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He could do everything - (4)
[뉴욕이 이긴다.]
ALCS 1차전을 앞두고 미국의 유명인사들은 뉴욕의 승리를 점쳤다.
보스턴이 최근 10년 동안 3번이나 우승을 했다고 해도 mlb를 대표하는 구단은 뉴욕,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보스턴을 도발했다.
[다카기는 올 시즌 운이 가장 좋은 선수]
한 팬은 다카기의 올 시즌 활약이 심판의 편애 덕분이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져도 주심의 재량에 볼이 될 수 있는 게 야구, 다카기는 올 시즌 스트라이크 존에 던진 공이 콜을 받은 비율로 메이저리그 전체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다카기는 그게 뭐 어쨌냐는 반응을 내놨다.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비율이 높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 팬의 논리가 맞다면 정당한 대우를 받았을 뿐 아닌가.
내가 무서우니 어떻게든 흔들어보겠다는 수작이겠지, 그렇게 이해했다.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에서 열린 ALCS 1차전, 보스턴의 선공으로 전쟁의 막이 올랐다.
“자, 폴 돈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65, 홈런 11개, 59타점, 정규시즌의 아쉬움을 가을에서 만회하고자 합니다.”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역전의 발판이 되는 안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본인도 경기 전 몸상태는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어요.”
초구가 몸 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자 돈론은 불쾌함을 표했다.
올 시즌을 망친 이유는 몸에 맞는 볼, 몸 쪽을 던지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얼굴과 너무 가까웠다.
2구는 차분히 골라내면서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 돈론은 3구를 받아쳐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원정을 온 보스턴에겐 분위기를 탈 수 있는 좋는 기회, alds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맥 리스의 등장에 보스턴 선수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으악!”
하지만 여기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수가 일어났다.
뉴욕의 선발 조 클라이드의 95마일 빠른 볼이 맥 리스의 옆구리를 강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희생자는 펄쩍 뛰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돈론의 얼굴 근처로 날아온 공도 그렇고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전개, 조 클라이드는 고의가 아니라는 제스처를 했지만 보스턴 선수단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과로 끝난다면 법은 필요 없지. 받을 건 받아라’
불펜에서 몸을 풀던 다카기는 조용히 칼날을 갈았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경기를 하는 게 최선이지만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일, 데이비드 크로스 포수도 뜻을 함께했다.
보스턴은 1회 초 공격에서 1점을 획득, 다카기는 예정대로 선두타자 잭 모리슨을 노렸다.
허리 근처로 날아오는 강속구, 깜짝 놀란 모리슨은 피하려 했지만 꼬리뼈 근처를 맞고 주저앉았다. 초반부터 살벌하게 진행되는 경기, 살의를 느낀 주심은 즉시 경고를 줬고 다카기는 알았다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이 XXX야!”
이때 코치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던 모리슨이 마운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뭐라고? 헛소리라 잘 안 들리는데?”
다카기는 잘 안 들린다며 모리슨 쪽으로 성큼성큼 접근, 여차하면 한 판 붙자는 태도는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잘 했어, 넌 아주 착한 아이야.”
실 쿠퍼는 다카기를 붙잡고 다독였다.
멀리서 보면 말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 봐서 한 번 더 던지라며 부추기는 중, 다카기도 주먹을 높게 들어 올린 채 뉴욕선수단과 기싸움을 벌였다.
주심의 중재를 거쳐 15분 만에 재개된 경기, 다카기는 흥분한 마음을 다스리고 1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Good boy, Good boy!”
브라이스 감독은 어느 때보다 격한 환대를 표했다.
맥 리스가 부상을 당하면서 분위기가 약간 침울해졌는데 다카기가 뉴욕의 주포 모리슨을 저격하면서 흐름은 이쪽으로 돌아왔다.
루키치고 벤치클리어링 데뷔는 성공적인 편, 평균 97마일 빠른 볼을 던지는 선수에게 누가 빈볼을 맞고 싶겠나.
맥 리스를 병원으로 보낸 조 클라우드도 몸 쪽 승부는 피하며 전쟁이 확산 되는 걸 방지했다.
‘난 던질 건데?’
그에 비해 다카기는 몸 쪽 승부를 적극 활용했다.
주심이 잡아주지 않아도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씩 섞어 타자의 심리를 압박, 모리슨의 부상을 눈 앞에서 지켜 본 뉴욕 선수들은 움찔하며 몸을 피했다.
기싸움에서 전혀 안 밀리는 루키, 덕분에 원정을 온 보스턴 선수단은 주눅들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
5회 초 잭 개리슨이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투 런 홈런을 날리면서 스코어는 3대 0, 이 한 방은 올 시즌 뉴욕을 상대로 2승을 거둔 다카기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줬다.
“스윙 삼진입니다!! 다카기의 오늘 경기 6번째 삼진!! 스테판 가빈은 오늘 두 타석 모두 삼진입니다.”
“다카기 선수가 올 시즌 후반기 평균 자책점이 1.45, 9월엔 0.94밖에 안됐거든요. 포스트시즌은 지금까지 제로, 이 기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단합니다.”
해설위원의 칭찬이 끝나기 무섭게 다카기는 우중간을 넘어가는 홈런을 허용했다.
정규시즌까지 포함하면 17이닝만의 실점, 그러려니 하고 투구에 임했다.
찔끔찔끔 안타와 볼넷으로 점수를 내주느니 홈런으로 실점을 하는 게 훨씬 이득, 솔직히 홈런보다 기분 나쁜 건 볼넷이다.
산책주루를 하든 배트 플립을 하든 그건 상대의 자유, 담장 너머로 사라진 공의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끝!”
5회 말, 마지막 타자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다카기는 주심의 경쾌한 동작을 흉내내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피해자는 납득 못하겠다며 배트와 헬멧을 투척, 팬들도 주심의 판정에 야유를 퍼부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날 다카기는 6이닝 1실점 투구를 펼치고 마운드를 넘겼고 경기는 6대 4, 보스턴의 승리로 끝났다. 양 팀 모두 불펜이 흔들리며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6회까지 4대 1의 리드를 지켜 준 다카기의 투구가 승패를 갈랐다.
이어지는 승자들의 인터뷰, 뉴욕 기자들은 모리슨을 병원으로 보낸 다카기의 투구에 불쾌감을 표했다.
“혹시 의도하고 던진 공이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너무 쉽게 인정해버린 빈볼, 기자들은 왜 그런 짓을 했냐며 물고 늘어졌지만 다카기는 차분하게 응수했다.
“이 세상엔 참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사과만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면 경찰과 법은 왜 필요하겠습니까? 뉴욕은 맥 리스를 앗아갔고 우리는 그에 걸맞은 대가를 요구했을 뿐입니다.”
“클라우드가 빈볼을 던졌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본인은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하던데요.”
“의도를 했든 안 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의가 있든 없든 살인이 중범죄라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클라우드가 맥 리스의 부상에 유감을 표했습니까? 아니죠. 본인은 고의가 없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했을 뿐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기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다카기는 못 다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솔직히 누구도 다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전에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양 팀 선수들이 온전한 몸으로 페어플레이를 하는 게 최선의 결과죠. 하지만 피해자가 생긴다면 저는 기꺼이 빈볼을 던질 겁니다. 저는 원하는 코스에 언제든 100마일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게 타자의 머리라도 말이죠. 분명 경고했습니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 땐 저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 못합니다. 우리 사이좋게 해보자고요. 앞으로 자주 만날 테니 말이죠.”
이 인터뷰는 뉴욕 팬들을 경악하게 했다.
차라리 클라우드처럼 고의가 아니라고 포장을 할 것이지, 범죄자로 비유하면 내가 했다고 바로 자백한 꼴 아닌가. 솔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어쨌든 원하는 코스에 언제든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다.
[경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다카기에게 4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길어봤자 7차전까지 가는 ALCS에서 이건 꽤 무거운 징계, 수더랜드 단장은 바로 항소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맥 리스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 갈비뼈에 금이 가면서 2차전부터 출장이 불투명해졌다.
그런데 앙갚음을 했다고 우리 선수가 출장정지 처분을 당해야 하나, 보스턴 팬들도 자백을 하면 감형을 해주는 게 법이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지금까지 빈볼을 던지고 자백을 한 선수가 몇 명이나 있었나. 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게 관행처럼 자리 잡았는데, 오히려 그런 놈들을 가중 처벌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뭣보다 클라우드는 맥 리스를 맞추기 전에 돈론 얼굴에 위협구를 던지는 위험천만한 투구를 했다. 이런데도 보복을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솔직하게 자백을 한 선수에게만 징계를 내리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논리에 사무국도 고심했다.
[각각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으로 변경]
다음 날, 사무국은 양 팀의 주축 선수를 병원으로 보낸 클라우드와 다카기를 모두 처벌했다.
뉴욕은 고의가 아니었는데 왜 출장정지를 받아야 하냐며 격하게 반발, 하지만 클라우드의 투구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에 사무국은 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자네 정말 뛸 건가?”
“합니다. 누가 뭐래도 합니다.”
한편, 맥 리스는 진통제를 맞으면서 출장을 강행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2017시즌 이후, 소속팀과 대형 계약을 맺은 맥 리스는 지난 3년 동안 돈값 못하는 선수라며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 오명을 조금씩 씻어내고 있는데 부상으로 물러나는 건 너무 억울, 하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 2번이나 중심타선에 기용되는 건 무리였다. 본인은 하위 타선도 좋으니 경기에 나가겠다는 입장, 자존심을 버린 결정에 브라이스 감독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뉴욕의 모리슨도 아픔을 참고 스타팅 라인업에 들었다.
맞은 부위가 지금도 욱신거리지만 5차전부터 출장정지가 풀릴 그 녀석과의 맞대결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5차전까지 갈 것도 없어.’
이어지는 ALCS 2차전, 보스턴의 2번 째 선발 주자로 나선 앤디 프론스키는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역투를 펼쳤다.
구속이 떨어져 높은 공은 던질 수 없고, 낮게 던지는 공이 노림수에 걸려들면 큰 타구로 이어질 수 있지만, 우직하게 바깥쪽 공을 밀어 넣어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는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굳이 다카기의 출장정지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 되나. 4차전에서 끝내고 월드시리즈 첫 등판에 내보내는 게 최선, 보스턴 선수들도 길게 끌 것 없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따아악 ~ !!
“우측!! 높게 가는 이 타구는!! 담장을 넘어갑니다!! 후안 위긴스의 솔로 홈런!! 오늘도 보스턴이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벌써 3개째 홈런이죠. 미스터 옥토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부상을 입은 맥 리스의 부진은 위긴스가 완벽하게 만회했다.
2회 초, 솔로 홈런으로 방망이를 예열한 위긴스는 5회 초, 다시 쓰리 런 홈런을 날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어제 불안했던 불펜이 제 모습을 찾으면서 경기는 6대 2 보스턴의 승리로 끝났다.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보스턴은 그동안 뉴욕에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정규시즌 통산 상대 전적은 1027승 14무승부 1225패, 포스트 시즌 상대 전적도 이번 시리즈 전까지 15승 17패로 뒤졌다. 그러나 이제는 동률, 보스턴 팬들은 내친 김에 역전까지 가자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