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56화 (56/361)

56화. 밤하늘에 점 하나를 찍어 봐 - (12)

[쿠바, 멕시코 잡고 2승 1패]

캐나다와의 결전을 앞둔 일본 대표 팀은 비보를 접했다.

쿠바는 본선 첫 경기에서 캐나다에게 패했지만 멕시코와 일본을 연달아 잡아내며 슈퍼라운드 진출 기회를 잡았다.

캐나다와 쿠바는 이미 2승을 선점한 입장, 1승 1패로 몰린 일본은 캐나다에게 패하면 짐을 싸야하는 입장이 됐다.

[2009 WBC가 진짜 우승, 2006 WBC 우승은 더렵혀진 승리다]

싸늘해진 여론은 10년도 더 지난 일을 끄집어냈다.

지난 2006년, 일본 대표 팀은 탈락의 고비를 넘기고 초대 WBC 우승을 차지했지만 몇 몇 팬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대표 팀 지휘봉을 잡은 감독이 대만 출신이라는 게 그 이유, 출정식 때도 기자들의 무례한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감독님은 본인의 국적이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대만인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감독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외국인이 지휘봉을 잡으면 그건 더럽혀진 승리인가. 그렇게 따지면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월드컵 대표 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꺼풀만 벗겨내도 근거 없는 궤변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일일이 상대해 줘야 하나? 다카기는 바보들이 하는 말은 철저히 무시했다.

“플레이 볼!!”

드디어 시작된 일본과 캐나다의 경기, 2승을 선점한 캐나다 벤치는 여유가 넘쳤지만 타석에 들어서는 다카기는 비장한 얼굴로 투수와 눈빛을 마주했다.

“별은 언제 뜨는 거죠?”

“하하 ~ 그러게 말입니다.”

한편, 캐나다 현지 중계석은 다카기를 두고 조롱 아닌 조롱을 이어갔다.

본선에서 다카기는 2경기 연속 멀티 히트를 때리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장담하던 홈런은 무소식, 캐나다 측 해설위원은 오늘도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이 자식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캐나다의 선발 마이크 기글러스는 포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카기를 제외하면 일본 타선은 본선에서 0.222에 그치고 있다.

역시 문제는 다카기, 초구를 잘 치는 녀석이지만 팀이 위기에 몰렸으니 신중을 기하겠지,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었다.

까아앙 ~ !!

틀림없는 파열음, 배트를 던진 다카기는 백 스탭을 밟으며 1루로 향했다.

떨어질 줄 모르고 뻗어가는 포물선, 타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백 스탭을 밟으며 1루로 향했다.

“초구!! 쳤다 ~ ~ ~ ~ ~ ~ 아!! 불만 없는 한 방!!!! 다카기 선수가 초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깁니다!!”

“지금은 노리고 있었네요!! 정말 큰 별이 밤하늘에 새겨집니다!!”

초구 홈런에 일본 중계석은 열광했다.

별이 뜨니 마니 하면서 은근 속을 긁던 캐내다 중계석, 그 건방진 주둥이를 쳐 날려줬으니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장외 홈런은 당연하고 문제는 비거리, 구장 이곳저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사라진 공을 추적했지만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한번 해 보자는 거냐?’

홈런을 맞은 마이크 기글러스는 유유히 2루를 도는 다카기를 째려봤다.

타구 감상은 둘째 치고 백 스탭을 밟으며 1루로 향하다니, 빈볼을 부르는 도발 아닌가. 다음 타석은 그냥두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좋아!!”

한편, 보호펜스 앞까지 마중을 나온 아카마츠 감독은 다카기에게 양 손을 내밀었다.

부담이 안 될 리가 없는데 초구부터 그런 호쾌한 스윙을 보여주다니, 녀석이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엉덩이를 격하게 두들겨줬다.

문제는 보복구,

배트 플립에 백 스탭까지 밟으며 타구를 감상했으니 마이크 기글러스가 가만히 있을까? 가뜩이나 견제를 받는 녀석이라 다음 타석이 염려됐다.

“근성도 없는 놈, 벌써 추락하다니”

하지만 다카기는 태연한 표정으로 동료들과 농담을 나눴다.

그새를 못 참고 추락해버린 별, 다음에는 더 큰 별을 쏘아 올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 오늘 홈런 몇 개나 때릴 거냐?”

“몇 개?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세상에 별이 아무리 많다 해도 밤하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넓이를 자랑한다.

채워 넣으려면 앞으로도 부지런히 노력해야겠지, 만족을 모르는 애송이의 허세 덕분에 일본 더그아웃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까앙 ~ !

대포로 시작된 선전포고, 바통을 이어받은 기무라는 소총을 앞세워 1루를 선점했다.

문제는 후속타자 후지타, 본선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야, 내 명예를 위해서야.’

대표 팀이 일본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조롱까지 당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굴 위해 배트를 잡겠는가. 망신은 충분히 당했고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입장, 공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앙 ~ !!

“이번에는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발 빠른 기무라는 2루를 지나 3루!! 내친 김에 홈까지 내달립니다!! 연속 3안타!! 일본이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뭣보다 후지타 선수가 살아났다는 게 고무적이네요. 오늘은 마이키 선수가 선발로 나서기 때문에 3점 이상이면 안정권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후속타자 카와다 유키나가는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후속 타자 시노자키가 중전 안타를 때려내면서 스코어는 3대 0으로 벌어졌다(2루 주자 후지타 홈인).

하지만 앞 선 경기에서 쿠바를 상대로 5대 2로 앞서나가다 역전패를 당한 아카마츠 감독은 방심하지 않았고, 학생들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하위 타선의 부진은 여전했고 일본은 연속 3안타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번엔 우리가 별을 쏘아 올릴 차례죠.”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어지는 캐나다의 1회 말 반격, 캐나다 중계석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오늘도 조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첫 타석부터 터져버린 다카기의 한 방, 그까짓 별은 우리도 얼마든지 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는 앞 선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홈런만 4방을 쏘아 올렸다. 섬세함은 몰라도 파워는 이쪽이 한 수 위, 일본의 에이스 마이키를 공략하기 위해 우타자를 대거 투입했다.

마이키의 장점은 정교한 제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 구속은 느리지만 좌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는 분명 위력적이다.

하지만 좌투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좌타자에 특화된 최종 병기, 상대가 우타자라면 슬라이더 위력도 반감될 거라고 생각했다.

‘안 몰리면 돼.’

캐나다의 예상과 달리 마이키는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몰리면 위험하지만 우타자 몸 쪽으로 파고드는 궤적은 공략하기 쉽지 않다. 고시엔에서 이것도 두들겨 팬 어떤 괴물이 있지만 그 자식은 이제 아군, 과거의 아픔은 잠시 잊었다.

‘내 변화구가 슬라이더뿐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마이키는 커브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노련함을 보였다.

바깥 쪽 빠른 볼을 노리고 있던 타자 입장에선 난감한 일, 이때 빠른 볼을 찔러 넣어 투 스트라이크를 잡는 공격적인 투구도 겸했다.

“스윙!! 공을 놓쳤지만!! 포수가 잡아서 1루에 던집니다! 원 아웃!! 마이키 선수가 첫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오늘은 시노자키 포수 역할이 중요합니다. 슬라이더를 얼마나 잘 잡아주느냐에 일본의 승리가 걸려있어요.”

몸 쪽 공은 미트를 세워 잡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마이키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우타자 몸 쪽으로 파고드는 궤적, 수평으로 들어오는 공이라 정석대로 미트를 세워 잡는 게 쉽지 않다.

지금도 미트를 맞고 공이 굴절됐지만 멀리 튀지 않아 아웃은 잡아냈다.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투수는 슬라이더를 마음대로 던질 수 없겠지,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시노자키는 주눅 들진 않았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시엔 우승도 경험한 내가 수비 불안이라니, 얼마든지 던져보라며 미트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이제 타석에는 에릭 트럼보, 마이키는 사인대로 바깥 쪽 코스를 노렸다.

까아앙 ~ !!

‘아차!!’

경쾌한 파열음, 마이키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기술적인 면은 몰라도 체격이나 힘은 일본 학생보다 우위에 있는 캐나다, 실투가 나오면서 안 줘도 될 점수를 주고 말았다.

‘조금 더 정교하게 가야겠어.’

여기에 주심이 오락가락 콜을 하면서 마이키는 궁지에 몰렸다. 아까는 잡아줬던 공인데, 캐나다에서 하는 경기라고 밀어주는 건가.

납득할 수 없는 판정에 아카마츠 감독의 얼굴도 점점 달아올랐다.

[스트라이크!!]

“이건 잡아주네요. 2볼 2스트라이크에서 볼 판정을 받았던 그 공 아닙니까?”

“납득이 안 되네요. 그래도 침착해야 됩니다. 판정에 말려들면 안 돼요.”

마이키는 살을 주고 뼈를 받아가는 전략을 택했다.

빠른 볼 평균 구속은 136km 정도, 쳐보라며 밀어 넣을 수준은 안 된다.

하지만 구위와 속도는 별개의 문제, 이시다가 싱커성 볼을 활용해 많은 땅볼을 유도하는 반면, 마이키의 빠른 볼은 회전이 많이 걸려 떨어지는 정도가 적다.

덜 떨어지는 만큼 타자 입장에선 실제 구속보다 훨씬 빠르게 보이기 마련, 슬라이더를 활용하려면 빠른 볼을 과감하게 찔러 넣어야 하는데, 왜 이런 소극적인 피칭을 했을까?

거기다 스코어는 3대 1, 한 방 더 맞아도 상관없다며 우겨넣었다.

‘어림없다.’

다음 타구는 유격수 방향, 다카기는 경쾌한 스텝으로 타구를 낚아챘다.

넓은 보폭 때문에 잔발 활용은 어려운 편, 대신 공격적인 대시를 활용해 다른 유격수보다 빨리 타구를 잡아낼 수 있다.

고시엔에서 안타가 될 공도 아웃으로 둔갑시킨 비결이 바로 이것, 강한 타구를 날리는 팀을 상대로 그 진가는 뚜렷이 드러났다.

“됐어!!”

1회를 넘긴 마이키는 박수를 치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투구 수는 좀 많았지만(17개) 1점으로 막은 건 다행, 벤치에 앉아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도 슬라이더만으로는 안 되겠어.’

세계에서도 통했던 내 공, 대만 전 7이닝 1실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제구만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벽도 있는 법, 확실히 우타자가 많은 팀을 만나면 애를 먹는다.

그래도 일본에선 뚜렷한 단점이 아니었는데, 이런 투구로 오늘 경기를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질 않았지만, 시노자키 포수가 용기를 줬다.

“괜찮아, 네 공은 치기 쉬워 보인다는 게 장점이니까.”

시노자키가 소속한 다이이치 야구부는 고시엔에서 가나가와를 잡아내는 기적을 연출했지만, 마이키는 끝내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나마 잘 공략한 녀석은 다카기 뿐, 다른 타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분명 눈에 보이는데 예상을 벗어나는 궤적, 시노자키는 그게 바로 마이키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내 공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어, 그런데 정타는 잘 안 나오잖아. 그럼 된 거 아냐?”

마이키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때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그냥 웃으면 된다는 말에 마이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쌓였군. 이 장작에 불은 내가 켠다.’

이어지는 2회 초 일본의 공격,

7번 이마오카의 볼넷, 8번 스즈키의 진루타, 9번 마츠다의 볼넷이 이어지며 1사 주자 1, 2루 기회가 왔다.

타석에는 다카기, 이번에도 초구를 노렸다.

‘헤드 샷이 아니라 스트라이크가 필요해.’

기글러스는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내렸다.

이번에는 헤드 샷을 선물하려 했지만 스트라이크도 못 던지는 주제에 그게 가능한가?

그렇다고 장외 홈런을 날린 선수에게 정면승부를 걸 용기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초구는 변화구, 다카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글러스에게 정면승부를 할 배짱이 있었다면 빠른 볼을 택했겠지, 변화구는 처음부터 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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