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He could do everything - (14)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시범경기를 앞두고 13년짜리 장기계약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다카기가 작년시즌 좋은 활약을 한 건 사실, 하지만 아직 루키라 몇 년 지켜보는 게 어땠을까 라는 신중론도 적잖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측근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계약을 추진한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의 활약을 의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선수들, 특히 제 2의 다카기가 돼주길 바라는 도널드 바이엘을 두고 코칭스태프들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시즌 들어가기 전에 수정하는 게 좋지 않겠나?”
“아니야.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망가질 수도 있어”
바이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100마일을 던진 괴물, 거기다 하체를 거의 쓰지 않는 폼으로 이런 공을 던진다.
하지만 이런 밸런스를 밥 말아먹은 폼은 부상과 제구난조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게 문제, 코칭스태프는 이 상태론 바이엘이 제 2의 다카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은 바이엘이 더 빠르지만 투수로서의 완성도는 천지차이, 그렇다고 수술용 칼을 잡진 않았다. 투구폼 개조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구위까지 하락, 뭣보다 본인이 고칠 마음이 없으니 코치들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들 잘 봤겠지”
바이어는 롱 토스 훈련에서 특유의 강한 어깨를 뽐냈다.
바이어의 훈련법은 무조건 멀리 던지는 것, 하지만 도움닫기로 투구를 하는 방식이 실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본인은 이 훈련으로 구속을 늘렸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데 투구는 투포환이 아니라는 게 문제, 롱 토스 훈련은 일본에서 개발된 훈련법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다카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투수에게 진짜 중요한 건 어깨보다 하체,
롱 토스 훈련으로 효과를 본 일본야구의 전설 사카키 코지로도 하체 훈련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며 후배들에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하루에 5km를 달리고 사이클과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추가되는 가혹한 훈련을 누가 좋아할까. 많은 선수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비법이라는 그럴듯한 궤변으로 서서히 망가지는 몸을 합리화했다.
그에 비해 다카기는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 약혼녀에게 전수받은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긴 시즌을 소화하려면 근력 유지는 필수, 많은 선수들이 코치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자세 수정에 집중했지만, 이미 많은 변화과정을 거친 다카기는 체력관리에만 집중했다.
‘그래도 힘이 좀 남네.’
체력훈련이 끝나고 남은 훈련은 배팅에 투자, 마침 근처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데이브 셰퍼드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공을 찍어 치는 전형적인 다운스윙, 공을 띄우는데 집중하는 요즘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훈련방식 아닌가.
저런 스윙으로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때려낸 건가? 하지만 지난 시즌, 적은 기회를 받고도 홈런을 4개나 친 선수라 우연으로 치부하긴 어려웠다.
30개를 연속으로 때려냈지만 모두 땅볼, 티 배팅을 돕던 코치와 뭔가 대화를 주고받던 다카기는 이때부터 장타쇼를 선보였다.
요즘 타자들은 공을 띄우는 스윙을 하는데, 가끔 배트 헤드가 떨어져서 돌아 나오는 경우가 있다. 헤드가 떨어진다는 건 배트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뜻, 특히 어퍼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이런 경향을 보인다.
예방법은 다운스윙을 한다는 느낌으로 배럴을 세우고 토스 타격을 하면서 그 감을 잃지 않는 법, 다카기도 다운스윙으로 일단 배럴을 세우는데 집중하고 그 다음에 강한 타격을 하는 훈련법을 선보였다.
야구 스승인 킨타 마사시게가 선수시절 자주 했던 훈련 법, 본업은 이제 투수라 타석에 설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훈련은 반복했다.
다운스윙에서 어퍼로 끝나는 궤적, 예술점수도 훌륭했지만 일단 걸리면 떨어질 줄 모르는 파워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봐, 나랑 한 번 붙지 그래?”
데이브 셰퍼드는 다카기에게 대결을 제시했다. 투수가 나보다 멀리치고 있으니 은근 자존심 상하는 일, 하지만 다카기는 정중히 거절했다.
“오늘 훈련은 이 정도면 충분해.”
“얼마나 했다고 그래, 벌써 지친 건 아니잖아?”
“남은 힘은 따로 쓸 데가 있어.”
남은 힘은 약혼녀에게 투자했다.
스프링캠프는 가족 동반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 아닌가. 일본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나눴지만 그 열기는 미국에서도 식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키리코는 힘이 넘치는 약혼남을 걱정했다.
이러다 본게임에서 힘이 빠지는 건 아닌지,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는 다카기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일축했다.
“이러다 쌍둥이 낳겠다.”
“그럼 나야 더 좋지.”
솔로 홈런보다는 투런 홈런이 더 좋은 법, 키리코는 쌍둥이가 아니라 세쌍둥이라도 상관없다는 약혼남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제 곧 3월, 조만간 헤어질 사이라 두 사람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보험은 내가 다 해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다카기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낳을 병원과 각종 보험도 미리 정해뒀다. 미국은 산부인과 예약을 받는 게 어려운 편, 임신 22주 차 미만이면 예약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키리코는 이제 겨우 10주를 조금 넘긴 몸, 예약은 물론 보험 가입도 쉽지 않았지만 성격 급한 예비아빠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일을 처리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해내는 남자, 덕분에 키리코는 별 다른 걱정 없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마쳤다.
“어머니 미국으로 오신데?”
“응, 걱정하지 마.”
다카기는 조만간 혼자가 될 약혼녀가 마음에 걸렸다.
장모님이 미국으로 날아와 보살펴 주신다는 말은 했는데 그래도 걱정, 이런 때는 집을 자주 비워야 하는 신세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아빠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운명, 시범경기 첫 등판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떨어집니다. 지금은 체인지업이죠”
“다카기 선수의 최대 장점은 겁이 없다는 거죠. 보통 이런 상황에선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과감하게 떨어뜨렸습니다.”
떨어지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공은 제구가 안 됐을 때 스트라이크 존에 몰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비해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확실히 도망가는 공, 그래서 투수들은 스플리터보다 슬라이더를 애용한다.
하지만 포심, 슬라이더만으로 긴 이닝을 소화하는 건 불가, 그래서 다카기는 장타 위험을 감수하고 체인지업을 간간히 섞어줬다.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상대 팀도 날 어느 정도 파악했겠지, 포심과 슬라이더 구위에만 의존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시범경기에서 18이닝을 소화하며 삼진을 31개나 잡아낸 압도적인 구위, 13년 연장 계약이 성급했다는 여론은 쏙 들어갔고 다카기는 만 21살에 개막전 선발로 나서는 영광을 품에 안았다.
보스턴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개막전을 책임진 선수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 WBC 불참으로 약간 악화된 일본 여론도 이제는 불만을 제기할 수 없게 됐다.
“초구는 바깥쪽, 볼입니다. 96마일, 초반부터 너무 힘이 들어간 거 아닌가요?”
“글쎄요. 그것보다 저는 이 선수의 달라진 투구 폼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보스턴 현지 해설위원은 미묘한 변화를 잡아냈다.
학창시절, 다카기는 팔을 길게 늘려 던지는 투구 폼으로 구속을 끌어올렸다.
이런 투구는 몸에 부담을 주지 않고 구속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디셉션 효과는 덤, 주자가 있을 때 문제점을 드러낸 것도 아닌데 다카기는 팔을 약간 접어주는 쪽으로 변화를 택했다.
팔을 뻗은 채 날리는 펀치는 힘이 없지만, 접혀진 팔에서 나오는 펀치는 그만큼 힘이 실리는 법, 팔을 살짝 접어준 만큼 암 스윙은 빨라졌고 이전보다 좀 더 힘이 실린 공을 던질 수 있게 됐다.
예술작품에 살짝 리터치를 한 정도지만 그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 오클랜드 타자들은 평균 97마일을 웃도는 빠른 볼과 슬라이더 조합에 밀려나갔다.
투수는 방어를 하는 입장인데 왜 우리가 공격당하는 느낌이 드는 걸까. 거기다 여차하면 몸 쪽도 던질 수 있는 투수, 폭발적인 구위에 심리적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오클랜드는 5회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다.
‘자네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
문제는 보스턴 타선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데이브 셰퍼드라는 최고의 거포를 영입했지만 보스턴 타선은 작년만큼 끈끈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투수가 잘 던져도 점수가 안 나면 말짱 꽝, 오프 시즌 동안 타선 보강에 집중한 수더랜드 단장은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따악 ~ !!
“타격!! 아 ··· 이 타구는 중견수 정면입니다. 보스턴은 3회 첫 안타 이후 10타자가 연속 범타로 물러나는군요.”
“글쎄요. 오프 시즌 동안 펜스를 낮추는 공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별 다른 효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백 베이 파크는 시즌을 앞두고 100년 넘게 유지한 원형을 깨고 새단장을 마쳤다.
구장 리모델링은 수더랜드 단장이 예전부터 추진했던 사업,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고 명분도 얻었겠다, 좀 더 타자 친화적인 구장으로 변화했다.
투수가 본업이 된 다카기에겐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본인은 기자들 앞에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뜻을 표했다.
구단에서 장기 계약을 추진한 만큼, 구장 리모델링을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삼진에 집중하면 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경기, 타자들의 부진이 길어질수록 다가키의 투구는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스트라이크!!]
“초구, 잡아냅니다. 역시 공격적이네요.”
“언제든 스트라이크를 넣을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능력이죠. 오클랜드가 타격이 절대 약한 팀이 아닌데, 오늘 따라 유독 약해보입니다.”
다카기는 2구도 스트라이크 존에 우겨넣었다.
이런 투구는 높은 피안타율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게 뭐 어떤가.
BABIP은 타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투수에겐 큰 의미가 없다. 최정상급 투수나 그저 그런 투수를 비교해도 BABIP은 도토리 키재기, 배트에 걸리면 안타로 이어질 확률은 어느 투수나 비슷하다.
투수에게 정말 중요한 건 타자를 몰아세울 수 있는 능력, 다카기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바깥 쪽!! 하지만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건 안 치는 게 답입니다. 다른 공을 노려야죠.”
3구를 지켜본 싱글턴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언제든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투수, 지금은 바깥쪽으로 약간 빠졌지만 자기도 모르게 배트가 나갈 뻔 했다.
이러다 슬라이더가 들어오면 낭패, 불리한 카운트라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뒤에 두고 맞추는 타격에 집중했다.
‘하아 ~ 여기서 떨어지네.’
하지만 결과는 삼진, 가운데로 오다 떨어지는 공이라 배트가 안 나갈 수가 없었다. 6회도 안 끝났는데 벌써 9번째 삼진 헌납, 오클랜드 선수단은 다카기를 공략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불펜 기용 비율이 높은 브라이스 감독이 저 녀석을 끌어내리길 바랄 뿐, 아니나 다를까 7회가 끝나자 다카기는 교체 권유를 받았다.
“아직 힘이 많이 남았는데요.”
“7회면 충분히 많이 던졌어. 오늘만 던질 것도 아니잖나?”
못마땅했지만 받아들였다.
선발 투수를 길게 끌고 가지 않는 건 브라이스 감독의 스타일, 선수가 그걸 부정하면 감독이 어떻게 어깨를 펴겠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2번이나 이끈 명장이라 다카기도 그 판단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다카기의 낮은 평균자책점은 이닝을 관리해 준 덕분이다.]
음해세력은 이것도 물고 늘어졌다.
작년 시즌, 다카기는 규정이닝만 채웠다면 라이브 볼 역사상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가 됐을 거다.
하지만 구단의 관리 덕분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진 않았고, 포스트 시즌에서도 6이닝 정도만 던지고 불펜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2021시즌도 가볍게 7이닝만 던지고 퇴장, 그에 비해 뉴욕에 둥지를 튼 패트릭 브린은 개막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기록했다.
통산 27번째 완투, 뉴욕 팬들은 패트릭 브린도 그만큼 관리를 받으면 1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을 선수라며 다카기를 은근 깎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