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기대에 응하는 방법 - (1)
[다카기 하루요시, 시즌 2호 홈런]
[대타에서 놀라운 집중력 발휘]
5월 24일, 올스타 투표를 하루 앞두고 다카기는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팀이 3대 2로 앞서고 있는 7회 말 타석에서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빠른 공을 잡아당겨 백 베이 파크 좌중간을 훌쩍 넘기는 홈런을 날린 것,
454피트라는 비거리도 놀랍지만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풀 카운트까지 승부를 끌고 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타석에서 보여준 성적은 27타수 9안타(0.333), 홈런 2개, 4타점, 출루율은 무려 0.437, 표본은 적지만 전문가들은 이 어린 선수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변화구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아메리칸 리그의 조지 웨스트리지]
평가에 박한 보스턴 지역 신문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지 웨스트리지는 만 21살에 풀타임을 소화했고 그 해 타율 0.291, 홈런 24개, 91타점, 출루율 0.404를 기록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올 시즌도 타율 0.311, 홈런 7개, 출루율 0.417을 기록하며 순항 중, 다카기가 세계청소년 대회에 참여했을 때, 미국 현지 해설위원 팀 러셀은다카기를 웨스트리지에 비교한 적이 있다.
그게 정말 현실이 된 것, 하지만 다카기는 그런 칭찬이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럼 뭐해, 투표도 못 받는데’
얼마 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발표한 올스타 후보 야수 명단에 다카기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투수로 뛴 경기가 더 많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뭔가 아쉬운 대접, 마침 클럽하우스를 방문한 기자를 붙잡고 불만을 쏟아냈다.
“투수도 야수처럼 팬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지금 투표 방식은 투수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 할 뿐입니다.”
한국, 일본도 팬 투표로 투수를 뽑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메이저리그는 이런 걸까, 사무국의 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사무국 추천도 투표에 반영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발언이 불이익이 되지는 않을까요?”
이때 한 기자가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투수 투표는 감독 - 선수 투표가 원칙이지만 부상이나 다른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사무국 추천으로 빈 명단을 채울 수 있다.
이런 발언이 혹시 올스타 출전에 불이익이 되진 않을까? 그냥 웃자고 한 말이지만 다카기는 답변을 했다.
“겨우 이 정도 발언에 토라질 정도로 사무국 관계자들 속이 좁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전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제 의견을 제시할 뿐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톰 브래디 커미셔너는 다카기에게 이상한 질문을 한 기자는 앞으로 사무국 출입을 금하겠다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사무국을 향한 구단과 팬들의 원망이 하루 이틀인가.
매일 욕을 먹고 사는데 이 정도 불만을 제기했다고 추천을 안 한다니, 그런 일은 절대 없다며 못을 박았다.
“올스타는 실력과 인품을 갖춘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입니다. 다카기 선수도 그 일원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7월까지 그러한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톰 브래디 커미셔너는 애정 섞인 도발을 날렸다.
다카기가 잘 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루키가 초반에 반짝 열풍을 일으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기세를 7월까지 이어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고꾸라진다면 자격을 박탈당할 뿐,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투표가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을 한 걸까.
네가 잘하면 결과는 따라온다는 도발에 다카기도 바로 응수했다.
[Watch me and Look forward to it]
= 내 활약을 지켜보고 기대하라
SNS에 올린 짧고 굵은 각오, 여론전은 이 정도로 하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 * *
‘뭐가 이래?’
6월 4일, 최근 4연승을 달리고 있는 보스턴은 디트로이트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상대는 승률이 3할도 안 되는 최약체 구단,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는데 주심의 오락가락 판정에 선수들은 인상을 구겼다.
오늘 주심을 맡은 매뉴얼 후저는 메이저리에서 알아주는 오심의 제왕, 작년 시즌도 평균 7%의 미스 콜을 기록하며 많은 선수와 팬들의 혈압상승을 유도했다.
기복이 있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안 좋은 쪽으로 꾸준한 판정, 경기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보스턴 선수들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자세 잡아!!”
주심의 권위를 등에 업은 큰소리, 그래봤자 선수들에게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규정만 허락된다면 지금 당장 면상에 펀치를 날려주고 싶은 심정, 반면 오늘 등판 일정이 없는 다카기는 동료들에게 일어난 소동을 남 일처럼 바라봤다.
‘적으로 둬봤자 의미가 없어.’
선수끼리 싸우는 것도 문제지만 심판과 싸우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최악의 시나리오, 싸우는 게 득이 안 된다면 뭔가 색다른 항의 수단은 없을까. 턱을 오른 손에 댄 채 한참을 고민했다.
“이봐!! 그건 너무 낮았잖아!!”
평소 항의가 많지 않은 브라이스 감독도 소리를 지르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극성으로 소문난 팬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정도는 면역이 된 매뉴얼 후저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봐!! 알고 있어?!! 사람이 멍청한데 부지런하면 재앙이 벌어진다는 거!!”
브라이스 감독은 계속 항의를 이어갔다.
매뉴얼 후저는 올해로 심판 경력 29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굵직한 경기도 제법 많이 봤지만 특유의 오심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사무국이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채용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후저는 나는 할 일이 있다며 사무국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었다.
“나는 포스트 시즌에서 주심을 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판정을 하겠나?”
능력은 없는데 쓸데없이 사명감만 높은 사람, 이런 부류에게 권한을 주면 반드시 문제가 일어난다. 능력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면 문제가 없는데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는 게 재앙, 그렇게 폭주하다 일이 터지만 내 탓이 아니라고 발뺌한다.
차라리 멍청하고 게으른 게 나은 편, 브라이스 감독은 차라리 게을러지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퇴장!!”
“그래!! 한 번 해보자!!”
발끈한 브라이스 감독은 퇴장 지시에 쏜 살 같이 튀어나갔다.
격하게 충돌하는 두 개의 꿀단지, 침을 튀기는 립 배틀이 시작되자 관중석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당신은 멍청하니까 게을러지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해 질 거야!! 알아 들었어?!!”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몇 번 이라도 말해주지!! 넌 최악의 심판이야!! 능력도 없는 주제에 여기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세계 최고 선수들의 경기를 망치고 있잖아!!”
다카기는 이 광경을 재미있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고교 시절 때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광경, 이런 구경을 눈앞에서 한다는 것도 내가 프로가 됐다는 증거 아니겠나.
뭣보다 팬들이 즐거워 하니 만사형통, 하지만 앞으로 좋은 판정을 얻어내긴 글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잠깐, 지금 한가롭게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관중모드도 잠시, 다카기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재미는 있지만 저런 식으로 싸워봤자 경기에 득이 될 건 없다. 오심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도 프로에겐 중요한 미덕, 그렇게 한동안 혼자서 고민하다 대타 출전 기회를 잡았다.
무사 주자 1루에서 잡은 기회, 보스턴 팬들은 열렬한 환호로 다카기를 맞이했다. 잘 치고 잘 보고 잘 달리는 타자, 얼마 전 날린 홈런도 있고 뭔가 해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스트라이크야?!! 어?!! 이봐!!”
“제대로 보라고 이 멍청아!!”
초구는 제법 빠져 보이는데 콜이 울리자 관중석은 들썩였다.
하지만 이런 전개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 다카기는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딱 ~ !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글쎄요. 다카기가 이런 공에 따라 나올 선수가 아닌데, 역시 판정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무국이 벌점제로 오심에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좀 더 강력한 대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자 보스턴 중계석은 분개했다.
누가 봐도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판정, 이런 자가 30년 경력을 앞둔 베테랑 심판 노릇을 하고 있다니 얼마나 웃긴 일인가.
선수도 실력이 떨어지면 방출을 당하는데 그런 게 없는 심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어쨌든 결과는 우익수 플라이 아웃, 경기가 끝난 후 다카기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오늘 득점권 상황에서 소득 없이 물러나셨는데 주심의 판정이 타격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냥 제가 못 친 겁니다.”
“정말 판정에 영향이 없었던 건가요? 많은 선수들이 오늘 불만을 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이 이런 말을 하다니, 의외군요.”
질문을 던진 기자는 의문을 표했다.
다카기는 지금까지 판정에 어떤 불만도 표한 적이 없다. 혹시 고시엔의 영향 때문은 아닐까? 고시엔은 원칙적으로 항의가 허용되지 않는 무대, 항의를 하면 오히려 경기 진행을 방해한다며 여론의 욕을 먹는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 진 탓에 메이저리그에서도 항의를 안 하는 건 아닌지, 그 속마음이 궁금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주심은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에 콜을 하는 게 임무입니다. 콜을 했다는 건 제가 그 공을 칠 수 있다고 믿었다는 뜻이죠. 저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주심이 절 그렇게 높게 평가한 건 예상 밖이지만, 다음에는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여론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오심에 이렇게 대응한 선수가 있었던가. 물론 다카기의 답변은 마냥 신사적이지만은 않았다.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게 뭘 뜻하겠나, 네가 오심으로 판정한 공도 안타로 날려버리겠다는 저항의지, 보스턴 여론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기사도 다카기는 아웃을 당해도 박수를 받을 줄 아는 선수라며 극찬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브라이스 감독에 벌금 1만 달러 부과]
하지만 그 다음 날, 브라이스 감독은 사무국으로부터 벌금 폭탄을 받았다. 주심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는 게 이유, 거기다 MLB 노조 위원회인 WUA는 보스턴 구단에 공식적인 사과까지 요구했다.
“사과할 게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하나.”
수더랜드 단장은 브라이스 감독을 끌어안고 전쟁을 선포했다.
그날 후저 심판의 미스 콜 비율은 무려 9%, 이런 심판을 옹호하고 감싸주니까 문제가 계속 커지는 거 아닌가. 후저가 얼마나 최악의 판정을 했는지 객관적인 자료와 통계자료를 모아 사무국에 제출했다.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게 문제라면 경기 자체를 망친 후저 주심의 판정은 어떻게 책임 질 건가? 사무국이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올스타전을 보이콧 하겠다. 팬 투표도 사무국 추천도 받지 않겠다.”
올 시즌 올스타전은 보스턴의 홈구장 백 베이 파크에서 치러진다.
스폰서를 할 기업들도 이미 다 정해진 상황, 거기다 다카기가 유력한 올스타 후보로 떠오르면서 일본 기업들도 상당수 참여했다.
그런데 보스턴이 보이콧을 해버리면 행사 주최자인 사무국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 거기다 팬 투표도 사무국 추천도 안 받겠다니, 톰 브래디 커미셔너는 뒤늦게 후저에게 처벌을 내렸다.
2경기 출장정지에 벌금 5천 달러라는 비교적 가벼운 징계, 하지만 노조 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립은 절정으로 치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