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7화 (7/361)

7화. 선택할 권리 - (7)

[지금 통화 괜찮냐?]

“어,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중요한 문제야. 심각하게 들어줬으면 좋겠어]

개학식이 끝난 그날 밤, 이시다는 동급생 쿠로다의 전화를 받았다.

사람이 조직을 이룬 이상, 어떻게 불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 때로는 대재앙을 일으키는 법, 쿠로다는 야구부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며 캡틴을 설득했다.

[오늘 너 없을 때, 이토가 야구부 나간다고 했어]

“ ··· 그래서?”

[그래서라니, 혼자 그만두는 거면 몰라도 다른 녀석들까지 부추기고 있다고, 잘못되면 도전도 못해보고 여름은 끝나는 거야]

“나갈 테면 나가라고 해, 그 정도 근성도 없는 녀석들은 필요 없어.”

하지만 이시다는 냉정했다.

부원들에게 좀 더 상냥해지라는 충고를 들은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토가 나에게 불만이 많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도 녀석이 지금까지 야구부에 남았다는 건 그만큼 야구에 애정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럼 넌 그 자식이 홧김에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낙관적인 생각은 위험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쿠로다, 미안한데 난 지금 뒤쳐진 녀석들 끌어줄 여유가 없어. 따라오지 못하겠다면 야구부를 떠나는 것도 자유겠지.”

2학년 땐 이러지 않았는데 캡틴이 되면서 무서울 정도로 독단적으로 변한 친구, 쿠로다는 그런 캡틴이 낯설었다.

[네가 누구보다 승리를 원한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캡틴이 해야 할 일은 팀원들을 하나로 묶는 거잖아]

“내가 캡틴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러면 부원들도 따라와 줄 거라고 믿고 있어, 미안하다. 난 네가 원하는 캡틴이 못 될 것 같다.”

[정말 ··· 너도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이구나]

그렇게 끝난 통화, 이시다는 다시 공부에 집중해 보려 했지만 흐트러진 정신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유연하지 못한 걸까.’

이시다는 자신의 문제가 뭔지 알고 있었다.

2학년부터 거의 혼자서 팀을 이끌어 온 탓에, 내가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돼 버렸다.

하지만 리더에도 여러 유형이 있는 법,

이시다는 본인을 희생해 동료들을 빛내주기보다는, 내가 경기를 이끌면서 부원들의 투지를 끌어올리는 돌격대장형 리더였다.

뒤쳐지는 녀석은 피곤하겠지만, 지난 지역예선에선 8강까지 오르는 성과를 냈으니, 지금 스타일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 * *

“그만두고 싶다고?”

“예”

다음날 아침, 이토는 야구부 코치를 맡고 있는 다나카 선생님에게 정식으로 탈퇴의사를 밝혔다.

작년 추계대회부터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야구부, 3학년의 탈퇴는 학생들의 동기부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가볍게 결정했을 리가 없지.’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야구부를 떠나는 게 쉬운 일인가, 녀석도 나름 고민이 많았겠지.

떠나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지만, 이유라도 알아야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이토는 좀처럼 그 뜻에 응해주지 않았다.

“왜 그만두는지 이유라도 말해보렴.”

“제가 결정한 일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

“그래, 네 선택은 존중한다. 하지만 난 아직 미숙한 몸이라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네가 가르침을 줬으면 좋겠다.”

잠시 말이 없던 이토는 진심이 담긴 설득에 속마음을 풀어냈다.

“전 그저 야구를 즐겁게 하고 싶었어요. 솔직히 우리 야구부가 A급 전력은 아니잖아요.”

“그래, 그건 그렇지.”

“그런데 팀이 성적을 내니까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감독님도 코치님도 뭔가에 쫓기는 것 같고 ··· 훈련도 갈수록 엄격해지고 ··· 제가 원하는 야구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팀이 뭘 원하는지는 알겠는데 저는 그걸 쫓아가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책임을 통감한 다나카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의 말대로 처음 야구부를 맡았을 땐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성장하고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자, 다나카는 자기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전력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훈련도 엄격하게 지도, 의욕이 있는 녀석들은 잘 따라왔지만 낙오자가 생기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결국 내 욕심이 네게 부담을 준 거구나. 미안하게 생각한다.”

“ ···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너도 2년 동안 야구부에 몸을 담았으니 나름대로 부에 애정은 있을 거다. 내가 널 잡을 자격은 없지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다.”

“ ··· 감사합니다.”

부원 한 명이 아쉬운데 3학년이 떠나갈 줄이야.

성적에 눈이 멀어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결과, 다나카는 자신을 질책했지만 문제가 뭔지 알았으니, 마냥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아픈 마음은 이제 괜찮니?”

옆자리에선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입학식에서 마음이 아프다는 엉뚱한 소리로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든 스즈에는 담임선생님의 장난에 얼굴을 붉혔다.

“너 오늘 화장했니?”

이어지는 공세에 스즈에의 가슴은 요동쳤다.

화장을 하는 게 죄는 아닌데, 이놈의 선생님이 또 무슨 장난을 칠지 몰라 흠칫했다.

“예뻐서 한 소리니까 너무 놀랄 것 없어.”

“정말요?”

“응, 그런데 볼이 꼭 불에 익은 것 같다. 그게 조금 아쉽네.”

핑크빛 볼터치는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포인트, 하지만 아직 미숙한 제자는 그 경계선을 넘고 말았다.

“선생님 ··· 역시 저 놀리려고 부르신 거죠?”

“후훗 ~ 그런 거 아니야. 너 혹시 부활동 해 볼 생각 없니?”

“부활동이요?”

“선생님 애들하고 화장하는 법 연구하고 있거든.”

세상에 맨 얼굴이 화장한 얼굴보다 더 예쁜 여자가 있을까,

그건 자기 얼굴에 어울리는 화장을 못하는 것일 뿐, 적어도 타카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했다.

부활동은 학생들이 인원을 모으는 게 일반적이지만, 타카코는 제자들과 친해지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인원은 약 90여명, 다나카 코치가 이끄는 야구부의 2배를 훌쩍 넘는 규모로 성장해 버렸다.

“선생님이 부활동 고문까지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와 봐 재미있어. 그리고 넌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라 화장이 정말 중요해.”

“역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다나카 코치의 마음은 질투로 끓어올랐다.

내가 부원 모집할 때는 구박하던 사람이 교무실에서 저래도 되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애인이 너무도 부러웠다.

“선생님, 그럼 방과 후에 뵐게요.”

“응, 기다릴 게 ~ ♡”

“흥, 뭐가 기다릴 게 ~ 야?”

자기도 모르게 흘린 질투심, 타카코 선생님은 성이 잔뜩 난 애인에게 수줍은 위로를 건넸다.

“자기도 내가 위로해줬으면 좋겠어?”

“ ··· 그런 거 아니야.”

“인상 좀 펴. 모처럼 잘 생긴 얼굴이 엉망이 돼버렸잖아.”

애인한테 질투를 느낀 것도 한심한데 도리어 위로까지 받다니, 다나카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 *

“안녕하십니까. 1학년 C반의 다무라 히로시입니다.”

“1학년 C반의 모토바시 테츠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방과 후, 긴장감이 흐르는 그라운드에서 다이이치 야구부는 출항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목표는 지역예선 통과, 도내 180여 고교에서 고시엔을 밟을 수 있는 학교는 하나뿐이다. 시드 배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적게는 7연승 최대 9연승을 해야 가능한 일, 한번이라도 지면 여름은 끝이다.

한해 신입생만 50명 이상이 넘는 A급 고교는 몰라도, B에서 C사이를 오르내리는 어중간한 야구부는 애송이들의 힘이라도 빌려야 하는 입장, 신입생들은 선배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1학년 A반의 다카기 하루요시입니다. 부족한 만큼 선배님들께 많은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우오오 ~ 환영한다.”

이시다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첫눈에 반해버린 녀석, 야구부에 큰 힘이 돼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코치님은 안 오시나.’

대충 박수를 치던 요시다(2학년)는 주위를 갸웃거렸다.

아버지 상을 당해 잠깐 쉬고 있는 감독님은 그렇다 쳐도 코치님이 안 보이다니, 뭔가 불길했다.

“선배, 코치님은 오늘 안 오세요?”

“오늘은 정리해야 할 게 있어서 좀 늦으신데”

매니저 사나에의 말에 요시다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럼 오늘 훈련은 캡틴이 주도한다는 건데, 저 사람이 지휘봉을 잡으면 몸이 피곤해진다. 쓸데없이 의욕이 넘치는 매니저도 위험요소, 불길한 예상은 무섭게 들어맞았다.

“너희들은 오늘 첫 날이니까 선배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봐.”

“예 ~ ”

“얘들이 분위기 처지게 왜 이래, 대답은 씩씩하게!!”

“예!!”

사나에는 신입생 군기 잡기에 나섰다. 벤치에 앉아도 큰 목소리로 동료들을 응원하는 건 기본자세, 말끝을 흐리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자, 오늘도 힘차게!! 파이팅!!”

캡틴의 구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운동선수의 기본조건은 체력, 1년이나 지났으면 익숙해 질만한도 한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몸이 안 따라주는 걸까. 동료들을 잘 따라가던 요시다는 어느덧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삐익 ~ !!

“요시다 너 지금 뒤쳐졌잖아!!”

말로 해도 되는데 왜 호루라기까지 부는 건지, 요시다는 불만을 중얼거렸지만, 사나에가 직접 뛰어들자 부랴부랴 속도를 끌어올렸다.

“와 ~ 저 선배 잘 뛴다.”

“체력만큼은 선수급인 것 같은데”

애송이들은 매니저를 경의의 눈으로 바라봤다.

직접 훈련에 참여하며 낙오자들을 끌어올리다니, 매니저는 뒷바라지만 한다는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삑 ~ 삑 ~ 삑 ~

“아 ~ 선배!! 왜 저만 가지고 그래요?!!”

“몰라서 물어?!! 똑바로 안 뛸래?!!”

사나에는 요시다를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신입생들이 보고 있는데 선배라는 놈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니, 정말 못 뛰는 녀석이면 이렇게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너 우승했어?”

“네. 학원 신기록이래요.”

1년 전, 요시다는 부원들 앞에서 자신의 체력을 과시했다.

교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이 정도면 체력 훈련 때 게으름을 피워도 봐 줄 줄 알았는데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됐다.

요시다는 캡틴을 이어 야구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 재능에 비해 노력이 부족한 녀석이라 사나에는 게으른 천재를 마구 닦달했다.

‘다들 열심히 하는군.’

마침 등장한 다나카 코치, 요시다를 몰아세우던 사나에는 한걸음에 그 곁으로 달려갔다.

“코치님 오셨어요?”

“그래, 신입생들 자기소개는 했니?”

“네, 오늘은 첫날이라 일단 벤치에 앉혔어요. 그런데 ··· 이토가 오늘 안 보이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닐까요?”

다나카는 움찔했다.

야구부 분위기에 좋을 게 없는 소식, 하지만 언젠간 모두들 알아야 하는 일이라 숨길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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