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8화 (28/361)

28화. 이상한 군단 - (2)

“이겼다!!”

“선배!! 이제 결승이에요!!”

한편, 다이이치 고교 야구부는 드디어 마지막 관문까지 도달했다.

역대 최고 성적, 지역예선 4강이 우리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런 날이 찾아올 줄이야. 학업에 열중한다며 떠나버린 녀석들에게 너희는 틀렸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감독님, 다이이치가 올해 이렇게 강해진 비결이 뭡니까?”

“음 ··· 글쎄요.”

후루타 감독도 입이 귀에 걸린 채 기자들을 맞이했다.

승리의 비결에 특별한 이유가 있겠는가. 선수들이 잘 해준 덕분이라는 형식적인 답을 내놨고, 캡틴 이시다는 감독님의 적절한 지도 덕분이라며 서로 공을 떠 넘겼다.

“다카기 선수, 다이이치가 강해진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운동도 잘 하는 시대 아닌가요?”

그에 비해 다카기는 색다른 답을 내놨다.

다이이치는 예전부터 학업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운동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학교는 물론 학생들도 운동에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 하지만 다카기는 잘 할 수 있으면 뭐든 소홀이 하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믿었다.

“다이이치 고교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재들이 모인 곳입니다. 운동도 잘 하는 건 당연하고 생각합니다.”

“하하 ~ 공부와 운동이 서로 관계가 있는 겁니까?”

“저희들이 증거입니다. 분명 관계가 있습니다.”

야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말재주도 있는 학생, 기자들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기사를 쏟아냈지만, 도내 결승전에서 다이이치와 맞붙게 된 쿄우마 대학 부속고교는 발끈했다.

‘공부 잘 하는 녀석이 운동도 잘 하는 시대라고?’

쿄우마 대 부속고교는 학업 전국 편차가 40이 안 된다.

평균보다 떨어지는 수준, 70을 상회하는 다이이치에 비해 명성이 높다고 할 순 없다. 우릴 그런 식으로 자극하다니, 쿄우마 야구부 캡틴 ‘바바 신이치로’는 필승을 다짐했다.

“너희들, 우리가 졌을 때 기자들이 무슨 기사 내보낼지 생각해 봐라. 그거 참을 수 있냐?!!”

“아닙니다!!”

“반드시 이긴다!! 패배는 절대 용납 못해!!”

쿄우마 고교는 5년 전부터 부활동에 많은 투자를 했다.

땅을 사들여 야구장, 축구장을 만들고 여기에 동문들의 협조까지 더해지면서 야구부는 연간 1200만 엔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는다.

야구부원은 대략 60명, 이 중 더그아웃에 앉을 자격이 있는 선수는 18명뿐이다. 철저한 경쟁 시스템으로 다듬어진 전력, 결승까지 올라온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다이이치 고교는 PTA에서 제공하는 100만 엔을 제외하면 지원이라는 게 거의 없다.

여기에 연 개인 회비가 8만 엔, 이 예산 안에서 장비와 물품을 조달하고 식비까지 챙겨야 한다.

일본 최고의 사립고교가 동문 지원이 한 푼도 없었다니, 잘 된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무심해도 되는 건가. 기자들은 이런 현실을 기사에 담아냈다.

“이런 건 왜 조사하는 거야?”

다이이치 고교 이사회는 대책 회의를 열었다.

역시 공부 잘하는 것들은 인정이라는 게 없는 건가? 이런 식으로 기사를 내보내는데, 부활동 지원이 형편없는 건 사실이라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지원금을 늘리는 게 어떨까요?”

“그건 너무 형식적이야. 여론에 떠밀려서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뭔가 색다른 방식이 좋을 것 같은데 ··· 뭔가 좋은 아이디어 없나?”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렇다 할 비책이 없는 상황, 고요한 공간에서 의미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 * *

‘아 ~ 심심해.’

방학을 맞아 모토즈키 스즈에는 할 일 없는 나날에 몸부림을 쳤다.

여름이 되면 신날 줄 알았는데 늦잠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 젊음은 짧은데 이 귀한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도 되는 걸까.

뭔가 신선한 자극이 필요했다.

‘걔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지나간 1학기, 잠시 전황을 지켜보라는 타카코 선생님의 충고는 무시하고 직구를 던졌다면 어땠을까?

잘 될 거란 보장은 없지만 만약 이뤄졌다면 지금 환상적인 여름을 보내고 있겠지, 야구장에 응원이라도 가 볼까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너무 덥잖아. 땀 흘리면 화장도 지워지고 ··· 피부에도 안 좋아.”

차라리 미모를 갈고 닦아 2학기에 승부를 보는 게 현명, 몸매 유지를 위한 틈새 운동과 피부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지금 뭐 하니?]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 날아든 타카코 선생님의 문자, 방학 중이라 뵐 일은 없지만 간간이 문자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이어왔다.

[저 그냥 생각하고 있었어요]

[무슨 생각? 혹시 남자?]

스즈에는 얼굴을 붉혔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내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선생님, 부끄러운 마음에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멍하니 있었어요.]

[방학인데 어디 놀러 갈 계획도 없어?]

[계획은 있는데 돈이 없잖아요.]

[그럼 야구부 응원하러 가자]

개교 이래 첫 고시엔 진출 기회, 마침 야구부 지원을 두고 고심하고 있던 이사회는 타카코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음이 담긴 응원만큼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 선생님 말도 일리는 있군요.”

외야는 무료로 개방하지만 그만큼 좌석경쟁이 심하다는 게 문제,

외야석을 점거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예매를 해도 전 좌석의 30%만 받고 나머지는 당일 판매, 가장 싼 1, 3루 자유석도 구하기가 어렵다.

단체 응원을 가겠다면 그만한 편의를 제공해야겠지, 이사회는 타카코 선생님이 이끄는 응원단에 티켓, 교통, 알바비까지 포함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제 남은 건 학생들의 동의 뿐, 하지만 스즈에는 답을 망설였다.

야구부원이 응원을 하러 온 소녀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했다는 기사도 있지 않은가. 야구장에 가는 건 싫지만 내가 찍어둔 남자가 누군가와 눈이 맞는다면?

타카코 선생님이 이끄는 동아리엔 예쁜 아이들이 많다. 방심은 금물, 이번 기회에 말을 트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기로 했다.

* * *

“응원단이요?”

“그래, 너희들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다.”

이 문제는 다시 야구부 입에 오르내렸다.

응원만 하고 간다면 딱히 문제될 게 없는데, 돈을 쓸 줄 모르는 이사회의 결정은 마음에 안 들었다.

‘응원단에 지급할 돈은 있었던 거야?’

‘그 돈이면 배트, 글러브를 더 사는 게 낫지.’

1 - 3루 자유석 티켓 값은 1500엔, 93명이면 한 경기만 해도 14만 엔이 들어간다.

야구부 1년 예산은 PTA 지원금과 학생이 부담하는 회비까지 합쳐 430만 엔, 살림하는 것도 빠듯한데 한 경기에 티켓 값으로 그 많은 돈을 지불한다고?

여기에 이사회는 응원단의 교통, 알바비까지 지급한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잠자코 있던 다카기가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누굴 위한 응원인가요? 제가 보기엔 그냥 용돈 챙기러 오는 것 같은데요.”

잠자코 있던 후루타 감독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자기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핏대를 올리다니, 야구부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만큼 깊은 거라고 이해했다.

“저희들이 있는데 무슨 응원단이 필요해요. 그 돈이면 야구부 지원에 쓰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사나에가 이끄는 매니저 군단도 격한 반대를 표했다.

우리는 여기서 부원들 뒤치다꺼리해도 교통비만 지급받는데, 걔들은 뭐 하는 게 있다고 알바 비까지 받는 건가.

앞뒤가 맞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다카기도 맞장구를 쳤다.

“선배님 말이 맞아요. 알바 비를 받아도 매니저들이 받아야죠.”

“그래, 내 말이 맞지? 화장하고 예쁜 척 하라면 누가 못해?”

사나에의 거침없는 발언에 다나카 코치의 가슴은 뜨끔했다.

본인의 애인이 건의한 일이라 뭐라 말도 못하고,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부원들의 민심을 살폈다.

“그래도 응원단이 있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요시다가 슬쩍 손을 들었다.

다른 학교는 관현악부니 뭐니 다 동원해서 응원전을 펼치는데, 우리는 왜 이 모양인가. 타카코 선생님이 이끄는 동아리는 미인들이 많기로 소문났고, 그런 아이들이 응원을 하면 여론의 주목도 받고 선수들의 사기도 오를 거라는 논리를 펼쳤다.

‘말 다했니?’

사나에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평소 뒤치다꺼리는 물론 선수들과 함께 뛰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는 매니저들은 그럼 뭐가 되는가.

그제야 요시다도 슬쩍 방향을 틀었다.

“물론 우리 매니저들이 고생하는 건 다 알고 있죠. 응원단에 지원을 하겠다면 매니저들도 같은 대우를 ··· ”

“그래, 그게 정답이다.”

보다 못한 후루타 감독이 중재에 나섰다.

이사회가 응원단을 지원하는 건 이미 결정된 일이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매니저들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응원단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래, 까짓 거 뭐’

이사회가 동의하면서 협상은 타결됐다.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현실은 여전, 매니저 군단은 응원단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와아아 ~ !!”

드디어 시작된 지역예선 결승전, 학생들은 관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입장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혈전의 나날, 그동안 얼마나 많은 환희와 슬픔이 이 무대를 스쳐갔는가.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학생은 36명 뿐, 관객의 관심을 독점한 자리인 만큼 긴장감은 다른 경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릴 무시했겠다.’

교우마 고교 선수단은 긴장감을 증오로 바꾸려 애썼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운동도 잘하는 시대라니, 그 건방진 주둥이를 쳐 날려주겠다며 눈빛을 번뜩거렸다.

“다들 준비 됐니?”

“네 ~ ♡”

한편, 3루 쪽에 자리 잡은 다이이치 응원단도 태세를 가다듬었다.

갈고 닦은 화장법 덕분에 나름대로 빛을 내는 미소녀 군단 93명, 자리를 가득 채운 관중에 비해 머릿수는 부족했지만 한 덩이로 뭉쳐 존재감을 드러냈다.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다이이치!!”

별 것 없는 구호지만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절묘, 목소리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난무하는 환호 속에서도 빛을 냈다.

‘저건 또 뭐냐.’

이상한 군단의 등장에 쿄우마 고교 선수단은 당황했다.

어디서 저런 게 튀어나온 건지, 거기다 외야도 아니고 3루 자유석에 자리를 잡았으니, 무시하려 해도 괜히 눈에 거슬렸다.

“플레이 볼!!”

1회 초, 쿄우마 교고의 선공으로 결승전의 막이 올랐다.

선두 타자는 코지마 겐지(2학년), 땅볼 비율이 높아 내야수비가 탄탄한 다이이치를 상대하는 건 상성이 좋지 않았다.

깡 ~ !

아니나 다를까 유격수 땅볼, 지금까지 단 한 개의 실책도 범하지 않은 다카기는 여유롭게 1루 송구를 마쳤다.

“다카기!! 다카기!! 다카기!! 다카기!!”

쏟아지는 탄성과 환호, 하지만 다카기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뭐 대단한 거 했다고 난리인지, 신경 끄고 경기에 집중했다.

‘왜 난 안 불러?’

하지만 마운드 위의 이시다는 관객의 반응을 은근 신경 썼다. 땅볼을 유도한 건 난데 왜 저 녀석이 환호를 독차지 하는 건지, 살짝 질투를 느꼈다.

‘삼진을 잡아야 되나.’

그늘 밑에서 살아온 에이스, 여론의 관심과 환호에 굶주려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땅볼 유도에 최적화 된 이상 내야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 다카기와 인기를 공유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배, 저기 공 굴러 가네요.’

다카기도 나름 고충은 있었다.

삼진 능력이 떨어지는 캡틴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입장, 적당한 자극은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위치로도 2루수가 잡는 게 나은 타구, 언제나 부지런한 사토 선배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것도 잡을 수 있죠?’

다음 타구 처리도 책임전가, 건방진 후배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사토는 쏟아지는 환호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다이이치 고교의 1회 말 공격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선두 타자는 다카기 하루요시 선수, 이번 대회 성적은 타율 0.689, 홈런 3개, 8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시다 선수가 뒤를 받쳐주고 있는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8경기 연속 멀티 히트, 그 중 3안타 이상이 3경기 ··· 정말 1학년이 맞는지 의심이 됩니다.]

다카기가 예선전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후루타 감독은 3번 타자 이시다를 2번으로 끌어올렸다.

사토의 방망이가 약한 건 아니지만 장타력이 떨어져 다카기를 받쳐주기엔 부족하다.

초반에 선취점을 내고 그 기세를 몰아 상대를 압박하는 게 다이이치의 필승 전략, 쿄우마 고교는 다카기를 억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피해 봐라. 피할 수 있다면 말이지’

몸 쪽 빠른 볼, 다카기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초구를 흘려보냈다.

“우우 ~ 우 ~ ”

“정정당당하게 승부해라!!”

다이이치 응원단은 격하게 반응했다. 팀의 마스코트 같은 선수에게 위협구라니, 흥분한 스즈에는 응원막대로 삿대질까지 했다.

‘잘 생긴 얼굴 망가지면 네가 책임 질 거야?!’

마음 같아선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일단 참았다. 하지만 저렇게 위험한 공에 미동도 안 하다니, 다카기의 행동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또 던져봐. 여기로 던져보라고’

재정비를 마친 다카기는 왼쪽 팔꿈치를 스트라이크 존에 밀어 넣었다.

놀이에 쓰는 야구공을 협박 도구로 쓰다니, 얼마나 실력에 자신이 없으면 잔머리를 굴리는 건가.

결승전에 올라온 상대라 나름 인정해 주려고 했는데, 놀아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는 바깥 쪽, 볼입니다. 카운트는 2볼 노 스트라이크]

[이제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거든요. 조심해야 됩니다.]

까앙 ~ !!

[말씀 드리는 사이, 밀어낸 타구가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선두 타자 안타!! 다카기 선수가 9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갑니다!!]

[본인의 스윙에 자신이 있네요. 이 상황에선 공 하나 지켜보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거침이 없습니다.]

후루타 감독은 제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많은 지도자가 학생들에게 참을성을 강조하지만 그 의미를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을성의 목적이 볼넷인가? 볼넷도 잘 치는 선수가 얻어내는 거지, 투수는 소심한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칠 수 있는 공을 가려내는 게 참을성의 진정한 의미, 안타를 칠 수 있다면 카운트에 상관없이 배트가 나가는 게 맞다. 그리고 그렇게 할 줄 아는 게 스타, 다카기는 그렇게 불릴 자격을 갖췄다.

“꺄아아 ~ !!”

“다카기!! 다카기!!”

응원막대로 투수에게 삿대질을 하던 스즈에는 마음껏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말 한마디 못 걸었는데 오늘은 그 이름을 불러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다른 부원들 목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냈다.

‘그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매니저 군단도 지지 않고 응원대열에 동참했다. 누가 뭐래도 야구부의 살림을 책임지는 안방마님은 우리들이다. 외간 여자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 순 없는 일, 선수들에게도 한 눈 팔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역시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겠지.’

타석에 선 캡틴은 의욕을 불태웠다.

이시다는 이번 지역 예선에서 홈런은 없지만 2루타를 3개나 기록했다. 2번을 치기 전까진 3번에 배치됐으니 장타력은 있는 편,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손잡이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이 녀석아 ··· ’

시원하게 헛바퀴를 굴리는 방망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후루타 감독은 집중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평소 저렇게 스윙을 하는 녀석이 아닌데, 의욕을 앞세우는 게 눈에 보였다.

‘너,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어?’

이시다는 흐트러진 집중력을 바로잡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3년 동안 야구부에 몸을 담았는가?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그건 아니다.

진짜 목적은 고시엔 진출, 매번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솔직히 이 자리에 두 발을 들인 것도 기적이다.

‘절대 질 수 없어. 이런 기회는 또 오지 않아.’

지난 3월, 이시다는 지역예선 4강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여기서 꺾이면 나는 패배의 아픔을 추스르고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올 수 있을까? 패배라면 지겨울 정도로 많이 겪었고, 노력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

그런데 4강이 우리의 한계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여기서 꺾였을 때 다시 돌아올 용기마저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그리고 학업에 집중하겠다며 하나 둘 떠나버린 동료들, 그땐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캡틴이라는 자리에 걸린 부담 그리고 이게 내 마지막 여름이라는 간절함까지 모두 이겨내고 올라온 결승전 아닌가.

관중의 환호에 휘둘릴 때가 아니었다.

“저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겉보기엔 여유만만이지만 다카기 저 녀석도 나와 비슷한 각오를 세우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그건 다른 부원도 마찬가지,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공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까앙 ~ !!

[당긴 타구가 내야를 빠져 나갑니다!!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 3루까지 들어갑니다!! 그 사이 타자 주자는 2루!! 다이이치가 무사 주자 2, 3루 기회를 맞이합니다!!]

[지금은 좀 아쉽네요. 타자 주자를 1루에 묶어두는 게 어땠을지 ··· 쿄우마 고교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카기의 주루 플레이는 그라운드를 뒤흔들었다.

성공하면 적극적 실패하면 무모했다는 말을 듣는 세계, 느린 타구라 거침없이 3루 진루를 택했는데 이시다 캡틴이 빈틈을 노려주면서 의외의 수확까지 거뒀다.

‘3루 주자만 불러들이자.’

이제 타석에는 3번 타자 쿠로다,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눈에 띄진 않지만 부 캡틴으로서 제 역할은 다하고 있다.

이번 대회 성적은 타율 0.333 홈런 없이 10타점, 테이블 세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쳐도 매 경기 타점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인가.

화려하진 않지만 성실하고 기본기 있는 플레이를 앞세우는 선수, 이번 타석도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몸 쪽으로 던져서 찍어 치는 타격을 유도하겠지.’

후루타 감독은 몸 쪽은 버리라는 사인을 넣었다.

쿠로다는 배트 스피드가 빠르지 않아 몸 쪽 공을 찍어 때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타구는 3루 쪽으로 굴러가겠지, 그거야말로 상대가 원하는 시나리오 아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투구가 시작되자 3루수는 홈 플레이트로 튀어나갔다.

‘안 쳐’

쿠로다는 지시대로 초구를 흘려보냈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감독님 옆에서 보낸 3년, 다른 건 몰라도 야구의 흐름을 읽는 눈은 확실했다.

스윙이 늦은 만큼 다운스윙이 되면서 땅볼을 칠 확률은 높은 편, 자신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렸다.

‘읽혔나.’

쿄우마 고교의 감독은 3루수를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작전이 읽혔으니 그 반대로 가야겠지, 포수도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응?!!’

‘쟤 왜 저래?!!’

이때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터졌다. 3루 주자 다카기가 홈으로 돌진해 버린 것, 깜짝 놀란 쿠로다는 타석에서 물러나 진로를 확보해줬고 바깥쪽으로 빠져 앉은 포수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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