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영천 순가의 두 천재들 (4)
“히이익!! 저 새끼들 왜 우리만 쫓아와?!”
“그러게 말이야! 네 부대나 되는데 하필이면 우리만....! 역시 저놈들에게도 우리 형님이... 아니. 위장군이 만만하다는 건가?”
곽봉의 부대 군사들은 자신들만 쫓아오는 하북군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쳤다. 어찌 보면 부대장을 잘못만난 불평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감히 저 새끼들이 우리 형님... 아니. 위장군님을 무시해?!”
“그래! 우리를 무시할 수는 있어도 우리 위장군님을 무시하는 건 결코 참을 수가 없지!”
자신을 욕하는 것보다 곽봉을 욕하는 것을 더 분하게 여기며 의욕을 보이는 군사들이다. 보통 일반적인 군사들은 부대장 잘못 만난 것을 불평할 텐데, 무슨 친형제라도 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곽봉과 군사들 사이가 돈독하다는 증거다.
곽봉은 오히려 흥분한 군사들이 괜히 나서다가 다칠까봐 그들을 말렸다.
“야! 이놈들아! 지금 우리의 임무는 적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적들을 유인하는 거다! 명심해! 괜히 나대다가 개죽음 당하지 마라!”
“걱정 마쇼! 위장군! 우리가 어디 전쟁 한두 번 해봤습니까?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외침과는 달리 곽봉의 부대 군사들은 마치 곽봉을 호위하듯 감싸며 후퇴했다. 마치 적들에게 우리 곽봉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해봐라 라고 으름장을 놓는듯했다.
곽봉은 이번 작전이 실행되기 전 개인적으로 한 가지 목표를 세웠었다. 최대한 군사를 잃지 않는 것이 그 목표였다. 곽봉은 그 어떤 장수들보다 병사들과 가까운 장수였다. 위장군이라는 높은 위치에 올라간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런 만큼 평소 형 동생하며 가족 같이 지내던 병사들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아 이런 목표를 세웠다.
‘제길! 이럼 군사들이 제법 피해를 받을 수도....’
일반적인 장수라면 후방을 자처하는 군사들을 미끼로 버리고 본대가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곽봉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고심하던 곽봉은 갑자기 본대 대열에서 홀로 빠져나왔다.
“부관! 잠시 부대 지휘를 맡아라!”
“예? 그럼 위장군께서는....?”
“난 할 일이 따로 있다!”
말을 몰고 나와서 자신의 부대랑 살짝 다른 경로로 움직였다. 자신을 미끼로 하북군의 시선을 부대 병사들에게서 돌리기 위해서다.
당연히 곽봉의 부대원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대체 어쩌시려는 겁니까? 우리들이 뒤에서 적들을 유인하겠습니다! 어서 앞으로 가십시오!”
하지만 곽봉은 당연히 그런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 새끼들아! 평소에 그리 내말을 귓등으로 들었어도 이번만큼은 좀 내 말을 따라라! 뒤돌아보지 말고 전속력으로 앞만 보고 가라고! 좀!”
“우리가 위장군.... 아니! 형님을 두고 어찌 저희들만 갈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게는 못합니다!”
“이 자식들아! 내가 평소에 아무리 못미더워도 그렇지! 내가 아무 대책 없이 그냥 이리 나온 줄 아느냐?! 나도 다 나름의 계획이 있단 말이다! 그걸 너희가 지금 방해하는 거야!”
곽봉이 그렇게까지 얘기하자 부대원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면서도 순순히 앞질러갔다. 결정적인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고까지 얘기하는데 어찌 듣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계획이 있다는 곽봉의 얘기는 부대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니었다. 뒤에는 관우와 장비, 조운, 조인, 하후연 등 내로라하는 하북의 무시무시한 맹장들이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쫓아오고 있었다. 이들을 상대로 곽봉은 과연 어떤 계획이 있을까?
관우는 홀로 따로 질주하는 곽봉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의 움직임을 보니 무슨 의도로 그러는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쥐새끼 같은 놈이 머리를 굴리는 군. 그래봤자 네놈과 네놈의 병사들, 둘 다 죽는 건 변함이 없다. 그래도 나름 용기를 쥐어 짜낸 것이 가상하구나! 소원대로 네놈부터 죽여주마!”
관우가 선두로 나서자 장비와 조운도 함께 그 뒤를 따랐다.
“형님! 같이 갑시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곽봉부터 잡고 나머지 군사들도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확실히 관우와 장비, 조운이 탄 말은 다른 것인지 아니면 기마술이 뛰어난 것인지, 군마를 탔는데도 속도가 달랐다.
그렇게 무섭게 거리를 좁혀오는 관우와 장비, 조운을 보며 곽봉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계획이 있긴 했지만 막상 그들을 보니 긴장됐다. 정말 계획대로 잘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후우...! 이게 과연 통할까...? 아니다! 반드시 통한다! 마침 바람도 내 편이지 않은가!’
곽봉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 주머니는 곽봉이 손에 쥐는 모양에 따라 꿀렁꿀렁 움직이는 것이 매우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곽봉이 준비한 계획이었다.
곽봉은 관우 등이 바로 뒤에 다가왔을 때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던졌다. 관우는 그것을 보며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건 또 무엇이냐? 무얼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당할 성 싶으냐?!”
상대가 장료나 감녕도 아니고 무예는 일반 병사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라는 곽봉이다. 그가 그 어떤 무기를 던진다 해도 아주 쉽게 쳐낼 자신이 있었다.
이윽고 곽봉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관우는 그것을 가볍게 쳐내려고 언월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무기로 쳐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르르!
수천, 수만 개의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관우, 장비, 조운을 덮쳤다. 그건 바로 모래였다. 곽봉이 던진 것이 돌멩이나 나무, 무기 같은 것이었다면, 관우, 장비, 조운은 언제든지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래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날아오는 수만 개의 모래를 쳐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쳐내지 못한 모래 중 일부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칼에 베이는 상처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지만, 눈에 모래가 들어가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눈이 보여야 뭐라도 할 게 아닌가.
그들은 급히 말을 멈추고 손으로 눈을 비비며 외쳤다.
“크악! 이, 이런 비겁한 놈! 그러고도 네놈이 사내대장부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자 곽봉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관우, 장비, 조운을 향해 조롱했다.
“뭐? 다른 놈들도 아니고 너희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네놈들이 승상께 두 명이서 달려든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고 정의로운 행동이란 말이냐? 네놈들도 이기기 위해 비겁한 짓을 서슴지 않은 거 아니냐?”
곽봉의 조롱에 관우, 장비, 조운의 얼굴이 벌게졌다. 곽봉 말대로 비겁한 짓은 자신들이 먼저 하지 않았던가. 할 말이 없다.
대신 그들은 이 수치심을 빨리 씻어내기 위해 다시 곽봉을 쫓았다. 하지만 모래에 지체된 시간 때문에 이미 거리가 제법 벌어졌다. 그래도 그들은 어떻게든 곽봉을 잡기 위해 다시 미친 듯이 달렸다.
또다시 곽봉과 하북군 간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때 곽봉이 또 다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다시 던지는 시늉을 하는 곽봉. 관우, 장비, 조운은 본능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에 모래가 또 들어간다면 시간이 더 지연될 것이고, 그럼 곽봉과 그 부대를 잡는 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곽봉의 속임수였다. 곽봉은 모래주머니를 던지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크하하! 쫄았구나! 쫄았어! 걱정 마라! 아직 내 손에 있다.”
그 모습을 본 곽봉의 부대원 역시 박수를 치며 웃었다.
“크하하핫! 저 모습을 봐라! 하북이 자랑하는 장수들이 우리 위장군께 농락을 당하고 있다!”
“우리 형님이....! 곽 장군이 관우와 장비, 조운을 가지고 놀고 있구나!”
천하의 관우, 장비, 조운이 곽봉에게 굴욕을 당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비록 이의민처럼 무예로서 그들을 이긴 건 아니지만, 수단이야 어쨌든 농락은 농락 아닌가.
관우, 장비, 조운, 세 사람의 얼굴은 달궈진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관우야 원래 벌겠지만. 수치심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다.
“반드시 죽인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들은 다시 전속력으로 곽봉을 쫓았다. 곽봉이 다시 모래를 뿌리려는 손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이들은 곽봉이 모래를 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그대로 내달렸다. 사실 수치스럽더라도 다시 막으려는 시늉만 하면 뒤처지지 않고 계속 곽봉을 쫓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미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킨 지 오래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크악! 이 개 같은....!”
이번에는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 모래를 던진 곽봉이다. 다시 관우, 장비, 조운의 눈에 모래가 들어가고, 그들은 열심히 눈을 비비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그렇게 관우, 장비, 조운은 따돌렸지만, 그 바로 뒤로 조인과 하후연이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은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뛰던 곽봉. 그의 눈에 이의민의 얼굴이 보였다. 흐릿하게 보이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제야 곽봉은 완전히 안도했다. 먼저 도착한 그의 부대원들과 매복지에 있던 군사들도 환호하며 곽봉을 맞이했다.
“와아아아아!”
“위장군까지 합류하셨다!”
말에서 내린 곽봉은 이의민 앞에 가서 부복했다.
“주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고생하셨소! 형님! 쉽지 않은 역할이었는데 정말 잘해주었소. 역시 형님은 내 오른팔이오.”
곽봉을 치하한 이의민은 자리를 잡고 있는 군사들에게 외쳤다.
“자! 이제 반격을 할 차례다! 모두 준비가 되었느냐?!”
“옛! 승상!”
그 모습을 본 순유가 명을 내렸다.
“모두 위치로! 학의 날개를 좁힌다!”
순유의 명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있던 이의민군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학의 날개가 좁혀지고 있었다.
이의민군의 학익진이 완성된 것을 확인한 곽도는 인상을 쓰며 노성을 터뜨렸다.
“젠장! 한 놈도 잡지 못했소! 이제 어떡하오?”
하지만 순욱은 여전히 걱정 없다는 듯 평온한 태도로 답했다.
“안타깝긴 하나, 적이 학익진을 완성한다 해도 전혀 문제가 없소. 학익진은 어린진으로 부수면 되오. 이 전투는 우리의 승리요!”
순욱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그는 애초에 적의 유인부대를 단 하나도 잡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 이미 예상했었다. 그래서 애초에 어린진을 준비했던 순욱이다.
순욱의 명에 따라 순식간에 하북군의 진형이 바뀌었다. 물고기의 비늘을 형상화 한 어린진 진형이 갖춰졌고, 하북군은 그 진형 그대로 학익진을 찢어버릴 것 같은 기세로 나아갔다.
하지만 순욱도 마음속으로는 한 가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껏 그 어떤 상식도 그냥 파괴해버리는 사내가 적진에 있지 않은가. 그 불안함의 원인이 되는 사내가 눈앞에 보였다.
무패의 전설을 쓰고 있는 이의민이 적토마를 끌고, 하북군의 어린진 앞에 등장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금 그의 곁에는 마초와 황충, 위연 등의 장수들이 함께 있었다.
“가자!”
적토마와 함께 이의민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와 함께 대부가 휘둘러졌다. 어린진의 선두에 있던 하북군 수십이 대부질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그래도 아직 어린진을 완전히 깨부술 정도의 피해는 아니었다. 학익진과 어린진의 정면 맞대결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