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47화 (147/175)

147. 드러나는 검은 속내 (1)

유주 계현. 이곳은 유주 자사 치소가 있는 유주의 중심부이자 공손찬의 본거지다.

유우와의 오랜 전쟁이 끝난 이후 계현은 한동안 평온했다. 그랬던 이곳에서 난데없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흐흐흑!”

“가시면 아니 됩니다! 자사님!”

유주 자사 치소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고, 공손찬의 아들 공손속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공손찬의 방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니...?! 숙부!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니, 정녕 사실입니까?”

공손속의 외침에 유비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구슬픈 눈물을 보이면서 힘겹게 입을 뗐다.

“속아.... 크흐흡!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리 중요한 시국에 어찌 백규 형님을 데려가신다는 말인가....”

공손속은 유비의 말을 듣고도 도저히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공손찬의 방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버님! 소자가 왔습니다! 눈 좀 떠보십시오! 제발! 천지신령이시여!”

공손속의 간절한 외침에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있는 공손찬이 일어날 리 없었다. 결국 공손속은 아비인 공손찬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크흐흑! 아버지... 아버지!!”

태산 같이 늘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아버지가 죽었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물론 공손찬이 갑자기 죽은 것은 아니었다. 대략 서너 달 정도 전부터 공손찬의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지나가는 잔병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공손찬의 상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악화됐다. 유주에서 이름 난 명의를 다 데리고 와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공손찬의 병세는 더 나빠졌고, 끝내 오늘에는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따지고 보면 예견된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공손속은 공손찬의 죽음이 너무도 두려웠다. 아비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공손속이 이 정도까지 두려워하는 이유는 역시 자신과 공손가의 앞날 때문이었다.

‘아버지... 소자는... 소자는 너무 두렵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없이 어찌해야 합니까? 제 앞길, 그리고 우리 가문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대체 왜 유주의 제왕 공손찬의 장자가 자신과 자신의 가문의 앞날을 걱정하고 두려워할까? 그의 가문은 공손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일까?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공손속은 나름 아비인 공손찬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공손가를 이끌어 갈 자신이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신감이 오간데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그가 숙부라고 부른 인물, 유비 때문이었다.

공손속은 공손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동시에 바로 옆에서 울고 있는 유비를 두려워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처음 유비가 공손찬의 밑에 들어왔을 때 공손속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합류하고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관우, 장비가 합세하면서 불리했던 유우와의 싸움을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주를 완전히 차지하면서 그 대단하다던 원소와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

공손속도 그렇고 공손찬 휘하의 모든 이들이 유주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 그들의 합류는 사실 유주 분열의 전초였다.

점차 유주에서 유비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비의 등장으로 공손찬 진영은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유우를 꺾었고, 원소와 극적인 동맹을 맺으며 하북에서 분란의 불씨를 제거했다.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성은 연신 유비의 이름을 찬양하고 열광했다.

그때부터 유비는 공손찬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늘렸다. 조운 같이 공손찬 아래에선 중용 받지 못했던 이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밑바닥 관리부터 핵심 관리까지 모두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공손찬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때부터였다. 유비가 데려 온 명의들도 의심스러웠다. 분명 명의라고 하는데 진맥을 할 때 마다 얘기가 달라졌다. 기력을 쇠했을 뿐이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오랜 지병이 있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공손속은 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함부로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공손찬이 갑자기 쓰러지고 난 후에는 모두가 자신이 아닌 유비를 주군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이미 유주의 주인은 공손가가 아닌 유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공손가 사람들이 전부 순순히 유비의 뜻에 따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손찬의 사촌동생인 공손월은 청주에서 돌아온 후 유비를 비판하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하지만 공손월의 작은 반항은 별 힘을 얻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청주의 패전 책임 때문에 아무도 공손월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손월은 근신 처분을 받고 어디론가 떠났고, 그 이후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공손월마저 그리되니 아무도 유비에게 대항하는 이가 없어졌다. 장자인 공손속도 감히 유비에게 반기를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누워있는 공손찬처럼 될까봐, 없는 사람처럼 사라진 공손월처럼 될까봐 그럴 수밖에 없다. 공손 씨가 주인인 유주땅에서 공손 씨가 유비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이었다.

“숙부....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공손속은 두려운 눈으로 유비에게 어렵게 질문했다. 그냥 들으면 단순히 앞으로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것과 같았다.

“나도 이리 슬픈데 넌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겠느냐? 크흡! 백규 형님....”

공손속은 또 이런 유비를 보니 자신이 괜한 의심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정말 이리 구슬피 우는데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크흑!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가....?’

“속아. 밤이 깊었다. 마음이 심란할 테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좀 쉬고 있거라. 내가 형님의 장례준비는 다 알아서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일들도 너무 이것저것 신경을 쓰지 말거라. 그것들은 평소처럼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이 숙부만 믿으면 된다.”

“....”

순간 울컥하는 공손속. 지금 하는 말을 들으니 또 의심이 깊어졌다. 대충 들으면 공손속을 위하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자신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말고 그저 병풍처럼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은가.

‘지금 장자인 나에게 아버지의 장례준비도 하지 말란 말인가...? 자잘한 일도 하지 말라고...? 한마디로 유주의 차기 주인이 될 나에게 유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에 전혀 관여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공손속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함부로 유비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이미 공손월이 어찌 되었는지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결국 공손속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알겠습니다. 숙부... 숙부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래. 이만 나가서 쉬거라.”

유비는 한 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공손찬의 방을 나가는 공손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공손속이 완전히 방을 나가자마자 그의 인자했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운장을 부르라.”

바로 관우가 공손찬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관우의 표정이 몹시 밝았다. 따지고 보면 주인이 죽은 셈인데 너무도 밝은 표정이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진 얘기는 주인의 장례를 치르는 지금의 상황과 너무 맞지 않았다.

“형님. 감축 드립니다. 드디어 힘든 첫걸음의 결과를 얻으셨습니다.”

“쉿! 말조심 하거라. 백규가 죽긴 했지만 아직 그의 모든 사람들이 내 손에 들어왔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니 확실해지기 전에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예. 형님. 그래도 모든 것들의 형님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공손찬 휘하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 형님이 새로운 자사가 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나 그들은 모두 평원으로 보냈으니, 이 곳 계현에는 없습니다.”

“사실 반대하는 자들 중에서 내가 신경 쓸 만 한 자는 없긴 하다. 전예, 그 자를 제외하곤 말이지. 전예도 평원에 있는가?”

“물론입니다.”

“공손월은 어찌 되었는가?”

“유배지에 같이 갔던 장비가 제거했다고 합니다. 둘 모두 근신을 명받았으니 아무도 공손월이 없어진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좋군. 그리고 공손찬을 진료한 의원들도 모두 찾아라. 물론 돈으로 입막음을 했지만, 아예 제거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매수를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선 아니 되니 말이다.”

“속히 시행하겠습니다. 형님. 한데 공손속은 이대로 둘 것입니까? 아무래도 공손찬의 장자이니 그도 이른 시일 내에 제거해버리심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공손찬에 이어 속이까지 연달아 죽는다면 사람들도 의심을 할 것이다. 게다가 아직 공손가를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니 속이는 당분간 필요하다. 걱정하지 말거라. 속이를 내가 한두 번 상대해봤느냐? 전혀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나만 보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녀석이 무얼 하겠느냐?”

“그럼 다행입니다.”

그렇게 유비와 관우는 날이 샐 때까지 음모를 꾸몄다. 날이 완전히 밝아졌는데도 둘의 대화는 그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방 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소인 서막입니다.”

잠깐 긴장했던 유비의 표정이 다시 풀렸다.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유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후... 주군이라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로다. 그래. 무슨 일이냐?”

“큰일입니다. 공손속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라?! 그에 대한 감시를 조금도 소홀히 하지 말라 했거늘!”

“소인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거사가 끝난 날이라 저도 모르게 방심을....”

“지금 그딴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얼른 찾아라! 속이를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야 한다.”

유비는 공손속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 앞에서 벌벌 떨 때는 그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연기였다.

“운장. 너도 나가서 공손속을 찾아보아라.”

“예! 형님.”

관우까지 나가서 공손속을 찾았다. 하지만 1시진이 지나도 2시진이 지나도 반나절이 지나도 공손속을 찾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점점 초조해지는 유비.

“운장! 어찌 되었느냐? 아직도 속이를 찾지 못하였단 말이냐?”

“이전부터 철저히 계획을 한 듯싶습니다. 즉흥적으로 도망을 친 것이라면 이리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없다면 이미 계현 밖으로 도망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크윽!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형님 이제 어찌 하시겠습니까? 기주에서 한시라도 빨리 오라고 난리를 치지 않습니까? 공손속은 서막에게 맡기고 기주로 가야 합니다.”

“그래. 그 말이 맞겠구나.”

유비는 결국 공손속을 포기했다. 예상외의 행보를 보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지지 기반도 별로 없는 공손속이 도망친 후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래. 공손찬도 아니고 공손속은 아직 어린 풋내기일 뿐이다. 그깟 놈을 신경 쓰기보다 가장 큰 산인 이의민을 먼저 넘어야 한다.’

“전군! 출정 준비를 하라! 지금 바로 업성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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