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남이 하지 않는 일 - (9)
[사무국, 보스턴에 벌금 25만 달러 부과]
사무국은 2경기 연속 물의를 일으킨 보스턴에 벌금을 부과했다.
미네소타전은 가벼운 충돌로 끝났지만 2번 째 벤치 클리어링은 사건이 너무 커졌다. 원인을 제공한 쪽은 어쨌든 보스턴, 빈볼을 던진 하버스태드도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수더랜드 단장은 벌금 따윈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폴 돈론의 이탈, 팀에서 가장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하던 선수가 이탈했으니 손해가 막심했다.
그렇다고 다카기를 대안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이제 겨우 투수로 방향이 잡혔는데 쓸데없는 희망을 줘선 안 되겠지, 트리플 A에서 승격을 기다리고 있던 후안 위긴스가 돈론의 대체자가 됐다.
‘이 녀석도 안 터지는 건가.’
하지만 위긴스는 데뷔전에서 3타수 무안타로 침묵, 다음 경기에서 안타 하나를 추가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은 없었다.
7타석에서 삼진만 4번을 당했다는 것도 문제,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 수뇌부는 보류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원정 6연전에서 3승 3패를 거둔 보스턴은 홈으로 이동, 숙명의 라이벌과 시즌 첫 맞대면을 나눴다.
양 팀은 최근 2년 동안 유망주를 대거 콜 업하고 있지만 결과는 같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팜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 보스턴, 투수 쪽은 그럭저럭 재미를 보고 있지만 타자는 돈론 외에 건진 게 별로 없다.
그에 비해 뉴욕은 올리는 유망주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작년 시즌 7월에 콜 업 된 잭 모리슨은 올 시즌부터 주전 2루수로 기용됐고, 지금까지 AL 타율 1위(0.363), AL 최다 안타 2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 작년 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제프리 슈버트, 존 헤링, 조 프리츠, 제레미 브라운 등, 라인 업 상당수를 젊은 선수로 채우고 있다.
보스턴 보다 한 발 앞서나간 리빌딩, 최근 10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 3번을 거뒀지만 뉴욕을 향한 보스턴 팬들의 열등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보스턴이 86년 동안 우승을 못하는 동안, 뉴욕은 33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진출, 그 중 25회 우승을 쓸어 담았다.
앞서가는 상대를 쫓는 투지도 하루 이틀이지, 그런 역사가 80년 넘게 반복되면 투지도 질투와 열등감으로 바뀌기 마련, 뉴욕이 다시 앞 서나가자 보스턴 팬들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네 엄마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이거 네 엄마지?]
극성팬들의 주요 타깃은 잭 모리슨, 모리슨의 어머니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포르노를 찍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전력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성년자 성범죄에 엄격한 미국, 당시 사건에 관련된 자들은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총책임자는 모리슨의 어머니가 운전면허증을 위조한 가짜 신분증에 속은 것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밝혀진 진실, 모리슨의 어머니가 신분증을 위조한 건 사실로 드러났다.
거기다 이 일이 돈이 되자 본인이 아이디어를 제시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데,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증언과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결국 모리슨의 어머니는 위증죄로 처벌을 받았고, 그런 어머니가 부끄러웠던 모리슨은 지금까지 가정사를 철저히 숨기고 살아 왔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기자들의 끈질긴 추격과 파파라치들의 활약으로 공식 기사가 났다.
한 때 4할을 넘겼던 타율은 0.363까지 추락, 보스턴의 극성팬들이 이걸 그냥 두겠는가. 몇 몇 팬들은 모자이크로 가린 사진까지 들고 와 노골적인 도발을 이어갔다.
“저거 그냥 둘 겁니까?”
경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건만, 뉴욕의 개리 페일 감독은 주심에게 개념 없는 행동을 저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도발도 정도껏 해야지 저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경기 진행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주심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 또 뭔가 터지겠네. 저건 아니지’
다카기는 불펜에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
이틀 연속 벤클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무국이 징계를 내린 게 불과 삼일 전이다. 그런데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팬들, 다카기는 그들의 욕구를 채워줄 투견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저 야구 선수일 뿐, 어떤 상황에서도 내 플레이를 하겠다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내 엄마 XX다. 어쩔래?’
1회 초, 원정팀 뉴욕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선두 타자는 잭 모리슨, 엄마 문제로 언제까지 끌려 다닐 순 없지 않은가. 내 목표는 메이저리그 정상, 저런 정신병자들을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마음을 다스렸다.
따아악 ~ !!
“오 ··· 멀리 가는데요. 이 타구는 보스턴 불펜 쪽으로 떨어집니다!! 잭 모리슨의 시즌 3호 홈런, 뉴욕이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도대체 이 꼴을 언제까지 봐야하는 거죠.”
보스턴 중계석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늘 경기 전까지 놀런 이스더는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6.85를 기록했다. 특히 1회 평균자책점은 8.71, 지난 5년 동안 60승을 넘게 거둔 투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차라리 구위가 받쳐주고 멀티 이닝 소화가 가능한 다카기를 내보내는 게 나았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쓸데없는 참견을 해버렸다.
“XXXX!! all of you!!”
한편, 홈을 밟은 잭 모리슨은 보스턴 관중석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깔보던 선수에게 한 방 먹었으니 기분이 더럽겠지, 한 방 더 먹으라고 디저트까지 날려줬다.
흥분한 관중이 욕설로 대응하면서 점차 심각해지는 분위기, 보다 못한 주심은 잭 모리슨은 물론 일부 관중들까지 퇴장조치 해버렸다.
주심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리슨, 그걸 붙잡아 세우는 감독, 벤클 상황은 아니라 보스턴 선수단은 자리를 지켰다.
“그러니까 내가 말 했잖아!! 저 자식들 퇴장시켜야 한다고!! 이건 다 당신 때문이야!!”
개리 페일 감독은 어느 때보다 격한 반응을 보였다.
모리슨이 욕설을 한 건 잘못이지만 이 사태는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일을 키워놓고 퇴장을 지시하는 건 뭔지, 당신이 그러고도 주심의 자격이 있느냐며 거친 말을 퍼부었다.
‘재미없으니까 다들 그만하지’
길어지는 논쟁에 다카기는 인상을 구겼다.
뭐 이런 일로 시간을 끄는 건지, 거기다 잭 모리슨과의 맞대결을 은근 기대했는데 퇴장을 당했으니 의욕이 팍 꺾여버렸다.
어쨌든 게리 패일 감독은 경기 진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퇴장 조치, 15분 만에 경기가 재개됐다.
따악 ~ !
모리슨의 선제 홈런에 기세를 탄 뉴욕 타선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스더는 1회에만 3점을 내주며 붕괴,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는 브라이스 감독을 마운드로 내몰았다.
해 줄 수 있는 말은 야수를 믿고 던지라는 말 뿐, 얻어터지는 투수에게 어떻게 너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하겠나. 잘 생각해보면 야수를 믿으라는 말은 넌 삼진 잡을 능력이 없다는 모욕이나 다름없다.
이스더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 할 말이 없었다.
‘나 오늘도 문 닫아야 돼?’
3회 초, 스코어가 6대 1로 벌어지자 다카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필승조는 팀이 너무 앞서도 휴업, 너무 뒤져도 휴업이다. 매일 야구를 해도 아쉬움이 남는 나이인데 오늘은 개시도 못하고 문을 닫을 지경, 이래서 불펜 투수는 처음부터 싫었다.
하지만 팀을 위해 안 할 수도 없는 일, 근질거리는 몸을 연습 투구로 달랬다.
“출격 명령도 없는데 지금 뭐하는 건가?”
“그런 건 상관없어요.”
불펜 코치가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다카기가 불펜에 등장하자 보스턴 중계석은 바로 관심을 보였고, 답답함을 호소하던 팬들도 외야 펜스를 두들기며 투수교체를 요구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건가.’
브라이스 감독은 그제야 다카기의 돌발행동을 눈치 챘다. 지시도 안 내렸는데 몸을 풀고 있다니, 약간 괘씸했지만 경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 여기서 투수가 교체되는 군요. 다카기 하루요시가 마운드로 향합니다.”
“스코어는 벌어졌지만 뉴욕은 앞으로 자주 만날 상대죠. 인사 정도는 해둬도 나쁘지 않습니다.”
브라이스 감독은 이스더 손에 쥐어져 있던 공을 넘겨받았다.
개막 후 한 달이 넘게 흘렀지만 5이닝 이상 투구는 한 번 뿐,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단장에게 7년 1억 5천만 달러를 요구했을까.
본인이 생각해도 민망한 투구, 이스더는 말없이 더그아웃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아직 많이 남은 시즌, 반등의 기회는 남아 있다며 마음을 다스렸다.
지금 원하는 건 다카기가 승계주자를 막아주는 것 뿐, 판결을 앞둔 피고인처럼 초조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제법 따끔한데’
초구를 지켜 본 제프리 슈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카기는 마이너에서 선발로 뛰던 선수라 투 피치를 기본으로 하는 전형적인 불펜 투수와 거리가 멀다.
빠른 볼을 애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완급조절이 뛰어나 같은 공을 던져도 다르게 보이게 하는 마운드 위의 마술사, 앞으로 좋은 라이벌이 될 것 같다며 상대를 인정했다.
딱 ~ !!
“아 ··· 이 타구는 내야를 빠져 나가는 군요. 1루 주자가 3루까지 진루하면서 1사 주자 1 - 3루가 됩니다.”
“지금도 빠른 볼인데, 다카기 선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겠네요.”
위기에 몰린 다카기는 1루를 향해 웃음을 흘렸다. 지고는 절대 못 사는 성격, 갚아줘야 할 빚을 가슴에 새겨뒀다.
다음 타자는 오늘 2안타가 있는 조 프리츠,
데이비드 크로스 포수는 투심을 요구했다. 주자가 3루에 있으니 플라이 볼 위험이 높은 포심은 자제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구위에 자신이 있는 다카기는 빠른 볼을 밀어 붙였다.
“스윙!! 헛칩니다.”
“다카기 선수가 올 시즌 승계주자를 내보낸 게 딱 한 번 있었거든요. 미네소타 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빠른 볼을 앞세우다 안타를 허용했습니다. 지금은 투심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일본 방송국 해설위원의 생각과 달리, 다카기는 2구도 빠른 볼을 택했다. 프리츠는 이번에도 치고 나갔지만 구위에 밀리면서 볼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그래도 변화구를 노리진 않았다.
데이비드 크로스는 좋은 포수지만 올 시즌 유독 블로킹에 약점을 보이고 있다. 주자가 3루에 있는데 떨어지는 공을 던질까. 백 번 양보해도 폭투 위험이 적은 슬라이더를 던지겠지, 밀어치는 타격에 집중했다.
[빠른 볼로 가자니까]
[나 못 믿어?]
아니나 다를까 다카기는 파트너와 기싸움을 이어갔다.
빠른 볼로 처리하고 싶은데 계속 변화구를 고집하는 포수, 다카기는 잠깐 대화 좀 하자는 손짓을 보냈다.
“꼭 여기서 변화구를 던져야겠어?”
“한 번만 믿어봐. 여기서 실점하면 앞으로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게”
크로스 포수는 변화구에 필이 꽂혔다.
프리츠는 빠른 볼은 잘 치지만 아직 변화구에 미숙한 선수, 오늘 2안타를 모두 변화구로 때려냈지만 그건 구위에 자신이 없는 이스더가 변화구를 고집한 탓이다.
하지만 다카기의 구위라면 결과는 다르겠지, 베테랑 상대로 계속 고집 부리기도 뭣하고 알았다며 돌려보냈다.
‘역시 난 천재 ··· 이게 뭐야?’
드디어 선택한 결정구, 예상했던 공이 들어오자 프리츠는 방망이를 냈지만 체크 존 앞에서 급격하게 휘며 떨어지는 궤적에 허공을 갈랐다.
포구가 됐다면 헛스윙 삼진이 됐겠지만 공이 옆으로 튀면서 대재앙이 벌어졌다.
‘망했다.’
다카기는 급히 홈으로 달려갔지만 3루 주자의 홈인을 막지 못했다.
포구도 못하면서 무슨 변화구를 요구하는 건지, 짜증을 억누르고 마운드로 향했다.
하지만 본인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겠나. 실점을 했지만 헛스윙을 이끌어 낸 것도 사실, 볼 배합은 문제가 없었지만 크로스의 떨어진 기량이 아쉬웠다.
전성기는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겠지, 마음은 예전과 다를 게 없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나.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