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37화 (137/175)

137. 우중전투 (1)

원래 삼국지에서는 동오의 강동십이호신으로 추앙받았던 전설적인 장수가 바로 감녕이다. 하지만 역시 삼국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영 무지한 이의민은 모르는 이름이었다.

“흠.... 감녕이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이름만 무명인 게 아니다. 그가 앞서 밝혔다시피 감녕은 스스로 둔기 교위라고 했다. 아무리 각 군선들의 크기가 작다고 해도 적어도 군선 하나의 지위를 맡으려면 교위 정도의 직위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장군급 지휘관은 되어야 했다.

이상하게 여긴 이의민이 감녕에게 다시 질문을 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승상! 이놈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이놈은 겨우 교위 신분인 주제에 지휘관이라 사칭하고 있습니다. 배의 지휘를 맡고 있는 사람은 이놈이 아니라 소장입니다!”

이의민이 뒤를 돌아보니 감녕과 비슷해 보이는 연령대의 사내가 나섰다. 그는 감녕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이의민 앞에 부복했다.

이의민은 둘의 모습을 보며 기가 막히는 걸 느꼈다. 어린아이들 골목대장 뽑는 것도 아니고 서로 지휘관이라 우기는 꼴은 뭔가. 그것도 최고 지휘관인 자신 앞에서 말이다.

‘이거 참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말이야.... 흠.... 당나라면 그래도 지금 시대 이후니까 더 발전된 건가....?’

“지금이 전시상황임을 모르진 않을 테고... 나와 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이의민이 본격적으로 쌍심지를 켜고 나오니 둘 다 땀을 삐질 흘렸다. 그제야 자신들이 누구 앞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 깨달았다.

“그, 그것이 아니옵고.... 죄송합니다.”

“좋아. 설명할 시간을 주지. 왜 둘이서 서로 지휘관이라고 내 앞에 나섰는지 설명해. 날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군법에 따라 처리 할 것이다.”

이의민의 으름장에 감녕을 지적하며 나섰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승상. 소장은 위연이라 합니다. 과거 형주자사 유표에 의해 비장군으로 임명 되었다가 이번 하북원정 소식을 듣고 여기 감녕과 함께 지원 온 것입니다. 한데 소장은 유 자사에게 임명된 비장군 직위가 이곳에서도 인정되어 지휘관 자격을 받았지만, 여기 감녕은 둔기 교위에 불과한 자입니다.”

두 번째 사내는 바로 촉의 명장이었던 위연이다. 역시 이의민은 그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이의민은 위연과 감녕에게서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둘 다 범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흠... 두 놈 다 썩 괜찮은 놈들이군...’

감녕은 우락부락하지는 않았지만 온 몸이 날렵한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실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발달시킨 것 같았다.

반면 위연은 대놓고 근육으로 키운 듯 온 몸이 근육질이었다. 그러면서도 둔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표범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어쨌든 까다로운 이의민의 기준으로 봐도 나름 괜찮아 보이는 감녕과 위연이다.

“그래. 위연. 네가 비장군이면 네가 지휘관이 맞는 것이군. 그럼 감녕. 네놈이 정녕 내 앞에서 사칭을 한 것이냐?”

이의민의 질문에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던 감녕이 입술을 깨물고 앞으로 나섰다. 이쯤 되면 두려움을 느껴 크게 당황할 만도 한데 나름 당당한 모습이다.

“승상. 그가 비장군이고, 애초에 이 배의 지휘관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그는 이 배에 올라탄 이후부터 전혀 지휘관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배가 폭우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릴 때 위 장군은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군사들의 역할을 지정하고 배의 방향을 지시했어야 합니다. 허나 그는 배가 왜 이러냐고 군사들을 다그치기만 할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소인이 나서서 군사들을 이끌어 배가 올바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대체 누가 지휘관인 것입니까?”

“위연. 여기 감녕의 말이 사실이냐?”

위연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녕의 말을 모두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의민은 감녕의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감녕이 지휘관이란 것도 일리가 있었다.

명목상 지휘관인 위연이 그 역할을 전혀 못했고 감녕이 다 한 것이라면, 감녕이 지휘관이 아니었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적어도 이의민의 기준에서는 그렇다.

‘이를 어떻게 한다.... 그냥 군법대로 처리해버리기에는 둘 다 아까운 놈들인데....’

그답지 않게 고민이 길어지고 있을 때, 위연이 다시 한번 더 나섰다. 아무래도 이의민이 감녕의 얘기에 납득하는 듯 보이자 다급했나보다.

“승상! 아무리 그래도 소장이 분명 이 배의 지휘관입니다. 배를 탄 이후부터는 감녕이 배에 대한 식견이 좀 있어서 그런지 지휘를 잠깐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에는 소장이 지휘관 역할을 못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감녕이 코웃음을 쳤다.

“흥! 위 장군. 육지에서는 과연 그리 잘했다고 할 수 있소? 솔직히 말해서 제가 위 장군보다 더 강하고 지휘관 역할에도 더 어울릴 것이오.”

이번 기회에 아예 위연의 자리를 먹으려는 감녕이다.

“뭣이 어째?! 감히 교위 따위가! 진짜 계급장 떼고 한번 붙어볼 테냐?”

“바라던 바요. 만약 내가 이기면 두 말없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거요.”

“좋다.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넌 보사로 강등당할 각오를 해야 할 거다.”

결국 둘은 바로 앞에서 이의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고 으르렁 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곽봉이 두 사람에게 크게 호통을 쳤다.

“어허! 이놈들! 지금 누구 앞이라고 떠들고 있느냐?! 그리고 누구 마음대로 자신들의 직위를 걸고 내기를 하느냐?! 이놈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곽봉의 분노에 감녕과 위연은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죄, 죄송합니다. 승상. 위장군....”

그런데 이의민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곽봉이 대신 화를 내주어서가 아니다. 둘 다 이의민을 적당히 만족시켜줄만한 강자라서 그런지, 둘 다 마음에 든 이의민이다.

“되었다. 위연은 분명 지휘관이 맞고, 감녕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니 이번 일은 이만 넘어가는 걸로 하지.”

이의민이 그리 돌아서니 위연은 슬쩍 미소를 지었고, 감녕은 살짝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넘어가는 건 감녕에게 별로 좋은 처사는 아니었다. 감녕의 지휘관 인정은 그저 작은 사건으로 묻힐 상황이니 말이다.

그때 이의민이 다시 감녕을 향해 말했다.

“아! 그리고 자네. 배를 그리 잘 몬다고 하니 잘 되었군. 자네는 믿을 만한 사람 몇몇을 뽑아서 다른 배들의 상륙을 도와라. 그렇게 모든 배들이 건너편에 무사히 도착하면 그 공을 인정해 상을 주겠다.”

이의민의 화끈한 약조에 감녕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승상!”

반면 위연의 인상이 굳어졌다. 하지만 다음 이의민의 얘기에 금세 의욕 충만해지는 위연.

“자네도 준비를 해둬. 하내에 상륙하게 된다면 곧 지겹도록 싸워야 할 테니까. 그때는 자네도 진가를 보일 수 있겠지. 내게 제대로 보여준다면 편장군....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직위도 오를 테고....”

“반드시! 승상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

하내군 탕음현. 하내군에 속해 있는 현이었지만, 업성과 더 가까운 탓에 현재는 원소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탕음현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는 원소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세우고 있었다. 원래 업에 있어야 할 원소의 주력군이 이곳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당연히 황하를 넘어온 이의민군 본대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원소군 진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원소의 막사에는 원소군의 모든 장수들과 참모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는 역시 원소가 화려한 황금빛 갑주를 걸쳐 입고 오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상당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원소가 처음으로 입을 열며 군사회의가 시작됐다.

“그래. 이의민 그놈은 지금 어디쯤 왔다고 하는가?”

원소의 질문에 첩보를 담당하고 있던 신평이 보고를 했다.

“엄청난 폭우에도 이의민은 황하의 도하를 감행했다고 합니다. 내일이면 하내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황하를 건널 때 제법 피해를 봤겠구먼.”

“그건 아닙니다.... 수군에 능통한 자들이 있었는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시작부터 기분 좋은 소식을 기대했던 원소는 인상을 구겼다.

“그럼 이의민과는 언제 어디서 맞붙게 될 것인가?”

이번 질문은 전풍이 답했다.

“적들이 하내성에서 쉬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올 것으로 예상되니 아마 조가현에서 격돌을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조가현이라.... 이의민의 성격상 조가성에서 수성을 하진 않을 테니, 공성이니 수성이니 할 거 없이 서로 화끈하게 싸워보겠구나. 그런데 내가 업성에서 수성을 하지 말자고 했을 때 자네들은 다 반대를 할 줄 알았는데....?”

원소는 참모들에게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원소의 말대로 그는 이의민에게 얕잡아 보이는 게 싫었다. 원소도 스스로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성을 비우고 요격을 하자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래서 전풍, 저수, 심배 등의 참모들이 전부 반대를 할 것이라 각오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오히려 원소의 결정을 옳은 결정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시에는 기분이 좋아서 그냥 넘기긴 했는데 지금은 그 이유가 궁금해진 원소다.

이번에는 저수가 대답을 했다.

“아직까지도 내리는 이 비를 이용하는 겁니다.”

저수의 말대로 폭우는 아직까지 쏟아졌다. 물론 지금은 며칠 전처럼 미친 듯이 쏟아 내리지는 않았지만, 며칠 동안 계속된 비로 인해 온 땅바닥이 질척해졌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

“일전에 주군께서 만들어둔 흑산의 둑 말입니다. 놈들이 조가현에 오면 그것을 터트리는 겁니다.”

“둑! 그래! 그게 있었지!”

원소는 저수의 설명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가현은 지반이 약해 비가 쏟아지면 매번 산사태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기에 원소는 그곳에 둑을 설치했었다. 그런데 지금 기록적인 폭우가 났는데 둑을 터뜨린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수많은 대군을 아예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산사태 말이다.

원소군은 많은 수가 이곳이 고향이기에 어느 곳으로 가야 산사태를 피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반면 이의민군은 모를 터였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민군은 산사태를 피하지 못하고 쓸려나갈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크흐흐. 이런 때 폭우라니, 하늘이 우릴 돕는 군. 그럼 어서 둑 쪽에 군사를 보내야겠군.”

“아니 그래도 고람 장군을 먼저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주군.”

“흐흐. 역시 저수일세. 이미 손을 써 뒀군. 그런데 말이야....”

비릿한 미소를 짓던 원소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한 가지 변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의민의 상대로는 아주 작은 변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잘 아는 원소다.

“만약 이의민이 천운으로 산사태를 피해간다면 어찌 되는 것이지?”

“설사 그렇다고 해도 성 밖에서 적들을 요격하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런 폭우에선 보급 관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걸 적극적으로 공략한다면 적들이 산사태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보급 관리가 힘든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가 우리 쪽만 아니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 역시 폭우에 보급품관리가 힘들긴 하지만, 황하를 넘어야 하는 적군 입장에서는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이 보급에 투입될 것입니다. 업과 유주에서 육로를 통해 안정적으로 보급을 받는 것과 폭우 때문에 건너기 힘든 황하를 넘어 보급을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제야 납득하는 원소.

“좋군.... 허나 상대는 이의민이다. 작은 흠결이라도 있어선 아니 된다. 모두들 힘들겠지만 다시 한 번 꼼꼼히 준비를 하도록. 안량! 문추!”

원소의 부름에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있던 양 옆의 상장들이 부복했다.

“예! 주군!”

“자존심이 좀 상하겠지만 이의민은 여포도 이긴 놈이야. 그가 보이면 절대 혼자서 상대하지 말고 자네 둘이 협공을 하도록 하게.”

“옛! 명심하겠습니다!”

안량 문추는 자존심 상했지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여포보다 강하다면 자신들이 합공을 할 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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