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애송이 군단 - (1)
젖먹이들 - (1)
[다이이치 고교, 센바츠 제패]
[최근 41연승 행진, 센바츠 - 나츠 통합우승 노린다]
해가 바뀌면서 수많은 야구부가 다이이치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무수한 은메달리스트들이 정점을 앞두고 눈물을 흘렸고, 고교 진학을 앞둔 학생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다이이치의 시대에 편승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저항할 것인가. 타키야마 요이치(도쿄 카와치 중학교 3학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다이이치에 원서내길 잘했어.’
타키야마는 작년부터 다카기의 활약에 매료됐다.
별 볼일 없던 야구부를 단숨에 정상에 올려놓다니, 야구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꿈꿨던 만화 같은 시나리오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왕이 돼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누가 봐도 대세는 다이이치, 새로운 시대를 열기보단 그 왕좌의 계승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나야말로 호랑이 등의 날개지. 분명 환영 받을 거야.’
타키야마는 야구부 선배들에게 환영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대회를 거치며 재능을 인정받지 않았나. 거기다 도쿄는 고교 야구의 중심지, 이런 곳에서 이름을 날린 내가 홀대를 받는 게 말이 되나.
일찌감치 장밋빛 미래에 물들었다.
[다카기 - 타키야마, 다이이치를 이끄는 쌍두마차]
올 여름이 지나면 이런 기사가 스포츠 1면을 장식하겠지, 하지만 타키야마의 친구들은 왜 그런 짓을 하냐며 펄쩍 뛰었다.
“야 이 배신자야, 가려면 가나가와를 가야지 다이이치를 가냐?”
도쿄 최강 가나가와는 2년 전부터 타키야마를 예의주시했다.
작년 고시엔에서 다이이치에게 패배를 당하면서 체면을 구겼으니 명예회복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 일찌감치 유망주 확보에 나섰지만 타키야마가 다이이치 고교 진학을 선택하면서 흐름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대세는 다이이치야. 내가 가나가와에 가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짓이지.”
“그게 도망이라는 거야 인마”
도전도 안 해보고 다이이치의 시대를 인정해버리다니, 타키야마의 선택에 가나가와 야구부도 충격에 빠졌다.
예전엔 야구 유망주들이 도쿄로 몰려오는 추세였는데 이제는 역전현상이 발생, 이러다 다이이치의 시대가 굳어지는 건 아닐까. 아무리 야구 명문이라도 유망주들이 꾸준히 공급되지 않으면 동력을 잃는 법, 남아 있는 유망주라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설마 그 녀석이 고교야구 판도를 바꿔버릴 줄이야’
1년 전, 가나가와는 다카기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 공을 들였다.
그런데 그 녀석이 다이이치로 가면서 꼬이기 시작한 대권 도전, 우릴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해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 허둥대는 쪽은 누구인가.
다이이치가 특기생 입학을 허락했으니, 앞으로도 많은 유망주가 제2의 다카기를 꿈꾸며 오사카로 몰려가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이번 대회에서 화근을 잘라버려야겠다는 독기를 품었다.
“아버지!! 여기 선배님 오셨어요!!”
한편, 다카기는 자주 들르는 식당에 발을 들였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이곳의 장점이었는데, 떠들썩한 후배 때문에 이젠 그것도 어려워졌다.
“너 좀 조용히 할 수 없냐?”
주인장은 아들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벼락치기라도 명문고에 입학한 건 대단한 일, 하지만 촐싹대는 모습을 보니 칭찬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네 ~ ”
그 사이 다카기는 조용히 주문을 마쳤다.
주인장 아들은 그 옆에 착석, 다카기가 곁눈질로 저리가라고 눈치를 줬지만 미운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아들 좀 잘 부탁드려요.”
눈치를 살피던 사모님이 슬쩍 끼어들었다. 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왜 이런 요구를 하시는 건지, 다카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공부도 운동도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건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그래도 잘못하면 혼도 내주세요. 아니, 꼭 좀 그렇게 해주세요.”
갈수록 태산, 평소 말이 없던 주인장도 소소한 서비스로 아부공세를 이어갔다. 이곳도 이제 발길을 끊어야 하는 건지, 하지만 근처에 여기만큼 입맛에 맞는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다카기는 마음에도 없는 보모 행세를 약속했다.
“선배님, 어떻게 하면 실력이 빨리 늘까요?”
미운오리는 눈치 없이 가르침을 요구했다.
4월에 입학식을 치르면 바로 야구부에 입부할 예정,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카기는 나름대로 조언을 줬다.
“뭐든 차근차근 꾸준하게 하는 게 중요해. 연습 빠질 생각하지 말고, 매일 나와.”
“또 다른 건 없나요?”
“다나카 코치님은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애정을 주는 분이 아니야. 하나라도 더 받아먹겠다고 달려드는 녀석에겐 애정을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 점 명심해.”
미운오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 역시 최고의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 군기도 장난 아니라는 건가. 본인도 그 일원이 된 이상, 대충대충 해왔던 과거는 잊었다.
“저기 ··· 홈런 잘 치는 그런 비법은 없나요?”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냐? 앞으로 1년 동안은 기초 쌓는다고 생각해, 그 이상은 욕심 부리지 마.”
“그래, 요리도 배우려면 청소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주인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세상이 그렇게 쉽다면 누구나 다 부자에 스타가 됐겠지, 아직 철이 덜 든 아들이 똑 부러지는 선배를 만난 걸 행운으로 여겼다.
“그리고 훈련 끝나면 집에서 꼭 예습 복습해. 벼락치기는 앞으로 안 통하니까 꿈도 꾸지 말고”
“왜요?”
“시험기간 되면 선생님들이 숙제꾸러미를 선물해주거든, 그거에 매달리면 공부할 시간도 없어. 평소에 안 해두면 끝장이란 소리지”
“으악!!”
미운오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까지 벼락치기로 어떻게든 견뎌왔는데, 앞으로 운동에 공부까지 병행할 생각을 하니 앞날이 캄캄해졌다.
“하기 싫으면 그만 둬. 부활동 부담돼서 그만 두는 학생 많으니까.”
“아 ··· 아니요!! 할 거예요!!”
주인장은 아들을 쥐락펴락하는 손님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런 사람이 이끌어준다면 아들도 잘 해낼 수 있겠지, 못 미더운 아들을 떠맡긴 게 마음에 걸렸는지 음식 값은 받지 않으려 했다.
“전 값은 확실히 치르는 성격입니다. 이 요리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받지 마세요.”
주인장은 할 말을 잃었다.
공짜음식은 어디까지나 성의를 표한 것 뿐,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경지에 오르기까지 본인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그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음식 값을 받지 말라는 말에 숨이 턱 막혔다.
“또 올게요.”
“네 ~ 감사합니다.”
손님이 떠나고 식당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타인의 노력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노력에도 그만한 가치와 자신감을 부여하겠지, 다이이치의 돌풍이 과연 우연일까?
주인장은 아들이 저 소년 옆에서 뭔가를 깨닫길 바랐다.
* * *
“뭐야? 너도 A반이냐?”
“그건 내가 할 말이다.”
4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서 다카기는 2학년이 됐다.
같은 부활동을 하고 있는 모토바시 테츠야가 반가움을 표했지만, 다카기는 성의 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너 반응이 왜 그러냐? 내가 같은 반이 된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늘 보는 얼굴인데 반가울 것도 없잖아.”
“너무 그러지 마라. 처음 보면 손님, 두 번 보면 구면, 세 번 보면 가족이라는 말도 있잖아.”
“난 그런 말 처음 들어봤어.”
물론 다카기도 속마음은 달랐다. 반가울 것도 없다는 건 정말 가까운 사이라는 뜻, 장난으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야, 너 오늘 야구부 들를 거지?”
“물론, 한동안 쉬웠으니 몸 좀 풀어야지.”
새 학기라 오늘은 수업이 없다.
하지만 야구부 훈련은 별개, 위에서 시킨 것도 아니지만 학생들은 훈련을 자처했다.
같은 해에 센바츠 - 나츠를 동시에 재패한 야구부는 100년이 넘는 고교야구 역사에서 6개 팀 밖에 없다.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다카기는 못 할 일도 아니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야, 너 그거 들었냐?”
“또 뭔데?”
“이번에 엄청난 녀석이 야구부에 들어올 것 같아”
모토바시는 고급정보를 다키기와 공유했다.
타키야마 요이치는 가나가와도 탐을 냈던 유망주, 그런 녀석이 알아서 굴러들어올 줄이야. 모토바시는 제 2의 다카기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며 들뜬 반응을 보였다.
“너 지금 농담하는 거지?”
당사자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애송이를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닌가. 자기 실력에 절대적인 믿음과 자신감이 있는 다카기는 젖먹이와 비교되는 걸 불쾌하게 여겼다.
‘잘못 건드렸나.’
모토바시는 곁눈질로 친구 눈치를 살폈다.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괜히 신경 쓰이는데, 제 2의 다카기라는 말을 듣고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뭣보다 다카기는 대체 불가능한 전력이자 팀의 기둥, 그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조심했다.
“다들 모였나요?”
마침 1년을 함께 할 담임선생님이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야구부와 인연이 있는 사람, 제자들의 면면을 살피던 타카코 선생님은 한 녀석을 보고 흠칫했다.
‘윽!!’
1학년 때부터 상성이 좋지 않았던 다카기,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제자를 껄끄럽게 여긴다는 게 말이 되나, 올해는 좀 친하게 지내보자며 관심을 표했다.
“어머 ~ 누군가 했더니 우리 학교의 아이돌이 여기 있었네요?”
“선생님, 아이돌보다 곁에 있는 애인에 집중해주세요.”
다카기는 바로 한 방을 날렸다.
2년 동안 애인의 프러포즈에 반응이 없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예고 없는 폭로에 교실은 발칵 뒤집혔다.
“선생님!! 결혼 언제 하세요?!!”
“프러포즈 받아주세요!! 다나카 선생님이 너무 불쌍해요!!”
괜히 한마디 했다가 긁어 부스럼, 천적관계를 재확인한 타카코 선생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 * *
“1학년 A반의 타케모토 에이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학년 B반의 키타지마 소스케입니다. 최고의 야구부에서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1학년 B반의 사노 코이치입니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다이이치 야구부는 어린 피를 수혈했다.
예전엔 부원을 모집하는 형편이었는데 지금은 선수 출신이 제 발로 찾아오는 분위기, 선배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다카기는 덤덤한 얼굴로 그 곁에 자리를 잡았다.
가만히 있어도 형용할 수 없는 오라를 뿜어내는 존재, 긴장한 신입생들은 마른 침을 삼켰지만 타키야마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1학년 D반의 타키야마 요이치입니다. 고시엔에서 선배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모든 야구부원이 눈여겨보고 있던 유망주의 차례가 왔다.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니, 3개월 안에 스타팅 멤버에 들겠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1년 동안 피땀 흘려 얻은 자리를 순순히 양보할 2학년은 아무도 없었다.
“너희들은 오늘 견문만 해둬라.”
“아니요. 체력훈련은 하고 싶습니다.”
사노 코이치는 다나카 코치에게 자신을 어필했다.
하나라도 더 먹겠다며 달려드는 녀석을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다카기 선배가 말해주지 않았는가, 첫날부터 눈도장을 받기 위해 발버둥쳤다.
“저도 뛰겠습니다.”
타키야마 요이치도 훈련을 자처했다.
감독에게 나는 다른 1학년들과 다르다는 걸 어필할 절호의 기회, 다른 1학년들도 분위기에 휩쓸렸다.
“흐어 ~ 흐어 ~ 허어억 ~ ”
하지만 의욕으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신입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야구부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겨우 이 정도로 헉헉대는 꼴이라니, 타키야마는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마지막 한 바퀴!!”
요시다 캡틴의 구호가 떨어지자 부원들은 속도를 끌어올렸다.
1학년들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거의 전멸, 하지만 타키야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선배들을 쫓았다.
‘더 멀어진다고?’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다카기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애송이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는데 이게 레벨의 차이라는 건가. 격차가 이렇게 멀 리 없다며 이를 악물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건 24명, 타키야마는 막판까지 중위권을 유지했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22위로 밀렸다.
하지만 1학년이 첫날부터 지옥의 체력단련을 통과한 건 드문 일,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후루타 감독은 타키야마를 예의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