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이제 이 말은 제겁니다 (3)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이 대부에 담겨 있었다. 여포는 본능적으로 방천화극을 들어 대부를 막았다.
여태껏 여포는 자신을 향한 그 어떤 공격도 인지하고 막을 수 있었다. 그 어떤 공격도 여포의 인지를 벗어난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의민의 공격은 그런 여포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빨랐다. 그래도 여포의 본능은 이의민의 공격을 겨우 막아주었다.
파파팡!!
방천화극이 대부를 막는다. 두 무기가 마찰을 일으키며 엄청난 불꽃을 냈다. 마치 대장간의 달구어진 화로에서 무기를 막 꺼내는듯했다.
방천화극은 대부의 경로를 막는듯했으나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천화극이 사정거리에 더 유리하다지만 파괴력만큼은 대부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엄청난 힘이 방천화극을 강타했고, 결국 방천화극은 서서히 균열이 생겼다.
여태껏 여포와 함께 그 어떤 무기도 박살내고, 그 어떤 적도 베어버렸던 방천화극이 이의민의 대부에 의해 박살이 나고 있다.
“크악!!”
방천화극은 완전히 박살났지만 덕분에 여포는 무사할 수 있었다.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10보 이상 튕겨나가면서 적토마에서도 낙마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숨을 건졌다.
“이, 이놈이 무슨 짓을....?!”
튕겨나간 여포는 자신이 운 좋게 살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이의민에게 으르렁 거렸다. 그런 여포에게 뚜벅뚜벅 다가가는 이의민. 그가 든 대부는 아직 열기가 식지도 않았는지 김이 피어올랐다.
여포는 엄청난 공포를 느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공포였다. 단순히 자신의 애병인 방천화극이 없어져서 그런 게 아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적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였다.
여포는 평범한 자들이나 느끼는 감정인 공포를 자신이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 내가.... 이 여포가 겁을 먹고 있다고....? 웃기지 마라!’
그래서 다가오는 이의민을 똑바로 보고는 있었지만 절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이때 여포의 뒤에서 이각이 소리쳤다.
“공자! 이걸 받으시오!”
이각이 근처로 와서 창 하나를 여포에게 던졌다. 여포는 순간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을 스스로 합리화시키며 이각에게 달려갔다.
‘그, 그래! 난 지금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방천화극이 없어졌으니 새 무기를 받으려고 저쪽으로 가는 것뿐이야.’
하지만 이각 쪽으로 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모습이다. 여포 스스로만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의민은 그런 여포를 쫓지도 않고 그저 같은 속도로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가고만 있다.
이각이 준 창을 받은 여포는 또 망설였다. 이제 무기도 다시 받았다. 하지만 이의민을 상대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천화극을 박살내기 직전 이의민의 공격이 다시 생각났다. 또 한번 그 같은 공격을 받는다면 막을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의민을 보는 여포. 또 두려워졌다. 이의민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마치 죽음의 사신이 다가오는 것 같다.
여포의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쪽을 바라보는 수많은 군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들이 보는 앞에서 도망친다면 온 나라의 비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여포는 눈앞의 이의민도 두려웠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비웃음이 더 두려웠다. 결국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이의민 앞으로 창을 들고 나아갔다.
‘그래.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아까 전까지만 해도 비등하게 싸웠잖은가. 방금 전 공격은 우연일 뿐이다.’
여포는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이의민과 마주했다. 처음의 자신감은 오간데 없다. 사실상 반강제로 서 있는 여포는 악을 쓰며 이의민을 창으로 찔렀다.
“제발! 제발 죽어라! 이걸로 좀 죽어!”
최후의 발악 같은 또는 애원과도 같은 여포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의민은 너무도 쉽게 여포의 창을 막아냈다.
“으힉?!”
“그 따위 허접한 공격으로 날 죽일 수 있겠느냐?”
바로 이어지는 이의민의 대부 공격. 너무도 쉽게 막았던 이의민과는 달리 여포는 혼비백산하며 겨우 대부를 막아냈다. 하지만 온전히 막은 것도 아니다.
단 한번의 공격에 창이 부러지면서 오른팔에 피가 솟았다.
“크악! 이, 이 괴물 같은 놈....!”
다시 한번 두려움이 솟구쳤다.
여포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이의민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이놈은 정말 괴물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보다 더 강한 놈이다.’
무기도 없고, 팔에 부상까지 입었다. 설사 방천화극이 다시 손에 쥐어지고 팔이 멀쩡하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을 것 같았다. 동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 같던 여포는 지금 이 전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크게 느끼고 있다. 그가 여태껏 두려움이 없어보였던 것은 그 누구도 여포의 목숨을 위협한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의민 앞에서는 비로소 자신이 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여포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됐다.
‘어쩌지.... 일단 항복하는 척을 할까....? 그래.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 여기서 죽을 바에 추후에 기회를 엿보는 것이 낫다.’
물론 이의민이 여포의 항복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여포는 이의민이 자신의 항복을 받아들일 거라는데 한치의 의심도 없다.
‘천하에 이 여포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의민은 일전에도 내 재주를 아까워하며 살려주지 않았던가.’
자신이 온 나라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도 이미 잊었다. 순수한 죽음의 공포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여포다.
바로 이의민 앞에 무릎을 꿇는 여포.
털썩.
“승상! 대부를 거두어 주시오! 나! 여 봉선은 승상에게 항복하겠소! 명만 내려주시오. 감히 승상께 반기를 드는 저 역적 놈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처단할 수 있소.”
“저, 저 미친놈이...?!”
뒤에서 여포를 응원하고 있던 동탁은 거품을 물고 뒷목을 잡았다.
“야이 호로 새끼야! 언제는 아버지라더니 그리 쉽게 배신한다는 말이 나오더냐?!”
“퉤! 애비는 무슨.... 피 한 방울 아니 섞였는데 내가 어찌 네놈 아들이냐? 나는 승상의 대의에 감동해 그를 돕기로 했다. 기다려라. 동탁. 곧 정원의 뒤를 따르게 해주마.”
기막힌 상황에 동탁군뿐만 아니라 이의민군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여포가 갑자기 이리 돌변하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싸우던 양 진영이 한 목소리로 야유를 내뱉었다.
“이 패륜아 자식아! 어찌 사내가 한입으로 두말을 하느냐? 하늘에 대고 부끄럽지 않느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내 살다 살다 저런 놈은 처음일세.”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저런 비열한 놈이라면 장군으로 모실 수 없어. 여러모로 승상에 비하면 잡장에 불과한 인간이군.”
주변에서 쏟아지는 비난에도 여포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이의민의 눈치만 살폈다.
‘어차피 저런 버러지들이 뭐라고 떠들든 아무 상관없다. 오직 이의민만 날 받아들여 준다면....’
여포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의민을 바라보고 있다. 이의민은 그런 여포를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가 갑자기 대부를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여포는 그 모습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그렇지. 역시 나 같은 인재를 결코 버릴 수가 없겠지. 이의민. 네놈도 욕심에 눈이 먼 놈이군. 지금 승리의 기분을 마음껏 느껴라. 그것도 잠시니까....’
천천히 다가오는 이의민. 여포는 이의민이 자신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포는 순간 대낮에 별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퍼퍽!
“크악!”
이의민의 주먹이 그대로 여포의 면상을 강타했다. 단 한번의 공격에 여포의 강냉이 서너 개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으어억! 가, 갑자기 무슨....?”
여포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며 한쪽 뺨을 감싸 쥐고 있는데 이어서 이의민의 주먹이 또 날아왔다. 이번에는 반대편 면상이다.
퍼어억!!
“끄어억!!”
이후 이의민의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퍼퍼퍼퍽! 퍼버벅!
마치 몽둥이로 소라도 때려잡는 듯 둔탁한 구타음이 이어지고, 여포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겨우 일어났다.
“크헉! 대체 왜...?! 그만! 그만!”
“한심한 놈. 일전에는 그래도 네놈의 재주를 가상히 여겨 살려두었다. 내 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긴장감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지만 지금은 그 결정이 후회되는구나. 네놈은 무인도 뭣도 아니다. 그저 쓰레기일 뿐....”
“뭐, 뭣이....?”
여포는 이의민이 자신을 받아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포는 동탁을 향해 다시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외쳤다.
“아, 아버지. 방금은 내가 정신이 나갔소. 날 좀 도와주시오. 이각! 무기를 던져라! 곽사! 병사들을 통솔해 이 놈을 죽여라!”
여포의 외침에 이의민군 쪽에서 황충 등이 나서려고 했다가 이내 멈추었다. 동탁군이 아무런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여포는 그런 동탁군을 보며 악을 썼다.
“이놈들! 나 여포다! 난 동 장군의 아들인 여포란 말이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왜 움직이지 아니 하는....? 커억!!”
여포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이의민의 구타가 다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포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무인으로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맞아죽을 처지가 됐다.
결국 여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의민에게 애원했다.
“이... 의민... 그냥 날 죽여 다오. 더 이상 고통은 받고 싶지 않다. 나 여포다.... 항우의 재림이라 불렸던.... 부디 내 명예를 지켜다오....”
“헛소리하고 있네. 너 같은 쓰레기가 명예는 무슨....”
이의민은 여포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고 끝까지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끝내 여포는 이의민의 대부가 아닌 주먹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 시대 최강의 무장이자 항우의 재림이라 불리던 사내의 비참하고 굴욕적인 죽음이다.
여포의 숨통을 끊은 이의민은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한혈마가 누워 있는 곳이다.
그 누구도 이의민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의민군은 물론이고 동탁군도 마찬가지다. 천하의 여포를 주먹으로 끝낸 자를 대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한혈마의 주검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의민은 한혈마의 시체를 한번 쓰다듬더니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 말을 잘 묻어주어라.”
그런 다음 적토마에게 다가가는 이의민.
적토마는 이의민과 여포가 한창 싸우던 도중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포가 타고 있지 않으면 주변으로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며 날뛰던 평소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온순하게 이의민을 바라보는 적토마다.
‘내가 제 놈을 살려줬다는 걸 아는 것인가? 거 참 영물이로구나.’
이의민은 그대로 뛰어올라 적토마의 등에 올라탔다. 그전까지 얌전히 미동도 하지 않던 적토마는 이의민이 자신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용이라도 된 듯 크게 울부짖었다.
“히히히히힝!!”
마치 이제야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났다는 듯 말이다.
“그래. 이제 너는 내 것이다. 나 이의민의 말이란 말이다.”
적토마를 쓰다듬은 이의민은 주변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외쳤다.
“다들 뭣들 하고 있느냐? 나머지 놈들도 다 내가 처리를 해줘야 하느냐?”
이의민의 호통에 서황을 비롯한 이의민군 장수들 모두 정신을 차렸다.
“전군! 돌격!”
“와아아아아!!”
이의민군 장수들부터 동탁군을 향해 돌격했다. 이어 군사들도 함성을 지르며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이의민은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는 자신도 동탁군을 향해 적토마를 몰고 나갔다. 붉은 잔상이 남는 듯 빠른 돌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