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58화 (158/175)

158. 영천 순가의 두 천재들 (2)

순욱은 불편한 표정으로 그 숲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보던 숲이었지만 오늘 따라 그 숲이 미묘하게 달라보였다. 뭔가 전체적으로 더 수풀이 무성해진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 숲을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이 봐왔던 전풍에게 물었다.

“원호. 저 숲 말이오. 원래 저리 무성했었소?”

전풍도 순욱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가 생각해도 순욱의 말처럼 수풀이 평소보다 좀 더 무성한 것 같았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소. 저 숲의 초목들이 평소에 보던 것보다 부자연스럽소. 마치 급히 갖다 붙인 거 같지 않소?”

업에서 더 오래 살았던 전풍까지 같은 얘기를 하니 그제야 순욱도 확신할 수 있었다.

“흠! 그렇다면 원래 있던 숲을 인위적으로 늘려서 저리 만든 것이 틀림없군....”

그럼 이제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순욱이 생각하기에 이의민군이 진채 주변의 숲을 인위적으로 무성하게 꾸민 이유는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감출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쉽게 생각하면 군사들이다. 숲에다가 군사를 숨겨서 매복하는 일은 굉장히 흔한 계략이었다.

원소의 모사인 곽도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입을 열었다.

“수풀을 더 무성하게 쌓았다라.... 딱 보니 무얼 하려는지 알겠군. 저 숲에 매복 군사를 숨겨놓았을 것이오. 그리고 지금 나온 4개의 부대는 우리 군이 만약 성문을 열고 나가면 저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온 군사들일 것이오.”

곽도는 모처럼만에 순욱과 전풍 사이에서 자신의 발언기회가 생겼다고 여기고 신나게 얘기했다.

하지만 곽도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내용은 이미 순욱과 전풍도 해 본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둘이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 쉽게 생각하면 저 곳에 군사를 숨겼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지금 나오는 4개의 부대는 딱 봐도 무장을 최소화한 것이 기동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모습이다. 즉, 저 부대들은 유인을 하기 위한 군사들이 확실할 터.... 허나....’

처음에는 순욱도 분명 곽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가 걸렸다.

‘이건 너무 빤히 보이는 계략이 아닌가....’

순욱과 순유의 지략대결은 점점 점입가경이 됐다. 처음부터 서로를 인정하고 쉽게 알아채기 힘든 계략을 서로에게 썼었다. 어떨 때는 상대의 계략을 알아채기 위해 며칠을 소비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순유의 계략은 보자마자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고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더 좋지 않은 판단을 내렸던 적도 있어서 나중에는 고민에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알아채기가 쉬웠다. 알아챈 시간은 둘째 치고 곽도까지 알 정도면 순욱과 순유에게는 너무 쉽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필시 순유가 이리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다른 것을 준비해두었다고 볼 수 있었다.

‘공달이 이리 빤히 보이는 계략을 쓸 리 없다. 저 숲은 단순 매복이 아닐 것이다.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

고민을 하던 순욱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보았던 이의민군의 정란이 떠올랐다. 정란과 같은 것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지금 순욱의 생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성벽 이쪽에다가 간이 망루를 지어라!”

순욱의 명에 따라 이의민군 진채를 바라보고 있는 성벽 쪽에 간이 망루가 지어졌다. 정란과는 확실히 다르다. 정란도 어찌 보면 망루와 같은 개념이지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업성 성벽에 짓는 망루는 이동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정란은 거의 백여 명을 태울 수 있는 거대한 크기였다. 하지만 순욱이 지으려는 망루는 고작해야 서너 명만 올라갈 수 있는 크기다. 대신 정란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있었다. 정란과 순욱이 지으려는 간이 망루의 목적은 명확히 달랐다. 단지 더 높은 곳에서 이의민군 진채 쪽을 내려다보기 위함이다.

순욱과 전풍, 곽도는 완성된 간이 망루 위로 올라갔다. 확실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저 수풀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이 다 보였다. 순욱이 간이 망루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로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을 터였다.

곽도는 망루 위에서 수풀 쪽을 확인하고는 의기양양하게 얘기했다.

“이거 보시오. 내가 뭐라 했소. 여기에 틀림없이 군사들을 숨겨놓았다고 얘기 했잖소.”

놀랍게도 곽도의 말대로 이의민군은 수풀을 인위적으로 쌓은 후 군사들을 숨기고 있었다. 현재 여기 있는 이의민군 군사들 거의 대부분이 수풀 뒤로 숨어 있는 상황이었다.

육안으로 확실히 확인을 했음에도 순욱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정말.... 정말 공달이 숨기려 했던 것이 저 군사들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꺼림칙했다. 순유가 순욱을 인정하듯, 순욱 역시 순유를 인정하고 있다. 순유라면 자신을 상대로 저리 빤히 생각할 수 있는 계략을 내세울 리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곳에서 망루를 올리는 걸 이의민군 쪽에서도 분명히 보았을 터였다. 사실상 매복이 들켰다는 것을 알 텐데, 군사들을 여전히 거두지 않고 있으니 분명 단순 매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생각을 해보자. 문약. 저기 나와 있는 4개의 부대들은 분명 유인을 하기 위한 것이다. 유인을 할 곳은 결국 저 숲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하니 매복의 의미가 없을 테고....’

그런데 이의민군이 매복한 모습을 계속 보다보니 머릿속으로 한 가지 그림이 그려졌다.

‘음.... 저것은....?’

확실히 그냥 매복이 아니었다. 모두 일정한 간격으로 정해진 위치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 군사들이 일정한 간격과 정해진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곳 진법을 구성한다는 뜻이다. 진법에 능통한 순욱은 이것을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가 걸렸다.

‘하지만 저런 진법은 그 어디에도 본 적이 없다. 마치 진법이 아직 완성이 아니 된 것 같은데....’

군사들이 규칙적인 위치에 있지만, 순욱의 머릿속에 있는 그 어떤 진법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혹시 순욱이 모르는 진법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없었다. 순욱은 현존하는 모든 진법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달이 새로운 진법을 고안해낸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순유가 새로 개발한 진법이 아닌지도 잠깐 생각해보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진법이라 함은 그 목적과 용도가 분명해야했다. 모든 진법들은 다수의 적을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함이나 아니면 소수의 적을 확실히 제압하기 위한 것 또는 특정 진법을 저격하기 위한 것 등등 확실한 목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의민군의 배치는 규칙적이긴 했지만, 그 어디에 쓰기에도 허술했다.

‘그렇다면 이건 새로 만든 진법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진법.... 그 진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순욱의 시선이 4개의 별동대에게 향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계속 그림을 그려보았다. 4개의 별동대가 숨어 있는 매복지로 돌아가서 어떤 위치에 자리 잡을지 말이다.

그러자 하나의 진법이 드디어 완성됐다.

‘학익진이다! 틀림없다!’

현재 이의민의 본대가 매복하고 있는 형태는 진법도 무엇도 아니었다. 하지만 업성 앞에 있는 4개의 별동대가 하북군을 유인하여 돌아가서 빈자리를 채운다면 학익진이 완성되었다. 하북군이 멋모르고 별동대를 따라간다면 그야말로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격이다.

군사들을 숨긴 단순 매복과 학익진은 무게감이 완전히 달랐다. 단순 매복은 상대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안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여기는 완전히 평지다. 위치적인 이점을 따로 가져갈 수도 없는 지형이란 뜻이다. 적의 매복 유무를 알기만 한다면 전혀 불리한 전투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학익진에 들어간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학익진은 가운데로 뭉쳐있는 적을 공격할 때 최고로 효율적인 진법이기도 했지만, 수비할 때 한군데로 들어오는 적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진법이기도 했다. 그냥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진법이 바로 학익진이었다.

순욱이 그리 생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곽도는 여전히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이보시오. 문약. 어찌 대답이 없으시오. 내 말이 맞지 않소? 저 숲은 역시 군사들을 매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소.”

“그건 속임수일 뿐이오.”

“뭐요? 지금 내가 그대보다 먼저 알아냈다고 억지를 부릴 요량인데....”

“그런 것이 아니오. 저 수풀의 용도는 사람을 가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곽 군사의 말대로 사람을 가린다고 우리가 생각하게 만들고 실제로는 다른 걸 가리는 것이오.”

“다른 것? 그게 뭐요?”

“진법을 가리는 것이오.”

“지, 진법을 가린다고....?”

당황한 곽도는 눈을 씻고 다시 수풀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진법으론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리요? 대체 저게 무슨 진법이라고.... 확실히 일정한 간격으로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절대 진법은 아니오.”

“아직까지는 그렇지요. 저기를 자세히 보시오. 양 측의 군사들이 열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저기 있는 4개의 부대가 본대의 북동, 북서, 동남, 서남으로 합류를 한다면 어찌 되겠소?”

“자, 잠깐....!”

그제야 곽도도 머릿속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마 순욱과는 달리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그런데 순욱의 설명을 듣고 바로 알아차린 전풍이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멋진 날개가 형성되었소. 학익진이구려.”

“바로 보셨소.”

“허허! 이 사람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소. 공달이 참으로 대단한 수를 숨기고 있었구려. 단순 매복처럼 보이게 하면서 사실은 학익진으로 우리 군사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웠다니.... 문약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들어가 전멸을 면치 못할 뻔했소.”

“하지만 적들의 노림수를 알았으니, 대응을 하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저 4부대에 유인 당해줄 거요. 그리고 그대로 학익진 안으로 들어갈 것이오.”

순욱 만큼은 아니지만 진법에 나름 조예가 있는 전풍도 대번에 알아들었다.

“학익진을 상대로 상성 상 유리한 어린진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군요.”

“그렇소. 4개의 적 부대에게 유인당하는 척 그대로 밀고 들어가면서 학의 대가리를 깨부수면 되오. 그리고 4개의 부대 중 하나라도 괴멸된다면 적은 학익진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무너질 것이오. 물론 그리 하려면 속도가 중요하오.”

“알겠소. 그리하면 필승이겠군.”

적의 의중을 몰랐을 때야 문제지, 훤히 안 지금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공달, 내게 진법으로 승부를 걸다니.... 마음이 급해 지신 거요? 내가 공달에게 보여주겠소. 진법의 대가가 누구인지 말이오.’

진법을 교모하게 숨겼다. 자신 외에는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심지어 전풍조차 몰랐다. 하지만 결국 알아냈다.

새삼스레 순유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면서도 하필이면 자신에게 진법으로 승부를 건 순유의 선택에 안도를 느꼈다. 하북 전쟁이 시작된 후 가장 중요한 순간이 지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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