게 받는 배려는 다카기 쪽이 한 수 위, 우승을 위해 몸을 굴려야 하는 선수와 비교 당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다카기 하루요시, 이달의 투수상 수상]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15]

[개인 통산 2번 째]

그렇게 다카기는 구단의 관리를 받으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문제는 이를 받쳐줄 동료들의 활약, 작년 시즌 16승을 거둔 앤디 프론스키는 4월에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4.86을 기록했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실망스러운 활약, 제 2의 다카기는 못 돼도 놀런 이스더 정도의 활약을 기대했던 도널드 바이엘도 평균자책점 5.51로 부진, 타선의 부진은 더 심각했다.

작년 포스트시즌에서 7홈런을 때린 후안 위긴스는 한 달 동안 타율 0.115, 홈런은 하나도 못 때릴 만큼 극단적인 부진에 빠졌다.

극적으로 반등한 맥 리스도 월드시리즈에서 당한 부상의 여파인지 장타력이 실종, 8년 연속 30홈런에 빛나는 데이브 셰퍼드도 타율 0.235, 홈런 1개에 그쳤다.

지난 한 달 동안 보스턴 타선이 올린 득점은 2.8점, 메이저리그 전체 28위에 머물렀다.

이런 타선을 등지고 2승을 올리다니, 덕분에 다카기의 투구는 더욱 두드러졌지만 구단 수뇌부 입장에선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선수들도 함께 고민해 볼 문제, 완장은 차지 않았지만 사실상 리더나 다름 없는 프론스키가 회의를 소집했다.

감독은 물론 코치도 끼지 않은 자리, 제약없는 분위기에서 선수들은 솔직한 의견을 내놨다.

“우리가 끔찍하게 못 한 것뿐이잖아, 다른 이유가 있겠어?”

“그런 말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못 돼”

셰퍼드는 각자 잘하면 될 일이라고 했지만 프론스키는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맞받아쳤다.

예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두 사람, 혹시 뭔가 일이 터지는 거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점 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너도 딱히 잘 한 거 없잖아. 무슨 자격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야?”

데이브 셰퍼드는 프론스키의 자존심까지 건드렸다. 겨우 한 달 못 했다고 200승 투수를 듣보잡 취급하는데 발끈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 분위기가 묘해지자 다카기가 앞으로 나섰다.

“워 ~ 워 ~ , 너희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이 자리는 서로 잘 해보자고 모인 거잖아. 누구한테 책임 떠넘길 거면 그냥 호텔로 돌아가자고, 그게 아니라면 머리 좀 식혀”

한방에 정리된 싸움, 이젠 일개 루키가 아니라 베테낭들도 다카기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다카기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놨다.

“이중에 야구 못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들 빅리거가 될 자격이 있으니까 여기 있는 거 아냐. 야구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어”

폴 돈론은 바로 반론에 나섰다.

야구가 언제나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이게 이 달의 투수상을 받은 녀석이 할 말인가.

작년부터 거의 흔들림 없는 피칭을 하고 있는 네가 그런 말을 해봤자 설득력이 없다며 핀잔을 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말대답하지 마.”

바로 배려 없는 막말이 날아들었다.

돈론이 수비가 안 좋은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지난 22일 경기에서 어이없는 위치 선정으로 그라운드 룰 더블을 내준 건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무지 개선이 안 보이는 외야수비, 그렇다고 똑딱질만 하는 선수를 지명타자로 기용하기도 그렇고, 팽하기엔 선구안과 타격 정확도가 너무 뛰어나다.

버리자니 아깝고 끌고 가자니 답답, 다카기는 넌 내가 단장이었으면 당장 팔아버렸을 거라며 면박을 줬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너무 하네”

“뭐가 너무해. 넌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라고”

돈론은 루키 시즌부터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를 잡았다. 16홈런을 때려냈으니 장타력도 어느 정도 있었던 편, 그런데 무슨 망령이 들었는지 작년부터 극단적인 크로스 스탠스를 잡았다.

그러다 부진에 빠지자 슬그머니 오프 스탠스로 컴백, 막판에 반등에 성공하며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 합류했다.

그럼 계속 오프 스탠스로 갈 것이지 올 시즌도 크로스 스탠스로 돌아왔다. 변화가 나쁜 건 아니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타격 폼이 계속 바뀐다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다카기는 넌 그냥 오프 스탠스로 가라며 못을 박았다.

“난 그저 야구를 좀 더 잘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래서 매번 오프 스탠스로 돌아가고 있잖아. 아니야? 너 자신에게 물어 보라고, 뭐가 정답인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논리, 돈론은 알았다며 고집을 꺾었고 다카기의 칼은 프론스키와 셰퍼드를 겨눴다.

“그리고 나는 둘이 그만 화해했으면 좋겠어. 어차피 1년 동안 같이 가야 되는데 언제까지 이럴 거야?”

베테랑이 서로 얼굴 붉히면 팀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법, 다카기가 중재에 나서자 두 사람은 마지못해 손을 맞잡았다.

“사랑한다고 포옹 한 번 해”

“뭐야?”

“싫어? 했으면 좋겠어. 내 바람이야”

보자보자 하니까 가관, 프론스키는 악수는 몰라도 포옹은 절대 못한다며 반발했지만, 셰퍼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하자며 먼저 팔을 벌렸다.

“화해하자는데 이러기냐?”

“난 남자하고 포옹하는 취미 없어.”

“그런 자식이 이 자식 얼굴에 키스 했냐?”

셰퍼드의 강력한 한 방에 분위기는 들썩거렸다.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프론스키는 역전 홈런을 날린 다카기의 얼굴에 키스를 시도했다. 미수로 끝났지만 그 장면은 방송을 타고 전역으로 확산, 남자와 포옹하는 취미가 없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결국 프론스키는 셰퍼드와 포옹을 나눴다. 이 정도로 묵혀뒀던 감정이 씻겨나가진 않겠지만 어쨌든 한결 나아진 분위기, 덕분에 선수들은 좀 더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메이저리그는 선수의 개성이 존중되다 보니 문제점이 있어도 누가 충고를 하기가 어렵다. 본인이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코치도 뭐라고 할 수가 없는 입장, 그래서 팀이 위기에 빠지면 권위 있는 선수가 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경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거다.

나도 잘났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냐, 이런 식으로 시작된 대화는 파경으로 종료, 프론스키와 셰퍼드도 그 전철을 밟을 뻔 했다

어쨌든 잘 해결됐으니 다행, 두 사람이 화해하면서 기자들도 그 배경에 주목했다.

“당신이 화해를 주선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건 두 사람이 합의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제가 뭘 했다고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화해를 주선한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둘이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먼저 고개를 숙여준 셰퍼드, 셰퍼드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화해는 성사될 수 있었을까.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서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폴 돈론, 4타수 3안타, 3타점 폭발]

[7경기 연속 멀티 히트]

하지만 다카기를 겨냥한 미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첫 22경기 동안 0.255로 부진했던 돈론은 이후 10경기에서 0.425를 기록하며 반등, 돈론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다카기가 문제를 지적해 준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는 답을 내놨다.

“내가 뭘 했다고?”

물론 본인은 부정했다.

돈론은 원래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던 선수, 너무 잘 하려다 보니 타격 밸런스가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뭘 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돈론의 반등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철벽을 쳤다.

[다카기, 바이엘한테도 충고 좀 해줘]

[다시 한 번 마법을 보여 달라고]

이후에도 보스턴 팬들의 진심 섞인 장난은 계속 됐다.

도널드 바이엘은 구위는 분명 뛰어난 유망주, 문제는 역시 제구다. 지난 5월 2일 경기에선 2와 1/3이닝 동안 볼넷을 6개나 내주며 대붕괴, 눈 뜨고 보기 힘든 투구에 팬들은 절망했다.

베테랑들의 화해를 주선하고 오락가락하는 돈론을 바로 잡아준 슈퍼 에이스라면 뭔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던 바이엘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다카기에게 조언을 구했다.

“넌 내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알아서 해.”

보자보자 하니 이제는 날 야구선수가 아니라 마법사로 여기는 분위기, 뛰어난 활약덕분에 마운드의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다카기는 이런 분위기가 달갑지 않았다.

“왜 충고를 안 해줘? 나한테는 애정이 없는 거야?”

“너 아마추어냐? 왜 이래?”

“그러지 말고 한마디 해줘. 네가 정말 마법을 부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다카기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보아하니 이 자식은 날 놀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원한다면 소원대로 해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솔직히 널 보면 히라타니가 생각나”

“히라타니? 그게 누구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상대했던 선수”

바이엘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겨우 고등학생에 비견될 수준인가. 하지만 다카기는 빈말 따윈 하지 않았다.

히라타니는 현재 NPB에 데뷔해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150km 중반에 이르는 구위는 여전히 묵직하지만 제구는 물음표가 달린 수준, 고교 시절만 해도 딱히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준급의 컨택 능력을 자랑하는 프로 앞에서 명확히 드러난 한계, 거기다 메이저리그엔 일본 선수들보다 더 뛰어난 컨택 능력에 파워까지 갖춘 선수들이 우글거린다.

상체를 이용한 투구 폼이 마냥 나쁜 건 아닌데, 제구가 안 된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거기다 투포환 선수도 아닌데 롱 토스 훈련은 왜 하는 건지, 잘못하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강속구까지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마법이고 자시고 답이 없는 수준, 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독설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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