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41화 (141/361)

141화. He could do everything - (5)

따악 ~ !!

“아, 이번에도 안타입니다. 뉴욕이 7대 2로 앞서나가는 군요.”

“이상하게 이번 포스트시즌은 홈 팀이 힘을 못 쓰네요. 이번에 애틀랜타가 원정에서 2연승하고 홈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하면서 NLDS 탈락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보스턴도 유독 홈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네요.”

원정에서 기분 좋은 2연승을 거뒀지만 보스턴은 홈에서 열린 3차전에서 패배를 맛 봤다.

뉴욕의 선발 쿠사나기 하루타는 보스턴 팬들의 야유를 이겨내고 5이닝을 1실점으로 막았지만, 올 시즌 들쑥날쑥 투구를 보여준 놀런 이스더는 이번에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fa를 앞둔 이스더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구단의 연장계약 제안을 거절했다.

이대로라면 결별은 확실, 다카기와 프론스키를 제외하면 확실한 선발자원이 없는 보스턴은 매년 반복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맥 리스의 빈자리를 어찌한다.’

수더랜드 단장의 고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올 시즌 타율 0.296, 33홈런, 109타점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맥 리스는 alcs 1차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본인은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출전을 강행했지만 2차전에서의 활약은 형편없었고,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더는 버티지 못했다.

3차전의 패배보다 더 신경쓰이는 불안요소들, 하지만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 손을 쓰지 못 했다.

그렇게 손 놓고 있다가 4차전도 패배, 홈에서 월드시리즈 진출 축배를 드는 건 물 건너갔고 이젠 리버스 스윕을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유독 홈 팀이 힘을 못 쓴다는 말이 오가고 있지만 그 따위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누가 의지할까. 보스턴 팬들은 5차전에 복귀하는 다카기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다.

‘사이좋게 가보자고, 며칠 전처럼 말이지’

징계를 마치고 돌아온 다카기는 선두타자 모리슨에게 몸 쪽 빠른 볼을 선물했다.

2 - 4 차전에서 상대한 보스턴 선발 투수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구위, 거기다 1차전에서 저격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모리슨은 몸을 움츠렸다.

따악 ~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지금도 몸 쪽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마지막에 가라앉죠. 투심으로 보이는데 역시 히팅 포인트를 잡기 쉽지 않습니다.”

몸 쪽 공은 타자에게 빨리 쳐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투수들은 몸 쪽으로 붙이고 바깥쪽에 변화구를 떨어트리는 패턴을 자주 구사하는데, 다카기는 정반대의 패턴을 보였다.

대부분의 실점을 홈런으로 내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 크로스 포수는 유인구를 좀 더 활용하자고 제안 했지만 제구에 자신이 있는 다카기는 변화구를 많이 던지지 않았다.

‘아뿔싸’

바깥쪽 빠른 볼,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예상한 모리슨은 주심의 판정에 운명을 걸었다.

다행히 울리지 않은 콜, 홈팬들의 야유 속에서 다카기는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뉴욕 여론은 다카기가 스트라이크 콜 우대를 받는다며 시비를 걸었지만 그건 다 주심 재량 아닌가. 진짜 편애를 받는다면 지금 공도 잡아줬겠지. 보스턴 현지 중계진은 방송자료를 토대로 지금 공은 스트라이크가 맞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삼진입니다!! 체인지업으로 모리슨을 돌려세웁니다.”

“정규시즌에서 모리슨이 다카기를 상대로 8타수 3안타 그럭저럭 공략을 잘 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보스턴 배터리는 모리슨을 철저하게 분석해 승리를 거뒀다.

공을 들어 올리는 요즘 타자들은 히팅포인트가 점으로 형성되기 마련, 그에 비해 모리슨은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공이 변하기 전에 때린다.

초구 빠른 볼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건 당연, 실제로 모리슨은 올 시즌 초구 타율이 0.377나 된다.

그래서 초구부터 몸쪽 빠른 볼을 던진 것, 모리슨을 상대로 이런 투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상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볼로 카운트를 잡으면서 이미 절반은 이기고 들어갔다.

모리슨의 또 다른 약점은 타율(0.311)에 비해 많은 삼진(121개), 공이 변하기 전에 때리는 방식 때문에 변화구에 대응이 어렵다.

그럭저럭 괜찮은 선구안으로 커버하고 있지만, 그날 감이 안 좋거나 수준급의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엔 속수무책, 특히 투 스트라이크 이후 변화구 상대 타율은 0.095까지 떨어진다.

초구만 조심하면 못 잡을 것도 없는 상대, 다음 타자는 2구 만에 땅볼로 잡아내 팬들을 안심시켰다.

저게 정말 이틀 동안 보스턴을 괴롭힌 뉴욕의 강타선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괴물처럼 느껴졌던 선수들이 귀엽게 보일 정도, 다카기의 투구는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다시 떨어집니다!! 1회의 장면을 다시 보는 것 같군요. 모리슨은 두 번 째 타석도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를 상대할 땐 슬라이더를 많이 활용했거든요. 그런데 1차전도 그렇고 오늘도 체인지업 비율이 높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좀 더 바깥쪽으로 던지고 있다는 거죠. 역시 타자에게 혼선을 주기 위해서겠죠?”

해설위원의 분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금 던진 공은 슬라이더, 슬라이더는 손목을 비틀어 던지는 공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슬라이더 그립을 쥔 채 포심처럼 공을 던져도 슬라이더 궤적은 만들어낼 수 있다.

슬라이더는 횡 변화에 초점을 맞춘 볼이지만 떨어지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은 구질,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던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슬라이더 특유의 횡 움직임과 큰 낙폭이 합쳐진 결과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사실 다카기는 어느 순간부터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교묘하게 섞인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두 구종은 손목을 트는 방향이 반대라 공존이 어려운 게 사실, 다카기가 손목을 틀지 않는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한 것도 체인지업의 정체성을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다양한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문제점은 어느 순간 구종이 뒤섞여 버린다는 것, 오클랜드의 토마스 더필드가 전반기 좋은 성적을 거두다 후반기에 무너진 것도 다양한 구종을 던지다 구종이 뒤섞이면서 이도 저도 아닌 투구가 된 게 치명적이었다.

다카기도 인간, 다양한 구종을 언제나 마음대로 컨트롤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시도한 변화, 횡으로 휘는 각은 예전에 비해 작아졌지만 낙폭이 커지면서 슬라이더의 활용 빈도는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상대 팀은 다카기가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구분해서 던진다고 오산했다.

어린 학생이 어려운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 자폭한 꼴, 뉴욕 타자들은 현존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마구에 얽매였다.

“다시 떨어집니다!! 삼진!! 오늘 경기 6번 째 탈삼진입니다!! 존 헤링은 오늘 2타석 모두 삼진!! 어제의 4타점 활약이 무색해지는 군요.”

“이건 답이 없네요. 느린 화면으로 보면 포심을 던질 때와 투구 폼이 거의 차이가 없거든요. 거기다 90마일 ··· 타자 입장에선 볼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절벽에 몰린 뉴욕 타자들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보스턴 배터리는 무리하게 투심을 섞지 않았다. 지금 분위기라면 빠른 볼과 슬라이더 조합만으로도 충분, 모리슨(16홈런) - 슈버트(28홈런) - 헤링(33홈런) - 프리츠(27홈런) - 브라운(22홈런)으로 이어지는 뉴욕의 장타 라인은 7회까지 2안타를 때려냈을 뿐, 삼진만 9개를 헌납하는 굴욕을 당했다.

상위 타선이 이 지경이니 하위타선은 벌집처럼 난도질당했고, 다카기는 7회까지 팀의 4대 0리드를 안겨주고 마운드를 넘겼다.

결과는 5대 0 보스턴의 승리, 홈에서 2연패를 당한 보스턴은 다시 시리즈 우위를 점했고 뉴욕의 개리 페일 감독은 씁쓸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오늘 패배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으음 ··· 특별히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난 2경기에서 우리는 완벽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공격은 좋았고 투수들도 각자 제 몫을 다했죠. 다만 마운드에 있는 선수가 다카기였다는 게 패배의 원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보스턴에게 진 게 아닙니다.”

“다카기만 제외하면 뉴욕이 질 이유가 없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ALCS에서 3패를 당했고 그 중 2패를 다카기에게 당했습니다. 오늘 많은 투구를 했으니 내일은 등판하기 어렵겠죠, 7차전에 등판한다고 해도, 오늘 같은 투구는 하기 어려울 겁니다.”

지긴 했지만 보스턴이라는 팀에게 진 건 아니라는 궤변, 그리고 다카기가 안 나오는 경기는 다 잡아내겠다는 뜻 아닌가.

보스턴 선수단 전체를 무시하는 발언, 이어지는 승자의 인터뷰에서 다카기는 개리 페일 감독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야구는 팀 게임이라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이군요. 뉴욕은 보스턴에게 진 겁니다. 누가 뭐래도 그게 진실입니다.”

너 잘났으니 마음껏 잘난 척 하라는 건가?

아마 내 실력을 한껏 띄워주고 자만하게 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태도는 팀 분위기는 물론 선수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지 않은가.

다카기는 뉴욕은 내가 아니라 보스턴에게 진 거라며 못을 박았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6차전에서 시리즈가 끝날 거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럼 위기 상황이 되도 등판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보스턴은 강한 팀입니다. 좋은 선수들이 있는데 제가 나설 이유가 없죠.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도 제가 마운드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옆에 앉은 브라이스 감독은 당황했다.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면 다카기를 마무리로 활용할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본인이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못을 박아버렸으니,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뭐 ··· 그건 노 코멘트로 ··· ”

브라이스 감독의 반응에 기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다카기는 불펜을 못 믿는 거냐며 감독을 다그쳤고, 성화에 밀린 브라이스는 자네 말이 옳다며 다독였다.

‘올라오는 일 없을 거다.’

개리 페일 감독의 인터뷰는 보스턴 선수단을 자극했다. 이 팀에 선수가 다카기 한 명 뿐인가, 다카기가 7차전에 출격한다면 이겨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겠지, 6차전에 끝내겠다는 각오는 더욱 굳건해 졌다.

6차전 선발은 앤디 프론스키, 2차전 승리를 책임진 영웅은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1회에 이어 2회에도 점수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We were not beaten by boston, Not by XXXX peasant]

= 우리는 보스턴에게 진 게 아니야. 너희들 같은 XX 촌뜨기들한테 진 게 아니라고

신이 난 뉴욕 팬들은 보스턴 선수단을 더욱 자극 했다.

보스턴은 유독 다른 주 사람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는 편, 성격도 드세고 사람들의 매너도 최악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길을 물어도 살갑게 웃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 뭣보다 말을 할 때 R 발음이 생략되는 편인데 뉴욕 팬들은 이걸 가지고 촌뜨기니 뭐니 하며 도발을 이어갔다.

‘내 발음은 어떻지?’

이 와중에도 다카기는 발음을 신경 썼다.

나름 괜찮다고 생각은 하는데 미국인들이 듣기엔 어떨지, 타지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어 아닌가. 발음이 어눌하고 이상하면 무시당하기 십상, 지금이야 실력이 받쳐주니 두드러지진 않지만 한번 넘어지면 저 촌놈들이 물고 늘어질 거 아닌가.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계속 말을 주고받으며 발음을 가다듬었다.

“나 지금 괜찮아?”

“뭐가?”

“알아듣는데 불편한 거 없냐고”

폴 돈론은 말을 아꼈다.

그동안 이 녀석의 발음은 크게 신경 안 썼다. 뭔가 잘못 된 게 있으면 통역이 옆에서 바로잡아 줬으니 큰 문제도 아니었고, 솔직히 말만 통하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고 있으니 뭔가 답은 해줘야 했다.

“넌 이 상황에서 발음이 신경 쓰이냐?”

“왜 말을 돌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불편해?”

당황한 돈론은 자리를 피해버렸다.

답을 해야 하는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 그것보다 중요한 경기 중에 왜 이런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완벽주의자인 다카기는 통역을 붙잡고 계속 말을 주고받았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런 행동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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