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고등어 떼 - (2)
“어서 오십쇼 ~ ”
동네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식당, 주인장은 여느 때처럼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다.
“고등어 정식 주세요.”
“예 ~ ”
주인장이 요리를 하는 동안, 안주인은 곁눈질로 손님을 살폈다.
이때만 되면 고등어 정식을 먹으러 오는 소년, 가게 간판 메뉴지만 계속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거기다 저 나이면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지, 언제나 외식을 하는 것도 수상했다.
단골이니 슬슬 말을 거는 것도 괜찮겠지, 안주인은 살가운 미소를 방패막이로 삼아 접근을 시도했다.
“학생인 것 같은데 이 근처에 사나요?”
“예”
“고등어 정식 매일 먹으면 안 질려요? 주위에 다른 음식도 많은데 ··· ”
오는 손님을 왜 쫓아내는 건지, 주인장은 따가운 눈빛을 보냈다.
“저는 여기 꽤 마음에 드는데요.”
“정말요?”
“제가 자극적인 음식은 잘 못 먹거든요. 다른 데도 다녀봤는데, 여기만큼 입에 맞는 데가 없어요.”
내가 만든 음식의 가치를 알아주는 손님만큼 소중한 존재가 어디 있을까, 기분이 좋아진 주인장의 어깨는 흥으로 들썩였다.
“매일 혼자 오는데, 혹시 타지에서 공부하러 왔나요?”
“예, 다이이치 고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머나 ~ 우리 아들도 거기 보내려고 하는데, 혹시 조언 같은 거 해줄 수 있나요? 내가 오늘 서비스 해드릴게.”
안주인의 참견이 이어지자 주인장도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아들 녀석이 그 명문고에 합격할 수 있을까.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지 조언을 듣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손님을 붙잡아 봤자 얻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뭐든 꾸준히 하는 게 정답 아닐까요? 저는 운동을 하던 입장이라 막바지에 벼락치기를 했는데, 솔직히 붙은 것도 운이 따라준 것 같아요.”
“손님의 말이 맞습니다. 뭐든 차근차근 매일 하는 게 중요하죠. 그 녀석은 끈기가 없어서 ··· ”
가만히 있던 주인장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들은 인내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약점, 중학교에서 어느 정도 성적은 내고 있지만 놀기 좋아하고 뭐든 진지하게 대하는 면이 부족했다.
“자, 여기 고등어 정식, 그리고 가다랑어 타다키”
“이건 안 시켰는데요.”
“하하 ~ 서비스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세요.”
어쩌다 얻어걸린 보너스, 하지만 다카기는 주인장의 성의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가다랑어는 특유의 피 냄새가 강한 생선, 첫 만남이 워낙 강렬해 그날 이후 입 근처에 대 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안 먹으면 성의를 무시하는 짓, 망설이다 한 점을 입에 우겨넣었다.
‘뭐야, 생각보다 괜찮잖아.’
양념에 가려져서 그런지 비린내는 거의 못 느낄 정도, 가다랑어는 고급생선은 아니지만 초여름이 되면 맛이 올라온다.
지금이 딱 그때, 여기에 오랜 경험이 축적된 주인장의 손까지 더해지면서 최상의 맛을 끌어냈다.
“여기 고등어 하나”
“예 ~ ”
또 다른 손님의 등장.
다카기는 이제 막 이 식당의 단골 반열에 올라섰을 뿐, 저 손님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었다.
올 때마다 내가 여기서 먹은 고등어가 10만 마리는 될 거라며 허풍을 늘어놓는 할아버지, 이제 막 40마리를 돌파한 애송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자네 또 왔나?”
“호리오 씨, 하실 말씀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
안주인이 저지에 나섰지만 막무가내인 할아버지, 밥 잘 먹던 다카기는 말 무차별 공격에 노출됐다.
“자네 여기서 고등어 몇 마리나 먹었나?”
“글쎄요. 대략 30마리 정도 ··· ”
“으하하하 ~ 아직 어리군! 어려!”
그동안 내게 관심도 없던 할아버지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지 주인장은 옅은 미소만 지었다.
“그래도 이 맛을 아는 거 보니 코흘리개는 벗어난 것 같군.”
“예?”
“솔직히 이 식당이 고급식재료를 다루는 건 아니잖아? 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이지.”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망언, 다카기가 주인장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할아버지는 못 다한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잘나게 태어났든 못나게 태어났든 노력하면 나름대로 맛이 나는 거야. 이 고등어처럼 말이지. 그래서 난 이게 마음에 들어, 꼭 나 같은 녀석이거든!”
이것도 나름 철학이라면 철학인 건가? 다카기는 진지한 자세로 호리오 씨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래서, 어르신은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시나요?”
“오호 ~ 제법 심오한 질문을 하는군. 그래 ··· 솔직히 나는 어렸을 때 자신감이라곤 요만큼도 없었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지. 지금도 그다지 잘났다곤 할 수 없지만, 나름 만족하네.”
“어째서죠?”
“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럭저럭 봐줄만하다는 뜻이지, 이 고등어도 특별한 건 없지만 값이 싸고 먹을 만 하니까 사람들이 찾는 것 아니겠나? 이 맛을 알아야 인생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지.”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등어일까 아니면 값비싼 어종일까. 분명한 건 아직 미숙한 점이 많다는 것, 그래도 노력하면 나름대로 맛이 날 거라는 충고는 제법 의미가 있었다.
“어르신, 고등어 정식 부탁하셨죠?”
“그런데?”
“오늘 식사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가르침을 준 대가, 소년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리오 씨는 같이 한잔 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 저 올해 열다섯 살이라 술은 ··· ”
“그게 뭐가 중요해? 그 정도면 다 큰 거야!!”
방금 전까진 애송이 취급 하더니 이건 또 무슨 대접인가, 다카기는 어른이 되면 술 한 잔 대접하겠다는 말로 호의를 거절했다.
“자네, 오늘 한 약속 잊으면 안 되네.”
“예,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다카기 약속대로 어르신의 식사를 지불하고 식당을 나섰다.
요즘은 썩은 고등어들만 넘쳐나는 줄 알았는데 저런 녀석도 있었을 줄이야, 호리오 씨는 좋은 친구를 떠나보냈다며 씁쓸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저 친구 학교는 어디 다닌다고 하나?”
“다이이치 고교래요. 고향은 하마마츠인데 학업 때문에 여기서 유학하게 됐다고 하네요.”
“어이쿠 ~ 이거 내가 괜한 잘난 척을 했군.”
안주인의 말에 호리오 씨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고등어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참치였다니, 그런데도 이 주책없는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준 그 태도가 생각할수록 돋보였다.
“저 친구 내일도 여기 온다고 하나?”
“손자뻘 되는 학생한테 친구라니요. 호리오 씨도 정말 ··· ”
“뜻이 맞으면 친구지, 나이는 아무 상관없는 거야.”
안주인이 뭐라고 하든 말든 호리오 씨는 술잔을 기울였다.
대화를 나눌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대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 * *
“못 오신다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고시엔 진출을 노리는 다이이치 야구부는 난관에 봉착했다.
다른 학교와 연습게임을 치르며 실전 감각을 키울 때가 됐는데, 약속이 잡힌 학교가 일방적으로 취소를 선언해 버렸다.
지금이면 다른 학교도 다 예약이 잡혀 있을 텐데 연습상대를 구할 수 있을까, 전화를 받은 다나카 코치의 표정은 심각했다.
싸운다고 해결 될 일도 아니고, 알았다고 답을 했지만 깨져버린 신뢰가 회복될 일은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다시는 교류하기 어렵지, 지금은 뒷수습이 우선이다.’
다른 학교에 전화를 해봤지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괜찮은 상대들은 벌써 약속이 잡혔고, 아쉬운 대로 야구 동아리 문을 두들겼다.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는 학교도 있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
‘우리가 나설 차례다.’
사나에가 이끄는 매니저 군단도 팔을 걷어붙였다.
연습경기는 하위권 팀이 수준 있는 학교와 교류하며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이름 있는 학교라면 연습경기 상대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다이이치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고 배고픈 놈이 사냥을 하는 법, 방학 중이라 많은 학교가 비었지만 사나에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 ~ 심심해 ··· ”
“졸려 ··· ”
이곳은 도우묘 고교의 야구부원실, 지역예선을 앞두고 많은 야구부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곳 분위기는 평화롭다 못해 지루했다.
부원수는 겨우 12명, 이것도 야구부 설립을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거다. 동아리라고 지역예선에 출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전력으로 지원서를 넣어 봤자 집행위원회의 허락이 떨어질 리가 없다.
‘지금은 이렇지만 언젠가는 ··· ’
그래도 캡틴 마이타케 카즈노리는 밝은 미래를 꿈꿨다.
이제 막 설립된 야구부라 다들 1학년뿐이지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건 장점, 2년 뒤엔 전력을 정비해 지역예선에 참가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심심하면 훈련 좀 할까?”
“어제 많이 했잖아. 오늘은 좀 쉬자.”
하지만 부원들은 그런 거창한 꿈과 거리가 멀었다.
방학 때 할 일이 없어서 나오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 더운 날씨에 훈련을 하는 건 귀찮았다.
“야, 우리 게임 센터나 갈까?”
“나 돈 없어.”
“그럼 집에나 있지 여긴 왜 왔어?”
“돈이 없어서 왔다.”
할 일은 없는데 빈둥거려봤자 엄마 잔소리에 시달릴 뿐, 갈 곳 없는 청춘들은 방학 중에도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뭔가 신나고 자극적인 일 없을까? 마침 불청객이 부원실 문을 두들겼다.
“여기 야구부 동아리 맞죠?”
“네 ··· 그렇습니다.”
“저는 다이이치 고교의 야구부 매니저 사나에라고 하는데요. 혹시 연습경기 좀 부탁해도 될까요?”
다이이치라면 센바츠 지역예선 8강까지 갔던 팀 아닌가, 의외의 손님의 등장은 한껏 늘어진 분위기를 사정없이 뒤틀었다.
“일단 여기 앉으세요.”
캡틴 마이타케 카즈노리는 누구보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잖아도 다른 학교의 연습경기 제안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지 다들 놀아주질 않았다. 야구부 창립 3개월 만에 일어난 기적,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야구부 부원은 몇 명이나 있나요?”
“12명입니다.”
“지역예선에 참가한 적은 없고요?”
“네, 올해 설립돼서 아직은 ··· ”
사나에의 질문 공세에 마이타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수준이 떨어져서 못 놀아주겠다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닌지, 다른 부원들도 긴장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럼 중학교 대회는요? 그래도 야구 동아린데 경험한 사람은 있겠죠?”
“네, 저 포함해서 5명 있습니다.”
사나에는 고민에 빠졌다.
나쁜 상대는 아닌 것 같은데 감독님과 코치님이 허락을 해 주실지, 하지만 이 시기에 연습상대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인가.
다른 학교는 스케줄이 꽉 찼고,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