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07화 (107/175)

107. 이제 이 말은 제겁니다 (2)

쿠콰콰쾅!!

이것이 진정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의민의 대부와 여포의 방천화극이 부딪힐 때마다 땅과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가 났다. 둘의 일기토는 마치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신장들의 싸움 같았다.

그 엄청난 광경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서로 싸움을 멈추고 둘의 일기토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성벽 위에서 붙었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이의민이 계속 밀어 붙였다면, 지금은 그야말로 막상막하에 용호상박이었다.

일기토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음속 한구석에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이 있었던 여포다. 하지만 비등한 일기토가 계속되자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의민을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 합을 주고받다보면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래! 이거다! 난 역시 최강이었어. 이의민. 일전에 네가 우위를 가졌던 건 내가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몸 상태로 돌아온 나는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내가 최강이다. 이의민!”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벌써 설레발을 치는 여포. 그런데 이때쯤이면 그런 여포에게 지지 않고 반격의 한마디를 던졌어야 할 이의민이 어쩐 일인지 조용했다. 설마 이의민은 대답할 여력조차 없는 상태일까?

‘이야! 보면 볼수록 대단한 말이군. 이건 짐승이 아니라 마치 영물 같잖아....’

그건 전혀 아니었다. 사실 이의민은 대략 오십여 합을 넘기면서 여포와의 일기토보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로 여포가 탄 적토마에게 온 신경이 쏠렸다.

이의민이 싸움 말고 다른데 더 신경을 쏟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적토마는 다른 말과 달랐다.

여태껏 이의민이 봐왔던 말들은 그저 주인이 의도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건 명마 중의 명마라고 일컫는 한혈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주인이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고삐를 당긴다. 그럼 말은 당겨지는 고삐에 고통을 느끼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설사 그쪽이 잘못된 방향이라고 해도 말이다. 말은 그걸 판단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하지만 적토마는 달랐다. 적토마는 마치 이의민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여 움직이는 듯한 신들린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의민의 대부를 휘두르면 적토마는 알아서 여포가 피하기 쉽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 반대로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두르려 하면 살짝 앞으로 전진을 하며 주인의 공격에 힘을 보탰다.

여포는 적토마에게 아무런 명을 내리지 않았다. 고삐를 전혀 당기지 않음에도 오직 적토마가 알아서 판단하여 움직이고 있다. 주인이 최선의 길을 가도록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말이다.

이의민은 여태껏 그런 말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눈앞에서 그런 말을 보고 있으니 자연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사내란 자고로 탈것에 열광하고 흥분하는 존재 아닌가.

그간 한혈마도 전에 본적이 없던 명마 중에 명마라고 생각했지만, 적토마를 보니 그 생각이 사라졌다. 한혈마 역시 훌륭한 말이지만 적토마에 비하면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결국 둘이 비등비등한 일기토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여포의 상황이 전보다 나아진 것보다는 둘이 탄 말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의민이 적토마에 정신이 팔려 온전히 일기토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렇게 이의민과 여포의 일기토는 무려 수백여 합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양 군사들의 심정은 조마조마함을 넘어 초조한 정도까지 왔다.

특히 이의민군은 눈에 띄게 표정이 굳었다. 그들이 여태껏 봤던 이의민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늘 쉽게 적장을 무찔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의민이 밀리고 있는 게 전혀 아니었지만, 상대와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이거.... 너무 오래 걸리는데....?”

“그러게. 승상과 아직까지 합을 겨룰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니.... 여포가 저 정도로 강했나....?”

반면 여포군의 사기는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일전의 전투를 봤다. 그들은 그때 이미 충격을 제대로 받았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던 여포가 밀리던 모습을 보면서.

하지만 오늘은 여포가 밀리지 않고 있다. 덕분에 일전의 충격이 조금 회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사기가 올랐다.

“하하! 역시 오늘은 여 공자께서 밀리지 않으시는군.”

“그래. 일전의 대결은 여 공자가 너무 불리한 싸움이었어. 이번에는 천하의 이의민이라도 만만찮을 거야.”

그렇게 양 군의 희비가 조금씩 엇갈리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일기토의 당사자인 여포의 심정은 동탁군의 심정과 온도차가 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왜 이리 쓰러지지 않는 거냐? 분명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상태일 터인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여포는 조급해지고 있었다. 여포는 이의민이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착각에 빠졌다. 지금 싸움은 명백히 자신이 우위라는 착각이다.

그렇게 착각에 빠져 수십 합을 보냈다. 그런데 이의민은 여전히 말만 하지 않을 뿐 처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공격을 빈틈없이 틀어막았다. 그래도 여포의 착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수백 합을 넘겼다. 그쯤 되니 여포도 슬슬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슬슬 지쳐 가는데 이의민은 전혀 지쳐 보이는 기미가 없었다.

조급해진 여포는 점점 더 과감한 공격을 일삼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심정으로 공격을 해보았다. 그래도 이의민은 여전히 처음 그대로 침착하게 여포의 공격을 막아냈다.

‘젠장! 저 망할 놈의 대부! 지긋지긋하군.... 잠깐! 대부라면....’

이의민의 빈틈을 죽어라 찾던 여포의 머릿속에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흔히들 쓰는 도나 창 극 도끼. 각 무기마다 특성이 있고 장단점이 존재한다. 물론 여포에게는 그런 무기들의 장단점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기의 특성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의민을 상대하는 건 다르다. 그를 이기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그간 잊고 있었던 무기별 장단점을 다시 떠올렸다.

‘내 방천화극은 저 놈의 대부보다 압도적으로 사정거리가 길다.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여포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방천화극을 길게 잡았다.

‘크흐흐! 이의민. 네놈이 과연 이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여포는 이의민과의 거리를 살짝 벌렸다. 이 역시 여포가 적토마의 고삐를 당겨 움직인 게 아니다. 적토마는 마치 여포의 의도를 알아챘다는 듯 알아서 뒤로 물러섰다. 길어진 방천화극 사정거리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이다.

정확히 대부는 닿지 않고 딱 방천화극만 닿을 만 한 거리에 도달한 여포.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방천화극을 이의민에게 휘둘렀다.

이의민은 당연히 그 공격을 대부로 막아내려 했다. 그런데 방천화극의 사정거리를 이용한 여포의 공격은 이의민을 향하다가 경로를 살짝 바꿨다. 사실 그 공격은 이의민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사정거리를 이용해서 이의민을 이길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 그랬겠지만, 여태 막혔으니 어차피 통하지 않을 공격이었다. 그럼 여포가 노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의민이 탄 한혈마였다.

공격대상이 자신이 아닌 말이란 걸 깨닫고 당황한 이의민이 늦게 방비하려해도 사정거리가 짧은 대부로 말의 머리까지 보호하기는 힘들 거라는 게 여포의 생각이었다. 물론 한혈마를 잡는다고 이의민이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단 한혈마부터 제거하면 이의민은 이동과 높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하지만 여포도 한가지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의민은 여포보다 힘과 체력, 민첩성에서 모두 근소하게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여포는 스스로 이의민과 동급 또는 그 이상이라고 여겼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의민이 모든 면에서 한수 위다. 그렇기 때문에 여포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이의민은 충분히 대처를 할 수가 있다. 결정적으로 이의민은 여포와 비교할 수 없는 전투 경험의 우위가 있었다.

즉, 이의민은 여포의 의도를 이미 뻔히 눈치 채고 있었다.

‘하! 이 새끼 봐라? 이제 날 공격하는 것이 통하지 않으니, 말을 공격하겠다는 거잖아? 어울리지도 않게 대가리를 굴리고 지랄이야.’

이의민은 여포와의 거리를 좁히려는 척하면서 오히려 한혈마를 뒤로 뺐다. 덕분에 여포의 공격은 허공을 가르게 됐다.

다시 적절한 사정거리를 유지한 여포의 공격이 시작됐다.

여포의 의도는 진작 알았지만 이의민은 살짝 골치가 아파졌다. 이대로 여포가 계속 사정거리를 이용한 공격을 계속한다면 한혈마를 계속 보호하기가 힘들었다.

어쨌거나 여포가 모든 면에서 근소하게 자신보다 못하지만,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는 거면 모를까 탄 말까지 보호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처럼 아예 여포의 공격 범위는 벗어난다면 피할 수는 있지만, 짧은 대부의 사정거리로 인해 반격은 전혀 꿈꿀 수 없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만 해야 된다는 건데, 그건 이의민의 성격상 맞지 않는 행위다.

‘끝까지 말을 노리겠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물론 이의민에게 해결책이 없지는 않았다. 상대가 자신이 아닌 말을 노린다면 똑같이 해주면 되는 일이다. 바로 이의민도 적토마를 노리면 된다는 뜻이다.

사정거리가 유지가 되어 이의민의 대부가 여포에게 닿기는 힘들다고 해도 적토마에게는 닿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서로 말을 교환한다면 이의민에게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토마와 한혈마의 차이를 생각할 때 이의민에게 큰 이득이라 볼 수 있었다.

여포가 거리를 유지한 채 방천화극을 다시 휘둘렀을 때, 이의민은 더 이상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이의민은 한혈마를 향해 휘둘러지는 방천화극을 보면서 자신도 적토마를 향해 대부를 휘둘렀다. 이대로라면 서로가 서로의 말을 죽이기 직전이었다. 그때 이의민은 보았다.

‘큭! 한낱 미물 따위가...! 아니지... 이래서 영물인가?’

적토마는 눈을 감고 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고 조용히 이의민의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듯 말이다. 이의민은 그런 적토마를 보고 결국 대부를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여포의 방천화극은 한혈마의 머리를 갈랐다.

털썩!

한혈마의 머리가 그대로 떨어졌다. 여포는 그걸 보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핫! 내가 이겼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순간 이의민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걸 알았을 때 매우 큰 공포를 느꼈다.

‘헉! 크, 큰일이다!’

자신의 애마인 적토마가 죽는 것은 더 없이 큰 두려움이었다. 그가 적토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적토마가 죽으면 이의민을 상대로 힘들어질 것이고, 결국 패배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웠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의민은 마지막에 대부를 멈췄다. 그 덕분에 한혈마만 죽고 적토마는 살았다. 이제 여포는 이의민을 쓰러뜨릴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그때 여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했다. 지금까지 이의민에게서 느껴본 적이 없는 기운을 느꼈다.

‘뭐, 뭐지? 갑자기....?’

이의민의 말까지 없앴으니 이제 그와 비등한 수준이 아니라 압도하는 상황이 됐다고 여긴 여포. 명백한 착각이었다.

“흐흐! 감히 내 애마를 죽인 대가를 치러야겠지? 이 쌍놈새끼야.”

엄청난 힘이 담긴 이의민의 대부가 여포를 향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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