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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12화 (112/175)

112. 서량 접수 (2)

대략 한 시진 뒤 이의민은 준비를 마치고 연무장에 들어섰다. 장수들뿐만 아니라 병사들까지 구경을 하러 모두 몰렸다.

아단과 월길은 누가 먼저 싸울 것인지 순서를 정하고 있었는데, 이의민이 거기다 대고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

“따로 따로 상대하기도 귀찮고 시간 아깝다. 그냥 둘 다 한꺼번에 덤벼.”

이의민의 얘기에 기가 막힌 아단과 월길. 그 둘은 강족 최고의 전사였다. 그런데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겠다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의민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거기 마초! 너도 같이 싸우겠느냐? 3대1로 말이다.”

마등은 이제 마초가 분노할 것을 염려하여 이의민을 말렸다.

“승상. 아무리 그래도 3대1은 무리가 아니십니까?”

“3대1이 무리라... 여포도 한 것을 난 왜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마초나 여기 있는 아단, 월길은 평범한 장수가 아닙니다.”

“그럼 여포와 싸웠던 내 장수들은 평범한 장수란 말인가?”

이때 가만히 있던 마초가 앞으로 나섰다.

마등은 분노하여 날뛰는 마초를 막으려고 갔는데, 곧 눈이 휘둥그레졌다. 날뛸 줄 알았던 마초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알겠습니다. 승상. 그리 하겠습니다.”

여태껏 마초는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가는 상황이 오면 절대 참지 않았다. 그런 마초가 순한 양처럼 이의민의 제안에 순순히 응하니 모두 황당하다는 눈을 크게 떴다.

철리길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초에게 외쳤다.

“금마초여! 어찌 이런 말도 아니 되는 대결을 받아들인단 말이오?”

그런데 이의민 앞에서는 조용히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던 마초는 철리길에게는 성난 기색을 드러냈다.

“나 금마초는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소! 내 판단이 틀렸다고 보는 것이오?!”

이에 철리길은 입을 다물었다. 강족에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가 하는 말이니 거부할 수도 없다.

결국 마초의 결정으로 이의민과의 3대1 대결이 성사됐다. 마초를 아는 자는 모두 이 대결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넷 사이로 끼어드는 한 인영이 있었다.

“오랜만일세. 이의민.”

승상이라 부르지 않고 이의민의 이름을 직접 부른 인물. 그런데 막상 그를 본 이의민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워보였다.

“황보 장군 아니십니까?”

그렇다. 끼어든 자는 바로 황보숭이다.

“이의민... 내가 싸움에 끼어들어도 되겠는가?”

황보숭의 다음 얘기에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황당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훗! 저와 싸우시겠다.... 물론 싸움을 마다하지는 않습니다만.... 무슨 생각이십니까?”

“애초에 약속된 싸움을 방해할 생각은 없네. 다만 나 황보숭은 그것과 무관하게 승상과 일대일로 맞붙기를 원하네. 아무도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네.”

눈치 없는 관해는 그런 황보숭을 강제로 끌고 나갈까 했지만 곽봉에게 제지당했다.

“허어! 노친네가 신령님을 마주하기 직전인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이 열 명이 된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혼자서 주군에게 덤비겠다니.... 아무튼 눈치 없이 끼어드는 저 노친네를 당장 끌어내야겠군.”

“어허! 관해 아우. 그만두게.”

“예? 곽 형. 저걸 그냥 두고 보란 말이오?”

“그래도 한 때 주군이 상관으로 모셨던 분이네. 주군께서도 정중히 대하시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결국 관해도 조용히 구경만 하겠다는 듯 물러섰다. 그 이후 아무도 끼어드는 자는 없었다. 황보숭의 모습에는 뭔가 쌓여도 단단히 쌓인 노장의 한과 묘한 위엄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의민도 순순히 황보숭의 뜻대로 해주겠다는 듯 말없이 적토마에 올라 자세를 잡았다. 곧 이의민과 황보숭이 격돌했다.

콰쾅! 쿵!

“크으윽!”

두 사내가 격돌을 했는데 한 명만 크게 낙마했다. 그 한 명은 당연하게도 이의민이 아닌 황보숭이었다.

황보숭이 이의민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황보숭은 아직 대결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다시 자신의 말에 올라탄 후 이의민과 격돌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이의민도 말없이 황보숭 앞에 다시 적토마를 몰고 가 섰다. 이어지는 두 사내의 격돌. 당연히 두 번째 격돌에서도 황보숭은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그럼에도 황보숭은 계속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을 타고 이의민을 상대했다. 이의민도 그런 황보숭을 상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의민은 힘을 빼지도 않았다. 낙마한 그를 쫒아가서 죽이지는 않았지만 일합마다 최선을 다했다.

“장군... 이제 그만하시지요.”

보다 못한 곽봉이 황보숭을 말렸다. 하지만 황보숭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황보숭은 온몸에 피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숨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헐떡였다. 이의민의 대부 날에 직접적으로 찍힌 적은 없다. 그렇지만 큰 충격을 받고 몇 번이나 낙마를 했으니 온몸에 멍이 들고 피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황보숭은 포기하지 않고 또 일어났다.

“크윽! 쿨럭!”

분명 서 있을 힘도 없어 보이지만 끝끝내 일어나는 황보숭. 그걸 지켜보던 이의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장군. 죽으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허억! 헉! 무, 무슨 소리인가....? 나는 끝까지....”

“장군도 아시잖습니까.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장군은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내게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이길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봐도 장군은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 같습니다.”

“.....”

이의민의 말에 황보숭은 대꾸하지 못했다.

대꾸할 힘이 없어서인지, 할 말이 없어서인지 모를 황보숭.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다시 한번 이의민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번에도 역시 어김없이 나가떨어지는 황보숭. 그는 힘이 다했는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이의민은 겨우 숨만 붙어 있는 황보숭에게 다가갔다.

“장군. 장군께서 왜 그러는지 난 알고 있소. 여기서 장군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을 얘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맞소. 장군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요. 난 장군께서 가장 원치 않아 하는 길로 갈 거요.”

이의민의 담담한 얘기에 황보숭은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뜻일까? 이의민은 그런 황보숭을 개의치 않고 계속 얘기했다.

“그래도 장군. 무엇이 정녕 백성을 위한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오. 나 이의민은 장군과 함께 가고 싶소. 썩어빠진 한나라 조정에 몇 없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인물이 바로 장군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대장군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소. 중요한 자린데 그래서야 되겠소? 부디 장군께서 그 자리를 받아 이전처럼 백성들을 위해주시오. 그것도 싫다면 초야에 묻혀 사시오. 다시 내 눈에 띄지 않는다면 남부럽지 않은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오.”

이의민의 말이 끝나자 황보숭은 눈을 떴다.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듯했다. 이의민은 지금 굳이 황보숭의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 그를 데리고 가게 했다.

“황보 장군을 데리고 가서 치료하라. 그리고 대결은 속행하겠다.”

의원들이 신속히 황보숭을 부축하여 나갔다. 비록 제대로 된 공격은 한 번도 없었지만 불굴의 투혼을 보여준 황보숭의 모습은 모두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끝까지 황보숭의 명예를 지켜준 이의민에게도 존경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동시에 기대감도 깃들어있다. 이의민의 성정을 확인했으니, 이제 그의 진정한 무력을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마초와 강족 전사 아단과 월길이 동시에 나섰다. 정말 이의민의 말대로 3대1 대결을 펼치려는 이들이다.

마초들은 3대1의 대결이라 해서 절대 이의민을 봐주면서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아단과 월길 역시 마초가 이 대결을 수락했을 때만해도 말도 안 되는 대결이라 여겼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당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의민 앞에 서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엄청난 기운은....’

‘정말 우리들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초는 애초에 이의민의 강함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이의민이 내건 3대1 대결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마초들은 정말 온힘을 다해 이의민에게 달려들었다.

“하압!”

“히야압!”

“흐앗!”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이어지는 정교하고 날카로운 합공. 월길의 창이 이의민의 머리를 노리고 아단의 창이 적토마를 노렸다. 그리고 마초의 창은 이의민의 허리를 노렸다.

단 하나의 공격도 막아내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의민은 월길의 창을 왼손으로 쳐내고 마초의 창은 오른손에 든 대부로 막았다. 그리고 아단의 창은 적토마가 알아서 피해버렸다.

셋의 합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집요하게 이의민의 빈틈을 찾아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의민은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고 오히려 날카로운 반격을 가했다.

전투의 민족 강족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누가 자신의 편인지도 잊었는지 환호성을 질렀다.

“우오오오!!”

“대단하다! 이의민님이 진정한 무신이시다!”

가후는 슬쩍 웃음을 지으면서 철리길에게 물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의미의 웃음이다.

“어떻습니까? 국왕이시여. 이제 승상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이의민을 불신했던 철리길도 이제는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노회한 정치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 건 순순히 인정할 줄 아는 이들이다.

“물론이요! 그는 훌륭한 전사요. 우리의 숭배를 받을 자격 있소. 하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소.”

이의민에 대한 강족의 인정은 이미 끝난 얘기다. 단지 철리길은 이 감탄 나오는 승부를 끝까지 보고 싶은 심정일 뿐이다.

한편 이의민도 속으로 적잖이 감탄하고 있었다. 다수를 상대하는 입장에서 웃긴 얘기긴 하지만 아직 어린 마초의 무위가 제법 대단하게 느껴졌다.

‘허! 확실히 마초가 대단하긴 하군. 삼국지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였던가? 아직 황충보다는 모자란 것 같지만 약관도 안 지난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훌륭해.’

아직 그의 눈에는 서툰 게 많은 풋내기였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아마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지금껏 본 무장들 중에서는 여포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무장이 될 것 같다.

‘데리고 다니면서 키워 볼 가치가 있겠어. 그럼 이제 슬슬 끝내볼까...’

갑자기 이의민의 기세가 변했다. 그에 동시에 적토마의 움직임 역시 더 빨라졌다.

적토마가 아단의 창을 피하고, 이의민은 월길의 창을 왼손으로 낚아챘다. 둘이 아무것도 못하는 가운데 마초가 창을 찔러왔다. 이의민은 기다렸다는 듯 대부를 휘둘렀다. 이의민의 대부가 마초의 창을 단번에 부러뜨렸다.

마초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아단과 월길은 마지막으로 발악했지만 이의민의 발길질 두 방에 낙마했다.

“크윽!”

“크악!”

그리고 무기가 없어진 마초를 향해 대부를 휘두르는 이의민. 당장이라도 마초의 머리를 박살낼 것 같던 대부는 마초의 이마 바로 앞에서 멈췄다.

“져, 졌습니다.”

마초는 그대로 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아단과 월길 역시 땅바닥에서 뒹굴다가 마초를 따라 이의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셋에게서 분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변명할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패배다.

그와 동시에 철리길도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승상의 무위를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나 철리길은 승상을 최고의 전사로 인정하겠습니다. 강족은 앞으로 승상에게 무조건 협력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동시에 강족들, 그리고 이의민군의 함성이 이어졌다. 뜻하지 않게 강족들까지 완전히 복속시킨 이의민. 그의 손아귀에 서량까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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