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영천 순가의 두 천재들 (1)
업성에서는 근처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연일 계속 되었다. 크게 대패했던 원소군은 처음에는 업성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비의 유주군이 합류한 이후부터 그들도 업성 밖으로 나와서 슬슬 요격을 하기 시작했다.
하북 연합군이 요격을 한 이후부터는 생각보다 팽팽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의민군에는 이의민이 있지만 하북 연합에도 관우, 장비, 조운이 있었다. 그리고 관우도 첫 전투 이후 더 이상 무인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미는 순유와 순욱의 지략 대결이었다. 그야말로 장군 멍군이 거듭되고 있다.
먼저 순유가 야밤에 기습 공격을 시도하면, 순욱은 그것을 매복으로 대비했다. 하지만 순유는 그걸 또 눈치 채서 성동격서를 썼다. 그럼 순욱은 또 그걸 눈치 채고 이중 삼중으로 매복과 함정을 파놓았다.
다음에는 반대로 순욱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기습을 가했지만, 이 역시 순유는 눈치를 채고 대비를 했다. 그리고 서로의 계략이 예측될수록 둘은 더욱 더 머리를 짜내 기발한 계략을 꺼냈다.
그렇게 서로가 계략을 쓰고 그걸 또 파훼하고 파훼하는 지략 싸움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이의민이나 관우, 장비, 조운의 힘으로 전투가 진행되기 보다는 순유와 순욱의 대결 같은 느낌이었다.
확실히 둘 다 엄청난 천재 중의 천재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이번 전투다.
이의민은 이번에도 순유의 매복에 걸려들지 않고 피해가는 하북군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하! 이번에도 저리 예측을 했다고....? 정말 저 순욱이란 놈이 참으로 대단하구먼. 저 놈만 없으면 우리가 아주 쉽게 승리를 할 텐데 말이야....”
순욱에 대해 극찬을 하던 이의민은 순간 자신의 옆에 순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우리 공달만큼은 아니 되지. 공달이 더 대단하긴 해도 순욱 역시 만만찮다는 얘기였어. 공달을 상대로 이 정도 비벼보기라도 한 인물은 순욱이 처음이니....”
이의민의 얘기에 순유는 슬쩍 웃으며 겸양을 떨었다.
“후후후. 아닙니다. 주군. 저희 집안에서 머리를 쓰는 거라면 최고로 치는 자가 바로 저 문약입니다. 솔직히 저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봅니다.”“그럴 리가.... 지금까지의 전투경과를 봐. 공달, 자네도 순욱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고 있어. 아니. 정확히 따지면 지금까지 우리가 근소하게나마 승리한 전투가 더 많지 않나?”
“하하하! 그것이 어찌 제 힘이겠습니까? 그건 오로지 주군 덕에 가져올 수 있었던 승리입니다. 이곳에는 주군께서 계시고 적들에겐 주군이 없기 때문에 장기로 치면 애초에 차나 포를 버리고 시작한 대결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건 아니야. 여기에는 내가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적들에게도 관우, 장비, 조운이 있잖아. 그들 한명 한명은 당연히 나만큼 못되지만 그들을 합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이의민의 말대로 확실히 장수전에서는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음 전투부터는 관우와 장비 또는 조운 등이 합공을 하니, 이의민으로서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막상막하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럼 또 이런 의문이 생길 수가 있다. 이의민군에 이의민 말고 다른 장수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대체 무얼 하는가?
이의민군에는 이의민을 제외하고도 장료와 황충, 마초, 감녕, 위연 등의 용장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하북 연합에도 그들을 상대할 장수는 충분히 있었다. 이의민을 관우와 장비 또는 관우와 조운이 상대를 했다. 그럼 장비와 조운, 둘 중 하나는 남게 된다.
그 장비와 조운은 이의민의 장수들도 결코 1대1로 상대할 수가 없었다. 이의민 한 명을 상대로 관우 한 명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장비 또는 조운을 상대로 황충과 마초가 붙었다. 그럼 나머지 장료, 감녕, 위연 등을 상대할 장수들이 하북군에 있을까? 놀랍게도 있었다.
바로 조조의 장수들이다. 조조 휘하의 조인이나 하후연 등은 장료, 감녕, 위연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용맹과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양 군의 장수전에서는 힘의 균형을 계속 이뤄갈 수 있었다.
그럼 남은 차이는 병력과 지략 대결이었다. 병력에서는 이의민군이 11만이었고, 하북군의 병력은 총 12만이다. 살짝 이의민군이 모자란 감은 있지만, 대신 이의민군은 이전부터 계속 이어진 승리로 인해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군사들끼리의 대결은 거의 엇비슷한 가운데 이의민군의 약 우세였다.
결국 지략으로 승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아직까지는 순유와 순욱도 팽팽한 균형을 계속 유지하는 중이다.
“아무튼 이번 전쟁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머리를 짜내고 짜내 계략을 세워도 상대 역시 만만찮은 계략으로 대응해오니....”
전쟁이 더 끌릴 거라는 얘기에 이의민의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주군. 그리 즐거우십니까?”
이의민은 다른 이들에게 얘기는 못하고 있지만, 이번 전쟁이 너무 즐거웠다. 원래 전투를 즐기기도 했지만, 이번 전쟁은 더 그랬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관우와 장비, 조운 덕분이다. 이의민은 관우와 장비, 조운과 함께 싸우는 것이 너무도 즐거웠다. 1대1에서는 여포보다 못할지 몰라도 그들이 함께라면 얘기가 달랐다. 특히 관우나 장비, 조운, 셋 다 이의민의 어릴 적 우상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과 함께 무기를 섞으면서 싸우고 있으니, 안 그래도 싸움을 좋아하는 이의민에게는 거의 천국에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후후후. 즐겁다라.... 그래. 난 지금 너무 즐거워. 그런데 공달. 은근히 날 비꼬는 거 아닌가? 마초나 황충이랑 같이 싸우면 쉽게 끝날 싸움을 개인적인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질질 끈다고 생각 하는 것인가?”
“솔직한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장수들의 싸움은 균형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그건 이의민이 혼자 싸우는 걸 고집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의민과 같은 절대적인 강자가 한명 있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이의민을 상대로 2대1, 아니면 그 이상으로 상대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의민이 굳이 그런 싸움을 하지 않고 1대1 상황만 노린다면? 아니면 적들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같이 몰려다니며 다수 대 다수의 장수전을 고집한다면 쉽게 승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의민은 굳이 장료, 마초, 황충 등을 떼어 놓고 혼자서만 다녔다. 그래서 여태까지 관우, 장비나 관우, 조운과 2대1 일기토가 성립이 되었다.
이의민이 그리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무인으로서, 싸움을 좋아하는 이로서 이 같은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어쩌면 이번 전쟁이 끝나면 두 번 다시없을 기회일 수도 있다.
“공달. 조금만 이해해줘. 관우와 조운, 그리고 장비까지.... 이제는 셋 밖에 남지 않은 내 호적수들이야.”
“괜찮습니다. 주군이 하시는 일이 곧 저희들의 일입니다. 그리고 단순 개인적인 만족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군께서 계속 홀로 다수의 적장들을 상대하시는 모습을 보이니 양 군사들의 사기도 점점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순유의 얘기대로 확실히 셋의 일기토는 양 진영의 분위기를 점점 갈리게 만들었다.
이의민군이야 원래부터 사기가 높았지만, 원소군은 대패로 인해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유주군의 합류로 인해 전황이 반전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하북군 역시 다시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나름 팽팽한 기세 속에서 시작된 전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의민군의 사기는 점점 더 올랐고, 하북군의 사기는 점점 떨어졌다.
이의민이 관우를 한번 꺾는데 이어 계속해서 하북의 명장들을 1대 다수로 상대하니 이의민군은 역시 승상이 최고라며 자부심을 이어나갔다. 반면 하북군은 안량, 문추에 이어 신장이라 불리던 관우와 장비, 조운까지 이의민에게 1대1로는 어려운 모습을 보이니 장수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깨진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크게 사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아니었지만, 점점 양 군의 사기가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순유는 이의민이 승리를 위한 최고의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운 듯 한 마디 했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리 싸움만 하실 수는 없습니다. 하실 일이 많습니다. 슬슬 전쟁을 끝내셔야 합니다.”
“그래. 나도 언제까지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 그런데 나도 살짝 억울하긴 해. 내가 2대1만 일부러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야. 저 순욱이 워낙 판을 잘 깔아놔서 2대1 승부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상황이 더 많았지. 결국 이 싸움을 끝내려면 순욱을 이기긴 해야 될 거 같은데....”
“아니 그래도 문약을 잡기 위해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문약은 여러 방면으로 다재다능하지만 특히나 진법에 밝습니다. 그러니 진법으로 승부할 겁니다.”
“음? 방금 순욱이 진법에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진법으로 승부를 본다니?”
“그는 진법을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겁니다. 그러니 진법에서 절대지지 않을 거라 여기고 어떤 진법이 나오든 대처할 수 있다고 믿을 겁니다. 바로 그 자신감을 이용하는 겁니다. 잘 아는 진법이라 여기고 자신 있게 들어갔는데, 그 진법이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진법이라면? 문약도 당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진법이 있는가?”
순유는 대답 대신 서신 하나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이미 예전부터 생각한 것이 있는지 진법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잠깐 이건.... 학익진 아닌가?”
“맞습니다. 학익진입니다.”
이의민이 서신에 그려져 있는 진법을 보니 학익진이다. 학익진은 진법에 그리 밝지 않은 이의민이 봐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보편적으로 쓰이는 진법이었다. 그런 만큼 이의민으로서는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겨우 학익진으로 문약이 걸려들까?”
“보통 학익진이라면 어림도 없지요. 허나 이 학익진은 제가 약간 손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전이 통하려면 주군의 힘이 필수적입니다.”
순유의 말에 이의민은 씩 웃었다.
“그래? 그럼 걱정 말라고. 힘쓰는 일은 내게 맡기고, 어디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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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성 성벽 위에서 이의민군을 내려다보는 순욱.
“군사! 적들의 장수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군사들이 보고하지 않아도 이미 뻔히 보고 있었다. 순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계책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겠다.
업성 아래에 이의민군 장수 4명이 각각 1만의 군사들을 이끌고 왔다. 순욱이 자세히 보니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곽봉, 장료, 만총, 감녕이라.... 모두 이의민의 신뢰를 받는 장수들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지.... 그런데 고작 저 병력으로 공성을 하러 오지는 않았을 터이고.... 그냥 도발을 하러 온 것인가? 이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건 공달도 잘 알 터인데....’
순욱이 고민에 빠지자 군사들이 물었다.
“군사! 성문을 열고 나가 저들을 추격합니까?”
순욱은 대답을 하지 않고 어딘가를 노려보기만 했다.
‘음. 공달이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부대를 쪼개 놓진 않았을 텐데.... 그런데 아까부터 이상하게 저 숲이 신경이 거슬린단 말이지....’
이의민의 진영 옆쪽으로 길게 늘어진 숲이 하나 있었다. 이번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래 있었던, 평소 자주 보던 숲이었다. 하지만 오늘 묘하게 그 숲이 순욱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