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101화 (101/361)

101화. 각자의 길 - (12)

“왜 저래?”

이정환 감독의 발언을 두고 한국 청소년 대표 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난 선수출신이니 내가 하는 말이 맞다? 뭐 이런 앞뒤 없는 발언이 다 있나. 의심 되는 정황이 있다면 문제를 제기할 순 있지만, 이정환 감독은 과거가 개운치 않은 사람이라 여론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프로 감독 시절에도 불같은 성격 때문에 주심과 언쟁을 주고받고 퇴장당하는 건 기본, 심지어 상대 선수에게 욕설을 퍼부어 벤치 클리어링을 유도한 적도 있다.

그 뿐이랴, 시대에 뒤떨어진 훈련 방식으로 선수들을 가혹하고 굴리고, 시즌 중에 체력이 떨어지자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한 것도 모자라 고교야구 감독 시절엔 어느 학생을 각목으로 위협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그런 과거는 둘째 치더라도 다카기가 압축배트를 쓰는 게 아니면 어쩔 건가.

혹시 일본을 물어뜯으면 국민들이 동의해주고 내 명예도 올라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이정환 감독은 최근 프로야구 복귀설이 솔솔 풍겨오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을 돌리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 건 아닌지, 하지만 학생들은 감독의 뜻대로 놀아나지 않았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 괜한 잡음으로 논란을 부추기는 감독에게 동조할 뜻은 없었다.

“지금부터 한국과 일본 청소년 대표 팀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9월 8일, 한일 대표 팀은 슈퍼라운드 진출을 두고 서울 상암동 야구장에서 격돌했다.

한국의 선발은 장하균, 이번 KBO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지명을 받은 유망주라 팬들의 기대치는 꽤 높았다.

스포츠에 정치를 대입해선 안 되겠지만, 또 그런 맛으로 보는 게 스포츠 아닌가. 한일관계가 불편한 만큼 이 경기에 쏠린 관심은 특별했고, 관중석에 휘날리는 태극기와 일장기는 전쟁을 앞둔 군대의 대치처럼 팽팽한 대치를 이어갔다.

“자, 1회 초 일본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타키야마 요이치, 이번 대회에서 타율 0.444, 홈런 없이 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카기 선수의 후계자라는 말까지 듣는 선순데 역시 실력은 확실하죠. 장하균 선수가 방심해선 안 되겠습니다.”

하지만 장하균은 초구부터 안타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일본엔 캡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 타키야마가 어깨를 들썩거리자, 일본 응원단은 더욱 힘을 얻었고 후속 타자의 등장에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다카기 하루요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대회 타율 0.833, 홈런 2개 4타점, 상황이 좋지 않네요.”

“5안타 중 무려 장타가 4개거든요. 이번 대회에서 많은 선수들이 나무배트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 선수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장하균은 최고 147km 빠른 볼을 던지지만 감히 정면에서 달려들지 못했다.

프로급 선수들도 농락했다는 괴물 앞에서 그 정도 구속이 장점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도망치는 투구를 하다 카운트는 불리해졌고, 차분히 볼을 고리던 다카기는 바깥 쪽 높은 공을 가볍게 밀어냈다.

따아악 ~ !!

“밀어낸 타구가 ··· 오 ~ 생각보다 멀리 가는 데요? 중견수와 우익수 모두 멍하니 지켜봅니다!! 다카기 하루요시의 투런 홈런, 일본이 선취점을 가져가는군요.”

“글쎄요. 펜스 앞에서 잡히지 않을까 했는데, 이게 이렇게 넘어가나요?”

일본 팬들은 일장기를 휘두르며 다카기의 이름을 연호, 먼저 홈을 밟은 타키야마도 환한 미소로 캡틴을 환영했다.

자물쇠도 손으로 열어버리는 괴인인데 이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하지만 한국 대표 팀의 이정환 감독은 납득할 수 없다며 주심을 붙잡았다.

“무슨 문제라도?”

“저 선수 압축배트 쓰는 거 분명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대회 규정 상, 상대 팀의 배트를 압수해 검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기 중에 배트가 부러지거나 의심될 만한 정황이 있으면 가능, 뭣보다 이정환 감독은 일본이 압축배트를 쓰는 게 확실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일본 프로야구는 급격히 늘어난 피홈런 때문에 공인구 논란은 물론 압축배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일본 청소년 대표 팀이 쓰는 배트도 논란이 됐던 회사의 물건, 결국 무혐의 처리로 끝났지만 이정환 감독은 여기서 자신의 명예를 걸었다.

“글쎄요. 별 문제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압축배트인지 아닌지는 깨봐야 합니다.”

“아니 ··· 그럼 이걸 여기서 갈라보자는 겁니까?”

계속되는 항의에 주심은 당황했다.

부러진 배트를 살펴보는 건 그렇다고 쳐도 멀쩡한 걸 깨보자니, 아니나 다를까 일본 벤치는 격하게 반발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우타다 토모히데 감독은 주최국의 횡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애들 경기가 어른 싸움으로 번질 위기, 하지만 이정환 감독은 기어이 배트에 송곳과 망치를 들이밀었다.

토모히데 감독은 격하게 반발했지만 배트 주인인 다카기는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 저러다 아닌 걸로 판명되면 본인만 망신,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생수병을 기울였다.

수군거리는 관중석, 침묵이 내려앉은 양측 더그아웃, 홈런을 내준 장하균도 착잡한 얼굴로 마운드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렇게 조각조각 난 배트, 쪼개진 결을 유심히 살펴보던 주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혐의 없음’

두껍게 칠해진 도료 뒤엔 나무 특유의 결이 살아 있었다. 압축 배트에선 절대 나타날 수 없는 결, 쓸데없는 항의로 경기를 지체한 죄로 이정환 감독은 즉시 퇴장조치 됐다.

[일본 욕하고 이미지 세탁하고 싶었냐?]

[그건 단물 다 빠진 정치인들 필살기 아닌가? 어쭙잖게 흉내 내다 개망신만 당했네]

이 광경을 지켜본 한국야구 팬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깨진 배트를 두고 항의하는 감독은 많이 봤지만 그라운드에 망치와 송곳까지 들고 나온 사람은 처음 봤다.

더군다나 다카기는 메이저리그 진출설에 휘말린 몸, 이 경기는 미국 본토도 주목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국제적 망신, 한국 선수들도 부끄러움에 몸이 배배 꼬였다. 저런 인간이 감독이라니, 그래도 우린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따악 ~ !!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지만 1회 말, 한국 대표 팀은 안타 2개와 폭투 하나를 엮어 1점을 따라 붙었다.

일본이 도망가면 한국이 따라 붙는 패턴은 4회까지 계속 됐고, 다카기는 3루에서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가 더 강했어.’

당시 일본 대표 팀은 대만, 쿠바에게 패배를 당했지만 탄탄한 전력으로 통산 6번째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번 대표 팀은 그때보다 명백히 떨어지는 전력이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건 아니지만 일본이 그때 전력을 유지했다면 지금처럼 추격을 허용할 일도 없었겠지, 뭣보다 아쉬운 건 선수들의 집중력, 폭투에 실책까지 겹치자 다카기는 천천히 마운드로 향했다.

‘뭔가 조언을 해주려는 건가?’

3회부터 일본의 마운드를 지키는 혼다 이사츠카(구라다 고교 : 2학년)는 내심 기대를 품었다.

상대는 고시엔 우승을 2번이나 달성한 스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지만 아직 배울 게 많은 젖먹이는 대선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실수하면 나한테 죽는다고 생각해”

“ ··· 네?”

“죽는다고 생각하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살벌한 협박을 굳이 귓속말로 하다니, 이사츠카는 천천히 돌아서는 살기 어린 눈빛에 정신을 바짝 끌어 올렸다.

‘원래 혼나면서 크는 거야, 나도 그랬어.’

한편, 타키야마는 다카기 선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대략 눈치 챘다. 남의 잘못은 반드시 지적해주는 친절한 캡틴, 타키야마는 그 밑에서 2년을 구르며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 날아오는 타구에 집중했다.

딱 ~ !!

“아 ~ 유격수 정면, 2루에서 아웃!! 다시 1루에서 ~ !! 아웃입니다 ··· 그 사이 3루 주자는 홈으로, 대한민국이 한 점 더 추격합니다.”

“지금은 타키야마 선수의 판단이 좋았네요. 기다리지 않고 한 발 더 뻗는 스텝이 병살을 만들어 냈습니다.”

타키야마는 의기양양 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본래 유격수 출신이었던 캡틴에게 배운 스텝, ‘저 잘했죠?’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다카기는 철저히 무시했다.

그렇게 경기는 계속 이어져 6회 초, 7대 5로 쫓기는 일본의 반격, 다카기의 등장에 한국 응원단은 다시 긴장했다.

오늘 홈런 포함 3타석 모두 출루한 괴물, 선수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응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데 일본 응원단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이제 다카기는 일본 대표 팀을 이끌고 상대 팀을 단죄하는 명왕(冥王)같은 존재, 다카기가 있는 한 절대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확고했다.

‘이게 아닌데’

초구가 볼이 되자 마운드를 지키는 정학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더라도 초구는 잡았어야 했는데 나무배트로 밀어 쳐서 홈런을 만든 다카기의 괴력을 눈앞에서 봤으니, 두려움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해야 하는 승부, 김희찬 감독 대행의 지시대로 몸 쪽 공을 밀어 넣었다.

“어?!! 지금 헬멧에 맞았나요?”

“그런 것 같네요. 걸어 나가는 걸 보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찔했던 순간, 다카기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1루로 향했다.

압축배트 의혹제기에 헤드 샷까지, 솔직히 기분은 나쁘지만 싸워봤자 서로 피곤해질 뿐, 뭣보다 정학영이 캡을 벗고 사죄를 표했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손짓으로 넘어갔다.

이날 경기는 일본의 8대 6 승리로 끝났지만 많은 한국 팬들은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위로를 표했다.

송곳에 망치까지 들고 나온 누구에 비하면 훨씬 성숙하고 듬직했던 학생들, 결과는 아쉽지만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는 모습에서 희망을 확인했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습니다.”

하지만 경기 후, 일본의 우타다 토모히데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의 팀 방망이를 쪼개다니, 이런 무례한 짓은 듣도 보도 못했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고 일본 야구협회와 협력해 이정환 감독과 KBO 위원회에 사과를 요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사자의 생각도 그럴까, 기자들의 물음에 다카기는 성실히 응했다.

“토모히데 감독이 항의를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방망이 하나 받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내 배트를 부쉈으니 하나 받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학생들은 별 탈 없이 경기를 끝냈는데 어른들이 더 난리, 다카기는 청구서는 언제 보내면 되는 거냐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토모히데 감독은 야구 협회와 협력해서 정식으로 항의를 하겠다고 하는데요.”

“그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어쨌든 그 배트 주인은 저고, 협상을 하던 항의를 하던 그건 제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자들은 이 소식을 한국 벤치에 전했다.

정말 줘야 하나? 서로 눈치만 살피던 이때, 오늘 다카기에게 홈런을 내준 장하균이 배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정말 이거 주면 별 말없이 넘어가는 거죠?”

“네, 다카기 선수 본인이 그렇게 말 했습니다.”

장하균은 동료와 코칭스태프의 만류도 뒤로 하고 일본 진영으로 향했다.

홈런을 내준 선수에게 배트까지 내주는 건 치욕 아닐까? 하지만 한 수 배웠으니 이 정도는 수업료로 지불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선수, 주위를 에워싼 기자들은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댔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통역 좀 해주세요.”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다카기는 모른 척 하고 넘어갔다.

왠지 조만간 다시 만날 것 같은 녀석, 미래의 적이 될 선수와 이 이상의 친목질은 자제했다.

‘나중엔 내가 이긴다고? 웃기는 소리’

이날부터 다카기는 장하균의 배트를 소중히 간직했다.

고교 통산 100호 홈런 볼도 팬에게 넘겨줬지만 이건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내 목을 노리는 놈이 하나 더 늘었으니 앞으로도 방심하지 않고 실력을 가다듬어야겠지, 틈이 날 때마다 배트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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