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55화 (155/175)

155. 반딧불의 선택 (1)

“감히 내 앞에서 재롱이란 얘기를 하다니! 흐야압!”

장합은 분노한 기색을 드러내며 질풍 같이 허저에게 돌격했다. 장합은 자신의 이 일격을 허저가 막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허저가 워낙 비대하니 그 힘이 엄청나다는 건 장합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비대한만큼 민첩성이나 순발력은 많이 떨어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장합의 오산이었다.

“고작 이 정도 밖에 아니 되니 내 재롱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느냐?! 흐하하!”

허저는 놀랍게도 장합 못지않은 속도로 그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단순히 힘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주는 듯했다.

“크윽! 만만찮은 놈이구나. 이제 제대로 상대해주마.”

허저가 절대 쉽게 상대할 적이 아님을 깨달은 장합은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그래도 장합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장합은 원소 휘하에서 안량, 문추, 고람과 함께 하북사정주로 꼽힌 명장 중의 명장이다. 군략이든 통솔이든 무위든 빠질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장합이 아직 모르는 사실이 있다. 자신과 함께 하북사정주인, 그것도 자신에 비해 무력만큼은 한수 위라고 평가 받는 안량과 문추를 압도한 장비다. 그런 장비를 상대로 제법 비등비등한 일기토를 했던 인물이 바로 허저였다.

한마디로 순수한 무력에서만큼은 허저가 장합에 비해 한 수 위였다. 무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장수로서의 능력치는 장합이 허저를 압도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무력 외에 다른 능력치는 전혀 필요 없는 1대1 일기토 상황이다. 그러니 어찌 장합이 이길 수 있을까.

장합은 허저와 합을 겨룰수록 자신이 확연히 밀린다는 사실을 느꼈다. 특히 힘에서는 허저보다 확실히 아래였는데, 민첩성이나 순발력에서 우위를 잡지도 못했다. 게다가 허저가 사용하는 창술은 정석적인 창술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울리지 않게 변칙적인 공격을 자유자재로 쓰는 등 기교도 넘쳤다.

장합은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필패한다는 것을 알고 격장지계라도 써보려 했다.

“이 곰 같은 놈아! 생긴 거답게 참으로 무식하게도 창을 휘두르는구나!”

하지만 그마저 허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흐흐! 그런 소리 많이 듣지. 그래! 어떤가? 무식한 놈에게 밀리는 네 자신이 자랑스러운가?”

장합의 도발을 자연스럽게 받아치는 허저.

“크윽! 젠장! 곰 같은 놈이 격장지계도 쓸 줄 아는구나!”

“격장지계?! 그게 뭐냐? 난 그딴 거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이런 거지!”

격장지계 따위는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격장지계를 구사한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었다.

허저의 창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찌르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저 덩치에 저런 속도를 낼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위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장합은 그런 허저의 찌르기 한번 한 번에 생사를 왔다 갔다 했다. 한번만 손을 잘못 놀려도 바로 죽을 터였다. 그래서 장합은 괜히 써봤던 격장지계가 후회가 될 정도다.

‘빌어먹을! 잠자던 곰을 잘못 건드린 것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기주군은 당연하게도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소가 자랑하는 상장군인 장합이 이름도 모르는 적장에게 크게 몰리고 있으니 말이다.

심배가 죽을힘을 다해 군사들을 독려하고 지휘하고 있었지만 어려운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우리 군사가 왜 이리 적어보이는 거지? 그래! 유주군! 전예의 유주군은 지금 대체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유주군의 도움을 애타게 찾는 심배. 하지만 그 유주군이 지금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지금 전예는 갑작스러운 전장의 변화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곽가군이 영락없이 패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히 기주군을 배신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곽가군이 승기를 잡았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전예는 노련한 장수답게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역시 곽가가 이리 허무하게 당할 리가 없지. 이 모든 것들이 그의 계략이었다. 그럼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기주군의 뒤를 치면 되는 것이다.’

전예는 아직 평원성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않은 뒤쪽의 유주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나를 따르느냐?!”

“그렇습니다. 장군. 저희들이 장군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자네들은 다른 건 묻지 말고 무조건 내 명대로 해라. 우리의 동맹이었던 기주군은 지금부터 우리의 적이다! 기주군을 쳐라!”

“옛! 장군! 명 받들겠습니다!”

전예를 따르겠다던 군사들의 대답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전예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기주군을 공격했다.

어렵게 곽가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기주군에게 유주군의 배신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근근이 버티고 있던 기주군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심배는 유주군의 도움만 바라보고 있다가 그들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공격을 가하자 대경했다.

“이,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이 간악한 배신자 놈들!”

“배신자는 무슨...! 너희들이 우리들을 동맹으로서 제대로 대접해준 적이 있던가?”

평소 기주군에게 울분이 쌓일 대로 쌓였던 유주군이었다. 지금 그 울분을 마음껏 풀 기회가 왔으니 놓칠 리가 없었다.

“공격하라! 이제 우리의 적은 기주 놈들이다! 유주의 전사들이여! 오늘 그동안 놈들에게 당했던 한을 마음껏 풀라!”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기습을 당한 것부터 불리하게 시작됐는데, 동맹이었던 유주군마저 적으로 돌아섰으니 병력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심배가 아무리 뛰어난 모사라도 지금은 이길 방법이 없었다.

“장합 장군! 아니 되겠소! 어떻게든 퇴로를....!”

장합을 부르던 심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장합은 허저의 맹공을 막지 못했는지 한 팔이 떨어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직후 이어진 치명적인 공격을 막지 못하고 끝내 목이 떨어졌다.

결국 장합까지 죽었다. 승리는 고사하고 퇴각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를 상황이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다.

“퇴각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도망쳐라!”

심배는 마지막 힘을 짜내 군사들에게 외쳤다. 심배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대부분의 기주군이 무기까지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들은 이미 성 안으로 들어와 있고, 유일한 출구였던 성문은 동맹이었던 유주군이 막고 있었다.

곽가는 들고 있던 찻잔을 여유롭게 내리면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평원에서의 전쟁은 오늘 여기서 끝낼 것이다! 한 놈도 살아 나가서는 아니 된다!”

곽가의 좌우에 도열해있던 태사자와 전위, 우금, 관해 등이 명령만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흐흐! 군사가 그 명을 언제 내리나 기다리고 있었다오!”

기주군은 그런 곽가군을 상대로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무작정 도망쳤다. 성 안에 갇혔으니 그들이 도망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피난민처럼 민가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런 곳으로 가면 오히려 더 탈출이 힘들어 질 수도 있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기주군에게는 상관없었다. 당장 눈앞의 적군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려는 마음뿐이다.

그렇게 기주군이 민가로 숨어들고, 곽가군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민가의 피해도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집들이 불에 타고 박살이 났다.

심배는 이 와중에도 곽가군을 욕할 거리가 생겼다는 듯 외쳤다.

“흥! 백성들을 위한다던 얘기는 모두 거짓이었구나! 백성들이 죽고 다치는 건 상관이 없단 말이냐?”

그렇지만 곽가는 여전히 여유롭다.

“다치거나 죽는 백성들이 대체 어디 있다는 것이오? 아까도 그렇고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데, 귀신이라도 본 모양이구려.”

“민가의 백성들이 아니 보이는....? 응?!”

심배는 당연히 민가에 평원 백성들이 숨어있다고 여겼다. 보통 이런 전쟁이 벌어지면 백성들에게는 집에 틀어박혀 숨어있으라고만 통보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무너지고 불타는 민가를 자세히 보니 정말 아무도 없었다. 백성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피신을 시킨 모양이다.

“어떻소? 이래도 승상께서 백성들을 위한다는 얘기가 거짓 같소?”

“크윽!”

심배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탄식을 내뱉었다. 마지막 수 싸움까지 곽가에게 완벽히 진 심배다.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심배를 바라보던 곽가는 허저와 전위를 불렀다.

“허 장군. 전 장군. 이리 오게.”

“옛! 군사.”

“적들은 이미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제 적들에게 살 길을 열어준다면 적들은 알아서 무기를 던질 것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군사.”

허저와 전위는 즉시 기주군을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까 심배가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전략이다.

“모두 항복하라!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우리가 포로들을 어찌 대우하는지는 들었을 것이다! 괜히 개죽음 당하지 말고 얌전히 포로가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허저와 전위가 외치자마자 기주군은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백기를 들고 나왔다.

“항복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심배는 그 모습을 잔뜩 핏발 선 눈으로 보더니, 칼을 들고 항복하는 군사들에게 다가갔다.

“이놈들! 뭣들 하는가?! 하북의 용사들이 이리 쉽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냐?! 어서 일어나라! 창을 들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이 칼로....! 크헉!”

직접 투항하는 군사들을 베려한 심배지만,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베려한 병사를 중심으로 다수의 기주군 군사들이 심배에게 반격했다. 그 반격으로 오히려 꼴사납게 나뒹구는 심배다.

“이, 이 놈들....!”

“심 군사. 우리더러 항복하지 말고 그냥 개죽음 당하라는 겁니까? 저희도 사람입니다.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심배는 자신들의 군사들이었던 이들에게 포박당해 곽가 앞에 무릎 꿇려졌다.

“더 이상 치욕을 주지 말고 어서 죽여라!”

당연하게 심배는 투항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분한 듯 곽가에게 고래고래 고함칠 뿐이었다. 곽가 역시 귀찮게 그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

“음... 죽이기 아까운 인물이긴 하지만, 투항할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보다 나은 점이 하나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뭣이....?”

“반드시 살려드릴 가치는 없으니 편히 보내드리겠소.”

“이 빌어먹을 놈이....!”

그렇게 심배의 목이 떨어졌다. 나름 수 싸움을 했지만, 역시 곽가를 이기지 못한 채 허망한 최후를 맞는 심배다.

그렇게 전투는 완전히 끝이 났다. 평원성 안은 온통 엉망이었다. 집이란 집은 전부 파괴되어 있고,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있었다.

이윽고 그 엉망진창의 평원성 안으로 잔뜩 겁먹은 백성들이 나타났다. 이의민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막상 자신들을 다스리던 기주군의 시체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그들은 곧 이의민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곽가는 차분한 음성으로 이들에게 얘기했다.

“사정이 있었지만 어찌됐든 여러분의 터전이 망가졌소. 완벽히 복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합당한 보상금 역시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아이고! 그렇게만 해주신다면야 저희 같은 사람들이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광록훈!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승상께서 지시한 것이니, 승상께 감사를 올리시오.”

혹시라도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보상까지 해준다고 하니 모두 기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백성들의 칭송을 듣고 있는 곽가에게 세 사람이 다가갔다. 공손속과 전예, 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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