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49화 (149/361)

149화. He could do everything - (13)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해가 바뀐 2021년 2월,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다카기는 수더랜드 단장과 단독면담을 나눴다.

팀 전력 보강을 해달라고 했는데 보스턴은 오프시즌 동안 야수 쪽에 치중된 행보를 보였다.

야수진이 포화상태라 빈센트 맥킬립을 내보내고 앤디 프론스키를 받아 온 게 불과 반 년 전 일이다.

야수보다는 투수진 보강에 힘써야 했지만, 영입한 건 8년 연속 30홈런에 빛나는 데이브 셰퍼드 뿐, 지난 6년 동안 선발진의 한 축을 이뤄준 놀런 이스더는 fa를 선언하고 보스턴을 떠났다.

이번 스토브 리그는 유독 야수 포화, 투수 부족 현상이 두드러졌다.

어중간한 선발 투수들도 몸값이 뛰자 수더랜드 단장은 외부수혈을 포기, 이번 시즌은 많은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 중 제 2의 다카기가 나타난다면 더 좋겠지, 다카기는 유망주에게 올인 하는 단장의 정책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작년 시즌도 그런 식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니 참견은 덧붙이지 않았다.

“13년 2억 2천만 달러면 만족하겠나?”

그보다 중요한 건 연장계약 논의, 다카기는 오프시즌 동안 2억 달러 제안을 걷어찼다.

투수 가치가 잔뜩 오른 최근 추세를 따져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겠지, 수더랜드 단장은 기존 계약에 2천 만 달러를 덧붙이는 통큰 계약을 제시했다.

여기에 6년 동안 규정 이닝을 채우면 옵트 아웃을 실행할 수 있는 규정도 추가, 총액만 따지면 투수로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대 계약 아닌가. 에이전트 제임스 콜튼도 이쯤에서 줄다리기를 끝내자는 제안을 했다.

‘더 끌면 있던 정도 달아나겠지.’

다카기는 고심 끝에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너무 콧대를 세우면 인연이 될 사람도 떠나는 법, 최소 29살까지는 보스턴에 머물 게 됐다.

사인을 받아낸 단장은 이 소식을 바로 기자들에게 공표, 확실한 족쇄가 채워지자 보스턴 팬들은 열광했다.

[패트릭 브린이 누구야?]

[우리는 너희 하나도 안 부러워]

일단 뉴욕으로 이적한 패트릭 브린이 공격 대상이 됐다.

포스트 시즌만 되면 죽을 쑤는 선수가 2억 달러라니, 다카기의 만테냐 어워드 수상을 저지한 경력도 있고 뭣보다 보스턴의 영원한 앙숙 뉴욕의 일원이 됐다는 게 미움을 받는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패트릭 브린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내가 포스트 시즌에 약했던 건 사실, 그에 비해 다카기는 가을 무대를 휩쓸며 월드시리즈 mvp까지 차지 했다.

지금까지 우승반지가 없는 입장에선 속이 쓰린 일, 말싸움보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칼을 갈았다.

* * *

‘돈이 좋긴 좋네’

2월 14일, 드디어 본격적인 스프링캠프 일정이 시작됐다.

80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장관, 물론 이중에서도 계급은 존재한다.

26인 로스터 진입이 유력한 선수들은 클럽하우스를 따로 쓰는데, 이번에 장기계약을 맺은 다카기는 문에서 제일 먼 곳의 라커를 배정 받았다.

사람의 이동이 잦은 문에 가까울수록 팀 내 입지가 좁다는 뜻, 다카기는 1년 전만 해도 문 근처의 라커를 배정 받았다.

젊은 선수에겐 이것도 황송한 일이지만, 이제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은 다카기는 베테랑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만나서 반가워, 가까이서 보니 훨씬 큰데?”

이번에 보스턴에 합류한 데이브 셰퍼드는 다카기에게 악수를 권했다.

셰버드의 공식 프로필 신장은 5피트 10인치, 스파이크를 뺀 신장은 175정도 밖에 안 됐다. 190을 훌쩍 넘는 다카기 앞에 서니 어린애처럼 보일 정도, 하지만 그 눈빛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키는 작아도 근육으로 똘똘 뭉친 신체, 거기다 학창 시절 복싱을 했던 몸이라 주먹에도 일가견이 있다.

오프 시즌 때 격투기 선수의 스파링 상대를 해 줄 정도, 그 실력을 모르고 시비를 걸었다가 얻어터진 선수가 한 두 명이 아니다.

경력이 길어진 지금은 함부로 달려드는 선수가 없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다카기는 셰퍼드의 아픈 곳을 찔렀다.

“인사할 사람을 잘못 짚은 거 아냐?”

“그게 무슨 소리야?”

다카기는 턱으로 앤디 프론스키를 가리켰다.

3년 전, 클리블랜드와 애리조나는 인터리그를 치렀는데 프론스키가 2타석 연속 몸에 맞는 볼을 던지자 셰퍼드는 그대로 마운드로 돌진했다.

많이 맞은 쪽은 프론스키지만 깡과 맷집이 좋아 밀리진 않았고, 두 선수는 외부요인이 개입되기 전까지 꽤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았다.

화가 덜 풀린 프론스키가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셰퍼드에게 글러브를 집어던진 사건은 지금도 유명, 그런 앙숙이 이렇게 재회할 줄 누가 알았을까.

솔직히 셰퍼드도 프론스키가 있는 보스턴엔 오고 싶지 않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과 fa 재수를 위해 단기 계약을 받아들였다.

“됐어. 저 녀석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아”

셰퍼드는 악수를 거부했다.

1년 동안 최대한 서로 안 부딪치는 게 목표, 그건 프론스키도 마찬가지라 클럽하우스엔 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둘 다 베테랑이라 누가 뭐라고 하기에 애매한 상황, 다카기도 이 이상 둘의 관계에 간섭하지 않았다.

“어땠어?”

“괜찮은 것 같아”

훈련이 끝나고 다카기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사람을 품에 안았다.

아이를 임신한 키리코는 한때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미국 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키리코가 입학한 다이이치 대학은 일본 최고 사립명문답게 해외 대학과 많은 연줄을 두고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유학도 가능, 최소 1년은 본교에서 전공 과목을 이수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키리코는 그 조건을 이미 채웠다.

의사가 되려면 좀 더 넓은 곳에서 견문을 쌓는 것도 좋겠지, 마침 임신도 했겠다 약혼남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대학 견문도 마쳤고 이제는 둘만의 즐거운 시간, 스프링캠프 근처에 살림을 차린 어린 부부는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 저녁은 네가 사는 거다.”

“칫, 또 그 소리한다.”

“네가 나보다 부자잖아. 그러니까 토 달기 없기”

키리코는 약혼남의 공세에 볼을 부풀렸다.

다카기는 얼마 전 2억 달러가 넘는 대형계약을 맺었지만 그건 2023년 부터 적용되는 내용이다.

올 시즌 연봉은 작년보다 약간 오른 67만 달러, 그에 비해 키리코는 임신 축하선물로 할아버지에게 건물을 상속받았다.

재정적 격차는 명확, 하지만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다카기는 사소한 부부싸움 끝에 저녁 식대를 지불했다.

‘욕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어.’

키리코는 그런 약혼남을 유심히 지켜봤다.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본인을 위해 돈을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을 때도 여자 친구에게 옷 한 벌 사줬을 뿐, 나머지는 계약금은 어떻게 썼는지 티도 안 났다.

“아니요. 그건 키리코한테 주세요.”

키리코 아버지가 차를 선물하려고 했을 때도 다카기는 정중히 거절했다. 성공한 남자라면 어느 정도 티는 내도 될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는 약혼남, 키리코는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애인이 조금 못마땅했다.

“자기는 스포츠카나 명품 같은 거 욕심 없어?”

“글쎄 ··· 별로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다카기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걸 꼭 착용하고 다녀야 하나, 굳이 욕심이 있다면 집,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 딸린 저택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어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지, 키리코는 듬직한 팔을 끌어안았다.

“그럼 그건 내가 사줄게.”

“그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의사 돼서 돈 많이 벌면 내가 사준다고”

내 남자한테 내가 투자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건가. 수억 엔을 써도 안 아까운 남자, 다카기는 괜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줬지만 키리코는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자는 차가 얼굴이야, 돈도 많이 버는데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남들이 뭐라고 보든 상관없어. 난 나야”

“어휴 ~ 답답해”

다 좋은데 역시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게 흠,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길 건가. 키리코는 이날부터 약혼남의 머리 스타일이나 패션에 애정 있는 참견을 시작했다.

지금도 멋지지만 꾸미면 더 멋있어질 남자, 집과 훈련장만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다카기는 간섭을 귀찮게 여겼지만 그래도 못 이기는 척 받아줬다.

스프링 캠프 첫 날은 하와이안 셔츠 한 장 걸치고 출근했지만, 이틀 째 되는 날은 가죽재킷에 흰 반팔, 청바지, 워크 부츠를 착용하고 클럽하우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옷 못 입기로 소문난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눈에 띌 정도, 다음 날은 흰 반 반팔 티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살짝 걷은 소매 위로 드러난 근육과 194cm나 되는 특유의 비율 덕분에 여심을 흔들기엔 충분, 야구 실력이야 원래 출중했지만 이제는 패션 센스도 괜찮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기자들이 찍은 사진이 패션 잡지에 오를 정도, MLB 사무국도 그런 흐름에 주목했다.

‘우리도 이젠 트렌드를 바꿔야겠군.’

NBA가 인기를 얻는 건 특유의 역동적인 경기 스타일도 있지만, 여론의 관심을 끄는 선수들의 패션 센스도 무시할 수 없다.

MLB는 미국의 국기라는 인식이 있는 만큼 선수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동 중에도 양복을 입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약간 딱딱한 편, 당연히 패션 잡지에 얼굴을 올리는 선수가 많지 않다.

홍보를 해야 인기도 따라오는데 그게 안 되니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는 선수도 드문 편, 옷만 걸쳐도 화제가 되는 선수 덕분에 머리가 굳은 사람들도 조금은 마음이 움직였다.

‘귀찮아 ··· 그래도 해야겠지.’

정작 다카기는 옷을 매번 바꿔 입는 걸 귀찮게 여겼다.

그냥 대충 입고 나가고 싶은데 그 때마다 날아드는 키리코의 잔소리, 스프링 캠프 일주일 째 되는 날엔 카키색 바지로 코디를 맞췄다.

특유의 짙은 색깔은 하얀 모자와 신발로 커버, 바지 발목 부분은 살짝 접어서 21살 청년다운 이미지를 살려줬다.

“너 원래 그렇게 옷 잘 입었냐?”

“그럴 리가 있겠냐.”

평소 관심 없는 척 했던 동료들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충 입고 다녔던 녀석이 이렇게 변하다니, 다카기는 애인의 손길 덕분이라며 겸손을 떨었다.

“네 애인 의대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요즘은 내 코디 맞춰준다고 패션 잡지만 보고 있어.”

선수들은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신한 몸이면 남자한테 이것저것 기대고 싶을 텐데 오히려 약혼남을 챙겨주다니, 이래저래 부러운 놈이라며 질투 섞인 반응을 보였다.

‘난 행복한 놈인가.’

그날부터 다카기는 약혼녀가 뭐라고 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관심이 있으니 이렇게 해주는 거겠지 그리고 남자가 아내 말을 들어야지 누구 말을 듣겠나. 들어서 실제로 손해 본 것도 없고, 엄마 앞에서 순종하는 어린이가 돼버렸다.

“어때, 괜찮아?”

“응, 조금 불안할 정도로”

키리코는 요즘 부쩍 멋있어진 약혼남 때문에 약간 불안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이러다 여자들이 꼬이는 건 아닌지, 하지만 다카기는 내가 임신한 사람 두고 딴 생각할 인간처럼 보이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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