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58화 (58/361)

58화. 밤하늘에 점 하나를 찍어 봐 - (14)

“스기토모 그룹은 이 나라를 떠나라!!”

“자식 교육을 그 따위로 시켜?!!”

“이런 매국노들!!”

유명세를 탄 아들 덕분에 다카기 요시무네는 성난 극우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하지만 개미가 무리를 지어봤자 사람은 그 위를 지나갈 뿐, 요시무네는 시위대의 소란을 뒤로 하고 본사에 입성했다.

‘매국노? 웃기고 있군.’

최근 일본은 대거 유입된 중국자본에 잠식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환율 조작에 경고하고, 중국이 외화 유출 규제를 일부 완화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해외에 팔아치우는 놈들은 사방에 널려 있는데, 왜 우리를 콕 집어 매국노 취급하는 건가. 요시무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치고 빠질 때가 됐군.’

얼마 전 스기토모 그룹은 내부 회의를 통해 부동산 일부를 처분했다.

부동산이 30개월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최근 추세가 심상치 않다.

오랫동안 부동산으로 큰 이득을 봤지만 이제 130개 계열사를 둔 그룹에게 부동산은 하나의 투자 대상일 뿐, 방향전환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시작하지.”

회의실에 입성한 요시무네는 측근들의 보고를 받았다.

최근 영국의 반도체 회사가 투자 실패로 위기에 몰렸고, 스기토모 그룹은 내부회의를 통해 매입여부를 결정했다.

“이 회사의 기술력은 탁월합니다. 다만, 자금 기반이 부실하고 투자를 잘못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신생 회사는 자금력이 부실해 리베이트(물건을 산 고객에게 금액 일부를 되돌려 줌)를 남발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쉽다.

고객을 끌어 모으겠다고 경영진이 리베이트를 남발했다가 투자는 실패, 주주들이 떠나면서 회사는 도산 위기에 몰렸다.

측근들은 매입으로 방향을 잡았고 이제 남은 건 지도자의 결정뿐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건 어렵지.’

하지만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세계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계시장에 뿌리를 박은 반도체 강국은 얼마든지 있는데, 망해버린 신생 회사에 자금을 투자한다고 당장 성과가 나올까?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투입되는 건 당연한 거고 경쟁자 중 하나가 미끄러져야 결과가 나오는 사업, 미래가 불확실한 투자지만 요시무네는 투자로 방향을 잡았다.

손해를 보든 이득을 보든 스기토모 그룹은 경쟁력 있는 회사를 발굴 매입해 여기까지 왔고, 당장의 수익보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열심히 물어 봐라. 간지럽다.’

예정보다 빨리 끝난 회의, 요시무네는 시위대의 외침을 무시하고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경찰에 사설 경호원들이 방패막이를 쳤는데 저런 개미들 뭘 어쩌겠는가, 스기토모는 조선인들이 세운 조선해양통운에서 시작된 기업, 간도 대지진 때는 아무 방패막이도 없이 폭도들 손에 자산이 유린됐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상황, 견고하게 기초를 다진 왕국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 일찍 왔네요.”

“그렇게 됐어요. 미사키는 집에 왔죠?”

“네”

집으로 돌아온 요시무네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미친놈들이 장녀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겠지, 몰래 경호원을 붙여줬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됐다.

“우리 막내 ~ ♡ 아빠 없는 동안 잘 있었지?”

마음의 짐을 내려놓자마자 아내의 배를 어루만졌다. 회사를 가도 집에 있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생각하면 절로 들썩이는 입술, 그런 남편이 기도 안 차는지 다카기의 어머니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녁 먹어야 되니까, 당신이 미사키 좀 내려오라고 해요.”

“알았어요.”

간만에 모인 세 식구, 중요한 녀석이 하나 빠졌지만 그런대로 화목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대학 입시준비는 잘 되가니?”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관심에 미사키는 어리광을 부렸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관심은 남동생이 독차지 하는데 무슨 흥이 나겠는가. 투정이라도 부려서 부모님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우리 딸은 하고 싶은 거 해. 아빠가 다 해 줄 테니까.”

“정말요?”

“어허 ~ 아빠가 누군지 알아? 우리 딸은 걱정할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럼 저 아빠 회사에 취직할래요.”

미사키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았다.

당장은 무리지만 차근차근 배워가며 경영권을 쥐는 게 꿈, 남동생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지만 얌전히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운동이든 공부든 뭐든 척척 해내며 어른들의 총애를 독차지한 동생, 투쟁심까지 품는 건 오버지만 선의의 경쟁을 펼칠 마음은 충만했다.

“역시 우리 딸 착하네. 나중에 동생 도와주려고?”

“아니요.”

제대로 잘못 짚은 요시무네는 딸의 반응에 움찔했다. 대놓고 이런 말을 하다니, 그렇잖아도 형제 사이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라, 나중에 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염려됐다.

“너 마침 잘 말했다.”

이때 다카기의 어머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누나라는 녀석이 동생을 경쟁상대로 삼다니, 한소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카기가 왜 너하고 말을 안 하는지 아니?”

“ ··· 왜요?”

“누나는 날 경쟁상대로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너 전에 동생이 고등학교 입시 준비할 때 뭐라고 했어?”

어머니의 조용한 꾸지람에 미사키는 고개를 숙였다.

미마세 공립학교에 갈 실력은 되냐며 속을 긁다니, 그게 입시를 앞둔 동생에게 해 줄 말인가? 뭣보다 다카기는 누나에게 처음부터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인데 멋대로 라이벌 의식을 품은 건 누나, 남도 아니고 형제라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 아예 대화를 끊어버렸다.

“누가 기업 경영자가 되건, 서로 돕는 게 형제가 할 일이야. 그게 지금 아빠 앞에서 할 말이니?”

“여보 ··· 너무 그러지는 ··· ”

“당신은 가만히 계세요. 애들 교육하는 건 내 몫이에요.”

요시무네는 아내의 차분한 호통에 고개를 숙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 자식 교육은 아내의 몫,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보기 흉한 게 형제들끼리 다투는 거야. 할아버지가 지금 너 이러는 거 보면 좋아하시겠니? 그리고 동생이 너한테 뭘 했다고 이러니?”

고영길은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조카 형제들과 소송에 휘말렸다. 승소했지만 형제들끼리 치고받은 건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한 일, 그런데 손자들이 서로 사이가 안 좋다면 좋아하겠는가?

아니, 그런 사람에게 경영권을 맡길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올라가서 엄마가 한 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네 ··· ”

요시무네는 힘없이 일어서는 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잖아도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민감할 텐데 이렇게 혼을 내다니, 하지만 임신한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 * *

한편, 다카기는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마침 경기가 없는 날, 오전 훈련(Am 9 : 30 ~ 11 : 30)이 끝나고 점심을 먹자마자 펜대를 잡았다.

고시엔에 이어 세계대회까지 흔드는 몸이 됐지만 그래봤자 본분은 학생, 학업도 처지지 않도록 발악을 이어갔다.

‘난 어중간한 게 제일 싫어. 뭐든 하려면 철저하게’

룸메이트 마이키도 이때는 다카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학생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내 거 아닌데?’

마침 들려오는 휴대폰 진동소리,

마이키는 자기 휴대폰을 살펴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소리의 근원지는 다카기의 핸드폰, 하지만 녀석은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전화는 좀 받고 살아라.’

집중하는 건 좋은데 세상과 단절하는 건 너무 극단적 아닐까. 마이키는 얼른 받으라는 눈빛을 보냈고, 마침 다카기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별 일이네.’

누나가 먼저 전화를 건 게 얼마 만인가. 잠시 망설였지만 일단 통화버튼을 눌렀다.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 지금 뭐해?]

“공부”

동생의 답에 미사키는 충격을 받았다.

대표 팀에 뽑혀 캐나다까지 날아간 녀석이 이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다니, 난 동생을 질투할 자격이 있을까?

노력은 조금하고 부모님의 관심을 받길 바랐던 건 아닌지, 솔직히 부끄러웠다.

“본론부터 말해. 무슨 일이야?”

[아니 ··· 별 일 없다니까]

“별 일도 없는데 누나가 나한테 먼저 전화를 할 리가 없잖아. 혹시 할아버지 또 쓰러지셨어?”

쉴 새 없니 몰아치는 공격, 평소 내가 그렇게 싫었던 건가. 머뭇거리던 미사키는 응원의 메시지를 표했다.

[열심히 해. 그 말 하려고 전화 했어]

“ ········· ”

[그 ··· 그럼 이만 끊을게]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뭐라도 잘못 먹은 건지, 다카기는 신호가 끊긴 휴대폰과 눈싸움을 이어갔다.

“누나냐?”

“ ··· 네”

“몇 살이냐? 예뻐?”

다카기는 관심을 보이는 마이키 선배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더니 바로 바람인가?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야, 얼른 말 해. 예쁘냐고 물었잖아.”

“예뻐요. 하지만 같이 있으면 피곤한 성격이죠.”

“피곤해?”

“툭하면 잘난 척에 콧대는 높아서 지는 건 절대 못 참고, 틈만 나면 사람 속을 긁어대는데 정말 상대하기 짜증나요.”

“야, 그거 너 말하는 거 아니냐?”

마이키 선배의 역습에 다카기는 당황했다.

누나와 내가 닮았다니, 생각도 안 해본 일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푸하핫 ~ ! 역시 형제는 형제구나!! 둘이 꼭 닮았네!!”

그동안 내가 주도권을 잡았는데 여기서 역전을 당할 줄이야, 다카기는 뚱한 얼굴로 펜대를 내려놨다.

집중력은 이미 흩어졌고 지금은 공부할 기분이 아니었다.

“야, 네 누나 좀 소개시켜 줘라.”

“애인 있다고 안 하셨어요?”

“아, 그거? 얼마 전 이별 통보 했어.”

이건 또 무슨 소린지. 남녀 관계라는 게 원래 그렇게 가벼운 건가? 아직 연애 경험이 없는 다카기는 마이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네 말이 맞더라. 사랑도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끌려 다닌 것 같아. 헤어지자니까 걔도 별로 아쉬운 척 안 하더라. 오히려 잘 됐어.”

“그래서, 그 대안이 제 누나에요?”

“예쁘다며, 일단 미인은 만나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그렇게 안 봤는데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을 줄이야. 누나를 별로 좋아하는 것도 아닐 텐데, 다카기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표했다.

“야, 너 지금 나 바람둥이라고 생각했지?”

“ ··· 아닌가요?”

“착각하지 마 인마. 평생 인연이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줄 아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봐야 인연도 찾을 수 있지.”

마이키는 후배에게 연애도 좀 해보라는 참견을 늘어놨다.

그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재미라는데, 연애보다 성공이 더 중요한 다카기는 귀에 담지 않았다.

* * *

“자!! 드디어 일본과 미국의 결승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지난 대회에 이어 다시 맞붙게 된 양 팀!! 지난날의 설욕을 갚아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날의 아픔을 반복할 것인가!! 학생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시청자 여러분들도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일본은 그동안 아껴둔 이시다 토모카츠, 이에 맞서는 미국 대표 팀은 잭 코틀봇을 선발로 내보냈다.

코틀봇은 최고 97마일의 빠른 볼과 낙차 큰 커브를 구사하며 스카우터의 주목을 이끈 유망주, 드래프트에 참가하면 1라운드 지목은 거의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계약금,

코틀봇은 천만 달러 이상의 계약금을 원하고 있다.

1라운드 드래프트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구단은 미네소타, 하지만 1라운드에서 쓸 수 있는 돈은 쥐어짜내도 720만 달러밖에 안 된다. 천만 달러를 쓰려면 2라운드 지명을 포기해야 하는데, 코틀봇 한 명을 업어오자고 2라운드 지명을 포기해야 하나?

구단관계자들이 부정적입 입장을 표하자 코틀봇의 아버지는 불만을 터뜨렸다.

“1라운드 계약 상한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아들을 대학에 보내겠다.”

하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콧방귀를 뀌고 있는 중,

천만 달러 이상의 계약금을 원하는 건 코틀봇도 마찬가지라 이번 청소년 대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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