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38화 (138/175)

138. 우중전투 (2)

이의민의 대군이 드디어 하내성에 입성했다. 감녕의 활약 덕에 폭우 속에서도 거의 피해 없이 모든 군사들이 황하를 건넜다.

하내성도 굉장히 분주했다. 이의민과 대군이 온다는 소식에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폭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바쁜 것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군. 백녕. 얼굴을 잊어 먹겠어.”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군. 늦었지만 승상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서신으로 얘기해놓고는 뭘 또.... 아무튼 업으로 갈 준비는 잘 진행 되고 있는가?”

“아니 그래도 주군께서 오시면 그 부분부터 가장 먼저 논의드릴 참이었습니다.”

이의민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만총은 지도를 펼쳤다.

“현재 주군의 군대가 황하를 넘었다는 소식이 이미 원소의 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업성에서 대략 10만의 군사들이 남하하여 현재 탕음현 부근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속도로 남하하고 우리가 바로 북상을 한다면 이곳 조가현에서 격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히 알겠지. 척후병 몇몇만 보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니.... 한데 업에서 수성을 하지 않고 꼴에 적극적으로 요격을 한다는 말이지? 하긴 그놈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지. 자존심 강한 본초다운 선택이군. 나쁘진 않아. 물론 우리에게 말이야.”

“그럼 이대로 북상을 하셔서 원소군과 정면 대결을 하실 겁니까?”

“하내의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여기에는 현재 2만의 병력이 있습니다. 즉, 주군께서 현재 운용 가능하신 병력은 총 12만이라는 얘깁니다.”

“내려오는 원소의 병력보다는 좀 더 많다는 뜻이군. 좋아. 본초 놈이 정면 대결을 선택해줬으니, 우리도 균형을 조금 맞춰줘야겠지?”

“예? 그 말씀은....?”

이의민은 소수의 별동대 병력을 따로 뽑아 병주로 보낼 생각이었다. 사실 원소와 균형을 맞춘다는 얘기는 핑계고 애초에 무주공산인 병주를 이런 식으로 노릴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대략 1만 정도의 군사들만 뽑아 병주에 보낼 생각이야. 자네 보고로는 병주는 현재 빈 땅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렇습니다. 그럼 병주 토박이나 다름이 없는 서황 장군이나 장료 장군 중 한 명을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의민은 서황과 장료를 돌아보았다. 둘 다 병주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인물들이고, 별동대를 충분히 맡길만한 능력 있는 장수들이니 둘 중 누굴 보내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의민의 선택은 서황이었다.

“공명. 자네가 가.”

“충!”

이의민이 서황을 선택한 것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장료는 병주에서도 군문에서 생활했던 자다. 반면 서황은 도적인 백파적으로 활동했었다. 그런데 현재 병주는 관군이 거의 없는 땅이다. 군문에서 생활했던 장료가 아는 자들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반면 백파적 출신들은 현재 무법지대인 병주 땅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 확률이 컸다. 물론 그 백파적들 중 상당수가 이의민군으로 흡수가 되었지만, 또 상당수는 그냥 병주 백성으로 남았었다. 그만큼 서황이 아는 인물들이 병주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즉, 현재 병주 땅에 남아있는 세력을 이용하기에는 장료보다 서황이 적격이다.

그걸 서황이나 장료도 잘 아는지 둘 다 한 점의 의문이나 불만도 없이 명을 따랐다.

“그럼 소장. 주군의 명을 받들기 위해 바로 나가보겠습니다.”

폭우 속에서 황하를 건너느라 피곤하기도 했을 텐데 서황은 조금의 휴식도 없이 바로 병주로 떠나려했다. 이에 만총이 더 놀랐다.

“자네. 지금 바로 가려고....?”“주군의 명이 떨어졌는데 어찌 지체할 수 있겠나?”

“허어! 이 친구 참....”

평소 서황의 성격으로 미루어보면 살짝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급해도 너무 급해보였다. 이의민이 내린 명이니 급하게 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핑계 같았다. 병주를 점령하라는 명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기보다는 시간과 공을 들여서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황이 먼저 나가자 만총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 뒤를 처다 보았다. 이의민은 서황이 왜 저러는 지 대충 알겠다는 듯 얘기했다.

“놔둬. 물살이 강해서 서황이 지휘하던 배가 하마터면 강물에 가라앉을 뻔 했거든.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을 것이야.”

이의민의 말대로 서황은 자신이 지휘하던 군선이 폭우 때문에 가라앉을 뻔했다. 이후 감녕의 도움을 받고 무사히 도하를 하긴 했지만, 지휘관으로서 자존심이 적잖은 상처를 입은 서황이었다.

그래도 이의민은 서황을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자괴감이 나쁜 결과로 빠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은 쪽으로 빠지는 사람이 있다. 이의민이 보기에는 서황은 후자다. 지금의 자괴감과 경험이 서황을 더 좋은 장수로 만들어주는 밑거름이 될 터였다.

이의민은 떠난 서황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순유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공달. 봉효에게서 들어온 소식은 없는가?”

하내에서 평원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평원은 원소군이 봉쇄 중인 상황이었다. 당연히 쉽게 전갈을 주고받을 상황은 아니다.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령이 하남까지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직 곽가에게서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광록훈이 있는 평원은 현재 포위당한 상황이라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입니다.”

“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평원 쪽은 봉효의 판단을 믿겠다. 그럼 우리 군은 내일 북상하기로 하지.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라. 오늘은 잘 먹고 푹 쉬라고 말이야. 군량도 아낌없이 풀고 고기도 충분히 배급하도록 해. 내일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수도 있으니 잘 먹어둬야겠지.”

역시 군사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이의민이다.

**

조가현에서 총 20만에 달하는 군사들이 집결했다. 만총과 저수가 했던 예상 그대로 두 세력은 바로 이곳 조가현에서 맞닥뜨렸다.

양 군대의 가장 선두에는 세력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이의민과 원소가 있었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앞으로 나섰다.

“본초. 오랜만이군.”

“그래. 이의민. 그간 많이도 컸더군.”

원소는 이의민과 이리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의민이 승상이 된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건만, 원소의 기억 속에는 이의민은 여전히 보사 나부랭이일 뿐이다.

그래서 원소는 이의민을 결코 인정하기 싫었다. 물론 지금은 인정하기 싫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지금 원소가 이의민에게 하는 인사는 그의 열등감이 사무친 인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원소의 열등감을 짚어내기라도 하듯 이의민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곽봉이 나섰다.

“어이! 사세삼공의 원가.... 아니. 이제 오세삼공인가.... 아무튼 명문가 자제라는 놈이 말버릇이 그게 뭐냐? 이 나라의 승상께 감히 그따위로 말을 하느냐?! 아! 종놈이라 예절 따위는 모르는 것이냐?”

곽봉의 도발에 원소의 표정이 굳었다.

“뭐, 뭣이....? 버, 버릇....?! 종노옴...?!”

원소도 곽봉을 모르지 않는다. 예전처럼 어디 중랑장도 아니고 위장군까지 올랐으니 모를 수가 없다.

이의민이야 본신의 무력이 워낙 뛰어나니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곽봉까지는 자신과 같은 취급을 도저히 해줄 수가 없다.

이의민도 아니고 곽봉에게 도발을 받으니 더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원소다.

“저, 저놈을 당장....!”

흥분해서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태세인 원소, 그때 전풍이 다가오며 조심스레 원소를 달랬다.

“주군. 흥분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저놈들이 있는 위치를 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모두 생매장 당하거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놈들입니다. 지금 실컷 떠들라고 하시죠.”

전풍의 얘기에 원소의 화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산사태와 물난리로 떠내려가는 이의민군이 원소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공교롭게도 지금 이의민군이 위치한 자리는 산사태를 직격으로 맞는 자리였다. 이의민군의 진채는 딱 그 자리에 세워지고 있다.

이제 고람이 둑 만 터뜨린다면 이의민군은 떨어지는 흙더미에 묻히거나 홍수에 쓸려 나갈 수밖에 없다. 이건 이의민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산이 무너지고 파도처럼 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사람 한 명의 힘으로 그걸 어찌 막는단 말인가.

그걸 생각하니 원소는 어느새 화가 완전히 가라앉았고, 오히려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원소는 관대해진 마음으로 다시 이의민에게 외쳤다. 도발을 도발로서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곽봉이 얘기하는 대로 순순히 승상으로서 대접을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것이 네놈의 마지막일 터이니 소원대로 승상 대접을 해주마.’

“이보시오! 승상!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위장군의 말대로 이 본초가 예의가 부족했던 것 같소.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승상의 군대에 진채가 다 세워질 때까진 공격을 하지 않겠소. 그러니 안심하시오.”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공격해.”

“흐흐흐! 아니오. 이제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울 건데 처음부터 힘을 뺄 필요가 있겠소? 지금은 푹 쉬시오. 나중에 봅시다.”

이의민은 원소의 태도에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원소가 저리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의민과 원소는 서로 돌아섰다. 원소는 정말 자신이 한 얘기를 지켰다. 이의민군이 진채를 세우는 동안 공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공달. 내가 저 새끼를 좀 아는데, 아무리 봐도 수상해.”

“저 역시 이상합니다. 진채를 세우는 동안이 아주 큰 기회인데 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인지....”

“아냐. 그건 오히려 본초다운 행동이야. 있는 거라곤 자존심과 허세밖에 없는 놈이니까.... 내가 이상하다는 건 본초 놈이 곽봉 형의 도발을 참아낸 것이다. 내가 아는 원소는 절대 곽봉 형이 하는 모욕을 견딜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이의민의 얘기에 순유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당장 경거망동하지는 않더라도 절대 위장군께서 원하는 대로 순순히 따를 인물은 아닌데....”

“본초가 옆의 모사인지 뭔지 모를 놈에게 뭔가 듣고는 화를 삼켰어. 그것도 모자라 기분 나쁜 웃음까지 보였지. 분명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순유는 순간 난감함을 느꼈다. 그로서도 원소가 정확히 무얼 노리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순유로서는 전투 직전 거의 처음으로 적의 노림수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알겠습니다. 주의를 살피고 혹시 모를 함정 등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응? 어디 가십니까?”

“어딜 가긴.... 원소 놈이 내게 호의를 보여줬으니 답례를 해야지. 뭔가 기분 나빠서 말이야. 그놈이 공격할 거 예상하고 다 준비를 해놨는데, 마치 제 놈이 봐준다는 듯이 말하는 게 영 기분이 나쁘군.”

이의민은 마치 동네 마실 다녀오겠다는 듯 가볍게 나갔다.

“내 갑주를 가져와라.”

이제는 승상에 어울리는 화려한 갑주를 걸쳐 입은 이의민. 원소도 만만찮게 화려한 갑주를 입었지만 이의민의 갑주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그렇게 화려한 갑주를 입고 시뻘건 적토마에 올라타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그런 이의민 뒤를 장료, 황충, 마초가 받치고 있었다.

“그 감녕.... 위연이라고 했나? 그 두 놈도 불러 와. 얼마나 자신 있는지 한 번 보지.”

이윽고 감녕과 위연까지 이의민 뒤에 섰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의민과 아이들, 아니. 장수들이 선두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원소의 진영에서도 안량과 문추, 순우경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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