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09화 (109/175)

109. 마중적토 (1)

이의민이 적토마를 타고 동탁군 사이를 가로질렀다. 붉은빛이 지나가고 그 자리에 붉은 피가 쏟아졌다. 전부 동탁군의 피다.

이의민이 없는 곳도 다르지 않았다. 이의민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동탁군의 시체만 쌓여가고 있었다.

이건 전투라고 부를 수 없다.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봐야했다.

모두 상상도 하지 못했었던 여포의 배신과 비굴한 모습은 모든 동탁군의 사기와 의욕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게다가 더 이상 이의민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유일하게 이의민과 상대가 가능했던 여포가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크윽! 후퇴! 후퇴하라!”

동탁도 이제 자신의 군대가 절대 이의민군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동탁군은 동관까지 후퇴하고 나서야 겨우 이의민군을 따돌릴 수 있었다.

“남은 군사들은 얼마나 되느냐?”

“4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군사는 5만 밖에 없습니다.”

이각의 보고를 들은 동탁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단순히 대패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믿었던 양아들 여포의 배신은 이번 전투에서 4만이나 되는 군사를 잃은 것보다 더 화가 치미는 일이다.

“으아아! 여포! 그 후레자식 놈! 내 실수다! 그놈을 받지 말았어야 했어. 그래! 여포 그놈과 함께 온 놈이 있었지!”

동탁의 호통에 한 사내가 벌벌 떨고 있다. 그는 바로 장양이었다.

“주, 주군... 소장도 여포가 그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발 자비를....”

“자비는 저승에 가서 여포 놈에게 찾아라. 여봐라! 당장 저놈의 목을 베라!”

결국 장양의 목도 단칼에 날아갔다. 그럼에도 동탁의 분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크으! 으아아!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구나! 여포에게 배신당하고! 내 군사들은 이의민 그놈에게 무참히 대패하고!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누가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도가 없느냐?”

동탁은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주변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동탁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는 이유마저도.

그럴 수밖에 없다. 동탁의 최고 모사인 이유도 지금 상황을 해결할 타개책 따위는 없었다.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병력이 아무리 많더라도 승리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병력마저 상대보다 훨씬 적어졌다.

결정적으로 이의민을 조금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장수가 동탁군에 없다. 현재 동탁군 내 모든 상장군들이 힘을 합쳐 이의민 한명을 상대한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설사 그렇게라도 이의민을 막을 수 있다고 해도 문제다. 나머지 이의민군 장수들도 동탁군 상장들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들은 누가 막을 터인가?

그렇다고 지력이라도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가? 이유도 충분히 느꼈다. 이의민군의 순유나 곽가 같은 모사들이 절대 자신보다 하수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 어느 부분을 봐도 동탁이 이길 방법이 없다. 이길 만한 조금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니, 그간 동탁의 그 어떤 질문에도 척척 대답했던 이유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쾅!

이때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와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두를 향해 일갈했다.

“한심하군! 다들 겁먹은 개 마냥 꼬리를 말고 있는 꼴이라니... 이래서야 주군의 사람들, 서량의 사나이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주군! 이런 한심한 작자들은 다 필요 없습니다. 소장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동탁은 그 장수를 보고서야 드디어 화색을 띠었다.

“호진?! 그래! 자네가 있었지.”

호진은 동탁의 상장 중에서도 직위가 높은 장수다. 동탁의 총애를 듬뿍 받는 장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홍농성 전투에서는 참여하지 않고 동관에 머물렀었다.

호진은 그 성정이 매우 오만하고 급한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갑자기 동탁의 양자로 들어온 여포와 충돌이 잦았다.

동탁이 장안에서 홍농으로 향할 때도 여포와 심한 다툼을 했던 호진이다. 동탁은 그간 호진을 총애했었지만, 아무래도 여포만큼은 아니었다. 그만큼 여포는 절대적인 무위를 가진 장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동탁은 여포와 호진의 다툼에서 여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호진은 홍농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동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여포를 더 총애하게 된 동탁도 이제는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배신자 여포와 사사건건 부딪혔던 호진이 예전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그래. 호진. 이제 내게 쓸 만한 장수라고는 자네밖에 없네. 이의민을 상대하기 위한 방책이 있는가?”

동탁의 질문에 호진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따로 방책이랄 것도 없습니다. 주군. 생각해보십시오. 예전에는 세상 모두가 주군의 군대를 두려워했습니다. 그게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전 중원에 명성이 자자한 서량 기병 덕분 아닙니까. 최고의 기마전술이 가미된 서량 기병들은 무적입니다. 그들이 일제히 돌진을 하면 막을 군대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개개인의 무력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까? 소장이 그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홍농성 전투는 실로 우리답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 서량 기병들이 가장 잘 싸우는 방식으로 전투를 하면 됩니다.”

호진의 말대로 서량 기병들은 그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명성이 자자한 군대였다. 일단 기병이란 병과 자체가 강하기도 하지만 특히 서량 기병하면 다른 기병에 비해서도 한수, 아니. 몇 수는 위라는 평가다.

동탁도 사실 여포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서량 기병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해서 호진의 호언장담처럼 서량 기병이 이의민군을 상대로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서량 기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승승장구 해왔던 이의민군이다.

결정적으로 이의민군에는 이의민이란 존재가 있었다. 아무리 불리한 전투라도 이의민 하나로 전황이 바뀌었다. 하지만 호진은 그런 것들은 전혀 생각지 않고 그저 서량 기병의 강함만을 내세우면서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

답답해진 이유가 나서서 호진의 무지를 지적했다.

“장군. 그건 장군이 홍농성 전투를 전혀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요. 이의민 그자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그렇지만 호진은 이유의 지적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

“군사! 다른 자들은 몰라도 군사는 그리하면 아니 되는 것 아니오? 이의민이 강한 건 나도 충분히 알고 있소. 그 대단하던 여포를 죽였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그에게 죽을 거요? 당당히 나아가서 붙어보면 되는 것 아니오?!”

동탁은 그런 호진의 손을 들어주었다.

“호진의 말이 옳다! 문우는 더 이상 초를 치는 듯한 발언은 삼가게. 호진. 그럼 다음 전투에서 이의민군을 꺾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주군. 소장이 반드시 승리를 거둬 서량 기병들의 명성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겠습니다.”

이제 호진이 원하는 판이 벌어졌다. 사실 홍농성 전투는 시작부터 공성전이었기에 기병들이 활약할 만한 무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의민군이 동관 앞까지 온다면 드넓은 벌판에서 얼마든지 기병전을 펼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남은 동탁군 대부분이 기마병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전의 전투에서 동탁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을 했는데, 기병이 보병에 비해 훨씬 더 빠른 만큼 도망치는 데도 유리하니 말이다.

동탁은 자신의 검을 호진에게 던졌다.

“좋다! 호진! 이 시간부로 너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겠다. 네 말대로 서량 기병의 무서움을 적들에게 제대로 보여줘라.”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호진은 신이 난 표정으로 동탁에게 포권했다. 그리고 남은 군사들을 정비하고 전투를 준비하러 떠났다.

이유는 불안한 표정으로 호진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동탁에게 읍소했다.

“주군.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겁니다. 이의민이 얼마나 말도 아니 되는 모습을 보였는지 충분히 겪으셨지 않습니까? 정말 호진 장군이 남은 군사로 이의민을 잡을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이유의 말이라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던 동탁은 짜증을 내며 말을 받았다.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문우. 그냥 이대로 이의민에게 순순히 목을 내놓자는 말인가?”

“그런 얘기가 아니오라.... 후우! 그럼 마등이라도 이용하시지요.”

이유는 기병을 이용한 요격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최소한의 보험을 들기로 했다. 그래도 동탁이 이번 의견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마등을 이용한다? 그놈의 군사들도 일전의 전투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지 않았는가?”

“허나 그들의 본거지에 강족 군사들이 있잖습니까? 그들을 불러오라고 하십시오.”

“오호! 강족 군사들이라... 그거 좋은 생각이군.”

강족까지 데리고 온다면 모자라는 병력까지 보충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이의민에게 승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동탁이다.

**

“주군! 헉! 헉! 너무 빠릅니다!”

“다들 왜 그리 느려 터졌어?”

이의민과 군사들은 모두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홍농성에서부터 계속된 추격은 결국 동관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추격을 하는 도중에도 이의민과 적토마는 빛이 났다. 적토마는 다른 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두 명 추격할 걸 네다섯 명 추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군사들은 자신들이 탄 말을 죽어라 채찍질하는데도 적토마의 절반도 가지 못했다.

“주군의 말이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순유의 얘기를 이의민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해도 적토마는 다른 말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로 전에 탔던 한혈마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크크! 그렇지? 한혈마도 좋았지만 적토마는 비교가 아니 되는군. 공달. 이 붉은 갈기 좀 보라고. 때깔부터가 달라.”

이의민은 적토마의 갈기를 하루 종일 쓰다듬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있다. 그만큼 적토마가 주는 만족감이 높은 것 같았다.

“주군. 이제 동관입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눈동자를 좀 보라.... 응?”

하루 종일 적토마를 자랑할 기세였던 이의민은 갑자기 전방을 보며 황당한 듯 입을 벌렸다. 동관 앞에 동탁의 기마병들이 넓게 포진되어 있었다. 꽁지가 빠지게 후퇴하던 직전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동탁군만 보면 거리낌 없이 추격하던 이의민군 군사들도 잠깐 주춤할 정도다.

“저 새끼들 왜 저래? 저럴 거면 왜 동관까지 간 거지? 수성은 아니 하겠다는 건가?”

곽가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듯 설명했다.

“흠! 지금 저들의 병종 비율을 보자면 꽤나 좋은 생각 같습니다. 기병 비중이 높으니 관문 안에서 틀어박혀 수성만 하는 것보다 차라리 기병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이 벌판에서 요격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그 악명 높은 서량 기병이니 나름 자신감도 있을 테고요.”

순유도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수성을 하지 않고 대놓고 기병전을 펼치자는 것은 병력이 더 적은 저들에게 매우 큰 모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주군께서 계신다는 걸 망각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만만히 보면 아니 되겠지요. 서량의 기마병이 그간의 명성을 거저 얻은 건 아닐 테니 말입니다.”

“뭐 그런 거 같긴 하군.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싸움 걸어주는 데 우리가 피해서야 되겠는가.”

이의민은 당연히 피할 생각이 없다. 이의민군 군사들도 대응 전술을 이미 짜고 있었다.

서량 기병에 맞서 이의민군 기병들도 넓게 자리를 잡고 사이사이를 보병들이 메우고 있다. 그리고 후방엔 태사자가 궁병 부대를 이끌고 자리를 잡았다.

“서량 기병이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봤자 저놈들이 내 앞길을 막을 수 있겠나?”

이의민은 적토마를 타고 가장 선두에 서서 거침없이 서량 기병들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가던 도중 이의민은 적토마에게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왜 그러느냐? 너도 전투를 앞두고 흥분되느냐?”

“히히히힝!!”

이의민은 항상 전투를 앞두고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적토마의 울음소리 역시 같은 의미라고 여겼다. 그런데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 느낌은 전투를 앞둔 희열이라기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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