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밤하늘에 점 하나를 찍어 봐 - (10)
까앙 ~ !
쿠바 전을 앞두고 일본 대표 팀은 최종점검에 나섰다.
아카마츠 감독은 선수들의 체력을 위해 타격훈련만 진행, 다카기는 가볍게 배트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애가 어른이 할 짓을 하고 있네.’
공을 던져주는 구보타 코치는 그런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릴 때부터 다운스윙을 강조하는 일본야구, 고교야구는 알루미늄 배트를 쓰기 때문에 힘만 어느 정도 받쳐주면 홈런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무 배트를 쓰는 프로 세계에 발을 들이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꽝, 결국 정확히 칠 줄 알아야 하는데 레벨 스윙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배트가 수평으로 나오기 때문에 스윙이 느리게 출발하는 편, 스윙 거리를 늘려 파워를 늘려주겠다는 의도에서 벗어나 정확도와 파워를 모두 놓치는 경우도 많다.
‘다운스윙이 실패위험은 낮지.’
그래서 지도자들은 학생들에게 다운스윙을 권한다.
레벨 스윙은 가다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너무 높은 기술, 다운스윙을 가르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이러니 프로 무대에서 30홈런을 치는 국산 타자가 적은 것, 현장에서도 이런 선수는 하늘이 내려주는 존재라고 말을 하는데 다카기는 그 기준에 맞아떨어졌다.
까아앙 ~ !!
“어이쿠 ··· ”
가볍게 밀어 친 공은 눈 깜짝할 사이 구보타 코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고등학교 1학년이 어떻게 이런 파워를 낼 수 있는 건지, 그저 기가 막혔다.
“자네 오늘 3번으로 나가는 게 어떻겠나?”
아카마츠 감독은 다카기를 슬쩍 찔러봤다.
기자들 앞에서 예고 홈런을 해버렸으니, 녀석도 은근 신경을 쓰고 있겠지. 리드오프보다는 우산효과를 받을 3번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아니요. 1번이 홈런 칠 확률이 더 높죠.”
“어째서?”
“어느 투수든 초구 스트라이크는 넣고 싶어 하니까요.”
다카기는 칠 수 있는 공은 망설여선 안 된다는 마인드를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선두 타자로 나설 때 홈런이 나올 가능성도 높겠지, 일리가 있는 말이라 아카마츠 감독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런 스윙은 어디서 배운 건가?”
“마사시게 위원님이요.”
고영길에게 신세를 진 킨타 마사시게는 다카기에게 레벨 스윙을 하라고 권유했다. 시간도 걸리고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최고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시련, 다카기는 그 말을 믿고 레벨 스윙에 집중했다.
“아, 이젠 쫓겨나셨으니, 위원님이라고 하면 안 되겠네요.”
뼈를 때리는 말에 아카마츠 감독은 움찔했다.
킨타 마사시게는 작년까지만 해도 NPB 협회의 일원이었고 U-18 대표 팀을 책임질 유력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 U-15 대회를 하겠다는 협회와 충돌하고 위원직에서 사퇴, 결국 U-18 감독은 아카마츠가 역임하게 됐다.
다카기는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아카마츠 감독은 협회의 치부를 들춰낸 저격에 약간 당황했다.
‘역시 할 말 하고 사는 녀석이군. 괜히 건드렸어.’
건드려봤자 본전도 못 찾을 녀석, 아카마츠 감독은 좀 더 만만한 상대를 찾아나섰다.
“아직도 힘이 덜 풀렸나?”
후지타 겐고로는 감독의 관심에 흠칫했다.
대만 - 스리랑카 전에서 각각 홈런 한 방을 터뜨렸지만, 후지타는 이후 5경기에서 장타력이 실종돼버렸다.
간간이 안타는 쳐주고 있지만 그것만 보고 뽑은 선수가 아니지 않은가. 얼마 전 따끔하게 혼을 낸 적도 있고, 특히 다카기의 활약은 녀석에게 심리적 압박이 되겠지, 감독으로서 최소한의 성의는 표했다.
“자네는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조급해 하지 말고 공을 맞추는데 집중해 봐.”
“예 ··· ”
감독의 충고도 받았지만 후지타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연습이라고 해도 다카기 그 녀석은 밀어 쳐서 장외홈런을 날렸다. 실전에서는 말 할 것도 없는 활약, 조급한 마음은 결과로 드러났다.
‘타선을 수정해야 하나.’
아카마츠 감독의 생각은 복잡해 졌다.
4번에서 3번, 앞선 경기에서 다시 5번으로 타순을 조정했는데 나아진 게 없다. 국제대회는 오늘 지면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무대, 장기적으로 볼 상황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했다.
* * *
“자, 쿠바의 선공으로 경기의 막이 오릅니다. 선두타자는 아드리엘 로페즈, 앞선 캐나다와의 경기에선 4타수 1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상당히 공격적인 타격을 하는 선수죠. 호사카 선수도 그 점은 알고 있을 겁니다.”
일본의 선발로 나선 호사카 미후네(하타세미 고교)는 포수와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고시엔 우승을 코앞에 두고 미끄러졌지만, 일본 대표로 뽑혔으니 그렇게 의미 없는 여름은 아니었다.
아쉬움은 U-18 우승으로 달랠 뿐, 준우승 따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까앙 ~ !!
‘엇?!’
아드리엘은 바깥쪽 공을 힘껏 잡아당겼다.
못 던진 공이 아닌데 이런 타구가 나오다니, 호사카는 유격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막자.’
다카기는 바운드에 맞춰 글러브를 내밀었다.
하지만 타구는 글러브를 맞고 튀었고, 2루수 기무라가 신속히 대응하면서 추가진루는 내주지 않았다.
‘이런 때는 다리가 긴 게 불편하네.’
다카기는 다리에 묻은 흙을 무심히 털어냈다.
내야수는 자세를 낮춰 타구가 빠져나갈 구멍을 최대한 좁혀야 하는데, 다카기는 긴 다리 때문에 탓에 몸을 낮추기 어렵다.
대신 보폭이 넓고 어깨가 강해 빠르고 깊숙한 타구 처리는 용이, 이번 타구는 강하고 워낙 낮게 날아와 대응이 어려웠다.
‘강하고 깊숙하게 들어와라. 언제든지 받아줄게’
다카기는 다음 타자 유델 리오스에게 눈빛을 보냈다.
빌빌 거리는 타구는 사절, 본인도 그런 결과는 원치 않을 테니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한번 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번에는 어림없다.’
호사카는 장타를 억제하기 위해 낮은 제구를 유지했다.
하지만 리오스는 호쾌한 스윙으로 낮은 공을 걷어 냈고,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되면서 일본은 무사 주자 1, 2루 위기에 몰렸다.
‘역시 제구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아카마츠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사카는 하타세미 고교를 고시엔 결승까지 이끈 에이스, 제구는 뛰어나지만 구위는 물음표가 달렸다.
짧게 치는 타자들이 많은 일본과 달리 남미 선수들은 강한 스윙을 추구, 그래도 아카마츠 감독은 제구의 위력을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타자들이 낮은 공을 걷어 올리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건가.
궁지에 몰린 호사카는 변화구 비율을 높였다.
‘빠른 볼이 안 통하는데 변화구가 통하겠어?’
하지만 다카기는 그 생각에 동의 못했다.
고시엔에서도 카운트가 불리해지면 변화구 비율을 높이더니 여기서도 못 고친 못 된 버릇, 아니나 다를까 후속 타자 조엘 로드리게스는 불리한 카운트에서 들어오는 빠른 볼을 놓치지 않았다.
‘너 잘 걸렸다.’
유격수 방향 깊숙한 타구, 3루수 카와다가 망설이는 사이 다카기는 그 뒤로 성큼 다가왔다.
무사 주자 1, 2루라 주자들은 무조건 뛸 수밖에 없는 상황,
다카기는 3루로 공을 넘겨 2루 주자를 잡아냈다. 문제는 여기부터, 3루수 카와다 유키나가는 1루 송구를 택했다.
“1루에서 아웃!! 위기를 넘어갑니다!!”
“지금은 기무라 선수가 커버를 조금 늦게 들어왔죠. 조금 더 집중해줘야 합니다.”
다카기는 좋은 판단이었다며 카와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루 주자였던 유델 리오스의 스피드는 쿠바 제일, 거기다 2루수 기무라가 커버를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우물쭈물했다면 1사 주자 1 - 2루가 됐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차분히 1루 송구를 택하다니, 그 침착함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 훌륭해!!”
쿠바의 1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아카마츠 감독은 내야진의 명품 수비에 박수를 보냈다.
쿠바엔 유독 잡아당기는 타격을 하는 선수가 많다.
그만큼 유격수의 역할이 중요, 기무라를 유격수에 배치하고 다카기를 1루에 배치할 까 했지만 그만뒀다.
기무라의 수비는 안정적이지만 범위가 넓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쿠바 선수들의 강한 타구의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다카기라면 어떻게든 해주겠지, 예상은 멋지게 맞아들었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쿠바의 호세 라미레스 감독은 다카기의 수비 범위에 할 말을 잃었다.
3루수가 반응도 하지 못한 강습 타구, 그 정도면 내야를 빠져나가는 게 정상이다.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나 타구를 낚아채다니,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최다 우승국의 위용을 보여 줘.’
이어지는 일본의 1회 말 반격, 다카기는 한껏 기대를 품고 초구를 맞이했다.
까앙 ~ !!
“쳤다!! ··· 아 ~ 파울입니다.”
“지금은 늦었죠. 조금 더 간결하게 돌아 나와야 됩니다.”
타구 방향을 확인한 다카기는 아쉬움을 삼켰다.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가끔 어긋나는 자세,
배트를 잡고 있는 건 손인데 하체부터 움직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은 몸이 기억하고 있겠지, 연습스윙으로 그 느낌을 끄집어냈다.
까앙 ~ !!
“쳤다!! 계속 가는 타구!! 중견수 옆에 떨어집니다!! 일본의 첫 안타!! 그 주인공은 역시 이 선수 입니다!!”
“지금은 기술적인 타격이네요. 이번에도 타이밍이 약간 밀렸는데, 어떻게 해서든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빠른 볼 타이밍에 뻗은 앞발, 힘을 싣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심을 뒤에 남겨두고 있던 다카기는 그대로 스윙을 내질렀다.
어쩌다보니 밀어 친 타격이 됐지만 결과는 안타, 어떻게든 안타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 아카마츠 감독은 큰 감명을 받았다.
“이봐, 저 녀석 지금 프로에 넣어도 3할은 칠 것 같지 않나?”
“하하 ~ 글쎄요.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구보타 코치도 맞장구를 쳐줬다.
연습배팅이었지만 밀어 쳐서 홈런을 날릴 수 있는 파워와 기술을 갖춘 녀석, 프로가 그렇게 만만한 무대는 아니지만 저 녀석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다카기를 향한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저도 여기 있습니다.’
다카기에게 쏟아지는 감독의 총애를 질투하듯, 후속타자 기무라도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렸다.
최근 5경기 타율은 0.435, 오늘도 안타를 신고하며 프로구단을 향한 무력시위를 이어갔다.
“자, 이제 3번 타자 카와다 유키나가 선수가 들어섭니다. 지난 멕시코 전에서 홈런 포함 4타점, 오늘은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자신 있으면 초구부터 나가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투수가 피할 상황이 못 되거든요.”
까앙 ~ !!
“말씀대로 초구를 때립니다!! 계속 뒤로 가는 타구!! 중견수가 펜스 앞에서 잡아냅니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3루! 아니!! 홈까지 내달립니다!!!!”
어려운 타구를 잘 잡아냈지만 쿠바의 중견수 야시엘은 송구 도중 공을 떨어뜨리는 실책을 범했다.
다카기는 신나게 바람개비를 돌리는 3루 코치의 뜻과 상관없이 홈으로 돌진, 아카마츠 감독은 먼 길을 돌아온 득점 기계의 엉덩이를 격하게 내리쳤다.
“거긴 건들지 마세요. 우리 엄마도 못 만지게 하는데 ··· ”
예상 못한 반응에 아카마츠 감독은 격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어깨만 건드려서 오늘은 스킨십 영역을 확장해 봤다. 그런데 퇴짜를 맞다니, 탄력이 있어서 때리는 맛이 제법 좋았는데 뭔가 아쉬웠다.
‘그랬었나?’
엉덩이는 건들지 말라니, 마이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녀석은 지금까지 수많은 활약을 했다. 누군가 한번은 엉덩이를 때려봤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긴, 저 녀석이 다가가기 쉬운 편은 아니지.’
다카기는 후지타와 충돌한 이후 선수들과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볍게 손이나 어깨를 치는 정도면 몰라도 거기까지 손을 대는 건 어렵겠지. 마이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건드리면 화내려나?’
빈틈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약점이 있었다니, 그동안 당한 것도 있고 괜히 한번 때려보고 싶었다.
그래도 사람은 눈치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 싫다고 하는 곳을 대놓고 치면 좋아할까. 지금은 아닌 것 같고, 다음 기회를 노렸다.
‘홈런을 치고 돌아오는 타이밍을 노리자.
하지만 다카기는 두 번째 타석에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손이 근질근질한데 그렇다고 내 걸 칠 수는 없고, 마이키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다카기의 세 번째 타석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