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He could do everything - (3)
‘어떻게 하고 있나 보자’
분위가 묘해지자 다카기는 더그아웃을 뒤로했다.
3차전에 샴페인 파티를 한다며 며칠 전부터 그 소란을 피우다니, 클럽하우스는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구단 직원들은 모니터 화면을 두고 뭔가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자네가 왜 여기에?”
“그냥 와 봤어.”
클럽하우스 매니저의 말도 들은 채 만 채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 루키, 이 때 한 직원이 농담을 던졌다.
“왜? 역시 너도 떨리는 모양이지?”
“웃기지마. 당신들 얼굴 구경하려고 온 거니까. 그건 그렇고 프런트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벌인 건지 모르겠네. 지난번에도 이랬어?”
설레발이 좋지 않다는 건 만국에 통용되는 개념 아닌가. 시리즈도 안 끝났는데 샴페인 파티니 뭐니 호들갑을 떨었던 단장, 왜 그렇게 조급해 하는 걸까.
뭣보다 심상치 않은 클럽하우스 직원들의 표정, 뭔가 알려지지 않은 뒷배경이 있는 건 아닌지, 다카기는 탐문 조사에 나섰다.
“실은 단장이 좀 유별나긴 해.”
“뭐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봐.”
클럽하우스 매니저 경력 24년 차를 자랑하는 얀 스미스는 단장의 징크스를 잘 알고 있었다.
수더랜드는 지독한 완벽주의자, 분 단위로 계획표를 세워 그 일정에 맞춰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면 불쾌함을 드러낸다.
비서 측근들 입장에선 상당히 까다로운 스타일, 그리고 반드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끝장을 본다.
덕분에 선수 영입이나 팀 운영은 확실한 편이지만,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성격,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17년에도 샴페인 파티 문제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1승 앞두고 있었지만, 막판에 역전을 당하면서 파티를 하루 연기했다.
여기서 발동한 단장의 변덕, 경기가 역전 패로 끝나자 수더랜드 단장은 구매해 둔 샴페인을 버리고 새로운 걸 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클럽하우스 매니저는 삼페인을 그대로 창고에 넣었다가 월드시리즈 직행이 확정되자 다시 내놨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수더랜드 단장은 시즌 종료 후, 매니저를 제외한 모든 클럽하우스 직원을 갈아치웠다.
그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아마 내 지시를 어긴 매니저에게 보내는 경고 아니었을까.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는데도 그런 식이라면 패배했을 때 결과는 어떨까.
샴페인은 선수들 입장에선 기분 좋은 물건이지만, 매니저와 직원들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아니, 멀쩡한 걸 왜 처분하라고 한 거야? 그 양반 성격 참 이상하네.”
다카기의 거침없는 발언에 매니저는 흠칫했다.
혹시 누가 들은 건 아닌지, 다행히 단장의 측근들은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중이라 매니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올해는 단장이 처분하라고 하면 할 거야?”
“그래야지, 다른 회사에 부탁해서 여분도 마련해 뒀어.”
잠시 고민하던 다카기는 샴페인을 사재기했다.
겨우 이런 걸로 클럽하우스 직원들한테 스트레스를 주다니, 폐기처분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내가 사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자네 정말 괜찮겠어? 단장이 알면 ··· ”
“괜찮아. 뭐라고 하면 내가 가져갔다고 해.”
단장은 지금 내가 연장계약에 사인 안 해줘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샴페인 좀 빼돌렸다고 단장이 뭐라고 하겠나. 선수에겐 실력이 가장 큰 무기, 무서울 게 없는 다카기는 반기를 들었다.
“처분하게”
“알겠습니다.”
3차전이 패배로 끝나자 수더랜드 단장은 측근을 통해 샴페인을 처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재수 없는 물건이라는 명분은 3년 전과 동일, 어차피 버리는 물건인데 돈 받고 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매니저는 일부 물건은 처분하고 남은 3박스 분량을 다카기에게 넘겨줬다.
통역을 맡고 있는 트래비스 이시카와의 개인차량을 동원해 벌인 은밀한 수송 작전, 아무것도 모르는 단장은 심드렁한 얼굴로 다음 날 열린 4차전을 관람했다.
“홈에서 왜 이 모양이야?”
원정에서 2연승을 거뒀건만 홈에서 2패를 안고 다시 캔자스시티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 새로 구입한 샴페인도 폐기처분인가.
매니저와 클럽하우스 직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량 남아 있는 회사 있어요?”
“있을 리가 없지 이것도 겨우 확보한 거라고”
가까워진 연말 때문에 샴페인 회사들도 물량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고충을 어찌 알겠나.
본인은 지시만 하면 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쪽은 죽을 맛, 클럽하우스 생활이 20년이 넘은 매니저도 또 잔소리하면 그만 두겠다는 불만을 중얼거렸다.
따악 ~ !!
한편, 경기는 7회 들어 반전을 맞이했다.
4대 2로 뒤진 보스턴의 반격, 이번 시리즈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던(11타수 1안타) 폴 돈론이 우측 베이스 라인을 타고 흐르는 3루타를 때려냈다.
캔자스시티는 최근 감이 좋은 맥 리스를 거르고 실 쿠퍼를 상대로 병살 플레이를 유도했지만 폭투가 나오면서 3루 주자는 홈 인, 여기에 실 쿠퍼가 적시타를 때려내며 보스턴은 경기 균형을 맞췄다.
역시 예전 같지 않은 캔자스시티 불펜, 믿었던 카드가 줄줄이 실패하자 조 웨스트 감독은 고개를 떨궜다.
따악!
“이번에는 좌중간에 떨어지는 타구!! 펜스까지 굴러갑니다!! 1루 주자는 2루 3루를 지나 홈까지!! 잭 개리슨은 2루에 안착합니다!! 3연속 안타!! 보스턴이 단숨에 경기를 뒤집습니다!!”
“이제는 슬슬 분위기를 내도 될 것 같은데요.”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한 축제 분위기, 철벽 마무리 스캇 포데스와가 한 점의 리드를 지켜내면서 보스턴은 3년 만에 ALCS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흥분한 팬들은 한참동안 렛츠 고 보스턴을 연호, 다들 더 높은 무대를 기대하며 기분 좋은 귀갓길에 올랐다.
“여러분들도 즐기세요!!”
이 때 수상한 목소리가 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정체는 다카기의 통역 트래비스 이시카와, 밀수한 샴페인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다카기는 팬들도 축제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판단, 귀갓길에 오른 팬들에게 물량을 풀었다.
양은 많지 않지만 분위기를 띄우기엔 충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주차장 안전관리요원들도 본분을 망각한 채 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이 소식은 수더랜드 단장의 귀에도 흘러들어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주동자가 다카기의 통역이라는 건 분명, 일단 측근을 보내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게 했다.
* * *
“그동안 모두 고생이 많았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되겠지, 앞으로도 ··· ”
“유후 ~ !!”
한편, 보스턴 클럽하우스도 축제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연설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선수들은 샴페인을 개방, 말문이 막힌 브라이스 감독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거품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몇 번을 겪어도 기분 좋은 경험, 올해 첫 포스트 시즌을 경험한 다카기도 고글을 장착한 채 샴페인을 난사하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술은 절대 입에 안 댄다고 다짐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일, 별로 맛은 없었지만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너 고생 많았다.”
어제 방화를 저지른 스티븐 루카스와도 축배를 주고받았다.
3차전이 끝나고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녀석, 무거운 짐을 떠안은 선수에게 위로가 무슨 소용인가. 오늘은 승자로 얼굴을 마주하게 됐으니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풀어냈다.
그렇게 얼마나 떠들고 즐겼을까. 단장의 지시를 받은 측근이 내려와 주차장에서 일어난 소동의 진상 조사에 나섰다.
“혹시 자네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건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다카기는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팬들도 즐길 권리가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 하지만 그 샴페인이 단장이 처분하라는 물건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측근은 여기서 그냥 물러날 수 없었다.
“어차피 버리라고 한 거 팬들이 즐기라고 푼 건데 그게 잘못 된 겁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하게 하세요.”
“아니 ··· 나는 자네를 질책하려는 게 아니라 ··· ”
“그리고 지금은 이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 할 말이 있으면 나중에 하시죠.”
결국 측근은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쫓겨났다. 단장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제멋대로 구는 건 아닌지, 기자들의 시선도 있고 일단 자리를 피해 단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럼 됐네.”
수더랜드는 쿨한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재수가 없어서 버리라고 한 물건, 그걸 팬들에게 나눠주는 건 생각도 못했다. 잘했다고 엉덩이를 토닥거려주고 싶을 정도, 남은 시리즈에선 팬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샴페인을 추가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는 짓이 예쁘니 무슨 짓을 해도 예뻐 보이는 게 사실, 경기에서 활약만 해준다면 어지간한 건 눈감아 줄 수 있었다.
[주차장 소동의 범인은 다카기 하루요시]
다음 날, 기자들은 이 소동을 기사로 내보냈다.
단장이 버리라고 한 걸 주워놨다가 팬들에게 풀다니, 이런 발칙한 짓을 한 루키가 지금까지 있었던가. 어쨌든 수더랜드 단장은 잘 한 일이라며 칭찬했고 나름 훈훈하게 끝난 소동, 덕분에 다카기는 이전보다 더 많은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거 홍보가 되겠는데”
한 주류회사는 남은 시리즈에서 샴페인을 무상 지원해주겠다는 뜻을 보스턴 구단에 제안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번 소동으로 다카기가 빼돌린 샴페인 브랜드는 의외의 광고 효과를 냈다. 보스턴이 월드시리즈까지 간다면 효과는 더 극대화되겠지, 내부에서도 승부를 걸어볼만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이번 가을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다카기와 광고계약을 맺는 것도 좋겠지, 에이전트 제임스 콜튼도 계약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파칭코 회사에 비하면 훨씬 나은 계약 상대, 술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돈이 되는 일이라 다카기도 관심을 보였다.
“이 문제는 시즌이 끝나고 논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제임스 콜튼은 다카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연장계약 논의에 광고계약까지, 오프 시즌에도 일감을 몰아주는 고객 덕분에 입이 귀에 걸렸다.
‘그건 출전 안 하는 게 좋겠어. 1센트의 이득도 없잖아’
더 나아가 제임스 콜튼은 WBC 출전에 반대하는 구단과 뜻을 같이 했다.
얼마 전, 일본 대표 팀 감독이 미국으로 날아와 선수차출 문제를 두고 구단과 협상을 벌인 적이 있다.
포스트 시즌에서 이름값이 더 높아지고 있는 고객, 실력뿐만 아니라 팬들의 환호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이런 선수를 WBC에 내보내는 건 재능 낭비, 수더랜드 단장도 그 뜻에 동의했다.
선수는 구단에 소속된 몸, 구단이 허락하지 않는데 뭘 어쩔 건가. 뭣보다 다카기는 고교 시절 2번이나 일본 대표 팀 유니폼을 입은 몸, 일본에서 여론전을 펼친다면 나라를 위한 봉사는 충분히 했다며 반격하는 시나리오도 구상해 뒀다.
[보스턴, ALCS 1차전 선발 예고]
[다카기 하루요시, 뉴욕에서 선발 등판]
그리고 시간은 흘러 10월 16일, ALCS를 앞둔 보스턴은 선발 투수를 예고했다.
ALDS에선 2차전에 등판했지만 이제는 에이스 대우, 역대 수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문을 두들겼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1선발로 나선 경우는 한번 밖에 없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 많은 일본 기자들이 관심을 보인 건 당연했다.
“1선발로 나서는 게 부담되진 않으십니까?”
“매를 처음에 맞든 나중에 맞든 아픈 건 똑같습니다. 딱히 1선발이라고 부담되는 건 없습니다.”
예상했던 반응, 이때 한 기자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WBC 차출을 두고 보스턴 구단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다카기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포스트 시즌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 질문은 시즌이 끝나고 받겠습니다.”
너 따위는 없어도 일본은 우승할 수 있다며 건방을 떤 노인도 있지 않은가. 그럼 내가 안 나가도 상관없겠지, 날 필요로 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의 의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굳이 뛸 이유도 없고, 뭣보다 포스트 시즌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기자들의 정신세계도 이해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